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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 전주국제영화제] 영화제도 식후경⋯'찐' 전주 맛집 궁금해?

"우리는 늘 선을 넘지."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전국제)가 야심찬 슬로건을 걸고 오늘(30일)부터 5월 9일까지 열흘간 영화의거리를 비롯한 전주시 일대에서 열린다. 전국제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자리매김한 만큼 전주 하면 '영화'가 떠오르겠지만 전주에서 유명한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맛이다. '맛의 고장' 전주까지 왔는데 영화만 보고 가면 섭하다. 어딜 가도 맛있다고 할 정도로 보장돼 있다. 유명한 곳도 좋지만 이왕이면 맛·가격·서비스, 3박자가 모두 어우러진 전주 착한가격업소를 들려보는 건 어떨까. 좋은 영화 보고 맛있는 음식까지, 생각만 해도 완벽한 일정이다. 영화의거리 부근에 있는 착한가격업소를 소개한다. 행정안전부가 제공하는 착한가격업소 누리집에 게시된 곳으로 한정했다. 입맛은 개인 차가 있는 만큼 참고만 하길 바란다.(괄호는 CGV전주고사서 출발, 도보·차량 이동 시간) 도보로 30분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전주 곳곳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으니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걸어가 보자. 단, 착한가격업소는 행정안전부가 제공한 누리집에 게시된 곳으로 영업 상태, 영업 시간, 휴무일 등은 직접 확인해 봐야 한다. △동래분식, 풍남문2길 39(도보 18분, 자동차 5분) 전주 남부시장 안에는 현지인 맛집이 있다. 팥칼국수, 손수제비 맛집으로도 불린다. 가격은 6000원부터 1만 원까지 천차만별이긴 하나 1만 원을 벗어나진 않는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팍팍 넣어 더 맛있는 동래분식은 어느 하나 부족한 맛 없이 다 맛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뉴는 팥죽, 팥칼국수, 손수제비, 칼국수, 만둣국 등. △돼지한마리, 현무1길 38-18(도보 9분, 자동차 5분) 착한가격업소에 등록된 메뉴는 돼지한마리(750g). 하지만 빼놓을 수 없는 대표 메뉴는 짜글이, 김치찌개다. 돼지고기와 두부·콩나물의 만남은 환상궁합이다. 자주 방문하는 사람도 질리지 않고 맛있다고 이야기할 정도면 말 다했다. 메뉴는 김치·된장찌개, 두루치기, 짜글이, 돼지한마리(삼겹살·목살·앞다리살·특수부위) 등. △또와분식, 태평5길 41-2(도보 9분, 자동차 2분) 전주 신중앙시장 내 '전집' 라인에 있는 가게. 빵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크로켓(고로케), 팥빵, 꽈배기, 찹쌀도넛, 만두, 찐빵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한다. 한 개만 먹으려다가도 앉은 자리에서 사 온 것 다 꺼내서 먹게 만든다는 마성의 맛. 장보러 온 할머니, 할아버지도 꼭 들려서 사간다는 빵. 메뉴는 만두, 찐빵, 찹쌀도너츠, 팥도너츠, 꽈배기 등. △만남의집, 서학로 28-1(도보 28분, 자동차 6분) 가게 내부에서부터 맛집의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는 만남의집, 동네 맛집으로 불린다. 닭·오리백숙, 닭볶음탕 등이 전문이긴 하나 착한가격업소에 등록된 메뉴는 김치찌개다. 이외 된장찌개, 청국장까지, 밥 도둑은 모두 팔고 있다. 메뉴는 능이닭오리백숙, 황칠닭오리백숙, 묵은지닭도리, 감자닭도리 등. △맛자랑 팥고향집, 서학로 32-4(도보 29분, 자동차 7분) "가격에 놀라고! 맛에 놀라고!" 네이버 방문자 리뷰에 남긴 찐(?) 후기다. 네이버 리뷰를 보면 대부분 '집에서 어머님이 만들어 주시는 맛', '공산품으로 낼 수 없는 맛', '전주에서 제일 맛있는 칼국숫집' 등 호평이다. 여름 메뉴 열무냉면이 또 별미라는데. 메뉴는 새알팥죽, 팥칼국수, 손칼국수, 김치칼국수, 수제비, (여름 메뉴) 콩국수, 열무냉면, 비빔냉면, 비빔국수 등. △세은이네, 풍남문2길 42-3(도보 17분, 자동차 5분) 골목에 있어 눈에 띄지 않는 위치에 있지만 항상 사람이 많은 세은이네.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맛이라는 평이 많다. 정겨운 옛날 식당 분위기에 걸맞게 사장님의 인심도 좋아 양이 엄청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메인 메뉴도 맛있지만 반찬으로 나오는 김치가 맛있기로 소문나 있다. 메뉴는 물국수, 닭곰탕 등. △수제왕돈까스, 충경로 84(도보 12분, 자동차 4분) 언제 가도 부담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수제왕돈까스. 전체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람이 몰린다. 옛날 경양식 집에서 팔듯이 케첩·마요네즈를 뿌린 양배추 샐러드, 마카로니도 함께 나온다. 장국도 그냥 장국이 아니라 소면을 푼 장국이 나온다는데. 메뉴는 덜큰돈가스, 왕돈가스, 칠리돈가스, 마늘돈가스, 고구마치즈돈가스 등. △신뱅이, 경기전길 153-9(도보 26분, 자동차 6분) 전주 하면 생각 나는 콩나물국밥, 비빔밥을 만날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해서 맛이 없거나 양이 적은 게 아니다. 착한가격업소뿐 아니라 전주시가 인증한 '전주음식명가'도 받은 이곳은 맛이 보장돼 있다. 한옥마을에 위치해 있어 밥도 먹고 한옥마을 구경까지 가능한 점이 장점이다. 메뉴는 콩나물국밥(김치·백김치 선택), 야채비빔밥, 날치알비빔밥, 소고기비빔밥, 김치전 등. △오늘의행복, 장승배기로 405(도보 34분, 자동차 8분) 짜글이, 삼겹살이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한 오늘의행복. 고기는 질이 좋아 짜글이, 삼겹살 할 것 없이 다 맛있다고 소문났다. 기본 상차림부터 푸짐하게 나온다. 한옥마을 외곽, 전주교대 근처에 있어 동네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현지인 맛집 추천에 꼭 포함돼 있다는 가게이기도 하다. 메뉴는 삼겹살, 짜글이, 김치찌개 등. △이래면옥, 동문길 103(도보 14분, 자동차 4분) 현지인이 운영하는 어르신 단골집. 이미 이것만으로도 맛이 설명된다. 한옥마을 주변에 있지만 가게 손님의 대다수가 지역 토박이 어르신들일 정도다. 함흥냉면 전문점으로 냉면을 많이 판매하고 있지만 시그니처(대표) 메뉴가 따로 있다. 바로 '갈만탕'. 갈비와 왕만두가 들어 있는 별미 메뉴다. 냉면도 맛있다는데. 메뉴는 비빔냉면, 물냉면, 회냉면, 갈만탕, 갈비탕, 소갈비찜, 돼지불고기 등. △자유식당, 풍남문3길 25(도보 15분, 자동차 5분) 전주의 손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1만 원에 청국장·제육까지 나오는 가성비 자유식당. 집밥 스타일이다 보니 화려한 반찬이 나오지는 않지만 사장님의 엄청난 요리 실력과 친절함이 '맛'을 더 깊게 만든다. 집밥, 시골밥상이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는데. 메뉴는 청국장, 김치찌개, 된장찌개, 불고기, 제육백반 등. △청라회관, 노송여울2길 10(도보 11분, 자동차 4분) 외관에 'Since 1986'이라고 적혀 있는 오래된 맛집이다. 무려 40년 동안 영업한 이곳은 기본 반찬부터 맛있기로 알려졌다. 조미료 맛이 나지 않고 진해서 더 맛있다고들 한다. 양까지 많다고 하니 맛집으로 소문날 만하다. 메뉴는 김치찌개, 청국장, 동태탕, 육회비빔밥, 야채비빔밥 등.

  • 기획
  • 박현우
  • 2025.04.30 10:33

[전북의 기후천사] 지구의 벗, ‘전북환경운동연합’이 실천한 기후행동은?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에서 실천하자’는 목표를 내걸고 1993년 첫 걸음을 내 딛었던 전북 환경운동연합은 환경을 생각하는 시민모임에서 출발했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이 속한 환경운동연합은 아시아 최대의 환경단체이자 세계 3대 글로벌 환경조직인 지구의 벗 한국본부이다. 이들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모두가 기후행동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빈방 불끄기, 플로깅, 다회용품 사용과 같은 기후위기 저항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한 단계 나아가 기후행동 ‘심화버전’을 실행할 때라고 말한다. 왜일까. 24일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만난 장진호 활동가는 “사람도 자연의 한 구성원일 뿐”이라며 “매년 폭염, 폭설, 폭우, 산불 등 자연재해 빈도수가 잦아지고 있다. (기후위기를 막기에) 늦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지만, 다행히 아직 물이 엎질러지지 않았다. 생물다양성, 생태계 보존 등과 같은 것들에도 관심을 두고 기후행동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탄소 흡수하는 ‘나무’…기후위기 대응 탁월 지구온난화를 가속하는 온실가스인 탄소를 저감하는 방법 중 가장 탁월한 방법으로 나무 심기가 있다. 탄소 흡수 효과가 높고, 한번 흡수한 탄소는 나무에 계속 저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규모로 숲을 조성하면 기후위기 대응은 물론 도심 온도를 낮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식물의 탄소흡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가급적 탄소가 덜 발생하는 방식으로 공원을 관리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상청이 공개한 세계기상기수(WMO) ‘전 지구 기후현황 보고서(State of the Climate 2024)’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수준보다 1.55도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75년 관측 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국제사회가 합의한 1.5도 기후변화 마지노선을 넘어서게 된 셈이다. 또한 지난 10년간 전주시 일원의 식목일 평균 기온은 12.1도로 1940년대 8.3도에 비해 3.8도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지난 2008년부터 올해까지 17년간 온난화 식목일 나무심기를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 전주시가 매입한 도시공원 부지에 회원 모금으로 이팝나무, 산수유, 산딸나무, 때죽나무 등 교목 30그루를 심어 도심공원으로 가꿔나간다. 2023년에는 문학대공원, 2024년에는 완주군 혁신도시 소리공원에 나무를 심었다. 올해는 건지산 도시공원 매입지에서 온난화 식목일 행사를 개최했다. 장진호 활동가는 “온난화 식목일 행사는 도시공원일몰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도시공원을 전주시가 매입하고 그곳에 시민들이 직접 나무를 심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크다”며 “녹지를 보존하고, 불필요한 개발을 막을 수 있어서 매년 시민들과 함께 하는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 받은 전주, 원인 찾기 나선 ‘기후천사’들 올 초 어느 기후학자가 예측한 ‘4월부터 반팔’설이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상당수 지역의 낮 기온이 30도를 육박했다. 다가올 여름은 ‘살인적 폭염’이 예고된 만큼 내륙 분지형 도시인 전주의 여름은 더욱 아찔할 수밖에 없다. 지형적으로 대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무더운 도시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전주시 기온을 측정하는 프로젝트를 청소년들과 함께 전개했다. 기상청에서 발표한 전주의 여름철 온도와 실제 체감온도 차이가 크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교육활동이다. '열(熱)받은 전주 기(氣)후천사 나선다’는 프로젝트는 매월 첫째 주 일요일 오후 3시가 되면 전주시 곳곳에서 온도계를 손에 든 청소년들이 200여개 지점에서 한달에 한번 기온을 측정한다. 기후천사들은 지역의 열섬현상을 관찰하고, 지점별로 기온이 다르게 나타나는 원인과 전주시 열섬현상 저감 방법을 찾아보는 활동을 전개했다. 총 250여명의 청소년들이 '기후천사'로 활동했고, 이들은 기온측정을 토대로 지점별 온도 차이와 기온 값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을 찾아봤다. 전북환경운동연합은 학생들이 스스로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기후행동에 동참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활동들은 '청소년들이 만드는 전주시 열(熱)지도’ 인쇄물로 나왔다. 장 활동가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약 7년간 기온측정 데이터를 축적했다. 기후천사들은 매년 측정한 기온을 전주시 지도 위에 표시한 열지도를 제작했다"며 "청소년들에게 도시의 열섬현상이나 기후변화를 인식하게끔 하는 교육활동을 활발히 진행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팬데믹 등의 이유로 단체활동이 점차 어려워져서 지금은 기후천사 활동이 잠시 멈춰있는 상태다. 조기대선 이후 기후천사 활동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활동가는 인터뷰 말미에 ‘에너지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석탄화력 등의 발전 용량을 낮추고 재생에너지로 전환된다면 2050 탄소중립이 훨씬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후·환경문제에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며 “위기를 느꼈다면 제도적 틀 안에서 변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함께 목소리를 높여 달라”고 강조했다.

