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창조적마을 만들기 유치 7년만의 결실 / 운호권역 복지공간 확대, 주민 삶의 질 향상 기대
부안군 진서면 운호(雲湖)마을은 한자명을 따서 구름호수마을로 불린다. 곰소·내소사~모항해수욕장 사이 해안도로변에 자리잡은 운호마을 앞으로는 서해바다가 망망하고, 뒤로는 변산 신선봉과 군신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42가구가 62㏊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겉에서 보면 그저 한적한 산골마을일 뿐이다.
하지만 구름호수마을은 20년 전부터 뭔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왔다. 이제는 조그만 산골 작은 마을에 도시민들이 농사 체험하러 찾고, 농산물 사러 찾는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오디, 울금, 돼지감자, 여주, 감, 마늘, 양파, 가시오가피 등 농산물이 입소문을 타면서 인터넷 공간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농식품부가 주관한 ‘2015년 일반농산어촌개발공모사업’에서 ‘운호 구름호수권역 창조적마을만들기사업’이 선정됐고, 이 마을 김성구 위원장은 ‘농촌융합산업사업자 예비인증’을 받았다. 벼농사, 고추농사를 짓던 마을이 몇 년 전부터 지역 특산품을 만들고, 이를 가공 판매하는데 성공하면서 그야말로 ‘6차산업’의 모델이 됐다.
지난 달 30일 운호 정보화마을에서 김성구 위원장(61)을 인터뷰했다.
-운호 구름호수권역 창조적 마을만들기 사업이 지난 달 정부가 공모한 농산어촌개발 사업에 선정 됐습니다. 앞으로 어떤 사업들이 진행됩니까.
“운호 구름호수권역 창조적 마을 만들기 사업은 31억 원 규모이고, 운호 주변 7개 마을이 사업 대상입니다. 이 사업 유치에 나선지 7년만에 거둔 결실이어서 감개무량합니다. 권역 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복지 공간을 확충한다고 보면 됩니다. 체육, 공원, 도서관(소회의실 겸용), 작은 영화관, 공연, 사물도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농사만 짓는 1차산업 공간인 운호권역을 농산물 가공 판매 서비스 등 2차, 3차 산업 공간으로 확대하고 나아가 주민들이 복합문화공간에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6차 산업을 지향하며, 그 성공모델에 초점을 맞춰 진행하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사업이 진행되면 운호 구름호수권역 주민들의 삶의 질이 매우 높아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운호마을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운호마을은 현대인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요구하는 특용작물을 친환경적으로 재배, 판매하면서 도시 소비자들과 소통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농산물을 생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가공, 판매하는 시스템을 잘 갖췄고, 친환경 건강식품에 주력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어떤 농산품을 판매하고 있습니까.
“운호마을은 주로 벼농사와 고추농사를 지었습니다. 요즘은 울금과 돼지감자, 여주, 오디 등 현대인들이 주목하는 건강 기능식품 생산이 많아졌습니다. 가시오가피, 감, 양파, 마늘 등도 생산합니다.”
-위원장님은 특용작물 재배로 주위의 관심과 사랑을 이끌어냈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부친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농사를 짓게 됐는데, 처음부터 특작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추 농사에 터널재배방식을 도입, 저는 물론 마을사람들이 높은 소득을 올렸죠. 그 덕에 1993년 서울종묘가 주는 농민대상을 받았고, 부상으로 9박10일짜리 일본 선진지 견학도 다녀왔습니다. 그 때 오끼나와 농업연구소에 다니는 ‘소메야’라는 분의 집에 갔는데, 20평 정도 텃밭에 제가 모르는 작물이 심어져 있더라구요. 향기가 좋고, 생강처럼 생긴 뿌리는 노란색을 띄었는데, 호기심에 무슨 작물이냐고 물어보았더니, ‘울금’이라며 앞으로 세계적 식품이 된다는 거예요. 한번 해보라고 권하는데 마음이 끌렸어요. 그들의 실험 연구 자료와 울금 18㎏을 가지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 재배를 시작했습니다. 방송사 ‘6시 내고향’에 울금 재배가 소개됐는데 소비자 반응은 시원찮았습니다.”
