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대표적 수영선수였던 채송희(29)가 오랜 선수와 지도자 생활을 접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교단에 서게됐다.
체육교사가 된 채송희는 지난 22일 자신의 첫 부임지인 진안여중을 찾아 남모를 눈물을 펑펑 흘렸다고 한다.
선수로서, 또 지도자로서 남다른 감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소망하던 교단에 서게된 첫 학교 방문길에서 그는"후학을 위해 혼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채송희는 각 시도별 경쟁이 가장 치열한 전국체전에서 4년연속 금메달을 따내는가 하면, 국가대표를 지내며 전북 수영의 자존심을 지켜온 '전북의 마지막 여자 수영국가대표'다.
하지만 체육 교사가 되기위해 그는 여러번 실패했고, 어렵게 기회를 잡았다.
전주초 4학년때 수영을 시작한 채송희는 전라여중, 전주여고, 전북대 사범대를 거치면서 전북은 물론, 국내 대표적인 수영선수로 활약했다.
중3때 소년체전 접영 5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이후 그는 80회부터 83회 전국체전때까지 4년 연속 접영과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일궈냈다.
고교 3학년때는 국가대표에 선발됐고, 코리아오픈 국제수영대회 접영 100m와 200m 경기에서 2위를 하는 등 크고작은 국제경기에서도 태극마크를 달고 나섰다.
지도자로서도 채송희는 매우 뛰어난 성과를 일궈냈다.
도 체육회 소속 수영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후배들이 수없이 많은 금메달과 은메달을 딸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채송희는 수영을 시작한 이후 꿈이 국가대표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대표 감독이 되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그는 항상 최선을 다했다.
채송희에겐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 하나가 뇌리에 생생하다.
지난 2003년 전주에서 열린 제83회 전국체전 자유형 50m 경기 결승전때의 일이다.
전북대 학생이었던 채송희의 경기에 당시 두재균 전북대총장과 전북대 사대교수·장영달 국회의원·서정일 도 수영연맹회장 등이 모두 몰려와 열띤 응원을 해줬는데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단거리 경주에서 출발이 늦어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채송희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투혼을 발휘, 육안으론 구별할 수 없을만큼 간발의 차로 멋진 금메달을 따냈다.
막판 골인때 손 터치가 워낙 강해 손가락이 골절된 것을 경기가 끝난 뒤에야 알았다는 것이다.
경기가 있을때면 아버지(채병태·57)와 어머니(김현숙·56)는 언제나 생업을 뒷전으로 물리고 딸의 경기장을 찾아 목이쉬게 응원했다.
경기장에선 얼굴도 모르는 임원들에게 "전북에서 출전한 채송희의 부모"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체조 이희경, 육상 이순철, 배드민턴 김선미 교사의 뒤를 이어 교단에 서게된 채송희는 "항상 노력하는 교사,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교사가 되겠다"며 "단순히 수영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평생 체육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고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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