  • 기획
  • 박은
  • 2025.04.27 17:29

[나는] 가야금과 사랑에 빠진 푸른 눈 외국인 조세린입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도, 길 다니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저마다의 삶이 있다. 우리가 매일 생산되는 주요 기사로 보는 것은 공직자, 정치인의 삶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어떻게 사는지 보지만 정작 이웃의 삶을 들여다본 적은 많지 않다. 평소 기사에 나오는 사람이 아닌 이웃의 이야기를 전하는 새로운 기획을 준비했다. 기획명은 나는이다. 다양한 이웃 인터뷰 기사를 통해 함께 서로의 삶을 나누고자 한다. 이번 주인공은 국내 첫 외국인 무형유산 이수자로 선발된 미국인 조세린 씨다. 한국인도 하기 어려운 가야금을 배워 이수자가 된 조 씨를 만나봤다. 곱게 쪽진 갈색 머리에 푸른 눈, 단아한 한복 자태와 가야금. 미국인 조세린(본명 조슬린 클라크·55) 씨의 첫 인상이다. 여기에 눈 감고 들으면 한국인이라고 착각할 만큼 유창한 한국어 실력까지. 웬만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다. 최근 전북 무형유산 제40호 가야금 산조 이수자로 선정된 조세린 씨는 지난달 10일 국내 첫 외국인 무형유산 이수자로 선발됐다. 그동안 해외 거주 한국인이 판소리 분야 이수자로 선정된 사례는 있지만 실제 외국인이 선정된 것은 처음이다. 조 씨는 미국 워싱턴 D.C.에서 태어나 알래스카에서 자랐다. 그는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한 취재진에게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한복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아 가야금에 손을 올리자마자 환한 미소가 사라졌다. 얼마나 가야금을 진심으로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가야금 열두 개 줄을 하나하나 뜯어 소리를 확인했다. 조 씨가 가야금을 배운 지는 30년이 넘었다. 어렸을 때 서양 악기를 하다가 일본 고토, 중국 칠현금·쟁을 배웠다. 한국에도 비슷한 악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야금에 눈을 뜨게 됐다. 지금처럼 외국인이 한국에서 사는 일이 쉽지 않다 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좋은 기회로 나가게 된 전주 '산조 축제'에서 위로를 받으며 꿈을 키워 나갔다. 조 씨는 "외국인이 가야금과 병창을 공부한다고 하니 전주 산조 축제에 와서 짧은 산조를 하나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내 실력이 좋지 않았는데도 사랑가를 부르니까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만 해도 얼씨구 절씨구부터 얼쑤, 좋다, 그렇지 등 관객들이 호응을 해 주셨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 재미있고 신났다"고 말했다. 꿈을 점점 키워 나가는가 했지만 집안 사정으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이후 다시 한국으로 와 2008년 배재대에서 동아시아 철학사상과 비교 미학을 강의했다. 대학 강의와 왕성한 연주 활동을 병행하던 중 공연 기회가 생기고 조 씨는 다시 한 번 가야금을 더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 성금연가락보존회 지성자 대표(전북 무형문화재 제40호 가야금 산조 보유자)와 인연을 맺게 된 이유다. 조 씨는 "혼자 연주할 기회가 생겼는데 혼자서는 못 하겠다"며 지 명인에게 가야금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지 명인은 "6개월 안에 하기는 너무 짧다. 돌아가라"며 거절했지만 조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지 명인은 거절한 이후에도 세 번이나 찾아온 조 씨를 내칠 수 없었다. 그렇게 가야금 공부가 다시 시작됐다. 조 씨는 "너무 부족해서 지성자 선생님이 진짜 많이 화냈다. 다시는 오지 말라고도 하셨다. 그래도 많이 알려 주셨다. 그때 저도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것 같다"면서 "지금도 매주 전주에 와서 지성자 선생님께 가야금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조 씨에게 가야금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그는 "가끔은 친구 같고, 적 같고, 언니 같고, 동생 같고, 부모님 같다"면서 "가야금은 내가 사랑 주는 만큼 돌아오는 악기다. 신경 안 쓰면 소리도 안 나고, 정도 안 붙는다"고 표현했다. 누군가에게 가야금은 단순히 악기일 뿐이지만 조 씨에게는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것이다. 국내 첫 외국인 가야금 산조 이수자 타이틀까지 얻었지만 조 씨의 학구열은 아직도 활활 타오르고 있다. 조 씨는 "가야금 산조로 이수자가 됐기 때문에 당연히 산조는 계속할 생각이다"면서 "나중에는 병창도 잘하고 싶다. 아직 발음 때문에 잘 못 하는데 지금 바르게 발음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4.26 09:16

[우리 땅에 새겨있는 역사의 흔적] 완주 안심사의 언해본 목판

△ 만해 한용운의 안심사 방문기 1931년 근대의 고승 만해 한용운이 완주군 운주면에 있는 안심사를 방문했다. 이곳에 소장되어 있다는 한글경판을 친견하고 인출계획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산사를 자주 방문했던 사람으로부터 안심사에 상당수의 언해본 경판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당시 남아있던 한글로 된 불교서적은 산질된〈월인천강지곡〉몇 권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던 터라 만해의 놀라움을 컸다. 하루라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에 급히 서둘러 경성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마음이 들떠서 며칠 밤잠을 설친 뒤라 기차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곤히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기차가 추풍령역에 정차해 있었다. 호남선으로 갈아타야 하는 대전역을 한참 지나쳤다. 급하게 하차해서 두 시간을 기다렸다가 상행선을 타고 대전역까지 다시 올라가 호남선으로 바꿔 타고 연산역에 내렸다. 여기서 자동차로 두 시간 반을 더 달려 다음날 정오가 지나서 안심사에 도착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틀 걸러 도착한 안심사의 모습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찾아오는 신도가 없어 주지 혼자 농사를 지으며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퇴락한 2층 건물의 대웅전 안으로 들어서자 불상 뒤쪽 마루에 경판이 쌓여있었다. 50년 전까지만 해도 판전이 있었는데 판전이 무너지면서 대웅전 안으로 옮겨놓은 것이었다. 수많은 경판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한글경판이 보였다. 벅찬 감흥에 잠시 머리가 어지러웠다. 만해는 정신을 가다듬고 나서 경판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경판을 종류 별로 분류하고, 다시 판본 순서대로 맞추어갔다. 다음날 해질 무렵이 되어서야 판본의 정리를 마쳤는데 결과는 엄청났다. 낙질이 거의 없는 판본이 5종이나 남아있었다. 〈원각경〉〈금강경〉〈은중경〉 등 경전이 3종, 여기에 〈천자문〉과 〈유합〉의 판본까지 있었다. 남아있는 언해본 판본의 수는 무려 655판에 이르렀다. 이를 인출하게 되면 1,365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이다. 만해는 이러한 자초지종을 적어 ‘국보 잠긴 안심사’란 제호로 〈삼천리〉 1935년 7월호에 실었다. △ 한 줌 재로 변한 안심사 언해본 목판 만해는 글을 마무리하면서 향후 판본이 어찌 될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안심사의 형편으로 판본을 제대로 관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본을 지킬 수 있는 방안 세 가지를 제시했다. 안심사에 이를 수호할 만한 보조를 해주거나 이를 수호할 수 있는 다른 사찰로 이안하는 방안, 경성에 판각을 신축한 후에 매입해서 이안하는 방안이다. 만해는 이 중에서 경성에 이안하는 방안을 실행하려한다고 밝혔으나 어떤 사정에서인지 실현되지 못했다. 경성에 판본을 이안하고자 했던 만해의 생각이 실현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3일, 만해가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 벌어졌다. 안심사가 적군의 월북경로에 있다는 이유로 국군이 사찰을 징발해 소각해버린 것이다. 이때 대웅전 안에 보관되어 있던 판본도 함께 재가 되었다. ‘국보 잠긴 안심사’가 국보와 함께 사라졌다. △ 조선 초부터 불경을 간행했던 안심사 그런데 대둔산 깊은 산속 오지 중의 오지인 안심사에 어떻게 해서 이렇게 엄청난 보물인 언해본 목판이 보관되어 있었던 걸까. 안심사는 조선 초부터 불경간행이 활발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조선 초에 발간한 한문본〈묘법연화경〉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개국공신이었던 양촌 권근이 쓴 발문에 발간경위가 적혀있다. 조계종의 대선인 신희 등이 노인들이 보기 편하도록 중간 크기의 글자로 불경을 간행하기를 원했다. 이에 성달생 성개 형제가 상중에 이를 듣고 선친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글씨를 썼다. 이를 도승 신문이 전라도 도솔산 안심사로 가지고 가서 1405년(태종 5)에 이 경전을 간행했다. 이 발문을 통해 당시 안심사의 명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불경 간행을 위해 그 먼 길을 마다 않고 신문이라는 승려가 대둔산 안심사까지 성달생 형제가 정성을 다해 쓴 사경을 가지고 갔던 것은 이곳이 당시 가장 뛰어난 불경간행처였기 때문이다. 이는 안심사의 승려 중에 숙련된 각수와 지장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인프라가 튼튼하게 갖춰진 절이 안심사였다. 이러한 사찰이었기에 세조 때 간경도감을 설치하면서 지방분사를 이곳에 두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는 단초가 영조 35년(1759)에 건립된 안심사사적비에 적혀있다. 이 비는 우의정 김석주가 비명을 짓고, 한성부 판윤 유최기가 기문을 서술했다. 이조판서 홍계희의 글씨에 영의정 유척기가 두전을 썼다. 이처럼 조정의 쟁쟁한 실세들이 참여해 비를 세운 것으로 볼 때 당시까지만 해도 안심사의 사세가 상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문에 안심사 주지 처능이 김석주에게 했던 말이 적혀있다. 우리 혜장왕조(惠莊王朝:세조)에 이르러 일찍이 친필로 유지(遺旨)를 내리시어 절의 중으로 관에 부역하는 자들에 대해 모두 역을 면해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그 글이 있습니다. 사적비에 의하면 세조가 승려들의 잡역을 면해주라는 친필 유지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조는 무엇 때문에 이러한 유지를 내렸을까. △ 안심사는 간경도감 전주분사 이는 안심사가 일찍이 명성을 쌓아온 불경간행사업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추정하는 까닭은 불경간행을 위한 전담기구를 설치해 많은 불경을 간행한 왕이 세조였기 때문이다. 세조는 대군 시절부터 불교를 좋아하여 부왕인 세종의 불서편찬을 적극 도왔다. 세종의 명으로 모친인 소헌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석보상절〉을 쓰기도 했다. 왕위에 오른 뒤에는 왕위 찬탈을 속죄하기 위해 더욱 불교에 심취했다. 세조 7년(1461)에는 간경도감을 설치했다. 중앙에 간경도감 본사를 두고, 지방에 분사를 두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지방분사로는 개성 안동 상주 진주 전주 남원이 있다. 이 중 전주의 분사 역할을 안심사에서 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역할을 하면서 불경 간행이라는 국책사업을 수행했기에 세조가 안심사의 승려들에게 잡역을 면해 주라는 어필을 내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만해가 와서 보았던 언해본 목판도 세조 때 새긴 것일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간경도감의 역할을 보면 한문 불경은 본사와 지방분사에서 간행했지만 언해 불경은 서울 본사에서 단독으로 간행했다. 안심사에 있었던 언해본 목판은 선조의 지시로 1575년(선조 8)에 판각해서 안심사에 보관했다. 그런데 실물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간경도감에서 언해한 불경을 다시 복각한 것인지 아니면 새로 한글로 번역해서 판각한 것인지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용운이 1932년에 보수하여 인출한 〈원각경언해〉와 〈금강경언해〉는 간경도감의 원간본을 복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출판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안심사 이처럼 안심사의 언해본 목판에 대해서는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사실만으로도 안심사는 우리 출판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곳이다. 조선 초부터 많은 불경을 간행했고, 세조 8년(1462)에는 한자본 불경 〈대승기신론필삭기〉와 〈대방광불화엄경합론〉을 간행했다. 여기에 선조의 명으로 판각한 언해본 판본까지 소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대단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볼 때 안심사가 조선시대 불경간행의 중심 사찰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손상국 프리랜서 PD

  • 기획
  • 전북일보
  • 2025.04.24 23:32

[트민기] 육지 남원서 참치가 잡힌다?⋯'참치왕' 산골 농협 사연은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트민기'가 떴으니 이제 걱정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민기는 빠르게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여기서 그치면 재미 없을 것 같아 또 하나 준비했다. 전국적인 유행뿐 아니라 전북에서 핫한 현장이 있다면 바로 출동한다. 이것이 우리의 임무다.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리산농협 하나로마트는 참치도 다릅니다. 냉동이 아닌 '생'으로 고유의 신선함을 맛보세요." 이 문장 두 줄이 본사에서 왕복 2시간 30분 걸리는 남원까지 가게 만들었다. 남원에서 생참치가 잡힐 리 없는데 참치를 잡는 산골 농협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알고보니 지리산농협은 지난 2022년부터 통영 욕지도에서 잡은 생참치를 해체해 왔다. 쇼핑몰 사업을 확장하려고 했지만 산골 농협에서 판매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산골에서 접하기 어려운 것을 찾다 '생참치'라는 답을 얻게 됐다. 조합원·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면서 수익까지 올릴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 것이다. 발상의 전환, 역발상이 통했다. 이렇게 재미있는 현장 이야기를 듣고 안 갈 수가 없었다. 무조건 가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출발했다. 지난 17일 오전 10시쯤 도착한 남원에 있는 지리산농협(조합장 정대환) 하나로마트. 진짜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주유소, 톨게이트뿐.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들어간 마트 입구에는 욕지도에서 잡힌 생참치라는 말과 함께 중뱃살, 대뱃살, 적신이라고 붙혀진 스티로폼 박스와 엄청 긴 빨간 도마가 있었다. 수산 코너에서 직원으로 추정되는 '지리산 농협'이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앞치마를 두른 3명이 박스를 끌고 온다. 박스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참치 꺼내겠습니다!" 한 마디와 함께 큰 박스에서 머리와 꼬리가 그대로 달린 생참치 한 마리가 나왔다. "참치 머리부터 자르겠습니다." 그때부터 생참치 해체쇼가 시작됐다. 곧바로 주변에 사람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다들 감탄을 금치 못했다. 80kg 상당 생참치를 통으로 본 것도, 해체쇼를 본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됐지만 다들 지루한지 모르고 자리를 지켰다. 여러 차례 칼질을 하자 흔히 횟집에서 보는 참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직원은 고객에게 부위를 설명해 주면서 해체를 이어갔다. 생참치를 능숙하게 해체하는 이 직원들은 놀랍게도 타지역에 가서 수업 듣고 유튜브를 보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정말 선수처럼 잘한다. 현장에서 만난 서천수(57·광주) 씨 가족은 계속해서 환호성을 질렀다. 남원에 관광하러 왔다가 해체쇼를 보러 온 줄 알았지만 반대였다. 해체쇼를 보러 남원을 찾은 것이었다. 서 씨는 "원래 가족이 다 참치를 좋아한다. 냉동만 먹어 봤지, 생참치는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다. 우연히 생참치 해체쇼를 한다는 기사를 보고 문의해서 날짜 맞춰 왔다. 관광하러 온 거 아니다. 진짜 생참치 해체쇼 보고 먹고 싶어서 왔다"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 부위별 설명까지 들으니 너무 좋다. 다음에 또 오고 싶다. 다른 사람도 데리고 오고 싶을 정도다"며 감탄했다. 매번 사 먹는다는 정성령(85·남원) 씨도 "직접 해체하는 것도 보고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생참치를 지리산 밑에서 먹는 것 자체가 특색이다. 금요일 저녁에 가족들이 다 모인다고 해서 또 사러 왔다"고 말했다. 당초 지리산농협 하나로마트의 계획처럼 조합원·고객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생참치 해체쇼를 기획한 정대환 조합장은 "남원에서 맛보지 못 한 것을 팔자고 생각했다. 조합원 환원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하나로마트를 찾는 고객들이 퍼포먼스적인 부분도 볼 수 있게끔 쇼를 기획했다. 직접 쇼를 보면 생동감도 있고 진짜 생참치구나 믿음도 생긴다고 생각한다. 냉동참치를 판매할 수도 있지만 진짜라는 것을 보여 주려고 기획했다"면서 "이제 타지역에서도 전화 문의나 예약 주문이 많이 들어올 정도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4.24 14:43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2) <오통절목> <향약장정> <향약안> <제천향약절목>

