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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에덴농장 홍인숙 대표 "사과 참 맛있다 입소문, 체험농장 성공으로 이어졌죠"

과일 크기보다 맛에 정성…배·감 등 품목 늘려 / 지난해 4000명·올 4500명 해마다 방문객 늘어

▲ 익산 왕궁면 에덴농장 홍인숙 대표(맨 왼쪽)가 감 따기 체험을 나온 유치원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일 지구가 망한다 해도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다. 1987년 중장비 사업에 실패한 후 사과농장에서 제2인생을 출발한 에덴농장 정학재-홍인숙씨 부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오로지 과일 맛으로 소비자 신뢰를 얻고, 체험 관광농장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며 6차산업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에덴농장 홍인숙 대표(56)를 지난 11일 익산시 왕궁면 제석사지로 80번지 에덴농장에서 인터뷰했다. 이날 과수원에서는 50여 명의 유치원 아이들이 과일 따기 체험활동을 하고 있었다.

 

-과수원에 와서 그런지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군요.

 

“오늘은 조금 왔는데, 100명 200명 몰려드는 날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둘러보니까 사과나무, 배나무가 상당히 굵은데 농장은 언제부터 시작했습니까.

 

“아들 7살 때인 1987년에 여기 들어와 농사지으며 살았어요. 그 때 사과나무를 처음 심었는데, 3000평으로 시작했어요. 지금 농장 규모는 사과 6000평, 배 2000평, 감 500평 정도예요.”

 

-도시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는데, 갑작스런 농촌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당시 상황에서는 농사라도 지어야 했어요. 농사짓는 방법을 모르니까 남들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서 했죠. 힘들었죠.”

 

하지만 홍 대표는 농사를 지어 잘 살기는 힘들다는 회의감이 컸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3년이 지나고, 4년이 지나도 노력한 만큼 소득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을 향해 “계속 농사 지을 거면 같이 안살겠다”고 하소연도 많이 했다. 그런 어느날, 홍 대표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닥쳤다.

 

“운명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모든 게 미리 다 준비돼 있었나 보다 하는 생각도 들어요. 18년 전에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결국 걷지 못하고 있어요. 그 때 ‘아, 내가 여기서 무너지면 내 아이들도 나처럼 학교 수업료도 제대로 못내 선생님 눈치를 보며 어렵게 살 것 아니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끔찍한 일이죠. 그 때 아들이 중학교 2학년,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거든요.”

 

홍 대표 남편 정학재씨는 당시 마을 이장이었다. 가을 막바지 수확을 마친 후 이장 회의에 참석하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지금은 작업 차량을 타고 다니면서 농장일을 하고 있다.

 

-설상가상인데,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가요.

 

“남편이 다친 뒤 용기를 내서 농사에 전념했지요. 그동안에는 남편 뒤에서 거들어 주는 일만 했는데, 제가 모든 것을 챙기다보니 억울하고 화나는 것이 많았어요. 사과를 수확해서 공판장에 가면 한 상자에 1만원 밖에 손에 못 쥐었어요. 그런데 시장 가격은 3만원 하는 거예요. 이해할 수 없었어요. 어느날 남편이 입원한 원광대병원 병실에서 남편 고향 누나를 우연히 만났는데, 그 때 순간적으로 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어요. ‘아, 이 분한테 우리 사과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난 거예요. 우리 사과가 참 맛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그 분에게 사과를 드리면서 식당 아줌마들하고 나눠 먹어보시라고 했죠. 물론 주문하면 곧바로 배달해 주겠다는 말도 덧붙여서. 식당 아줌마가 50명 정도 됐는데, 주문이 상당히 들어왔어요. 그 배달을 다니다보니 지금은 택시기사보다 익산시내 골목길을 더 잘 알아요.”

 

-인터넷도 그 때 생각했는가요.

 

“인터넷은 한참 후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컴퓨터에 익숙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고교 졸업 후 금성사 컴퓨터실에서 근무했거든요. 또 대학에 다니지 못한 한이 있어서 2002년에 방송통신대에 들어갔는데, 컴퓨터학과를 선택했지요. 그런 것들이 농사 짓는 제게 결정적 도움이 될 줄 그 때는 몰랐죠.”

