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벌치는 정유재란 때(1597년)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선현들의 넋이 서린 곳이다. 일본 오카야마현에 묻혀있던 선현들의 코 무덤이 부안군 보안면 남포리 호벌치전적지로 옮겨 안장된 것은 400여 년만인 1993년 11월이었다. 환국 직후 동래 자비사(삼중스님)에 임시 봉안되었다가 정유왜란 때 3천의병이 산화하는 등 희생이 가장 컸던 전적지라해서 이곳에 잠들게 한 것이다. 현재 전라북도 유적 제30호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호벌치를 찾은 것은 우연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상한 문구를 발견한 때문이었다.
“호벌치에 특이한 점이 있다. 인터넷상에 자료는 있는데 부안군지와 호벌치 안내판에는 코 무덤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왜? 오카야마현 코무덤이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던데 그 때문일까.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일까?” 부안 호벌치전적비와 코 무덤에 대한 인터넷 내용이다.
몇 년 전 호벌치 방문 때 제단 아래서 안내자 설명만 듣다 자세히 살피지 못한 게 후회돼 다시 길을 나섰던 것이다. 마침 일본의 경제보복이 최고조로 치닫는 상황이어서 거리마다 가득한 아베 타도, 불매운동 등 일본을 규탄하고 이기자는 극일(克日) 현수막들이 국민들의 반일정서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현장 확인 결과 인터넷에 올라온 내용이 요즘 흔한 가짜 뉴스가 아니었다. 정말 코 무덤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평장을 했나해서 살펴봤지만, 무덤이라고 할만한 비석이나 표지판 하나 없다. 중앙에 자리를 잡은 “정유재란호벌치전적비” 옆에 자그마한 돌 제단 하나가 놓여있을 뿐, 주변엔 선현들을 추모하는 시비(詩碑)들만 둘러있다. 평범한 묘소도 이장하면 비석을 세우거나 표시를 해두는데, 유골이 아니라 그런가 싶어 군(郡) 당국에 문의했더니, 돌 제단 아래가 코 무덤이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한마디로 호벌치에는 전적비만 있고 그 전장에서 순절했을지도 모를 선현들의 묘소나 비석 등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전적지 안내판마저 중간 글씨 일부가 깎여나가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
코 무덤이 옮겨온 지 20년이 넘도록 비석 하나 세우지 않은걸 보면 인터넷에 제기한 내용대로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문제가 있다면 밝혀야 할 것이고, 옯겨왔으면 합당한 예우와 관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전적지 아래엔 후세들에게 호국정신을 함양하는 교육장으로 활용하겠다며 2009년 민충사라는 사당까지 세웠다.
코 무덤은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부하 장수들에게 전공을 확인하기 위해 조선인 코를 베어오도록 했고, 전쟁 중에 그가 죽어 포상을 받지 못하게 되자 전리품으로 가져간 코를 오카야마현 비젠시 성주 로고스게가 자신의 뒷산에 묻은 것이다. 세계전쟁사에 기록될 극악무도한 전쟁상징물이라 할 것이다.
선현들의 공덕을 기리고 전승하려는 것은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라를 지키려 목숨을 걸고 싸우다 한 줌 흙으로 돌아와 고국 땅에 안장된 코 무덤, 그러나 홀대받는 코 무덤은 비록 유골은 아닐지라도 호국영령들의 원혼이 잠든 싱징적인 곳이다. 만약 관심이 있는 일본인이 이곳을 방문했더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역사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오는 길 거리에 걸린 극일 현수막들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건 필자만의 예민한 성격 탓일까.
/이광영 前 전북일보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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