이 잡듯이 동학농민군을 단속하라 동학농민혁명을 일본군과 연합하여 철저히 무력으로 진압한 정부는 해산한 동학농민군을 철저히 단속하고 사회 기강과 질서를 통제할 목적으로 오가작통법과 향약을 재정비하고 전면적으로 시행하였다. 그 실상을 잘 보여주는 기록물들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번에 다루는 <오통절목>, <향약장정>, <제천향약절목> 등이다. <오통절목>은 1894년 12월 완산(完山) 초안국(招安局)에서 목판 인쇄한 것이다. 작성자는 관찰사 겸 위무사로 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기록물은 전라관찰사가 전주에서 인쇄, 전라도 각지에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오통절목>을 통해 동학농민군을 색출하도록 한 전라도관찰사는 바로 이도재이다. 전라도관찰사 이도재가 추진한 오각작통법 시행 목적은 비적, 즉, 동학농민군을 토벌해서 양민들을 편안케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해산한 동학농민군이 귀가하거나 마을로 잠입하였을 경우 일일이 색출하여 처형하기 위해 시행한 것이다. 그를 위해 5가구마다 통수(統首)를 두고 25가구마다 연장(連長)을 두어 서로 검속(檢束)하여 살피도록 하였다. 만약 한 마을의 가구수가 25가구가 안될 경우, 10가구 이하는 합하여 1리로 만들고 10가구 이상은 1연으로 만들도록 하였다. 연장은 해당 마을에서 관아에 보고하여 임명하고, 통수는 연장이 선정하였다. 5가작통은 모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되, 만약 작통에 들어가지 않으면 비적의 무리로 간주하여 논죄하도록 하였다. 심지어 빈집 역시 통에 넣되, 집주인이 3개월 동안 돌아오지 않는 집은 연장이 관아에 보고하여 가난하여 집이 없는 주민에게 주도록 하였다. 또한 통을 편제할 때, 다른 지역에서 이주한 주민은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기존에 살던 집 주인은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모두 기록하도록 하였다. 심지어 산의 움막 토굴 사찰 등과 같은 곳도 가까운 마을에 소속시키고 똑같이 규찰하도록 하였다. 오가작통을 통해 단속할 대상은 정황과 행적이 의심스러운 자, 비적(동학농민군)의 부적과 주술을 지니거나 외우는 자, 무기나 풍물・깃발 등을 감추거나 버리는 자, 그것을 알고서도 보고하지 않는 자, 수상한 자를 숨겨주는 자, 비적의 우두머리가 숨어 있는 곳을 알고도 보고하지 않는 자, 관아의 명령없이 사적으로 서로 모이는 자, 사적으로 통문을 돌리는 자, 하룻밤 이상을 출타할 때 통수에게 보고하지 않고 출입하는 자 등 매우 광범위하였다. 오가작통을 통해 해산한 동학농민군을 이 잡듯이 단속함은 물론 다시 재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촘촘히 마을을 통제하였음을 알 수 있다. 더욱이 통 내에서 한 집이 법을 어기면 나머지 네 집이 똑같이 연대책임을 지도록 하여 상호 감시하도록 하였다. 향약장정(鄕約章程)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향약장정>은 <오가절목>과 마찬가지로 1894년 12월에 완산 초안국에서 목판 인쇄한 것이다. 관찰사 겸 위무사 명의로 간행된 것으로 보아, 이것 역시 오가작통법과 함께 향약 시행을 통해 동학농민군을 단속하고 사회를 통제하기 위할 목적으로 작성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규장각,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향약장정> 내용은 향약 시행 규칙으로, 향약사목을 제시한 뒤 향약 덕목을 나열해 놓았다. 향약 시행 규칙은 모두 13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읍에는 연장자로 덕망이 있는 자로 도약정(都約正)을 뽑고, 1면에는 약정과 직월 각 1명을 두고 평민 가운데 한 사람을 면장(面掌)을 삼도록 하였다. 면장 외에는 모두 관에 보고하여 지방관이 임명하도록 하여, 사실상 향약이 자치규약으로서의 본래 성격에서 벗어나 관의 향촌 지배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읍과 면에는 각각 회원명부를 두되, 반상을 구분하도록 하였다. 신분 차별을 둔 것이다. 향약 운영은 매년 춘추로 향교에 모여 강약(講約)하였고, 향약 덕목은 전통 그대로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 네 덕목으로 기존의 전통적인 덕목 내용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과실상규 내용을 보면, 최근 동학과 불학(佛學)의 무리들이 기도를 하고 주문을 외우는 등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으니 철저히 규찰하도록 하면서, 만약 어기는 자가 있으면 향약 모임에서 벌을 주도록 하였다. 벌은 엄중한 경우 관에 보고하여 엄히 징계하고, 경미한 경우 5에서 20대의 태형을 가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향약장정>은 전라도관찰사가 전주에서 목판 인쇄하여 전라도 각 지역에 일괄 배포한 것으로 보아, 전라도 전 지역에서 시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전주 북일면에서 시행된 동종의 <향약절목>이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좌목(座目)>에 들어 있음). 향약이 철저히 관 주도로 이루어졌고, 동학농민혁명을 수습하고 동학농민군을 단속하기 위한 사회통제책으로 활용되었다. 향약안(鄕約案)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제공 <향약안>은 향약안서, 방수안서(防守案序), 단자, 능주 유생등 상서, 서간문 등이 필사되어 있다. 1895년 초에 능주에 사는 어느 유생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향약안서’는 일반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으나, 전라도관찰사가 시행하도록 한 향약이 능주에서도 시행되면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방수안서’ 역시 위정척사를 위해 적당을 방수하겠다는 글이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다만, 을미년에 작성된 단자와 능주 유생들의 상서 등은 초토사 앞으로 보낸 것으로, 능주 방수장(防守將) 전 우후 박종규(朴鐘圭)가 수성군을 조직해 장흥 동학농민군 수백명과 광주 동학농민군 50여명을 격퇴하였을 뿐 아니라, 나주에서 패한 동학농민군이 능주에 들어오자 접주 등을 체포해 나주에 압송시킨 공이 있다고 하면서, 포상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또 다른 단자는 향약 시행과정에서 임원 관련 내용이다. 기타 서간문이 필사되어 있다 이것으로 보아 <향약안>은 실제 능주에서 1895년초 향약 시행과정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동학농민군이 진압된 이후 향촌사회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는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제천향약절목>은 충북 제천에서 시행하였던 향약절목이다. 작성시기는 1894년 6월이며 제천현감 관인이 찍혀 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1905년 3월 제천향약 임원도 메모되어 있다. 내용은 일반 향약절목처럼 향약서, 향약범례가 나열되어 있으며 제천 8개면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임원은 도약장, 면약장, 동약장, 통수 등으로 구성하며 관의 통제를 받도록 하였다. 특이한 점은 향약과 오각작통법이 결합되어 있는 점이다. 오각작통을 통해 향촌사회를 촘촘히 감시하도록 하였다. 만약 향약을 준수하지 않으면 마을이나 면약장이 다스리되, 중한 경우에는 관에 보고하여 처벌하도록 하였다. 수상한 자는 절대로 마을에 들이지 말고 그 성명을 관에 보고하도록 하였다. 특히 각 통마다 밀통군(密通軍) 5명씩을 뽑아 윤번으로 마을을 단속하도록 한 점이다. 단속 대상 가운데는 적당(賊黨)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당시 정황을 놓고 볼 때 사실상 동학농민군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학농민군 예방 차원에서 제천향약이 시행된 것으로 보이나, 그 즉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제천지역은 6월경부터 들고일어난 동학농민군이 7-9월 거의 장악한 상태였으나, 일본군이 충주지역으로 진입한 10월부터는 상황이 역전되었다. 제천 민보군도 조직되어 동학농민군의 근거지를 초토화하는 한편, 전봉준과 함께 재판장에서 사형을 받은 성두한의 아버지, 아내, 아들을 차례로 체포하여 제천관아에 수감시키기도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제천향약은 비록 즉시 효과를 보지 못하였을지라도 제천 민보군 활동의 기반이 되었을 뿐 아니라,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이후 제천 향촌사회를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김양식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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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23 18:59

[나는] 취향을 찾는 동네서점⋯새싹·베테랑 책방지기의 삶은

가장 가까운 가족도, 길 다니면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저마다의 삶이 있다. 우리가 매일 생산되는 주요 기사로 보는 것은 공직자, 정치인의 삶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그들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어떻게 사는지 보지만 정작 이웃의 삶을 들여다본 적은 많지 않다. 평소 기사에 나오는 사람이 아닌 이웃의 이야기를 전하는 새로운 기획을 준비했다. 기획명은 나는이다. 다양한 이웃 인터뷰 기사를 통해 함께 서로의 삶을 나누고자 한다. 이번에는 동네 책방을 지키는 책방지기의 이야기다.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오픈 1개월 차 새싹 책방지기 서지석 대표와 9년차 베테랑 이지선 대표를 만나봤다. △ 독립서점 '일요일의 침대' 서지석 책방지기 “지난달 23일에 시작했으니까 이제 문 연 지 한 달 됐네요.” 전주 남부시장과 웨딩의 거리를 잇는 작은 골목, ‘고물자거리’라고 불리는 골목 안 작은 책방엔 골목을 지키는 책방지기 서지석(31) 씨가 있다. 그의 서점 ‘일요일의 침대’는 지난달 문을 열어 이제 막 한 달을 채웠다. 평범한 직장이었던 서 씨는 번아웃으로 인해 회사를 그만두고 마음속에 품고 있던 책방을 차렸다. 서점의 이름을 일요일의 침대라고 지은 이유다. 방문객이 책을 통해 잠시나마 쉬어가고 주말 침대 속 여유로움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원래 책방은 회사 은퇴하고 노인이 돼서야 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 진로를 찾다 보니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서 씨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사람들과 감상을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직장에 다닐 때도 독서 모임을 만들어 주도하곤 했다. 서울에서 독서 모임이 열리기라도 하면 참가하기 위해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게 일상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 책 이야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꿈에 그리던 책방을 열기로 마음먹은 후 처음 골목에 왔을 땐 주변의 걱정도 컸다. 대로변도 아닌 골목 안 작은 책방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고물자거리의 이웃들도 걱정의 눈빛을 보냈다. 대부분 생계에 대한 걱정이었다. 서 씨도 “책 자체가 돈이 되는 상품은 아니다”라고 했다. 독립 서점은 대형서점처럼 베스트셀러를 대량으로 판매해 수익을 내기 어렵다. 대신 책방 주인의 취향을 반영한 큐레이션을 제공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소통 공간이 되는 것이 차별점이다. 서 씨는 이 점을 살려 특정 주제를 정한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북 토크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수익을 낸다. “동네 책방은 단순히 책을 구매한다기보다는 경험을 소비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단순 책만 구매하려면 인터넷이 훨씬 편하죠. 그럼에도 동네 책방을 찾는 건 책방지기가 고른 책을 보며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즐기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그보다 먼저 골목 안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일이 새내기 책방지기의 가장 큰 고민이다. △ 독립서점 '잘 익은 언어들' 이지선 책방지기 “2017년도부터 시작했으니까 9년 차, 우리 책방이 벌써 그렇게 됐네요.” 통창으로 환한 햇빛이 쏟아지는 아늑한 공간. 전주시 인후동에 위치한 ‘잘 익은 언어들’의 책방지기 이지선(49) 씨는 책방을 운영한 햇수를 헤아리며 환히 웃었다. 지난 2017년 송천동의 12평 남짓한 공간에서 시작한 책방은 늘어난 단골들과 함께 몸집을 키워 인후동의 2층 건물로 이전했다. 본래 카피라이터로 일했던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책방을 열기로 했다. 처음엔 책방보다 카피 작업이 중심이었다. “책방은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 책방에 오시는 손님들한테 오히려 많은 위로를 받고 있더라고요. 그 기억이 지금까지 책방을 운영하는 원동력이 된 거죠. 이제는 책방지기가 본업이에요.” 지금은 단골들이 꾸준히 찾아오지만, 한때 침체기를 겪었다. 코로나19로 발길이 뚝 끊긴 시기에 “책방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객의 말 한마디가 그를 5년이나 더 버티게 했다. 그는 책을 집필하며 수익을 확보하고 SNS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역 학교에 찾아가 책 유통 계약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렇게 버틴 끝에 잘 익은 언어들은 어느새 전주의 대표 독립 서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어려웠던 시절, 단골들의 말 한마디로 버틸 수 있었던 이 씨는 책방지기에게 고객과의 교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말을 걸라는 뜻은 아니다. 잘 익은 언어들은 활발한 소통이 매력이지만 모두가 그럴 순 없다는 게 이 씨의 생각이다. “모두가 그런 교감을 원하지는 않아요. 어떤 책방은 오히려 책방지기가 고객한테 무관심한 느낌 때문에 부담 없이 갈 수도 있죠.” 그럼에도 이 씨는 소통은 중요하다고 말한다. 조용한 책방을 추구하더라도 작은 담소를 통해 고객과 연결고리를 만들면 또 오고 싶은 공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제 9년 차에 접어든 그는 새롭게 책방을 시작하는 책방지기들에게 지역 커뮤니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혼자 운영하는 책방이지만 결국 팀플레이”라며 이웃 상점이나 주민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그는 앞으로 전북이 전국에서 책방이 가장 많은 지역이 되기를 바란다. 새로운 책방지기들이 꾸준히 생기고 그들을 따라 외부인이 찾아온다면 지역과 책방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다고 믿는다. “서점이라는 게 1년만 운영한다고 뭔가 ‘탁’ 이루어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독립 서점들이 천천히 가더라도 그 시간을 묵혀서 각자 매력 있는 책방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 기획
  • 문채연
  • 2025.04.23 18:03