 

-컴퓨터 지식을 농장 운영에 어떻게 활용하게 됐는가요.

 

“사람이 살면서 기회가 몇 번 온다고 하잖아요. 어느날 한 친구가 제게 조언을 했어요. ‘얘, 농업기술센터에 가면 컴퓨터 교육이 있잖아. 너는 컴퓨터 할 줄 아니까 그런 것 한 번 해봐’하는 거예요. 그래서 농업기술센터 컴퓨터 교육장에 가봤죠. 그날 마침 블로그 만들기를 하는 날이었어요. 그게 7년 전 일이예요.”

 

-컴퓨터를 남들보다 잘 했을 것은데요.

 

“그 때 선생님한테 가장 잘한다고 칭찬받았어요. 잘하면 재미있고, 칭찬 받으면 더 재미있잖아요. 게다가 더 즐거운게 있었어요. 제가 인터넷에서 블로그를 만들어 운영하기 전까지 저는 그저 농촌 아줌마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블로그 활동을 하면서부터는 평범하게 농사짓는 아줌마가 아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 생각을 담아 올리는 글에 댓글을 달아 동의하고, 응원하는 등 반응해 주는 것이 참 좋았어요. 그 안에 내 모든 걸 펼쳐놓고 참 열심히 했지요.”

 

-또 한번의 기회가 왔는가요.

 

“두 번째 기회는 4년 전에 왔어요. 올해 추석이 9월 7일, 좀 빨리 왔잖아요. 그 때도 추석이 빨랐어요. 추석이 빠르면 조생종 사과는 수확이 문제예요. 조생종은 추석 지나서 익는데, 그 때는 사과 소비가 급감하거든요. 그래서 추석 전에 수확을 하는데, 그 때는 사과 따는 일이 너무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순간,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어요. 바로 체험형 관광농장이예요.”

 

에덴농장은 익산시 금마면 소재지에서 왕궁면 소재지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변에 있다. 소비자 접근성이 좋은 것이다. 직접 사과 사러 찾아오는 손님이 많았는데, 그 중에 ‘사장님, 사과 한 번 따보면 안될까요’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때마다 홍 대표는 별 생각없이 ‘한 번 따보시라’고 했다.

 

“제가 그 생각을 ‘착’ 잡은 거예요. 사과를 직접 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그렇다면 그들이 농장에 와서 사과를 딸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인터넷 블로그며 카페 활동을 한 3년간 열심히 할 때거든요. 익산에 카페활동하는 젊은 엄마들이 5000명 정도 회원으로 있는 ‘익산사랑나눔뜰’이라는 카페가 있어요. 거기에 제 글을 올렸어요. 제목을 ‘자연을 나누어 드립니다’라고 붙여서 사과 체험농장을 운영하니 오시라고 했죠. 그 때 10월 1·2·3일이 연휴였는데요, 첫날에 세 가족이 왔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자기 활동을 사진찍어 카페 같은데 잘 올리잖아요. 내가 직접 홍보하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홍보하는 거예요. 그런 효과예요. 1일부터 11월 중순까지 한달 반 사이에 2500명이 저희 농장에 다녀갔어요. 그래서 ‘아, 이게 되겠구나’ 확신했죠. 지금 체험농장이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사과하고 배만 있으니까 단조로운 생각이 들어서 감도 심었고, 고구마와 땅콩도 심어서 체험농장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자꾸 변화를 모색하며 가는 중입니다.”

 

홍 대표는 인터넷 카페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러던 중 그동안의 공력을 모아 2010년 3월17일 만든 ‘eden9004님의 블로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블로그 제목을 ‘친환경 사과와 배, 감이 익어가는 마을 익산 에덴농장’ 등으로 바꿔가며 친환경 농장을 소비자들에게 부각시켰다. 2013년 11월에는 ‘에덴체험농장’으로 제목을 바꿔 ‘체험할 수 있는 농장’임을 알렸다.

 

-순간적인 아이디어가 성공으로 이어졌군요.

 

“우리가 일상 생활 하면서 ‘아, 이거 하면 괜찮겠다’하고 머리를 스치는 것들이 있거든요. 나는 그것을 잘 잡는 것 같아요. 일단 괜찮다는 확신이 서면 과감하게 결정하고, 곧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죠.”

