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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에게 향하는 미래의 길

김두호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김두호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벼, 옥수수와 더불어 세계 3대 식량작물인 밀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밀과 보리가 자라네’라는 곡이 실릴 만큼 친숙한 곡물이다. ‘언제 국수 먹게 해 줄 것이냐?’는 물음에는 결혼을 넌지시 묻는 의미가 담겨 있다. 경사를 나누는 자리엔 밀을 원료로 한 국수가 오랜 인연과 장수의 의미를 담아 빠짐없이 올라 왔다.

밀가루 음식은 고려시대까지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 궁중에서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야 서민들의 식탁 위에도 올라 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밀가루 무상원조가 이뤄지며 국내 밀 생산기반은 급속히 무너졌다. 70년대 분식장려 정책으로 빵과 라면 등 밀가루 음식 소비가 증가하며 수입 밀 의존도는 더욱 심화됐다. 1984년 정부의 밀 수매제도 폐지로 밀 산업은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게 되었다. 1960년 기준 35.3%였던 우리 밀 자급률은 1985년 0.5%까지 떨어지게 된다.

1991년 농민과 소비자 주도로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이 시작되었지만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 어려움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지만 수입 밀이 지배한 큰 길 옆을 꿋꿋이 걸으며 식량 주권의 열쇠를 놓지 않고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는 식량 생산 감소와 함께 국제 식량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다. 또한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부족 사태도 전망되고 있어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일은 미래를 위한 식량의 안정적 공급 차원에서도 중요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2017년도 기준 국내 식량자급률은 쌀, 감자, 고구마는 100% 이상이지만 밀과 옥수수는 각각 1.7%와 3.3%에 불과하다. 쌀 다음으로 많이 소비하는 제2의 주곡인 밀 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는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지난해 밀 연구팀을 출범시켰다.

밀 연구팀은 용도별 밀 품종 개발, 안정생산 재배기술 및 품질향상 기술개발과 소비확대를 위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매년 210만 톤 내외로 수입되는 식용 밀에 대응해 우리 밀과의 가격 차이를 줄이고 시장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차별화된 밀 품종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제빵 적성이 우수한 밀, 기능성분을 함유한 유색 밀, 알레르기 저감 밀 등 소비자를 위한 다양한 품종개발이 그 예다. 또한 우리 밀 가공업체가 국내산 밀을 선호할 수 있도록 균일한 품질의 원료곡 밀을 생산하기 위한 재배기술 개발에도 매진하고 있다.

우리 밀은 추위에 강하다. 병해충 발생이 적은 겨울철과 봄에 재배되어 친환경적 생산이 가능하다. 또한,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이동 거리를 뜻하는 ‘푸드 마일리지’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밀의 이동 거리는 수입 밀에 비해 훨씬 더 짧다.   

밀의 낟알을 의미하는 ‘밀알’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일의 작은 밑거름’을 의미하는 뜻도 있다. 녹록치 않은 세월을 묵묵히 걸어 온 우리 밀 곁에 소비자와 국민의 사랑이 함께 한다면 건강한 식량안보의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김두호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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