[트민기] 언니·오빠가 책 읽어 준다고?⋯시골 학교에 무슨 일이

유행은 돌고 돈다. 빨라도 너무 빨리 돈다. 괜히 아는 척한다고 "요즘 유행인데 몰랐어?" 이야기했다가 유행이 끝나 창피당하는 일도 다반사다.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들, 트민기가 떴으니 이제 걱정 없다. 이 기사를 읽는 순간에도 SNS,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수많은 유행이 올라오고 트렌드가 진화한다. 트민기는 빠르게 흐름을 포착해 독자에게 전달하는 게 목표다. 여기서 그치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또 하나 새로운 기획을 준비했다. 전국적인 유행뿐만 아니라 전북에서 '핫'한 현장이 있다면 바로 출동한다. 이것이 우리의 임무다.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얘들아, 오늘 내가 읽어 줄 책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야." 세계 책의 날인 23일 장수계남초 5학년 박찬희(11) 군이 옆구리에 초록색 표지의 책 한 권을 끼고 3학년 교실을 찾았다. 박 군이 교실로 들어오기 전 천진난만하게 놀고 있던 아이들은 온데간데없이 박 군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박 군은 익숙한 듯 동생들 앞에 앉아 한 장 한 장 넘기며 또박또박 책을 읽어 나갔다. "옛날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책 페이지 수만 52쪽, 책 읽기는 7분간 이어졌지만 그 누구도 엉덩이 한 번 안 떼고 책에 집중했다. 고학년 선배라도 앞에 나와 책을 읽는 게 부끄러울 만도 하지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끝까지 용기 있게 읽은 박 군에게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사실 장수 계남초는 지난해부터 따뜻한 아침에 책 한 권을 줄여 '따아책'이라는 도서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교내에서 문해력 관련 독서 교육을 강화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새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매주 수요일 아침 오전 8시 45분부터 딱 15분간 진행한다. 저학년과 고학년을 한 팀으로 묶어 고학년 선배들이 직접 책을 선정해 저학년 후배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방식이다. 박 군이 이날 읽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책도 직접 선정한 것이다. 박 군은 "이 책은 나무가 소년에게 아낌없이 나뭇가지부터 사과, 줄기, 밑동까지 다 주는 게 감동적이라서 골랐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하니(9·초등학교 3학년) 양은 "나무가 소년을 위해서 다 해 주면서도 행복하다고 하는 게 감동적이고 재미있었다. 아침마다 언니, 오빠들이 책을 읽어 주면 졸렸던 기운을 깨게 해 주는 것 같다. 계속 언니, 오빠들이 책을 읽어 주면 좋겠다"고 했다. 후배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 줄지 고민하는 선배들의 모습과 선배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후배들의 모습에서 사랑스러움이 묻어져 나왔다. 고학년은 책 읽어 주는 게 어색해 부담스럽기도 하고 저학년은 책 내용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고학년, 저학년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하는 도서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도서 담당 양지연 교사는 "저학년 아이들은 고학년 언니·오빠들이 교실에 와서 그림책 읽어 주는 걸 정말 좋아한다. 책 내용도 재미있고 자신들을 찾아와 준다는 기분이 드는 것 같다"면서 "고학년은 처음부터 즐거워하는 아이도,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도 있었는데 다른 아이들이 읽어 주는 걸 보면서 익숙해지는 듯하다. 매주 실시하다 보니 점차 부담감은 잊고 편하게 읽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4.23 17:13

[뉴스와인물] 취임 100일 맞은 제12대 정경복 전북대병원 상임감사 “투명하고 건강한 병원 문화 만들 것”

국립대학교병원을 운영하며, 병원장과 함께 가장 중요한 자리가 있다. 병원의 투명하고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상임감사가 그것이다. 제12대 전북대병원 정경복(66) 상임감사는 의정 갈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병원 운영의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취임 100일을 맞은 정 상임감사를 만나 앞으로 병원 운영에 대한 포부와 방향성을 들어봤다. 상임감사로 취임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중책을 맡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전북대병원이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지역거점공공의료기관으로써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내부 통제와 청렴 문화를 강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본의아니게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상임감사라는 직책이 두렵지만, 여러 직원분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상임감사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상임감사는 병원의 전반적인 업무가 관련 법령과 내부 규정에 따라 적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각종 위험 요인을 사전에 예방하는 역할을 합니다. 단순히 사후 감사를 넘어서, 병원이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내부 감시와 자문 기능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또 법령과 내규가 규정에 따라서 적법하게 잘 이뤄지고 있는 건지 이러한 부분들을 살펴보는 것이 감사의 기본이고 시작과 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병원은 특성상 예산집행과 의료행위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현재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보고 계신가요. “의료기관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진료 활동을 수행하는 동시에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입니다. 따라서 예산이 불필요하게 낭비되지 않도록 사업의 타당성과 효과성을 사전에 면밀히 검토하고 있으며, 특히 의료장비 도입이나 외주 용역, 연구비 집행 등과 관련한 투명한 절차 준수에 중점을 두고 투명한 절차를 준수 할 수 있도록 지켜보고 있습니다.” 현재 공공의료기관으로써 투명성과 청렴성 확보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것은. “청렴은 기관 운영의 핵심 가치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임직원의 청렴 인식을 높이는 청렴 교육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청렴 연수원 교육을 다녀왔습니다. 교육과정에서 들었던 청렴은 행복이다. 행복은 가까운 것에서 찾는 것이다라는 말을 토대로 직원들과 함께 청렴 자체를 자연스러운 문화로 정착시키고 싶습니다. 또한, 부패 취약 분야에 대한 내부 통제 제도를 점검하고 강화해 부패를 예방하고 있으며, 병원 운영을 다양한 방식으로 모니터링하여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개선하고, 권고 사항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전 임직원이 함께하는 청렴 실천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 자리에서 청렴 결의문을 낭독하고 청렴 실천을 다짐할 예정입니다.” 현재 업무 추진에 있어 애로사항이 있다면. “의료기관 특성상 전문 영역이 많고 다양한 부서가 유기적으로 협업하기 때문에 감사 과정에서도 각 부서의 실무적 이해와 조율이 중요합니다. 감사를 ‘지적’이 아닌 ‘개선’의 기회로 받아들이는 조직문화가 확산되어야 하는데, 구성원 모두가 감사실의 취지를 잘 인지하고 긴밀하게 협조해 주면 더욱 좋을 것 같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 부서의 부서장들과의 소통을 늘려가겠습니다.” 상임감사로서 반드시 추진하거나 개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전 예방 중심의 감사 체계를 정착시키고 싶습니다. 문제가 발생한 후에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리스크를 사전에 인지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자율점검 시스템과 내부 통제 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실무자들이 부담 없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소통 창구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용해 추후 외부의 감사가 있더라도 그동안은 방어 형식의 감사 준비를 했다면, 앞으로는 미리미리 대비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습니다.” 현재 의정 갈등으로 병원 상황이 어렵습니다. “의료 현장의 혼란은 결국 환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공공병원은 지역의료의 중추이자 사회적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피해는 더욱 클 수 있습니다. 갈등 상황에서도 병원이 본연의 진료 기능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내부적으로는 더욱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운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상임감사 자리에 대해 고민을 해보셨나요. “이제 중년에 접어들면서 지난 사회생활을 돌아보니 40~50대는 인생의 마지막 봉사 시기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공공기관의 감사 역할을 통해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전북대병원이라는 좋은 기관에서 감사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하며, 이 병원이 더 좋은 병원으로 성장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습니다.” 청렴 등을 위한 전북대병원만의 특색있는 제도가 있다면. “전북대병원은 청렴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다양한 자체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청렴시민감사관제도, 청렴간담회 등 병원 상황에 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청렴 문화를 확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부서별로 정기적인 청렴간담회를 실시하고 있으며, 외부 시각을 통해 병원의 청렴 수준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해 청렴시민감사관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패 공익신고의 활성화를 위해 신고 방법과 신고자 보호 제도를 홍보하고, 이를 통해 부패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끝으로 전북일보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전북대병원이 도민들께 신뢰받는 공공의료기관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감사로서의 책임과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병원의 모든 구성원이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도록 더욱 투명하고 건강한 병원 문화를 만들어가겠습니다. 지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정경복 상임감사는⋯ 정읍 출신인 정경복 상임감사는 (유)신호건설의 대표이사, 대한건설협회 전라북도회 감사, 한국주택금융공사 사외이사, 정운천 전 국회의원 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그는 자신의 임기 동안 현재는 낮은 전북대병원의 청렴도 등급을 1등급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 상임감사는 “저는 항상 무에서 유를 만들었다”며 “국민들이 정말로 사랑하는 전북대병원을 만들기 위해 청렴도 1등급 평가는 꼭 받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도민이 믿을 수 있고 환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기획
  • 김경수
  • 2025.04.20 17:12

고창 웰파크호텔, 체류형 관광 시대를 열다

[Advertorial]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석정리에 고창 관광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프리미엄 호텔이 공식 문을 연다. (주)서울시니어스타워(이사장 이종균)가 운영하는 고창웰파크호텔이 19일 고창 현지에서 개관식을 갖는다. 이 호텔은 단순한 숙박을 넘어, 체류형 관광이라는 고창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석정온천과의 시너지, 고창의 천혜 자연, 풍부한 문화유산과 연계해 ‘머무는 여행지’로서의 고창 이미지를 굳건히 하고 있다. △머무는 여행지로서의 도약 고창은 고인돌 유적을 비롯해 무려 7건(고인돌, 갯벌, 판소리, 농악,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 세계기록유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역사·문화 자원의 보고다. 여기에 선운산, 동호해수욕장, 람사르 습지 등 빼어난 자연경관까지 갖췄지만, 그동안 관광객들이 ‘하루만 둘러보고 떠나는’ 한계에 직면해 있었다. 이는 숙박 인프라의 부재에서 비롯된 구조적인 문제였다. 고창웰파크호텔은 이러한 지역적 한계를 해결할 새로운 키 플레이어로 등장했다. 지역 관광이 일회성 관람에 그치지 않고, 여유롭게 머물며 깊이 있는 체험으로 이어지는 체류형 관광 시대를 여는 신호탄이 된 것이다. △석정온천과 함께하는 프리미엄 치유 앤 힐링 스테이 고창웰파크호텔은 단순한 호텔이 아니다. 건강과 휴식을 중시하는 ‘웰니스 라이프’ 트렌드에 발맞춰 석정온천과 연계한 치유와 힐링 중심 숙소로 설계되었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편안함을 극대화한 객실(스위트룸 5실∙스탠다드 86실 등 총 91실)은 물론, 레스토랑, 카페, 웰니스 센터, 노천온천 시설, 스카이라운지(9층)까지 구비해 여행자들에게 ‘머무는 것 자체가 여행이자 치유와 힐링’이 되는 새로운 차원의 체류 경험을 제공한다. 특히 석정온천의 게르마늄 온천수는 면역력 증진과 피로 회복에 탁월한 효능을 나타내 투숙객들에게 단순한 휴식을 넘어 건강한 회복의 시간을 선사한다. 이로써 웰파크호텔은 프리미엄 숙소 이상의 의미를 갖는 ‘치유 앤 힐링 복합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창의 자연과 문화를 담은 공간미학 웰파크호텔의 외관과 실내 디자인에는 고창의 자연과 전통이 녹아 있다. 호텔 곳곳에 고창 특산물과 풍경을 형상화한 인테리어 요소가 적용되어, 투숙객은 단순한 숙박을 넘어서 ‘지역을 체험’하게 된다. 또한 인근에는 고창읍성, 고인돌 유적지, 선운산, 학원농장 청보리밭, 람사르 습지, 동호해수욕장 등 대표 명소들이 30분 이내 거리에 있어 여행 동선의 편의성도 높다. 골프 마니아에게는 석정힐CC, 고창CC, 선운산CC 등 골프 인프라가 가까워 체류형 골프 여행지로도 주목받고 있다. △지역과 함께 만드는 지속 가능한 관광 웰파크호텔은 단순한 민간 숙박시설이 아니다. 지역 경제와의 상생을 전면에 내세운 복합 공간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는 고창 황토밭에서 자란 건강한 식재료를 적극 활용하고, 지역 농산물 기반의 브런치와 프리미엄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호텔이 선보인 ‘브런치 뷔페’는 맛과 가격 모두에서 높은 만족도를 자랑하며, 중년 여성들을 중심으로 ‘고창 점심 맛집’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 농가와의 협업을 통해 농특산물 유통에도 기여하며, 관광산업이 곧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구축 중이다. 또한 고창군의 축제와 문화행사와도 적극적으로 연계하고 있으며, 앞으로 다양한 체험형 프로그램과 테마 패키지를 운영할 계획이다. △웨딩·컨벤션의 중심지로도 각광 고창웰파크호텔은 프리미엄 웨딩 및 대형 행사의 중심지로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창의 자연을 배경으로 한 야외 결혼식과, 최대 600석 규모의 대형 컨벤션 홀은 기존 지역 숙박시설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자랑한다. 지난 4월 11일 이곳에서 열린 ‘제5회 장수학 콘서트’는 그 가능성을 실증했다. 약 500여 명이 참석한 이 공연은 오케스트라, 국악, 성악 등 다채로운 무대가 어우러진 품격 높은 공연으로, “이런 공연을 고창에서 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관객의 찬사를 받았다. 넓고 화려한 무대, 우수한 음향 시스템은 향후 학술대회, 기업 세미나, 문화행사 등 다양한 행사 유치의 기반이 되고 있다. △‘웰니스 명소’로 주목받는 고창 웰파크시티와의 연계 고창웰파크호텔은 국내 최대 최고의 웰파크시티 내에 위치해 ‘웰니스 관광 복합 단지’의 심장부 역할도 수행한다. 웰파크시티는 2025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의 우수 웰니스 관광지 88선’에 이름을 올리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황토와 피톤치드 숲, 수치료 시설, 노인·어린이 모두를 위한 건강 체험 공간 등 고창만의 건강 리타이어먼트(은퇴) 인프라는 노년층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도 높은 만족도를 주고 있다. 웰파크호텔의 등장은 웰파크시티의 체류 인프라를 완성시키며, 고창이 국내 대표 웰니스 관광지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스쳐 지나던 고창에서 ‘머무는 고창’으로 고창웰파크호텔의 개관은 단순히 고급 숙박시설의 등장 그 이상이다. 고창군은 이제, 스쳐 지나던 관광지가 아닌 ‘머물며 누리는 여행지’로 본격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석정온천과 웰파크호텔이 있다. 이번 주말에는 고창청보리밭 축제가 학원농장에서 열려 호텔과 골프장, 축제장을 오가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으로 고창은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지역과 상생하고,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공간. 고창웰파크호텔은 고창의 새로운 브랜드이자, 대한민국 체류형 관광의 미래가 될 준비를 마쳤다.

