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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 참조은밀협동조합 신정애 대표이사 "밀 농사 포기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출발했죠"

▲ 신정애 대표이사가 참조은밀협동조합 설립 배경과 향후 활동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추성수기자chss78@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 신정애 씨(56). 벼농사와 우리밀을 이모작하는 신정애 씨는 지난해 진봉과 만경 일대 농민 26명을 조합원으로 규합, 참조은밀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신씨가 대표이사를 맡았다. 1년 농사를 지었는데 성공적이다. 250필지에서 400톤을 생산, 전량 수매 처리했다. 올 가을 밀 파종을 앞두고 종자 보급을 위해 참여 농가를 조사한 결과는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다. 희망농가가 계속 늘고 있어 종자 대금을 선착순으로 받아야 할 정도다. 내년 7월 수매량이 700∼800톤 정도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밀 협동조합을 설립한 신 대표를 비롯, 참조은밀 조합원들의 목표는 밀 생산은 물론 밀을 가공하고 유통 서비스하는 분야까지 아우르는 6차산업의 완결이다. 익산의 작은 양계장에서 출발, 수조원 대 식품 대기업으로 성장한 하림이 수직계열화 사업구조를 성공적으로 이뤘듯, 우리밀 살리기 정신으로 뭉친 참조은밀 조합원들의 열정도 대단하다.

 

신정애 대표이사(56)를 지난 10일 진봉면 고사리 신 대표이사의 자택에서 인터뷰 했다. 인터뷰 자리에는 참조은밀협동조합 이한섭, 김현중 이사도 함께 했다.

 

전주에서 김제 만경읍을 지나 진봉면 지역으로 진입했을 때 서해안 새만금 방면으로 확 트인 너른 들녘은 온통 황금색이다. 밀은 지난 6월 쯤에 수확, 7월까지 수매가 끝났다. 지금은 밀농사 준비 기간이다. 가을 땡볕에 한창 여물어가고 있는 벼를 수확하고 나면 곧바로 밀 농사가 시작될 것이다.

 

신정애 대표이사의 자택 마당에 들어서는데 출타하려고 막 포터트럭 운전석에 오르던 아저씨가 낯선 방문객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더니 아내(신 대표이사)를 부른다. 신 대표의 남편 유기문씨(60)다. 현관문이 열리고 신 대표가 얼굴을 내밀었는데 웬지 거동이 불편하다. 거실에 들어서니, 창가에 침대가 있다. 병원 침대다.

 

-몸이 많이 불편하시군요?

 

“제가 지난 7월 2일 밀 수매 작업을 하다가 톤백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어요. 다들 죽었다고 했는데,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살려준 것 같아요. 감사하고 있습니다.”

 

참조은밀협동조합 설립 후 첫 수매가 시작된 지난 7월2일, 이날은 신 대표에게 매우 뜻깊은 날이었다. 조합원들이 생산한 밀을 수매하고, 그들에게 땀의 결실을 돌려 주는 일이다. 신 대표는 수매 현장에서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밀이 담긴 톤백을 싣고 창고 쪽으로 들어서던 트랙터가 도로 과속방지턱을 넘으면서 갑자기 기우뚱 했고, 갑작스럽게 떨어진 밀 톤백(1000kg)이 신 대표를 덮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대형 사고였다. 모두가 영락없는 사망사고로 생각했지만 천행으로 목숨을 건졌다. 갈비뼈와 골반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병원에서 꼼짝 할 수 없었다. 사고 4개월 째인 요즘 겨우 몸을 추스르고 있지만, 걷기가 불편하다.

 

-1990년대 초반 우리밀 살리기 운동이 일어날 당시만 해도 우리밀은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협동조합을 만든 동기가 있습니까.

