"못치면 맞아서라도 나가고 싶었다"
전북체육의 역사를 말할때 '역전의 명수'란 닉네임을 가지고 있는 군산상고 야구를 빼놓을 수 없다.
기적처럼 만들어 낸 역전 신화, 그것은 패배와 좌절을 거듭하던 인생에서 멋지게 도약한 '허각'과 '존박'을 떠올리게 한다.
군산상고 하면 누구나 역전의 명수를 떠올리지만, 9회말 마지막 결승타를 터뜨린 선수가 김준환(54·현 원광대감독)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무려 38년이 지났으나 김준환 감독을 만나 '그때 그순간'을 듣는 2시간 내내 대화가 계속될만큼 그의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1972년 7월 19일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열린 동아일보사 주최 제26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 대회 결승전은 한국 고교야구 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힌다.
당시 고교 야구는 요즘 프로야구의 인기를 뺨칠 정도여서 경기장 주변은 물론, TV와 라디오 중계를 들으려는 사람들로 북적대곤 했다.
창단 3년만에 가장 권위있는 대회 결승에 진출한 군산상고는 전국 최강이던 부산고에 9회초까지 1대 4로 몰리면서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9회말들어 군산상고는 1사 만루찬스를 맞은 것이다.
이 상황에서 발빠른 김일권이 데드볼로 밀어내기 한점을 얻어냈고, 양기택이 2타점 적시타를 때려내면서 순식간에 동점이 됐다.
2사 주자 2루에 둔 상태에서 김준환이 타석에 들어섰다.
투 스트라이크 노볼 상태에서 김준환은 집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했다.
3남3녀중 장남인 자신의 손을 잡고 부엌에 데려가 살짝 고기를 먹이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안타를 못치면 공을 몸에 맞고서라도 진루하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부산고의 편기철 투수는 제3구를 한복판에 집어넣었다.
바로 그 순간, 김준환은 공의 실밥이 보일만큼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응시하며 힘껏 잡아당겼고 타구는 좌익수 앞으로 쭉쭉 뻗어갔다.
너무 직선 타구여서 혹시 2루 주자(양기택 선수)가 홈에 들어오다 아웃되는게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꿈처럼 앞선 주자는 홈인했고, 5대 4 대역전 드라마를 완성한 김준환은 껑충껑충 뛰었다.
"정확히 38년이 지났으나 그때 홈 플레이트를 통과하던 공의 궤적과 딱 하고 맞는 순간 느낀 전율은 지금도 생생하다"는 김 감독은 "45년 야구 인생을 통틀어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라고 말한다.
경기를 앞두고 당시 선수들 절반 이상이 아폴로 눈병에 걸려 눈꼽이 끼고, 눈이 뻘건 상태였는데 사람들은 우승직후 울어서 그런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일부 관중들은 흥분이 지나쳤을까.
그라운드에 내려와 당시로서는 매우 소중했던 선수들의 글러브, 배트를 모두 가져가버린 것이다.
당시 결승전은 야간 경기였는데 군산비행장측은 야간경기 적응훈련을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전주에서 소방공무원을 하시던 아버님이 우승 후 어깨를 두드리며 칭찬하셨는데 그 음성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향토사단 지프를 타고 전주에서 익산을 거쳐 군산까지 카퍼레이드를 한 선수들은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그렇게 먹고싶던 불고기가 일주일 내내 먹다보니까 더 이상 못먹겠더라고요, 그런데 군산상고 유니폼 입은 선수들은 음식점에서도 아예 돈을 받지 않지 않고 대접하겠다는 곳이 한두곳이 아니었어요"
원용학 교장, 최관수 감독, 송상복 투수, 김봉연, 김일권, 김우근 등 '역전의 명수' 주역은 많았다.
홍런왕으로 알려진 김봉연은 고교 2학년때까지 주전 투수였으나 어깨를 다치면서 거포로 자리잡았고, 스마일 투수인 송상복 선수(전 군산시의원)가 뜨게되는 계기가 됐던 일화도 있다.
김준환 감독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고인이 된 최관수 당시 감독이다.
선수들이 폭력사건에 연루되자 전원을 모아놓고 잘못 지도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며 선수들이 몽둥이로 감독을 때리게 한 사건 이후 선수들은 모두 겸손한 사람들로 바뀌었다.
한편 완주 봉동이 고향인 김 감독은 전주동초에서 야구를 시작, 남중과 군산상고를 거쳐 산업은행, 해태 타이거즈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프로야구 쌍방울 감독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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