  • 기획
  • 기타
  • 2025.04.17 17:45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1) 〈검사직제〉〈보방조례조회통첩식〉〈전주부보고서〉〈각부보고서〉

1895년 이후 동학농민군에 대한 법적 조치와 처벌 보고서류 이번에 소개할 자료는 1895년(고종 32) 조선 정부의 공문서식과 재판 관련 자료로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동향과 관련된 전국 각 지역의 각종 보고서이다. ①〈검사직제〉는 1895년 4월 15일 법부령 제2호로 반포된 검사(檢事)의 직제(職制)에 관한 규정을 적은 책이다. 〈검사직제 제정지건〉(1895.4.9.)으로 기안문이 실려 있다. 검사직제는 모두 18조목으로 검사의 범죄 수사권(1조), 형사상 법률의 정당한 적용을 감시해야 하며(2조), 범죄의 고소·고발을 수리해야 하며(6조), 관리의 부당한 행위를 발견하면 증거를 수집하여 관리징계처분을 청구하고 공소(公訴)를 제기해야 하며(7조)‚ 체포나 구류를 마음대로 행하는 자가 없도록 주의하고‚ 피고인이 오래 구류됨이 없도록 주의해야 하며(8조), 검사는 재판소에 대하여 독립하여 그 사무를 행할 수 있다(18조) 등으로 되어있다. 원래 기안에서는 17조였으나 달라진 것은 제4조를 추가했기 때문이다. “검사는 사형판결이 이미 확정할 시에는 조속히 소송기록을 법부대신에게 정(呈)하여 그 지휘를 수(受)해야 이를 집행함이 가(可)하니라”라는 조항이다. 검사직제는 갑오개혁 때 중앙권력이나 지방관의 통제로부터 독립하여 오로지 법에 준거하여 민사·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갑오개혁의 법제개혁은 행정과 사법을 분리하여 공정한 법집행을 도모하는 것이었으나 실제 전격 실시하기 어려웠으므로, 이내 1895년 6월 1일 법부훈령 제2호로 당분간 관찰사가 재판소 판사, 참서관이 재판소검사를 겸임하도록 하고 각지방에서도 군수가 관내 재판사무를 겸임하도록 하여 재판소 제도가 크게 후퇴한 바 있었다. 갑오개혁 이후 근대적 소송절차와 법부와 검사의 직제를 규정한 법령으로 대한제국기에도 영향을 끼쳤다. ②〈보방조례조회통첩식〉는 1895년 사법제도를 개혁하면서‘보방조례(保放條例)’와 각 정부기관 사이에 왕래하는 문서 양식을 분류하고 설명한 ‘조회통첩식(照會通牒式)’등 제반 법규 규정을 수록한 자료다. <보방조례>는 전문 25개조로 형사 피고인과 그 보증인될 사람은 언제라도 보방(保放-보석)을 신청할 수 있으며‚ 재판관은 피고인이 도주하거나 죄증(罪證)을 은닉할 우려가 없을 때, 그가 중죄(重罪)에 해당하거나 과거에 중죄형으로 처벌받은 적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보방을 허가할 수 있다는 규정을 수록하고 있다. 실제 동학농민군의 처벌과 관련해서는 이 규정이 적용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또한 자료의 뒷부분인〈공문류별급식양〉은 갑오개혁 이후 새로 제정된 공문 양식인 조회·통첩·훈령·지령·고시·보고서·질품서·청원서를 각각 설명하고 작성 지침을 소개하고 있다. 갑오개혁이전의 관문 전령 감결(甘結) 하첩(下帖) 등을 훈령으로 개칭한 것 등이 설명되어 있다. 〈보고서식〉의 경우에는 “보고서 ○호, 본부소관 각군소유정형을 별지에 개록(開錄)하야 보고하오니 사조(査照)하시믈 요홈”이라 쓰고나서 해당 관원의 성명과 관인, 그리고 모부 대신 성명 각하 관인을 찍게 하였다. 새로 바뀐 공문서 문서양식에 따라 작성된 보고서가 각 지역의 보고서자료이다. ③〈전주부보고서(全州府報告書)〉는 1895년 7월 19일 전라도 관찰사 이도재(李道宰)가 법부(法部)의 훈령에 의거하여 올린 동학 농민군의 정배(定配)에 관한 보고서이다. 그해 6월 25일 법부에서는 임피현에 거주한 고장현(高長賢)을 함경도 영흥에 정배했던 경위를 조사하도록 하였다. 그는 1894년 7월에 임피군 남일면(南一面) 상갈영리(上曷零里)의 동학 접주로서 40명 동학군을 거느리고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그는 체포되어 전주부로 압송되고‚ 1895년 3월에 함경도 영흥에 정배되었다고 보고하였다. 그 후 8월에 이르면,“본부죄인(本部罪人) 83명, 각읍 도인(徒人) 196명 등 279명” 등을 전격 석방하였다(〈관보〉1895년 8월 1일자 기사). 이때 고장현도 포함되었다. 전주부 보고서는 단지 전주부에서 작성한 2쪽짜리 문서이지만, 1895년 당시 동학 농민군 지도자에 대한 사후 처리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다. ④ 〈각부(各府) 보고서〉는 역시 법부에서 편찬한 각종‘보고서철(報告書綴)’이다. 1895년 7월에서 9월까지 전국 23부 지방에서 법부에 올린 보고서 13건과 질품서 5건 등 18건의 문건(文件)을 모아서 묶은 문서철이다. 전체 표지나 제목은 없지만, 편철한 순서대로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해주부 관찰부의 사기 범인 압송 사실, 충훈부 둔토 수취 공문서 위조에 관한 안성군 보고, 개성인 김경구(金景九) 삼포사건에 대한 경무사의 보고서 및 질품서 등이 있다. 안동부 산하 예안(禮安) 거주 김제룡(金濟龍)이 참판이나 판서로 칭하면서 와언과 망설로 통문을 돌려 민인을 선동하여 취당을 한다는 내용으로 그에 대한 공초자료(1895.8.16. 초초. 및 8.17 재초)와 함께 주민들의 소장 전문을 게재하였다. 각 지방에서 올린 범죄인을 체포와 살인사건 조사 보고‚ 도주한 죄수 체포 및 책임자 처벌 등 다양한 사유가 포함되어 있다. 갑오개혁 이후 법부의 지시 사항과 각 지방의 질품서를 통해 당시 지방 법무 행정의 실태를 알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자료는 해주부 강령군수 유관수(柳灌秀)가 1895년 8월에 법부에 보고한 <강령군(康翎郡) 비괴(匪魁)의 성명 성책>이다. 강령군에는 김영하(金永夏), 오가인(吳可人), 오헌근(吳憲根), 오원경(吳元京), 현학진(玄學振), 조사여(趙士汝), 조붕도(趙鵬道) 등 동학의 접주와 해당 지역의 하리층인 조순승(曺舜承), 박선희(朴善凞), 성재식(成載植), 강호걸(强豪傑) 등 동학지도자 17명의 활동 내역을 자세히 적고 있다. 이들은 갑오년 10월 동도를 규합하여 황해도 8개 영읍을 점령하여 문부를 불사르고 군기를 탈취하고 공해를 깨트리고 불살랐다. 실제 강령현의 경우에는 1894년 10월 6일 농민군이 관아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관아가 불타고 무기를 빼앗겼으며, 민가 400여 호가 불탔을 정도로 치열하였다. 이후 다음 해 1월에도 임종현, 김영하 등은 신천, 재령, 옹진, 강령 등을 재차 침입하였고, 해주성을 다시 공략하기도 하였다가 2월에 일본병의 개입으로 진압되거나 잠시 흩어졌다. 이후 사태를 진정시키고 나서 작성된 군수의 보고서에는 동학농민군 지도자의 강령 및 해주 일대에서 행한 각종 행태를 상세히 열거하였다. 오원경, 배동명 등 일부 붙잡은 사람도 거론하였지만, 상당수는 잠적하여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고 보고하고 있다. 또한 보고서의 내용과 관련해서 2차례에 걸친 해주성 공략의 주동 인물인 임종현(林鐘賢, 혹은 林宗鉉)의 활동도 주목된다. 임종현이“스스로 감사의 위치에 오르고 기타의 흉악한 무리를 각 부군현(府郡縣)의 수장으로 삼으려고 이미 부사와 군수로 할 인물을 선정하였다고 한다”고 보고하였듯이, 당시 임종현 자신을 감사의 위치로 올려놓고, 성재식을 강령현감으로 삼는 등 농민군 지도자를 각 지역의 부사와 군수 등으로 임명하는 행태를 보였다. 이는 황해도에서 갑오 정부의 지방행정체계를 배제하고 농민군 지도부 위주로 독자적인 지방권력을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강령 지방의 사회동향은 현재 동학농민혁명 재단에 소장되어 있는〈황해도 강령현민(康翎縣民) 등장(等狀)〉 자료에도 나타난다. 이는 황해도 해주부 강령현에 사는 정성장(鄭聖長) 외 4인이 법부(法部)에 현감 유관수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인데, 강령 현감이 피감(被監)된 사유가 동학농민군의 피해 복구 비용의 징수 과정에서 탐학이 있었다는 이유였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청렴 공정한 현감을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인 오가인(吳可人)과 조카 오헌근(吳憲根)이 무고하여 누명을 썼으니 그 억울함을 밝혀 달라.”라고 하였다. 앞서 소개한 강령지방 동학농민군 지도자인 오가인과 오헌근의 죄상을 고발하는 내용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동학농민군의 참여자와 후속조치를 둘러싼 강령지역내 사회세력간의 갈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황해도 일대 동학농민군의 동향은 해주성 점령 당시 감사였던 정현석(鄭顯奭)의〈갑오해영비요전말(甲午海營匪擾顚末)〉과 일본군의〈동학당정토약기(東學黨征討略記)〉에 수록되어 있다. 일본군 진압기록에서도 ‘진정 동학당(眞正 東學黨)’, ‘일시 동학당(一時 東學黨)’, ‘가짜 동학당(僞 東學黨)’ 등으로 구분하고 임종현을 비롯한 4명의 동학지도자를 특정하여 거론하였지만, 이들 자료에서는 상세한 활동내용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위의 각부보고서에는 강령군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군 지도자의 활동 내역과 포착 상황 여부 등도 상세히 전달하고 있다. 황해도 일대 동학농민군 활동 연구가 아직 미진한 상태이어서 해당 지역 동학농민군과 지도부의 동향을 구체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 이상 동학농민군에 관한 사법처리와 관련된 각종 보고서류 등 4종 자료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왕현종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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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16 19:59

"행복했습니다"⋯'청년 이장'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석 달간 "오늘은 경로당으로 출근하겠습니다!"라고 외치던 '청년 이장'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이제 사무실로, 취재 현장으로 출근합니다. 잠깐 기자라는 직업은 내려놓고 완주군 고산면 화정마을의 청년 이장으로 지내면서 행복한 일도, 슬픈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아무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해서 다행입니다. 다른 것보다 기성 언론이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등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를 주워 담고 있는 요즘 시대에 지역 신문이 할 수 있는 진짜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 마음이 잘 전달됐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책을 끌어내고 고발하는 기사·기획 모두 좋지만 월요일 아침마다 신문을 봤을 때 조금은 가볍게, 기분 좋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기획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저희가 매일 말하는 '지역소멸' 하면, 마트가 멀어서, 문화 생활을 즐길 수 없어서, 일자리가 없어서 등 이러한 이유만 전달하는 건 최대한 피하려고 했습니다. 전북을 비롯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노력해도 막을 수 없는 것을 저희가 석 달 동안 해결하는 건 무리라고 일찍이 알았기 때문이죠. 차라리 우리는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지역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그 지역이 살고 싶은 장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것보다 체험 프로그램에 집중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함께했던 석 달을 돌아보면 일주일에 화·수요일 이틀씩 상주하면서 마을 주민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르신들에게 예의를 갖추는 일부터 사람과 소통하는 일까지 교훈을 얻은 게 많은 듯하네요. 이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용기도 얻었습니다. 그동안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주민들과 함께했던 일이 다 스쳐 지나갑니다. 기획에 도움 주신 분들 모두에게 감사하지만 화정마을 주민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었지만 사랑으로 맞이해 주고 항상 좋은 말씀만 해 주셨거든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끝으로 저희의 기획이 일반적인 기사의 틀과 달라 낯설게 느꼈을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처음엔 낯설었거든요. 하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펼쳐질 전북일보의 또 다른 도전들도 너그럽게 봐주길 바랍니다. '청년 이장'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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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외(1)
  • 2025.04.12 07:58

농촌마을에 던지는 마지막 질문⋯미래에 어떻게 될까요?