울금은 카레에 들어가는 강황으로 잘 알려져 있다. 커큐민이 주성분이다. 기를 소통시키고, 어혈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 간장염, 담석증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암 치료에 보조작용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식품이다.
-고추를 재배하다 울금에 빠졌는데, 잘 됐습니까.
“사람 건강에 좋은 세계적 식품이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울금에 미쳤는데, 사실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울금은 국내에서 생소했습니다. 게다가 처음에 너무 많은 면적에 재배했어요. 많은 울금을 생산했지만 거의 팔지 못해 썩히기 일쑤였습니다. 7∼8년간 그랬는데, 사람들이 울금의 가치를 알고 찾아주기 바라며 고집스럽게 농사지었죠. 힘들어도 너무 좋은 작물이이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김성구 위원장은 울금 농사를 첫해에 8000평, 이태에 1만2000평 지었다. 3.3㎡당 7∼8㎏ 생산할 수 있는데, 농사가 잘 되면 10㎏도 생산했다. 8㎏ 기준으로 60톤 이상을 생산했으니, 엄청난 양이다.
“수확해서 창고에 쟁여 놓았는데, 결국 못팔고 상당량을 버렸어요. 제 심정이 어땠겠어요. 그래도 이걸 버리지 못한 것은, 앞으로 세계적 식품이 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지요.”
-아무리 좋은 농산물이라도 팔리지 않으면 계속 농사지을 수 없잖아요.
“사실 울금만 바라볼 수 없었죠. 집안 살림은 해야 하니까. 그래서 2002년에 돼지감자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돼지감자는 뚱딴지라고 불리는 다년생 식물로서 주변에 자생한다. 당뇨, 해열, 변비, 비만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다. 천연 인슐린의 보고로도 알려져 있다.
-돼지감자는 어떻게 재배하게 됐는가요.
“돼지감자는 밭두렁이나 야산에 자생하는 식물인데요, 어느날 시골 방앗간에 갔다가 돼지감자 볶는 것을 보고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당뇨에 좋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그러던 중 원광대 김윤철 교수(약학과)를 찾아가 오디와 돼지감자 둘 중 어느 것을 재배하는 것이 낫겠냐고 문의했더니, 김교수가 돼지감자를 재배하라고 권했어요. 열을 가해도 주요 성분이 파괴되지 않는 장점이 있고, 앞으로 세계적 식품이 될 거라고 조언했어요. 게다가 안팔리면 자기가 다 팔아주겠다는 거예요. 김교수를 믿고 돼지감자를 재배하게 됐죠.”
-돼지감자도 울금처럼 대규모로 시작했나요.
“3000평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많은 종자를 어떻게 구했습니까.
“마침 장수 계북면에 돼지감자를 재배했다가 골치를 앓게 된 농가가 있었어요. 돼지감자로 연료를 만들어 수출한다면서 업자들이 농가와 계약재배를 했는데, 물건을 가져가지 않은 것이죠. 계북면에 사는 지인을 통해 2톤 정도를 캐올 수 있었죠. 그 농가들은 돼지감자가 처치 곤란이었고, 저는 절실했습니다.”
-농사는 잘 됐습니까.
“돼지감자 3000평을 심었더니, 당장 어머니부터 ‘미친 놈이지. 좋은 밭에다 천지에 널려 있는 것을 왜 심어’하며 이해를 못했어요. 마을 사람들도 미친놈이라고 했어요. 농사는 잘 됐어요. 그런데 2년간 박살이 났어요. 돼지감자는 3.3㎡당 생산량이 20㎏ 정도 되는데, 3000평이니 60톤이 생산된 셈이죠. 부직포 덮고, 비닐 덮고 해서 창고에 정성스럽게 보관했는데 모두 썩고 말았어요. 돼지감자가 자체적으로 발산하는 열 때문에 폭삭 썩었어요. 그래서 아마 알콜을 만들려고 했던가 봐요. 남들 눈에 보이기 부끄러워서 세 아들과 함께 한 밤중에 몰래 처리했지요. 몇 년 실패하고 나서야 건조 가공을 생각해 냈어요.”