 

“아시다시피 조합은 작년 9월에 만들었는데요, 제가 밀에 관심 가진 지는 오래됐어요. 밀농사를 본격적으로 지은 것은 10년 전이구요. 밀에 관심을 갖고 있는 터에 ‘김제시우리밀영농조합법인’을 알게 됐고, 이사로 2년간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진봉면에서는 저를 비롯해 많은 농가들이 밀 농사를 100필지 이상 짓고 있었죠. 그런데 우리밀 생산량이 4만 톤을 넘어선 2011년 ‘밀 파동’을 겪은 후 진봉면 농가들이 아무도 밀을 갈지 않았습니다. 농민들은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수매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자 밀농사를 기피한 거예요. 밀은 제가 관심을 가진 후 열정을 쏟은 작목입니다. 진봉면에 밀이 없어진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다행히 이한섭 이사 등이 도와주셔서 참조은밀협동조합을 만들게 됐습니다.”

 

-뻔한 질문 같지만, 어떤 취지를 갖고 출발했습니까.

 

“저희들은 생산자니까, 처음에는 생산을 해서 판매만 하자고 했지요. 그런데 회의를 거듭하면서 가공과 유통, 서비스 등 밀과 관련된 여러 사업을 두루 해나가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어요. 정부에서도 협동조합을 권장하고, 또 농업 기반을 튼튼히 하기 위해서는 6차산업 개념을 추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죠. 우리가 농사만 지을 것이 아니라, 2차산업도 하고 서비스 쪽도 모색해 보자는 생각들이 많습니다. 저희 조합은 운영을 책임지는 이사가 5명인데, 생산 부문에 신정애·이한섭·김현중 이사, 가공 부문 임철진 이사, 소비자 부문 김남이 이사 등입니다. 임철진 이사는 ‘우리밀 동우’라는 상호로 우리밀 짜장면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00톤을 생산했다고 들었습니다. 생산이사님들은 밀농사를 얼마나 짓습니까.

 

“제가 26필지(벼 70필지, 1필지=1200평, 1평=3.3㎡) 짓고요, 이한섭 이사 15필지(벼 25필지), 김현중 이사 7필지(벼 23필지)입니다. 첫 해에 26농가(250필지)가 참여해 비교적 수월하게 출발했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사실 출발 단계에서 큰 어려움이 있었어요. 막상 밀농사 짓기로 의기투합하고 조사해보니까 일선 농가에 종자용 밀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던 거예요.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겨우 확보할 수 있었지만, 진땀이 났었죠.”

 

-왜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사실 저희가 지난해 협동조합 설립을 생각한 것은 갑작스러운 것이었어요. 밀 농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절박감에 서두른 것이죠. 그렇게 하다보니, 집안 식구들한테 미쳤다 소리도 들었어요. 잠을 줄여 가며 업무를 챙겼고, 국회와 농림부 등 밀 농사와 관련된 기관이라면 문턱이 닳도록 다녔죠. 그 전에 밀농사를 지었으니까 당연히 종자가 있다고 생각하고 별 신경을 안썼는데, 막상 농사를 시작하려는데 종자가 없는 거예요. 당시 농민들이 밀농사를 작파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종자까지 팔아치운 것이지요. 작년에 밀농사를 지은 것은 정말 기적이예요. 기적.”

 

-신 대표께서는 밀가루 음식을 좋아했습니까.

 

“어렸을 때 어머니는 밭에 밀을 갈았어요. 직접 빻아서 얻은 밀가루를 가지고 여름에 칼국수 해주고, 빵 쪄주고, 수제비 해주셔서 먹고 자랐어요. 저 뿐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랬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30대 때 굉장히 몸이 좋지 않았습니다. 밀가루 음식을 모두 끊었죠. 시집 식구들이 밀가루 음식을 좋아해서 힘들었는데, 결국 시집살이 5년만에 집에서 라면을 추방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안전한 먹거리에 관심이 높아졌죠. 이 허벌차도 제가 만든 차인데요, 모든 음식을 가능하면 제가 만들어서 먹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사먹어요. 제가 다양한 식재료를 이용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우리밀이 좋다는 것도 알았죠. 자연스럽게 수입밀에 대한 좋지 않은 정보도 알게 됐고, 그런 과정 속에서 김제시우리밀영농조합에서 우리밀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한 거예요. 10년 전에는 가톨릭단체, 농민단체, 개인 등이 조금씩 밀농사 불씨를 살리는 과정이어서 종자 구하기도 어려웠어요. 정부에서 밀 농업을 포기했었잖아요.”