3개월 동안 지역 소멸 위기 극복 프로젝트 <청년 이장이 떴다!> 를 진행하면서 하나의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외부 사람은 지역소멸을 볼 때 언젠간 일어날 일, 당연한 일인데 내부 사람은 어떨까요. 정작 가장 먼저 소멸할 수밖에 없는 농촌마을에서 생각하는 지역소멸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화정마을 연령대를 보면 60대 초중반부터 90대 초중반까지 있죠. 30년 후면 모두 떠나게 된다는 말이죠. 이 농촌마을에서 생각하는 지역소멸은 어떨까요.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머니가 생각하는 화정마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기 골목길 끝에서부터 보행 보조기를 밀고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달달달', 박복순(88) 어머니 소리였네요. 멀리서 보이는 어머니의 실루엣을 보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흐릿하지만 방긋 웃는 얼굴이 기분 좋게 만듭니다. "어머니, 잠깐 아지트에서 쉬다 가셔요!"라는 말에 보행 보조기 주차까지 완료했습니다. 박복순 어머니는 70여 년간 화정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시집오고부터 계속 이 마을에 살았던 것이죠. 우리의 궁금증에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시원한 비타민 음료를 건네면서 살포시 질문을 던졌습니다. '청년 이장' 취재진이 "어머니, 옛날 화정마을은 어땠어요?"라고 묻자 "마을이 되게 작았는디, 엄청 커졌어. 근디도 사람은 계속 줄더라고?"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식들이 어릴 적에는 마을이 북적일 정도로 사람이 많이 살았다고 합니다. 당시 마을 옆에 있었던 초등학교는 한 반에 70∼80명이었다고 하시는 것 보면 말 다했죠. 가장 궁금했던 화정마을의 미래에 대해 물었습니다. 오랫동안 화정마을에 살면서 남편·자식·이웃들과의 추억이 너무나도 많아졌던 터라 질문만 하는데도 아쉬움이 가득해 보이셨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어머니입니다. 박복순 어머니는 "학교 졸업하니까 다 밖으로 나가지, 안 그려? 서울에 사는 자식들도 내려온다고는 혀. 근데 그게 쉬워? 밥벌이가 있어야 살지, 어쩌겄어. 거의 여기서 평생을 살았으니께 없어진다고 하면 안타까울 것 같어. 안 그려?"라고 하셨습니다. 왜 화정마을에 사람들이 안 들어오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습니다. 이어 "화정마을이 살기가 얼마나 좋은디. 집 뒤에 있는 산에서는 맑은 물이 졸졸 내려오고 공기도 좀 좋아? 마을 주민들끼리 단합도 잘 되고 나 나물 캐고 싶으면 나물도 캐고. 얼마나 좋은 마을이여"라며 자랑하셨습니다. 또 다른 어머니들의 이야기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왜 여기까지 왔어!" 마을 산책하던 중 저기 멀리서 파를 뽑고 계신 신옥리(83) 어머니와 우리의 '영화 언니' 이혜례(62) 씨가 태어난 지 3개월밖에 안 된 강아지 곰순이를 산책시키고 있네요. 마을 초입까지 걸어온 취재진들에게 힘들지 않냐며 호통부터 치십니다. 날이 좋아서 산책한 것뿐인데 이것도 힘들까 걱정되시나 봅니다. 같이 쭈그려 앉아 파를 다듬으면서 은근슬쩍 질문을 던져 봤습니다. "정말 만약에 이 마을이 사라진다면 어떨 것 같으세요? 다들 더 연세가 드시면 사람이 없어서 마을이 사라지진 않으려나요?" 화정마을에 살다가 잠시 서울에서 지내고 다시 내려온 신옥리 어머니는 "절대 마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냥 없어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을 봐, 누가 와서라도 살지 않겄어? 집이 비었다 하면 멀리서 또 오잖아. 안 올 줄 알았어. 근디 사람들이 오더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니까 후딱 사라지지는 않아. 100년 동안은 안 없어져. 여기 추억이 다 있는데 어쪄, 안타깝지"라고 부연 설명하셨습니다. 옆에 있던 이혜례 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씨도 "동네는 그냥, 사람이 없다고, 그렇게 쉽게 없어지지 않지. 세상에 남은 자식들이 다른 사람들한테 팔 수도 있잖아"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신기하게 모두가 똑같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취재진이 본 지역 소멸과 화정마을의 모습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석 달간 시골 마을서 지내보니⋯차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기사를 참고해 주세요.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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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5.04.12 07:58

석 달간 농촌마을서 지내보니⋯이곳에도 사람이 삽니다

청년 이장으로 화정마을의 주민이 된 지 벌써 석 달이 되었습니다. 농촌 마을 특유의 정 덕분인지, '청년 이장' 취재진의 오랜 치근덕(?)거림 덕분인지 석 달 만에 ‘화정마을 사람’ 소리를 듣습니다. 그 증거로 화정마을 사람만 갈 수 있는 야유회도 초대받았답니다. 처음 화정마을을 만났을 때 주민 대부분은 전기 장판 위에 멍하니 앉아 있거나 마을 회관에서 화투를 치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런 동네 분위기에 조금씩 변화가 생긴 건 취재진의 설득과 노력 끝에 청년 이장 아지트에 모이고 난 이후입니다. 다 함께 모여 그림도 그리고 시도 쓰는 등 문화생활을 즐기게 되었지요. 그동안 그린 그림은 하얀양옥집에 전시되기도 했고요! 그 과정에서 점점 활기가 돌아오는 화정마을 사람들의 변화가 생생합니다. “늙으면 죽은 목숨이지” 그렇게 말하던 어르신의 입에서 “희망을 되찾았지”라는 말이 나왔을 때 취재진은 작은 변화지만 큰 울림을 느꼈습니다. ‘지역 소멸 위기 극복’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가지고 들어온 취재진이 농촌 마을 활력에 힘 쓴 이유입니다. 지역이 사라지지 않으려면 그 지역이 살고 싶은 장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사할 때 보통 한 가지 이유만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내가 살아가기 좋은 조건’이 골고루 갖춰져 있어야 살고 싶은 동네가 되지요. 통계청의 ‘살고 싶은 우리 동네’ 서비스도 자연, 안전, 문화복지, 교육, 생활편의교통 등의 지표로 각 지역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도심 대부분은 중에서 상 등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화정마을을 포함한 농촌 마을은 그중 단 하나의 지표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화정마을에는 도심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식료품점도, 영화관도, 옷 가게도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읍내마저도 걸어서 1시간 이상 걸리죠. 하루에 운행되는 버스는 6대뿐. 배차 간격도 짧으면 1시간, 길면 4시간 걸립니다. 주민들 대다수는 버스 시간표를 집에 써 붙여 놓을 정도입니다. “젊으면 걷지, 뭐” 그 말도 화정마을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화정마을을 비롯한 농촌마을 대부분은 도로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사람이 없는 소규모 마을이 개발되면서 지역을 잇는 고속도로와 일반 도로가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을 위한 인도는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화정마을로 출근하며 취재진은 매일 도로 갓길을 걷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그중엔 노인도 어린아이도 있었습니다. 차가 없으면 문화 생활은커녕 생존조차 위협받는 셈입니다. 취재진은 농촌 마을에서 생활하며 지역이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모든 문제를 파악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에 세 달은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히 체감한 점은 있습니다. 도시에선 너무나 당연해서 잊고 지내던 병원, 식료품점, 인도 등 모든 편의시설 하나하나가 지역 끝자락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서로를 챙기며 질 좋은 삶을 살아가려는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우리는 이 안에서 ‘살아 있는 마을’을 봤습니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화정마을을 비롯한 지역의 시간은 계속 흐릅니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꽃을 가꾸는 화정마을 사람들 사이로 또 다른 ‘청년 이장’들이 화정마을의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채워가기를 바랍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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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채연
  • 2025.04.12 07:57

드라마 같은 풍경과 영화 같은 하루…고창 청보리밭축제 19일 개막

봄의 절정을 알리는 고창청보리밭축제가 드디어 막을 올린다. 지난 벚꽃 시즌을 아쉽게 보낸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반가운 소식이다. 향긋한 봄내음과 연둣빛 청보리의 싱그러움이 어우러지는 제22회 고창청보리밭축제가 오는 4월 19일부터 5월 11일까지 23일간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원 일원에서 열린다. △63ha 대지 위 초록빛 힐링…봄 대표축제로 자리매김 이번 축제가 펼쳐지는 학원농원은 무려 20만여 평(63ha)의 광활한 청보리밭과 유채꽃밭이 조성된 공간으로, 봄기운을 가득 품은 초록의 물결이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청량한 힐링을 선사한다. 축제 기간 동안 약 4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될 만큼, 이곳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봄 축제로 자리잡았다. 학원농장은 과거 지명인 ‘한새골’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학(鶴)과 원(原)을 합쳐 ‘학의 들판’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봄에는 청보리와 유채, 여름엔 해바라기와 백일홍, 가을엔 메밀꽃, 겨울엔 설경까지 사계절 내내 자연의 아름다움을 품은 장소다. △K-드라마 속 풍경을 걷다… 특별한 콘텐츠와 체험 부스 운영 올해 축제는 한층 특별해진 콘텐츠로 관람객을 맞이한다. 단순한 경관 감상에서 벗어나, K-영화와 드라마를 테마로 꾸며진 청보리밭 속 포토존이 마련되어 방문객에게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한 체험을 선사한다. ‘폭싹 속았수다’, ‘도깨비’, ‘백일의 낭군님’ 등 인기 드라마 촬영지에 조성된 포토존과 드라마 의상 체험 부스는 인생 사진을 남기기에 제격이다. 또한 보리밭 내 소규모 야외무대에서는 고창농악, 클래식 공연, 버스킹 등 다채로운 음악 공연이 매일 펼쳐져, 문화적 즐거움까지 더할 예정이다. △공정하고 안전한 축제 운영…지역 경제도 ‘청신호’ 고창군은 안전한 먹거리 제공과 ‘바가지 없는 축제’ 운영을 위해 축제장 내 음식점 위생 점검 강화, 가격 표시제, 물가안정 부스를 운영한다. 이와 함께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고창사랑상품권 할인판매도 함께 진행된다. 관광객들의 소비가 고창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가 준비되어 있다. 심덕섭 고창군수는 “고창 청보리밭 축제는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를 모두 갖춘 대한민국 대표 경관농업축제로 자리잡았다”며 “관광객들이 불편 없이 봄의 정취를 만끽하고 돌아갈 수 있도록 축제 운영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찾아가는 길]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길 158-6 내비게이션 검색어: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

  • 기획
  • 박현표
  • 2025.04.11 09:57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40) 〈순무선봉진등록(巡撫先鋒陣謄錄)〉 〈양호순무선봉장 이공(李公) 묘비명〉