 

-인터넷과 체험농장 운영 등으로 직접 판매를 하고 있는데, 성과는 어떻습니까.

 

“10년 전부터 생산량을 모두 판매하고 있지만, 체험농장으로 전환하면서 훨씬 일이 훨씬 즐겁습니다.”

 

-생산량을 모두 판매하는 비결이 뭔가요. 인터넷 홍보 등 적극적인 판촉인가요.

 

“제가 잘하는 것은 과일을 맛있게 만드는 것이예요. 결과적으로 제가 한 일은 그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고객들이 저희 블로그를 보고, 또 저희 과일을 드셔보시고 저희를 신뢰하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그 분들 사이에 ‘이 사람은 농사를 나쁘게 짓지 않는다. 맛있게 짓는다’이런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사과, 배, 감이 참 맛있던데요, 맛좋은 과일 생산 비결은 뭡니까.

 

“10년 전 익산 과수농가들에 대한 교육이 있었는데, 그 때 강사로 초빙된 충주농협 정길영 선생이 새로운 전지법을 알려주었어요. 과수원에서는 일반적으로 겨울과 여름 두 번에 걸쳐 전지작업을 하는데, 이 분은 여름 전지를 하지 말라는 거예요. 농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인데, 저는 이 분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어요. 무더운 여름에 전지작업하는 것이 힘들고, 인건비도 만만찮잖아요. 그런데 또 농장에 거름을 주지 말라는 거예요. 이것도 받아들였어요. 비료 비용과 인건비가 절감 되잖아요. 나무가 튼튼해지고, 게다가 비용이 절감된다는 말이 가슴에 닿았던 것이죠. 그렇게 한 3년 하니까 나무가 죽는 것 같더라구요. 비상이 걸렸죠. 그런데 4년째 되니까 나무 껍질이 모두 벗겨지면서 속에서 새 살이 나오더라구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땅에 비료를 주면 땅 속 뿌리들이 땅 위쪽에서 제공되는 양분만 흡수하며 자라는 것 같아요. 그런데 갑자기 비료를 주지 않으면 나무 뿌리가 당장은 힘들게 되죠. 결국 나무가 살기 위해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며 자연속 영양분을 찾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나무가 더 튼튼해지고, 과일맛도 좋은 것 같아요.”

 

-아주 간단하군요.

 

“저는 실제로 거름이라는 것은 전혀 안줍니다. 제가 자연 그대로 키운다는 말이 그거예요. 그래도 충분해요. 해마다 농장 토양검사 하는데, 영양분이 넘쳐요. 나뭇잎이며 낙과 등 모두가 좋은 거름이거든요. 익산은 농민들 교육이 많은데, 배 교육 선생님도 거름 주지말라고 강조해요. 제가 시골 살면서 많은 것을 느끼는데요, 좋은 정보를 잘 받아들여 실천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예요. 농부들은 전통적 농사 방법을 거부하기 힘들어하지만, 좋은 것이라면 받아들여야죠. ”

 

-비료를 주지 않으면 수확량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욕심만 버리면 돼요. 다른 농장 사과가 5㎏ 한 상자에 10개 들어가면, 우리 것은 13개가 들어가요. 사과가 작으니까요. 사실 거름을 많이 주면 과일이 엄청 커져요. 그런데 고객이 원하는 것은 큰 사과가 아니라 맛있는 과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공판장에 낼 과일이면 공판장 기준에 따라 크기를 키우고 예쁘게 농사짓겠지만, 저는 집에서 직접 파는 것이니까 맛만 있으면 돼요.”

 

-체험형 관광농장이 잘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체험 관광객은 어느정도 됩니까.

 

“처음 시작한 2011년에 2500명 정도 다녀갔는데, 그 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2012년 3000명, 2013년에 4000명 가량 다녀갔어요. 올해는 일주일 전에 4500명이었으니까, 사과 수확이 끝날 때가 되면 5000명은 될 것 같습니다.”

 

-체험농장을 운영하면서 어린이, 학생들 대하는 노하우도 늘었겠군요.