 

-밀 농사는 언제부터 지었습니까.

 

“직접 지은 것이 10년 넘었어요. 남편은 보리를 갈았죠. 보리는 필지당 50∼60가마 정도를 얻을 수 있고, 정부에서 수매를 했지만, 밀은 그렇지 않았잖아요. 게다가 밀은 수확 시기가 보리보다 늦어 벼 농사에 애로가 있는 것이 사실이예요. 남편은 농부예요.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하니까 소득이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남편하고 싸우기 일쑤였어요. 남편을 설득하고, 고집을 부렸어요. 결국 밀농사를 지었는데, 한 3년은 밀 농사 경험 부족으로 힘들었어요. 정부의 밀 재배 교육도 없었고, 품종도 좋지 않았어요. 필지당 30 가마 정도 수확하는데 그쳤어요.”

 

-지금은 밀농사 성적이 어떤가요.

 

“농부는 소득이 떨어지는 작목은 짓지 않아요. 돈이 안들어오는 농사를 지으면 망하잖아요. 남편에게 항상 미안했지요. 오로지 안전한 먹거리 생산만을 내세워 언제까지 남편을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도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소득이 나아졌어요. 올해 같은 경우 농가 평균 생산량보다 웃도는 결과를 얻었어요. 밀의 생육 특성을 이해하게 됐고, 밀농사 노하우도 생겼거든요. 물론 정부의 관심과 연구 덕분에 밀 품종도 좋아졌어요.”

 

-서울 방배동에 직영하고 있는 짜장면집 운영은 어떤가요.

 

“농사꾼에게 소득이 중요하지만 안전한 먹거리 생산은 엄중한 의무죠. 정성들여 생산한 안전한 농산물을 누군가에게 먹여 그들이 건강해지면 그 이상 보람이 있겠습니까. 참조은밀협동조합이 추구하는 이념입니다. 서울에 짜장면집 ‘너른들 동우’를 개점한 것도 그런 취지입니다. 전주에서 짜장면 사업으로 성공한 임철진 이사의 사업 노하우, 능력을 믿었기에 좀 더 쉽게 결정한 것이구요. 너른들 동우에서 사용하는 밀은 모두 조합에서 생산한 것입니다. 향후 체인사업으로 확대할 생각입니다. 소규모 음식점이더라도 부부가 기술을 익혀 직접 만들어서 운영하는 체인사업을 구상 중입니다.”

 

-그 외에 어떤 구상을 갖고 있습니까.

 

“진봉면 청보리축제 때 ‘우리밀 짜장면’ 부스를 운영해 굉장히 많은 인기를 모았는데요, 제가 우리밀로 빚은 ‘우리밀막걸리’도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밀 막걸리는 진봉면 특화사업으로 생산되는 ‘연 막걸리’보다 훨씬 맛있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호평을 얻었습니다. 저는 지난 몇 년동안 꾸준히 전통주 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조합이 아직 자금력이 부족해 주정 시설을 할 수 없고, 해썹 인증까지 받아야 하기 때문에 돈과 기술력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 조합이 생산한 밀을 인근 제분소에서 OEM방식으로 제분, 인터넷 판매 등도 하려고 합니다. 쿠키와 떡 케익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일단 농한기에는 쿠키와 케익을 생산할 있도록 함께 조합일을 하고 있는 딸과 조카딸이 떡 케익과 제과제빵 기술을 익히고 있구요. 지난번 지평선 축제 때 아이들이 쿠키를 만들어 선보였는데, 마가린 대신에 버터를 넣는 식으로 했더니 맛이 괜찮았나 봐요. 마침 바이어 한 분이 찾아와 유치원에 넣겠다며 계약을 했어요. 이렇게 어린이집 하나가 둘 되고, 둘이 셋 되면서 조합이 활성화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체험농장과 체험교육장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체험농장은 어떻게 운영할 계획인지요.

