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완주에서 ‘초코파이 절도사건’이 일어났다. 한 물류회사의 보안 업무를 담당하는 협력업체 직원이 순찰을 돌다가 사무실 냉장고에서 1050원 상당의 음식물을 꺼내먹은 일이 발각된 것이다.
이 사건이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1심 재판에서 ‘벌금 5만 원’이라는 결과가 나오면서부터다. 450원짜리 초코파이와 600원짜리 과자를 먹은 일이 아무리 ‘절도죄’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랬겠느냐는 것이 국민 일반의 법 감정이었다. 오죽하면 이 사건 2심 재판을 맡은 판사마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일로 지난 국정감사에서 전주지법과 전주지검이 많은 질타를 받았다는 후문도 있다.
검찰의 판단은 추상(秋霜)같았다. 최근 검찰은 검찰시민위원회의 의견을 들어 항소심 재판부에 선고유예를 구형했지만, 그러면서도 ‘공소사실이 명백히 인정되고 이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단에 법리 오해가 없다’라면서 ‘절도죄’ 판단을 굽히지는 않았다. 인정에 휘둘리지 않는 정의롭고 강직한 검사의 표본이 여기에 있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검찰의 정치성을 비판할 때마다 덩달아 소환되고 있다. 최근 대장동 재판의 항소 포기와 관련해서 야권이 정부여당을 비난할 때 그 비교대상으로 ‘초코파이 절도사건’이 거론됐다. 일반 국민이 초코파이 하나를 훔쳐도 검찰이 항소를 하는데, 대장동 사건의 항소 포기가 말이 되느냐는 논리다.
아마도 검찰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조직임을 강변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바로잡아야 할 사실관계가 많다. 우선 ‘초코파이 절도사건’의 경우 항소를 제기한 장본인은 피고인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은 사례도 상당하다. 일례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재산을 축소 신고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는데,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이 ‘실익이 없다’라는 이유로 항소하지 않았다. 대장동 일당에 대해서는 검찰 구형보다 더 무거운 형량이 내려진 마당인데, 왜 더 재판하지 않느냐는 비난이 그래서 공허하게 들린다.
과연 검찰은 정의로운가. 더불어민주당 정치검찰 조작기소대응특위 위원장 직을 맡은 지 만 4개월이다. 그 기간 동안 검찰의 민낯이 가소로울 정도로 불의하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검찰청사에 외부음식과 술을 동원해가면서 피의자를 회유하려 하고, 원본과는 다른 ‘검찰 버전 녹취록’을 만들어서 증거로 제시한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이런 조작수사와 기소에 터잡아 진행되는 수많은 재판을 지켜보면서, ‘사상누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대장동 사건도 마찬가지다. 조작된 녹취록을 핵심 증거로 삼은 재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바닥을 드러내는 것은 검찰의 실력일 것이라는 확신마저 든다. 어느 국민이 검찰의 수사과정이 이럴 것이라고 상상이나 하겠는가. 줄줄이 집단행동에 나선 검찰들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초리가 곱지 않은 이유다.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두고 정치의 부패를 은폐한 ‘저지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대장동 재판 항소 여부와 관련한 검찰의 날 선 항명도 마찬가지다. 그 집단에 법도 정의도 없다는 진실을 간신히 가릴 뿐이다. 지금 이 순간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초코파이도 대장동도 아닌, 검찰 그 자체다.
한준호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고양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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