순무선봉진등록 표지. /고려대 도서관 제공 〈순무선봉진등록(巡撫先鋒陣謄錄)〉 본 자료는 양호(兩湖) 순무(巡撫) 선봉장(先鋒將) 이규태(李圭泰)가 제2차 동학농민혁명 진압 과정에서 1894년 10월 11일부터 1895년 2월 5일까지 각처와 주고받은 공문들을 수록한 것이다. 동학농민군의 활동과 정부의 진압 관련 사항을 알 수 있는 핵심 자료로 순무영 보고와 답변, 각 지역 지방관과 주고받은 문서, 장위영 부영관 이두황과 친군 경리청 부영관 성하영 등이 선봉장에게 보고한 문서와 그에 대한 지령 등 다양한 내용들을 수록하고 있다. 동학농민군의 제2차 봉기 이후 그 진압을 위한 부대로 조선 정부는 양호 도순무영을 편제하였는데 여기에는 기존 통위영·장위영·경리청과 일본군에게 훈련받은 교도중대가 소속되었다. 양호 도순무영은 신정희를 양호 도순무사, 좌선봉 이규태, 우선봉 이두황 등을 주요 지휘관으로 25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당시 이규태는 친군 장위영 정영관이었는데 정부에서 그를 양호 도순무영 별군관 겸 순무 선봉장으로 임명하여 농민군 진압에 종사케 하였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일본군은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 소좌가 지휘하는 후비 보병 제19대대 등으로 동학당 정토군을 편성하여 각 지역의 농민군 진압을 위해 남하하면서 이규태 부대는 일본군의 지휘를 받게 되어 있었다. 순무 선봉장 이규태는 교도대와 통위영 각 부대를 이끌고 10월 10일 서울을 출발하여 과천을 거쳐 수원에 도착한 뒤 진위로 갔다. 도중 과천에서는 좌수 등에게 해당 경내에 동학농민군들을 혹시라도 숨기고 발설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드러나면 군령으로 처벌받겠다는 다짐을 받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장위영 부영관 겸 죽산진 토포사 이두황 부대가 청주성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두황 부대의 본진은 경리청·진남영 부대와 합세하여 보은 장내리에 있는 농민군을 향해 가면서 접주 백학길을 효수하였다. 장내리로 들어가서는 온 마을을 수사하고 농민군 주도자를 처단한 뒤 임시 막사와 집들을 다 태워버렸다. 10월 15일 순무영에서 선봉장에게 전령을 보내 공주의 비도(匪徒)들이 몹시 방자하게 날뛰어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하니 지원을 늦출 수 없다면서 즉시 전진해 섬멸토록 하고 사정을 보고토록 하였다. 이 무렵 광주에 있던 손화중이 흥덕·고부·무장·정읍·고창 등지에서 농민군을 동원하여 오권선이 이끄는 나주 농민군과 합세하여 나주 동북 방향에 진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규태 부대는 일본군 부대와 함께 행군하여 진위와 성환을 거쳐 20일 천안에 도착하였다. 진위에서는 현령이 거리에 방문을 붙여 선봉진 부대의 도착 사실을 알리고 농민군들은 무기를 거두어들이고 거괴를 붙잡아 들일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병사를 나누어 보내 토벌할 것을 천명하였다. 이 지역에서는 향약절목(鄕約節目)을 작성하고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을 시행하여 주민들을 철저히 단속하였다. 이규태는 천안의 거리 곳곳에 국한문 공고문을 게시하여 동학도들을 경계하고 유언비어를 만들고 평민들을 선동한 자들은 민회소와 창의소에서 잡아들여 처단할 것을 강조하였다. 천안의 유생들도 이규태에게 특별히 군대를 머물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었다. 천안에서는 농민군이 공주·유성·대전 등지와 청주의 관군이 패전한 곳에 수천 명이 모여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장위영 영관에게 공문을 보내 전진토록 하였다. 이규태는 이두황에게 연기에서 농민군이 출몰함으로 옮겨 주둔하여 이들을 막고 전라도 농민군이 지나가는 후환을 끊으라고 지령을 내렸다. 〈순무선봉진등록〉은 공주공방전과 이후 전라도 지방에서의 동학농민군 진압 상황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전봉준은 논산 일대에 다시 결집한 농민군 2만여 명을 규합하여 노성과 경천으로 가서 일본군 및 관군 연합군과의 전투를 준비하였다. 11월 8일 농민군은 이인을 향해 공격해 왔고 다른 한 부대는 판치와 효포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9일 농민군은 우금치 전투에서 하루 종일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으나 패배하였다. 11~12일 경에는 능치 등 공주 부근 산봉우리에 남아있던 농민군마저 관군에게 쫓겨 계룡산 등지로 후퇴함으로써 20여 일에 걸친 공주공방전은 동학농민군의 패배로 끝났다. 이후 전봉준이 이끄는 농민군 주력은 전주를 거쳐 11월 25일 금구 원평으로 후퇴하게 된다. 당시 순무 선봉진에서는 원평으로 간 농민군이 3천여 명, 그곳에 집결해 있는 수가 1만여 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우금치 전투 이후 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 연합군과의 각종 전투에서 연전연패하였다. 이후 순무 선봉진 산하 각 부대는 일본군 후비 보병 제19대대장 미나미 고시로의 지시를 받아 각처로 피신하여 항쟁을 지속하던 농민군들을 수색 체포하여 일본 군영으로 압송하였다. 전의현감은 기찰포교와 별초군을 비밀리에 파견하여 성묘를 계기로 체포 계책을 세워 그 우두머리 25명을 체포하여 문초한 바 있다. 옥과현에서는 양호 소모관 부대와 150여 명의 일본군이 전재석 등 농민군 참여자들을 때려죽이기도 하였다. 곡성현에서도 중앙군과 일본군이 사로잡은 우두머리를 매질하여 살해하였다. 그 과정에서 김개남은 11월 23일 전주에서 남원 방면으로 퇴각하였다가 12월 1일 태인 산내면에서 강화 병정과 포교에게 체포되었다. 광주를 다시 점령한 손화중은 12월 1일 휘하의 농민군을 해산하고 떠났고, 교졸에게 체포된 주윤철 등 동학 접주 다섯 명은 곤장을 맞고 사망하였다. 최경선은 귀화한다는 방문을 내걸고 광주를 떠나 남평을 거쳐 동복으로 갔는데 민보군에게 체포되어 순창에 수감되어 있다가 7일에 일본군 진영에 인도되어 나주로 압송되었다. 12월 2일 밤에는 순창 피로리에서 전봉준이 민보군 한신현 등에게 체포 수감되어 있다가 7일 최경선과 함께 일본군에게 인도되어 초토영이 설치되어 있던 나주로 압송되었다. 〈순무선봉진등록〉에는 미나미 고시로가 농민군 우두머리의 인도를 요구하는 이유로 “동학의 비당(匪黨)을 조사하는 일은 귀국의 반역에 관계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관계된 것이 적지 않습니다. 무릇 비적 괴수를 붙잡으면 서울로 속히 압송하여 죄상을 국문하여 형법대로 시행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한 전보 내용도 수록하고 있다. 동학농민군의 활동은 일본의 조선 정책에 큰 장애라고 이해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호남 농민군 주력이 완전히 진압되자 이듬해인 1895년 1월 11일 군무아문은 순무영을 철폐하고 여러 곳에 파견한 참모관·참모사·소모사·소모관·별군관 등을 모두 혁파하고 선봉진도 원대로 복귀하라는 공문을 하달하였다. 〈순무선봉진등록〉은 2월 5일 계엄 태세 발령을 해제한다는 군무아문 전령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자료는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양호순무선봉장 이공(李公) 묘비명〉 양호 도순무영 순무 선봉장 이규태(李圭泰 : 1841~1895)의 묘비명이다. 경주를 본관으로 누대 무과 출신 집안에서 태어난 이규태는 1894년 차례로 훈련도정·총어영 별장·장위영 정령관 등에 임명되었다가 동학농민혁명이 발발하자 양호 도순무영 선봉장으로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의 동학농민군 진압을 지휘하였다. 그는 장위영 영관 이두황을 목천 세성산으로 보내 동학농민군을 토벌케 하였고, 경리청 영관 홍운섭 등에게는 공주 농민군 토벌을 지시하였다. 이후에는 퇴각하는 농민군을 강진과 해남까지 추격하여 섬멸하였다. 그러나 당시 개화당 정부의 동학농민군 진압의 기본방침은 일본군의 무력과 그들의 지휘를 받아 이를 해결하고자 하였던 것이었기 때문에 최종 지휘는 일본군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있었다. 후비 보병 제19대대 대대장 육군 소좌 미나미 고시로(南小四郞)는 조선군 일선 최고 수뇌부인 좌우 선봉장 등을 ‘휘하’에 두고 지령을 내리는 사실상 농민군 진압을 위한 조⋅일 연합군 지휘관 중 최고 책임자였던 것이다. 일본군 지휘에 거부감을 가진 이규태는 여러 차례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이규태는 동학농민군이 완전히 진압된 직후인 1895년 6월 54세로 서울에서 사망하여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선유동 선영에 안장되었다. 이 묘비명은 〈일성록(日省錄)〉 편집관 이승욱이 1915년에 쓴 것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재곤 서강대학교 국제한국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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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9 17:34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9) 경계를 넘는 통치자, 알렉산더의 혁신적 통치 방식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356-323)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복자 중 한 명으로, 32세라는 짧은 생애에도 그리스에서 인도 북서부까지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군사적 성취를 넘어 정복지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하는 독특한 통치 철학에 있었다. 그는 이집트에서는 파라오로 즉위하고(그림1), 페르시아에서는 현지 전통 의복을 착용했으며, 인도 불교 문화권에서는 금강역사(그림2)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포용 정책은 단순한 정치적 전략을 넘어, 서로 다른 문명 간의 가교 역할을 자처한 알렉산더의 선구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그는 무력으로 정복한 영토를 문화적 융합을 통해 진정한 제국으로 통합하고자 했다. △ 신의 아들이 된 외국인 왕: 알렉산더의 이집트 정복 전략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2년 페르시아 지배하에 있던 이집트를 정복했다. 당시 이집트는 약 200년간 페르시아의 억압적 통치를 받아왔기에, 이집트인들은 알렉산더를 해방자로 환영했다. 정복 후 알렉산더는 정치적으로 탁월한 조치를 취했는데, 현지 전통에 따라 자신을 '파라오'로 선언하고 이집트 신전에서 제사를 지내며 현지 신들을 공경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이러한 문화적 포용 정책은 이집트인들의 자발적 지지를 얻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 이집트 파라오로 변신한 알렉산더: 룩소르 신전 부조의 상징성 필자는 지난 2월 룩소르(Luxor) 신전에서 파라오로 묘사된 알렉산더의 부조를 확인했다. 이 부조는 알렉산더가 태양의 신 아몬(Amon)에게 성수(聖水)를 제물로 바치는 장면으로,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까지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다.(그림1) 알렉산더의 왼손에는 권위의 상징인 와스 홀(Was Scepter)이 쥐어져 있는데, 이 홀은 상단부가 동물 머리 형태이며 하단부는 갈라진 포크 모양으로 권력과 지배력을 상징한다. 아몬 신은 긴 깃털 왕관을 쓰고 있으며, 발기된 성기가 특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는 고대 이집트인들이 성적 표현을 자연스럽게 수용했으며, 이를 자기 재생, 부활, 그리고 생명 창조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부조에서 아몬 신은 알렉산더보다 더 크고 위엄 있는 자세로 표현되어 신의 우월적 지위를 시각화했다. 이 파라오가 알렉산더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는 부조 좌우에 상형문자(hieroglyphics)로 동일하게 새겨진 알렉산더의 이름이다.(그림3과 그림1 홍색 작은 원) △ 적의 옷을 입은 정복자: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문화 수용 알렉산더는 페르시아 정복 과정에서 상징적 권력 중심지인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웠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페르시아 문화를 존중하고 융합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의 왕관과 화려한 로브 등 페르시아 왕실 의복을 착용했는데, 이는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충격적인 행보로 받아들여졌다.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문화 수용을 직접 보여주는 유물은 제한적이나, 이탈리아 폼페이에서 발견된 모자이크(BC 100년경 제작 추정)에서 그 단서를 찾을 수 있다.(그림4) 이 모자이크는 알렉산더와 다리우스 3세의 전투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알렉산더는 그리스식 갑옷을 입고 있지만, 전체적인 배경과 구성은 페르시아 미술의 영향을 분명히 반영하고 있어, 그의 문화적 융합 정책의 시각적 증거로 해석된다. 그림4. 알렉산더 모자이크(Alexander Mosaic).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 금강역사가 된 정복자: 불교 수호신으로의 변신 알렉산더 대왕의 진정한 문화적 리더십은 그가 불교의 수호신 금강역사로 재탄생한 예술적 표현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아프가니스탄 하다(Hadda) 지역의 불교 사원 타파 쇼토르(Tapa Shotor)에서 발견된 조각상은 알렉산더 대왕의 특징적인 얼굴 윤곽, 곱슬거리는 머리 스타일, 그리스식 복장과 자세를 분명히 보여주지만, 흥미롭게도 그는 중앙의 주요 위치가 아닌 불교 사원의 주변부에 배치되어 있다.(그림5) 이러한 위치는 그가 붓다를 보호하는 금강역사(Vajrapani)의 역할로 재해석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문화적 변용은 기원전 4세기부터 발전한 간다라 문화권의 특수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알렉산더의 동방 원정 이후,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북부 지역에는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이 설립되었고, 이 지역은 그리스 문화와 현지 문화, 특히 불교가 만나는 융합의 장이 되었다. 간다라 미술은 이러한 문화적 혼합의 대표적 산물로, 그리스의 사실주의적 조각 기법과 불교의 정신적 주제가 결합되어 독특한 예술적 표현을 탄생시켰다. 타파 쇼토르의 알렉산더 조각은 이러한 문화 융합의 극적인 예시이다. 전통적인 그리스 영웅의 이미지는 불교적 맥락에서 재해석되어, 세속적 정복자가 정신적 수호자로 변모한 것이다. 그림5. 금강역사가 된 알렉산더. 아프가니스탄 하다(Hadda) 타파 쇼토르(Tapa Shotor) 출토. △ 문화적 포용: 알렉산더의 혁신적 리더십 전략 알렉산더 대왕의 문화적 포용 정책은 고대 세계에서 전례 없는 혁신적 통치 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당시 일반적이었던 정복자 중심의 문화 이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알렉산더의 다문화 리더십은 현대 글로벌 사회의 리더십 과제와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의 통합을 촉진하는 것은 현대 다국적 조직과 글로벌 사회의 핵심 과제이다. 알렉산더는 2300년 전에 이미 이러한 다문화적 접근법의 잠재력과 도전을 경험했던 것이다. 전홍철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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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7 17:23

최한주 장수군의회 의장, 국가철도망 계획 반영 ‘광폭 행보’