 

“우리밀 교육을 겸한 체험농장을 하려고 합니다. 소비자들에게 수입밀이 왜 좋지 않은지, 왜 로컬푸드 국산밀을 먹어야 하는지를 알리고, 안전한 먹거리 교육을 해야 건강한 밥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입밀 소비량이 98%에 달합니다. 거의 모든 밀가루 음식에 수입밀이 사용되는 것인데, 수입밀이 왜 좋지 않다고 보십니까.

 

“밀이 국내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우리가 먹어서는 안되는 것들이 너무 많이 개입됩니다. 미국 등 해외에서 화물선에 실려 장거리 운송되는데, 이 과정에서 밀이 벌레 등에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상상 이상의 훈증처리가 가해집니다. 매우 독한 소독약에 곡물이 완전히 노출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수입밀입니다. 저희는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저희 조합은 밀을 수매하면서 농가들에게 함수율 12%를 유지하라고 주문합니다. 13%만 맞춰도 되지만 12%를 맞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훈증처리를 하지 않기 위해서예요. 함수율 12% 상태에서는 바구미 생기지 않지만, 13%에서는 바구미가 생기거든요.”

 

-밀을 직접 제분해 밀가루 제품을 소량 판매하겠다고 했는데요, 가능한 일인가요.

 

“밀가루공장은 첨단 기계 설비 때문에 저희 조합 정도의 자금력으로는 힘듭니다. 하지만 구례 등에서 일부 우리밀 제품을 하고 있어요. 저희는 다행이 인근 익산에 제분공장이 생겼어요. 게다가 제분공장 사장님이 찾아오셔서 조합 참여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밀 6차산업화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신정애 대표이사는 건강한 밥상 만드는 우리 밀 생산·보급 '전도사'

▲ 신정애 대표이사와 이한섭 이사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제시 진봉면 고사리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의 아내다. 농촌에서 살림을 맡아 하는 주부이자, 세상에 하나 뿐인 딸 아이의 엄마다. 그러나 그녀에게 또 하나 함께하는 것이 있다. 우리 밀이다.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밀은 쌀 다음 가는 주요 식재료다. 쌀 소비가 70%라면 밀 소비는 30%다. 밀가루 음식은 천지에 널려 있다. 빵을 비롯해 칼국수, 수제비, 라면, 국수, 만두 등 다양하다. 밀가루 음식이 우리에게 익숙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매일반이지만, 근래 쌀 소비가 줄면서 밀가루 소비세는 더욱 견조해졌다.

 

신 대표는 밀가루 음식을 무척 싫어했다. 건강 때문이었다. 몸이 허약했던 그녀가 결혼했을 때 시집 식구들은 밀가루 음식을 밥보다 더 좋아했다. 그녀가 시집에서 라면 상자를 없애는데 5년이 걸렸다. 그런데 요즘 그녀 집에는 라면이 있다. 우리밀 라면이다. 우리땅에서 농사지은 밀로 만든 라면은 아무리 먹어도 그녀를 괴롭히지 않았다.

 

신 대표가 우리밀을 남편과 딸처럼 사랑하게 된 데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웃과 국민 모두의 건강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밀 생산과 보급이 절실했다.

 

신 대표가 김제시우리밀영농법인에서 활동하다가 지난해 김제시 진봉면 지역의 밀 농가를 중심으로 참조은밀협동조합을 설립, 대표이사를 맡게 된 사연이다.

 

신 대표의 꿈은 크다. 단순히 밀 농사를 짓는 것으로 적당히 끝내고 싶지 않다. 참조은밀협동조합을 생산 뿐만 아니라 밀 가공과 유통,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6차산업의 모델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이런 신 대표의 꿈과 농업 농촌 사랑은 외동딸 유지혜씨에게도 이어지고 있다. 유지혜씨는 영농후계자이자, 전업농이다. 밀 생산을 기반으로 한 6차산업이 진봉 들녁에 무르익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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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호 jhkim@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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