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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배 축구대회는…축구선수 이름 딴 첫 전국대회

유소년 꿈나무 발굴 목적 1992년 창설

▲ 제1회 금석배 축구대회 환영식 사진. 앞줄 의자에 앉은 사람 중 가운데가 고 채금석 선생이다. 그 왼쪽은 고판남 전 국회의원, 오른쪽은 강현욱 지사. 강지사의 뒷줄에는 최공엽 전북축구협회장이 있고, 그 왼쪽에는 이건재 군산시장, 오른쪽에는 김철규 도의회 의장이 있다.

전국 학생축구의 강호들이 모여 새해 첫 최강팀을 가리는 ‘2015 금석배 전국학생축구대회’를 이틀 앞두고 대회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21일부터 12일간의 열전에 돌입하는 이번 대회에 참가한 초등부 34개 팀은 1차예선풀리그에 대비하고 있으며, 대진추첨이 끝난 고등부(고학년부 31개팀, 저학년부 10개팀)도 조별 리그에서 만날 상대팀의 전력을 다각도로 분석하며 필승 전략을 세우고 있다.

 

올해로 24회째를 맞는 금석배 축구는 사실 축구 종목에서 선수의 이름을 딴 국내 유일의 대회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국내 경기에서 선수 이름을 건 대회는 야구의 박찬호배, 테니스의 민용식배 등 16개에 불과하다.

 

특히 지난 1992년 탄생을 알린 금석배는 대한축구협회에서 주최하는 초,중,고,실업, 남녀 대회를 망라해 지방의 축구협회가 창설을 주도해 치르는 유일한 전국대회이기도 하다.

 

아울러 군산출신 축구선수 고 채금석 선생을 기려 만들어진 금석배는 창설 당시 유소년 축구 클럽 등이 전무한 상태였지만 대회의 목적을 유소년 축구 꿈나무 발굴에 두는 등 한국 축구의 앞날을 대비한 대회로서 의미가 크다. 이런 영향으로 1996년 초등축구연맹이 탄생하는 등 금석배는 초등학교 축구의 붐을 일으키면서 불모지를 일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군산 출신 채금석 선생은 1904년 태어나 경신중학교 시절 각종 축구대회를 석권하며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다. 발이 빨라 ‘오토바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1933년 제1회부터 제4회 대회(이후 대회 중단)까지 경·평축구대항전에 출전했다. 1934년 광주학생사건 무렵 일본관원 구타사건으로 인해 중학교를 중퇴했지만 곧바로 국가대표 선수로 발탁됐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예선전에서 골게터로 뛰었다. 베를린 올림픽을 끝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고 고향에 돌아와 53세까지 전북 일반부 대표로 전국체전에 나가는 등 평생을 축구와 같이 해온 한국축구계의 거인이다.

 

이 같은 채금석 선생의 활약을 기리고 후진 양성을 위해 1990년 당시 전북일보 상무였던 최공엽 전북축구협회장과 김문철(현 명예회장), 송두영(전 부회장), 최재모, 정태훈, 김대은(현 회장) 등 도내 축구 관계자들이 대회 창설을 추진했고 마침내 1992년 1월 대한체육회와 대한축구협회로부터 최종 승인을 얻어내며 대회가 시작됐다.

 

금석배는 그동안 군산과 전주, 익산 등에서 열렸지만, 지난 2009년부터는 채금석 선생의 고향인 군산에서만 개최되고 있다.

 

그동안 금석배를 통해 배출된 스타는 박지성, 박주영, 이정수, 김영광, 조성환, 정성룡, 김영권, 구자철, 기성용, 백성동 등 그 수를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전북축구협회 김대은 회장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회의 성공개최를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금석배는 전북은 물론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대회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김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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