-그래서 가공 일은 잘 됐습니까.
“돼지감자를 처음 식품으로 취급하려다보니 재배와 보관 방법, 가공방법 등을 잘 몰라서 힘들었습니다. 시행착오, 실패를 많이 경험했죠. 생산량이 많은데다 열이 많이 나 창고 보관이 어려웠어요. 저온저장고도 대용량이어서 부담이었고요. 그래서 건조 가공을 생각했죠. 건조해 뒀다가 필요할 때마다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엑기스용은 냉동해서 사용하고요. 지금은 수확한 돼지감자를 곧바로 세척해서 건조합니다. 모든 시설을 갖췄죠.”
-제품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돼지감자 환, 분말, 엑기스 등을 만들어 판매합니다. 제품 가격도 제가 정했는데, 처음 360g 한 봉지에 5000원으로 정했다가 따져보니 수지가 맞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1만원을 받고 있습니다.”
-울금은 별 재미를 못 본 셈인데, 돼지감자는 반응이 괜찮았나요.
“제가 돼지감자를 재배하는 사실이 운좋게 6시 내고향에 방송됐어요. 돼지감자를 재배하기 시작한지 2년 후 일이죠. 울금은 방송 나간 뒤 반응이 별로였는데, 돼지감자는 소비자 반응이 좋았어요. 특히 2010년 10월5일 방송이 나간 뒤 대박이 났어요. 소비자들로부터 엄청난 전화가 왔고, 그 때 고객이 많이 확보됐어요. 돼지감자가 전국에 택배로 팔리고 있어요. 돼지감자가 없었다면 저는 부도났을 겁니다.”
돼지감자가 잘 팔리자 울금을 찾는 소비자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김성구 위원장은 지금 돼지감자 2만평, 울금 6000평을 짓는다. 몇 년 전부터 인기를 끌고 있는 여주도 600평(하우스 3동) 짓는다. 이제 팔 수 있는 만큼만 생산하고, 대중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앞장서 대규모로 재배하지 않는 지혜도 얻었다.
-그동안 씨를 뿌렸고, 2010년부터 빛을 보기 시작했군요.
“지금은 그 해 생산한 것은 모두 팔립니다. 옛날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꾸준히 팔리기 때문에 보람을 느끼며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20년 전, 울금을 선택했다가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후회하지 않았습니까.
“울금농사 짓기 전에 고추를 대규모로 지었는데, 1994년 울금 8000평, 고추 1000평 정도 했습니다. 완전히 울금으로 작목을 전환한 것이죠. 울금의 가치를 확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후 너무 힘든 일이 많았지만, 울금을 선택한 것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울금으로 돈은 못벌었지만, 언젠가는 많은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울금은 건강에 좋은 식품입니다. 현재는 대중성이 확보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어떤 효능이 있습니까.
“지금은 정보화시대 잖아요. 사람들이 더 잘 압니다. 또 카레를 알잖아요. 그래서 카레 원료인 울금도 아는데, 울금은 간에 좋습니다. 애주가들이 울금 환을 먹고 술을 먹으면 간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해독이 잘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취기가 없고, 두통이 없는데, 전주 이강주에 사용되는 것이 바로 울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울금보다 강황이라는 용어에 친숙한 것 같은데요.
“울금은 가을울금이라고 하는데, 꽃이 하얗습니다. 강황은 봄울금이라고 하는데 꽃이 보라색입니다. 또 울금 뿌리는 노랗지만, 강황은 희끄므레 해요. 완전히 달라요. 가을울금이 진짜 울금입니다.”
-여주는.
