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능력은 빙산의 일각" 영재에 대한 새로운 접근 / 센터 자체 개발 도구 활용, 아동 정서·인지발달 교육
이번 호주 아시안컵 8강 대한민국 대 우즈베키스탄 경기는 ‘손흥민의 경기’였다.
전후반 90분을 0대 0으로 마치고 연장전에 돌입해 체력이 고갈될 즈음, 손흥민 선수의 골이 터졌다.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연장 후반, 차두리 선수가 위력적인 돌파로 차려놓은 밥상에 예쁘게 숟가락을 얹으며 이날 경기의 대미를 장식했다.
한국 축구선수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존재,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의 명실상부한 에이스, ‘손세이셔널’ 손흥민 선수는 그의 아버지 손웅정 씨의 특별한 철학이 길러낸 ‘영재’다. 축구의 기본인 ‘공을 다루는 것’과 ‘주변을 보는 것’ 부터 시작했다. 승부에 집착하지 않았고, ‘엄격한 규율’도 강요하지 않았다. 손 씨가 강조한 것은 탄탄한 ‘기본기’였다.
우석대 아동발달지원센터에서 만난 구효진 교수(유아특수교육과)의 ‘영재교육’에 대한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재’라는 개념이 잘못됐다고 말한다.
△ ‘영재’인 듯 ‘영재’ 아닌 ‘영재’ 같은 아이들
지난 23일, 우석대 아동발달지원센터.
아이로 가득할 거라는 생각으로 문을 열었지만, 의외로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아동’과 ‘센터’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과는 달리, 일종의 연구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사실 이 곳은 연구소가 맞다. 대학 부속 연구소로서 단일 연구소로는 인원이 가장 많은 축에 속한다는 아동발달지원센터에는 현재 16명이 풀타임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6년에 전북도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연 센터는 주로 취약계층 아동들을 대상으로 교육 활동을 해왔다. 센터는 그리고 그 대상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 ‘영재’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뇌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아이를 말하는 거예요.”
구 교수는 “모든 아이가 ‘영재’가 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흔히 우리가 접하는 ‘영재’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나이에 맞지 않게 어려운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아이’다.
초등학생이 미분·적분 문제를 푼다거나 복잡한 계산을 암산으로 간단히 해내는 경우가 이런 경우에 속한다.
하지만 이 같은 ‘문제 푸는 능력’은 단지 극히 일부분에 해당할 뿐이라는 게 구 교수의 주장이다. 비유하자면 빙산에서 수면 위로 드러난 부분에 불과한 것. 자기 정서를 제어하는 능력, 저장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 활용하는 능력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정서·인지를 조절하며 자극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는 어떤 ‘과제’를 설정하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는 묘하게도 전북도교육청이 주창하고 있는 ‘참학력’ 개념과도 맥이 통한다.
도교육청은 ‘빙산 모델’을 제시하며 ‘학력’이라는 것이 결국은 그 밑바탕에 정서적·인지적 능력들이 깔려 있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특히 김승환 교육감은 “모든 아이가 영재다”는 취지의 발언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 ‘세 살 뇌 여든 간다’
이 같은 능력은 만 3세부터 만 5세 사이, 길게 봐서는 만 8~9세까지의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형성된다. 이 때에 ‘생각하는 버릇’이 제대로 들지 못하면 이후에는 자극을 받아들이거나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향상되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부모가 아이와 함께 놀아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 시기다. 특히 저소득층·맞벌이 부부라면 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전라북도는 저소득층·맞벌이 부부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다문화 가정 역시 많은 편인데, 만일 부모 어느 한 쪽이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경우라면 다양한 의성어·의태어를 활용하는 교육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리과정’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무상보육 정책이 괜히 만 3~5세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동발달지원센터의 역할이 여기에 있다.
센터는 자체 개발한 도구를 활용해 아이들의 오감을 깨워주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이야기나 주제를 놓고 감각을 하나하나 생각해 언어로 풀어내게 하는 것이다.
‘어제 저녁에 먹은 것’을 주제로 놓았다면, ‘냄새는 어땠는지’, ‘맛은 어땠는지’, ‘그 상황에서 기분이 어땠는지’ 등을 하나하나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 이 과정에서 활용되는 의성어·의태어들이 아이의 뇌를 풍부하게 한다고 한다.
센터는 어린이집들을 타겟으로 삼아 찾아다니며 이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
“찾아가지 않으면 안 돼요. 누군가가 아이를 데리고 움직여야 하는데, 저소득층·맞벌이 부부는 그럴 수 없잖아요.”
한편 구 교수는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의 길이와 효과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면서, 맞벌이 부부라도 아이들에게 충분히 이 같은 활동을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퇴근한 뒤에라도 아이와 함께 놀아주면서 대응해주고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북형 인재상 제시돼야”
구 교수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똑똑하다’는 아이들이 대도시로 이사를 가는 현상이다.
“여기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 “영재교육을 위해서는 대도시로 가야 한다”는 부모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영재학교’를 설치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곤 한다. 지방에서도 ‘영재’를 키울 수 있는 기관을 세워 ‘두뇌’의 유출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교육부는 지난해 영재학교의 대상을 유·초·중학교로까지 확대하는 영재교육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을 준비했다가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여전히 시·도교육청 평가 지표에 영재교육 대상자 수혜 비율이 포함돼 있기도 하다.
‘영재’가 ‘성적우수자’와 동의어가 돼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구 교수는 “물론 ‘영재교육’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한 측면도 있지만, 전라북도가 ‘전북형 인재상’을 제대로 제시해줘야 학부모 인식도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흔히 ‘영재교육’이라 불리는 것들의 전제가 달라져야 한다.
학부모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개념을 바로잡으면서 ‘전북형 인재’의 모델을 제시해주면 아이들이 도 바깥으로 나가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다.
말하자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소신’인 셈이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