 

“사실 체험 학생이 100명, 200명씩 몰려들어오면 잔뜩 긴장이 되는데, 게다가 선생님들이 지켜보니까 더욱 신경이 쓰이더라구요. 그런데 어떤 기회에 농업기술원 직원분이 텃밭체험 진행하는 것을 보고서 저도 힌트를 얻었어요. 어렵게 할 것이 아니라, 농장의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유치원생들이 체험 대상이라면 풀잎이나 나뭇잎에 맺힌 이슬을 가리키면서‘얘들아, 이게 이슬이야. 이슬은 어떻게 맺힐까’하는 식이죠. 또 아이들이 어른 존중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나름대로 신경을 씁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간 중간에 과일을 쪼개서 나눠줄 때 ‘얘들아, 이거 선생님부터 드려야지?’ 하고 선생님 먼저 드린 뒤 아이들에게 나눠줍니다. 과일을 껍질 째 먹도록 하는 것도 친환경 농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이구요. 그런 철학을 갖고 체험농장을 운영합니다.”

 

-체험농장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은 없습니까.

 

“사실 저희 농장에 체험 고객이 많이 오면 좋겠지만, 한계는 있잖아요. 저희 농장 인근에서 농사짓는 분들이 다양한 체험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제 농장 주변에서 고구마 체험 농장, 땅콩 체험농장, 만들기 체험장 등 다양한 공간이 있으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체험오는 고객이 많으면 우리 농산물이 입소문을 타고, 주문도 들어오니까요. 아직 농민들 관심이 부족하지만, 한 번 우리 지역에 온 도시민들을 연계해 줄 수 있는 체험형 관광 프로그램이 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농산물 가공 사업도 하십니까.

 

“가공 사업은 허가를 받지 않았고, 저희 농장 과일을 허가 받은 건강원에서 즙을 추출해 판매하고 있습니다. 과일을 건조해서 판매하는 부분도 고민중입니다. 지난해 건조기를 들여놓았는데, 본격적으로 제품을 생산하려면 조금 더 갖춰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하신다면.

 

“끊임없이 변화해 나갈 겁니다. 언제나 내 입장이 아닌 고객의 눈으로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그래야 저에게, 그리고 농촌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홍인숙 대표는 남편 사업 실패·교통사고…갖은 시련 이겨낸 '억척이'

전주가 외가인 홍인숙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부산여상을 졸업하고 금성사 컴퓨터실에서 근무하던 20대 초반에 중장비 사업을 하는 남편 정학재(51)씨와 결혼했다. 잘 나가던 남편 사업은 결혼 6년여만에 기울었다. 일을 해 주고 받은 어음이 휴지조각이 됐기 때문이다.

 

가족 앞에 제시된 선택지는 농사였다. 그나마 남편이 물려받을 수 있는 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농사를 모르고 살아온 홍 대표는 어쩔 수 없이 농사꾼이 됐다. 1987년, 아들이 7살되던 해였다.

 

시댁에서 논의 끝에 사과농사가 결정됐다. 사과 묘목을 심었지만, 과일을 수확해 판매하려면 3∼4년을 기다려야 한다. 남편은 중장비 회사에 취직하고, 홍 대표가 농사를 지었다.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주산, 부기나 할 줄 알았지 농사 짓고 살 줄 몰랐던 홍 대표에게 농촌생활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이 큰 교통사고를 당해 거동이 불편해졌다. 어려운 시련이 닥쳤지만, 그 때마다 억척스럽게 이겨냈다. 이제 생산한 과일을 완판한다. 그렇게 27년의 세월이 흘렀다.

 

홍 대표는 이제 자연과 더불어 호흡하고, 농장 체험하러 오는 방문객들과 함께 자연이 주는 선물의 고마움을 실감한다. 학창시절, 매월 수업료를 제대로 못내 속상했던 홍 대표는 이제 어려운 살림 속에서 고등학교 졸업시켜 준 엄마가 너무 고맙다. 고등학교를 졸업했기에 사과농장을 운영하면서 인터넷을 활용할 수 있었고, 체험농장 프로그램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는 품질로 승부를 내야 한다. 농산물의 품질이란 자연 그대로의 맛이다. 그 자연의 맛이 에덴체험농장을 만들었다. 홍 대표는 그 기본에 충실했다.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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