“여주는 한 3년 전부터 짓고 있습니다. 돼지감자 하다보니까 여주 찾는 소비자들이 있어서 농사를 짓는데, 따로 판매하기보다는 울금이나 돼지감자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덤으로 끼워줄 생각이예요. 여주도 돼지감자처럼 혈당을 강화시켜주니까 필요한 제품입니다.”
-품목별 생산량은 어느정도인가요.
“생물 기준으로 울금 30톤, 돼지감자 200톤, 여주 3톤 정도 합니다. 건조하면 크게 줄어들죠.”
-소비자들이 체험하러 많이 오는가요.
“매년 6월이면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이 때는 주로 오디따기 체험이고, 11월말부터 다음해 3월말까지는 돼지감자 수확 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돼지감자 캐기 체험은 눈이 와도 합니다.”
-연간 몇 명 정도 오는가요.
“주로 도시 소비자들이 오는데요, 운호정보화마을과 자매결연을 맺은 인천시 간석4동 주민들은 매년 옵니다. 체험 소비자는 연간 3000명 정도 됩니다.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이 입소문 내서 주변 사람들이 오는 식이더라구요. 우리마을에서 생산되는 울금, 돼지감자, 여주, 감, 마늘, 양파, 고추, 참깨, 들깨 등이 잘 팔리는 것은 도시 소비자들과 소통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그렇게 소득이 나오는대로 조금씩 적립했다가 매년 마을 기금으로 100만원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위원장님은 6차산업 인증을 받았더군요.
“농촌융복합산업사업자예비인증서를 지난 10월 1일자로 받았는데요, 부안군에서 유일합니다. 농촌의 희망은 6차산업화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더 많은 농가들이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운호정보화마을과 원암산들바다영농조합법인, 우동향토산업, 줄포 후촌정보화마을 등 4개가 1개 권역이 돼 사업을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 김성구 위원장은 녹색농촌체험·정보화마을·팜스테이…각종 사업 지정 받아내
김성구 위원장은 운호마을 토박이다. 9대 째 살고 있다. 8녀4남 중 장남인 그는 슬하에 5남매를 두었는데, 막둥이 아들 현범(22)씨가 한국농수산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다.
현범씨가 집안 농사를 10대째 이어가게 됐다. 장교로 전역한 그는 예비군 중대장을 했다. 부친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농사를 짓게 됐다.
김 위원장은 “그 때 농촌은 너무 힘들었다. 농가소득이 100만원, 200만 원도 안됐다. 1년에 영농자금 30만원, 50만원을 제대로 갚지 못하는 농가가 많았다”고 회고했다.
1980년대 말, 김 위원장은 소득 향상을 위해 터널고추 재배법을 도입했다. 그의 개혁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 어떻게 하면 농촌이 더 많은 소득을 올려 도시 못지 않은 문화혜택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인가. 그는 2005년에 녹색농촌체험마을, 2006년에는 정보화마을 신청을 해 지정받았다. 2013년에 향토산업, 2014년에 창조적마을만들기 사업 지정을 받았다. 팜스테이 지정도 받았다. 이런 사업들을 기획하고, 서류 만들어 기관에 신청하면서 운호 구름마을을 세상과 한층 가깝게 만들었다.
1년이면 몇 백만원씩 경비가 들어가지만, 사비로 충당한다. 김 위원장은 운호 구름호수 정보화마을 사무실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매년 6개월 과정 컴퓨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 주민은 물론 곰소, 격포에서까지 온다. 주민들이 컴퓨터를 배워 블로그, SNS 등 사이버 공간을 통해 외부와 소통하며 젓갈도 판매한다. 다들 좋아한다. 컴퓨터 교육받은 할머니가 손주들과 카톡으로 대화하고, 사진도 찍어서 주고 받는다.
김 위원장은 최근 곰소에 시골장터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주민들이 생산한 감도 팔고, 조, 마늘, 호박 등 농산물을 판매한다.
김 위원장은 어떻게 하면 소비자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까,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부안군 506개 마을 리더들이 농촌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그 꿈을 이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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