대도시 집중화 현상으로 지방경제는 침체되고 사회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지방 도시와 농촌지역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 중 하나가 바로 철도 신설이다. 향후 10년간의 철도 교통망, 그 청사진을 담게 될 ‘제5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 확정을 앞두고 도내에서도 여러 가지 논의가 활발하다. 장수역~진안역 지선 철도 신설을 주장하는 장수군의회 최한주 의장이 지역소멸극복을 위한 지방 균형 발전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다. 장수군의회 최한주 의장은 장수역~진안역 지선 철도의 국가계획 반영을 공식 건의하며 지역교통망 확충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최 의장은 “장수~진안 지선은 단지 두 지역을 잇는 철도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달빛철도와 영호남내륙철도를 연결하는 중추 축으로 국토 균형발전의 실질적 초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11월,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을 만나 달빛철도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고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등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상호 협력을 다짐했다. 그는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달빛철도는 영호남 상생과 국토 균형발전의 상징이다”며 “노선의 중간지점인 장수군 중심지에 장수역이 건설된다면 관광객 유입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하는 교류의 장이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또 올해 3월, 국토교통부에 달빛철도와 영호남내륙철도 두 노선의 중심지를 잇는 장수역~진안역 지선철도 신설을 건의했다. 그는 "장수와 진안이 철도로 연결된다면 낙후되었던 교통망이 철도 인프라를 통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으며 함양, 거창, 합천, 고령이 새만금과 더 가까워지고 광주, 담양, 순천이 무주리조트와 이어짐으로써 두 노선은 더 큰 시너지를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호남내륙철도가 장수역~진안역 지선을 통해 달빛철도와 연결되면 전주와 김천을 비롯한 여러 지역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지역 간 교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며 향후 국제행사 개최에 대비할 뿐만 아니라 당장 전북특별자치도가 도전하고 있는 2036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위해서 영호남내륙철도는 이번 철도망 계획에 꼭 포함되어야 할 노선이라는 것이다. 최한주 의장의 잇따른 ‘철도 행보’가 일각에서는 의회의 월권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선 “오히려 지방의회가 앞서서 나서야 할 때”라고 선을 그었다. “그저 행정부의 계획만 기다리고 검토하는 건 더 이상 의미 없습니다. 의회가 지역 현안을 선제적으로 분석하고, 정책을 제안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지역 대표기관의 본래 역할입니다.” 이런 자신감의 바탕에는 장수군의회가 지난해부터 장수역~진안역 지선 연결을 위한 기초자료를 준비해 온 반로다. 지리적 타당성, 기존 도로 인프라와의 연계성, 관광지 접근성, 인접 도시와의 교류 기대효과 등을 검토해 국토교통부에 정식 건의서를 제출했다. 특히, 이 노선이 통영~대전, 광주~대구 간 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장수 중심부를 관통할 경우 장수군이 영호남 간 인적·물적 교류의 거점으로 재조명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장수군의회의 움직임은 장수만의 일이 아니다. 장수~진안 철도 지선은 전주~김천을 잇는 영호남내륙철도, 대구~광주를 잇는 달빛철도의 중간 허리를 잇는 지점이다. 해당 노선이 개설될 경우, 전북 동부권과 경남 서북부 그리고 광주·대구를 아우르는 새로운 내륙 교통축이 형성된다. 최 의장은 “진안·무주·남원 등 인접 자치단체와도 공동 건의 또는 연대 결의안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철도 하나가 지역 간 연결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장수에서 무주리조트, 담양에서 순천, 함양에서 새만금까지 철도로 연결되면 지역 경제는 물론 교류의 질이 바뀌게 된다”고 내다봤다. 국토교통부는 현재 ‘제5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6~2035년)’ 수립을 위한 검토에 착수한 상태다. 이번 계획은 기존 수요 중심에서 벗어나 지역 균형, 접경지역 개발, 관광 활성화, 탄소중립 등 복합 요소를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최 의장은 “장수~진안 구간은 인구나 교통량만 보면 소외될 수 있지만, 국토 균형이라는 평가항목 안에서는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다”며 “경제성 평가를 넘어선,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5차 철도망 구축계획은 공청회·관계부처 협의·국가교통위원회 심의를 거쳐 올해 하반기 확정될 예정이다. 최 의장은 강릉 사례를 대표적 성공 모델로 꼽는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고속철이 들어선 강릉은 이후 연간 철도 이용객 200만 명을 넘기며 관광도시로 급부상했다. 또 최근 동해선이 부산까지 연장되면서 생활인구는 30만 명 수준까지 회복됐다. 그는 “강릉도 처음엔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장수군이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고 말한다. 통계청과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지방소멸위험지수’에 따르면 장수군은 2024년 기준 소멸위험지수 0.18로 ‘소멸 고위험 지역’에 해당된다. 고령화율은 37.8%로 전북 평균(28.4%)보다 약 10%포인트 높으며 지역 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최 의장은 “지역 소멸을 막으려면 교통이 먼저입니다. 철도가 들어오면 의료·교육·관광 등 기반 서비스도 함께 따라옵니다. 철도는 인프라가 아니라 생명선입니다. 누가 먼저 나서느냐가 아니라,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이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최한주 의장은 “철도 사업은 특정 지역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은 누가 먼저 움직이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민의 절박한 요구가 국가정책에 반영되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며 “장수만의 일이 아닌 진안, 광주, 전주, 김천, 대구, 군산, 무주 등 달빛철도와 영호남내륙철도 노선 위의 자치단체들이 함께 목소리를 낼 때 꿈은 이뤄 진다”면서 “지역의 미래는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최한주 의장의 장수군의 철도 인프라 구축을 위한 노력과 비전이 결실을 이뤄 지역 발전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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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진
  • 2025.04.06 14:55

[주말, 여기 어때] 전북 알록달록 '봄꽃 향연'⋯온 김에 주변 관광도?

◇봄바람 휘날리며/흩날리는 벚꽃 잎이/울려 퍼질 이 거리를/둘이 걸어요⋯. 듣기만 해도 설레는, 봄이 되면 귓가에 맴도는, 이맘때쯤 음원 차트를 역주행하는 노래가 있다. 바로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벚꽃 엔딩>이다. 2012년 3월 발표 이후 봄 캐럴의 대표 주자로 자리 잡았다. 이 노래가 생각난다는 것은 봄이 왔다는 신호라고 여길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가만히 서 있어도 괜히 <벚꽃 엔딩>을 흥얼거리게 되는 걸 보니 봄이 왔나 보다. 신호가 왔다. 날씨가 관건이다. 이번 주 토요일이자 식목일이면서 절기 한식인 5일은 전국에 비가 예고돼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5일 새벽 전라 서부·충남·수도권에서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 오전 중 전국으로 확대되겠다. 비는 이날 밤까지 이어지겠다. 다음 날인 일요일은 완연한 봄날씨가 펼쳐지겠다. 봄나들이객들도 날씨에 맞춰 주말 계획을 짜고 있다. 이번 주부터 전국 곳곳에서 봄내음 가득한 봄꽃 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전북도 봄나들이객 맞이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 4∼6일은 김제 꽃빛드리 축제(김제시민문화체육공원·도작로 220), 고창 벚꽃축제(석정지구 일원·석정리 727번지), 정읍 벚꽃축제(정읍천어린이전용축구장·벚꽃로 401)가, 5∼6일은 임실 옥정호 벚꽃축제(옥정호 출렁다리 앞·입석1길 59)가 열린다. 축제만 보고 가기 아쉽다면, 봄을 만끽하고 싶다면 봄꽃 축제 본 김에 관광지까지 둘러보면 어떨까. 기사 내용은 축제장에서 자동차로 이동했을 때의 거리와 간단한 관광지 정보로 정리했다. 관광지 정보는 전북특별자치도가 운영하는 '투어 전북' 홈페이지를 참고했다. 자세한 내용은 투어 전북 전북문화관광에서 볼 수 있다. 전북권 4대 도시로 웅비하는 김제 △미즈노씨네 트리하우스(자동차로 14분) 김제 평야에 동화 속 세상이 펼쳐진다면 누가 믿을까. 오픈AI 챗GPT가 만들어 주는 일본 유명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지브리 화풍의 이미지 생성 기능도 부럽지 않다. 여기를 가면 모두가 지브리 주인공이 되기 때문이다. 동심의 세계인 미즈노씨네 트리 하우스에서 미즈노 씨가 내려 준 커피 한 잔에 봄 내음을 느껴보자. △능제저수지(자동차로 15분) 능제저수지는 김제에서 가장 큰 저수지다. 낚시터로도 매우 유명하다. 차가 북적이는 유명 차박 명소와 달리 고요한 것으로 알려져 차박·차크닉(차+피크닉) 명소, 자연과 어우러질 수 있는 피크닉 명소로 꼽힌다. 길을 두고 양쪽에 펼쳐진 푸르른 나무 향연에 일렁이는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심지어 넓은 주차장까지 안 갈 이유가 없는 관광지다. △금산사(자동차로 35분) 금산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돼 1400여 년 이상 역사를 이어 오늘날까지 법등을 밝혀온 유서 깊은 명찰이다. 금산사 일원은 사적 제496호로 지정돼 있으며 호남평야 가운데 우뚝 솟은 모악산 서쪽 자락에 자리를 잡고 있다. 금산사 가는 길도 벚꽃 명소로 꼽힌다. 새 소리와 함께 나무 그늘 아래를 걸어보며 자연 안에서 힐링해 보길 바란다. 군민 모두가 행복한 활력 넘치는 고창 △고창읍성(자동차로 7분) 고창읍성은 자연석으로 만든 성곽이다.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산을 둘러 성을 쌓아 파괴되지 않고 잘 보존돼 있는 성 중 하나다. 한 바퀴를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를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를 돌면 극락승천한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고창 꽃동산 자락을 따라 만개한 산벚꽃과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읍성 풍경이 하나의 액자 같다는 점 명심하자. △보리나라학원농장(자동차로 29분) 규모만 12만 평에 달하는 대형 농장인 보리나라(넓은들)학원농장은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봄은 유채꽃·청보리가, 여름은 해바라기·백일홍이, 가을은 메밀꽃, 겨울은 설원이 펼쳐진다. 평화롭고 한적하면서도 봄볕과 봄바람 느끼며 천천히 걸어보면 좋겠다. △책마을해리(자동차로 30분) 1939년 개교해 2001년 폐교된 나성초가 새 옷을 입었다. 2013년 이대건 촌장과 이영남 관장 가족이 정착해 조금씩 보수하고 가꿔 만든 책마을해리다. '누구나 책, 누구나 도서관'을 표방하고 시작한 만큼 입장료는 책 1권이다. 한쪽에서는 책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쌓고 한쪽에서는 뛰어 노는 책마을해리는 특별한 공간이다. 시민 중심, 으뜸 정읍 △국립전북기상과학관(자동차로 4분) '정읍 아이와 가볼 만한 곳' 하면 나오는 곳이다. 어려운 과학이 쉽고,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곳은 체험 교육 중심으로 교육과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유익한 공간이다. 스토리텔링 방식의 기상·천문 체험교육 프로그램이 큰 인기다. 이 때문에 가족 단위 관람객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솔티달빛생태숲·솔티생태관광방문지(자동차로 13분) 2015년부터 생태 자원을 활용해 발전된 생태 관광지인 솔티달빛생태숲은 평지와 산지의 독특한 생태계 특성을 모두 갖춘 보존 가치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숲길에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상쾌한 산책을, 높게 솟은 대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시원한 산내음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어린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다양한 자연 친화적 놀이시설까지 완벽하다. △김명관 고택(자동차로 28분) 국가민속문화재인 김명관 고택은 조선 정조 8년에 지어진 집이다. 이후에 보수되지 않고 무려 200여 년간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돼 중요민속자료 제26호로도 지정돼 있다. 누구나 신발 벗고 집 내부를 볼 수 있다. 잘 보존된 마루 위에 앉아 새 소리와 바람 소리, 한 폭의 그림 같은 봄꽃까지 어우러져 중후하고 단아한 멋이 장관이다. 천만 관광 임실 시대 △전북119안전체험관(자동차로 34분) 한 달에 두 번을 가도 시간 아깝지 않은 이곳은 아이 있는 집이 차주 찾는다. 교육·체험·놀이를 결합해 재난 발생 시 대처 요령을 배울 수 있는 전국 최대 규모의 종합 안전 체험관이다. 단순히 아이뿐 아니라 성인에 이르기까지 연령대별 수준에 맞는 프로그램이 있어 아이·부모 모두 참여할 수 있다. 한 번 다녀온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꼭 한 번 가 보라고 추천한다고. △오수의견공원(자동차로 39분) 반려동물은 인간을 잘 따르기도 하지만 인간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먼 신라시대에도 그랬다. 주인을 살린 충견의 전설이 살아 있는 이곳에 오수의견공원이 생겼다. 의로운 개 이야기와 보은정신에서 착안해 조성했다. 넓고 푸른 잔디밭에 반려동물을 뛰어놀게 할 수 있으며 반려견 전용 캠핑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성수산자연휴양림(자동차로 41분) 1996년에 개장한 성수산자연휴양림은 해발 876m 성수산 남쪽 계곡 보존이 잘된 원시림에 조성된 민간 휴양림이다. '나무 할아버지'라고 불리는 김한태가 30년간 가꾼 향나무, 낙엽송, 천연 활엽수 등이 빽빽하다. 맑은 계곡 옆에서 숲 기운을 쐬는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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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5.04.03 17:25

[전북의 기후천사]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으로 1.5도씩 상승하는 지구 온도 낮춘다

쓰면 쓸수록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필요악이 있다. 우리나라 100가구 가운데 99가구가 사용하고 있다는 가전제품 에어컨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역대 최고 기온, 역대급 폭염 소식이 들려오고,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난으로 불리는 현실이지만 에어컨은 여름철엔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 돼버렸다. 하지만 에어컨을 펑펑 쓴다면 5년 뒤 우리가 살고 있을 미래는 ‘기후재앙’이라는 크나큰 부메랑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 △에너지를 더욱 효율적으로…전주시에너지센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달 30일 전주시 에너지센터에서 만난 이현세 팀장은 “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건물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만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초래된 기후위기 시대에 모든 자원이 그렇지만, 건물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줄여나가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 팀장은 머리로는 모두가 알고 있는 에어컨 실내 적정온도 유지하기, 안 쓰는 가전제품 플러그 뽑아두기, 엘리베이터 대신 짧은 거리는 계단 이용하기 등과 같은 일상생활 속 작은 실천이 지구를 살리는 일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건물에서 에너지를 넘치게 사용하면 지구의 온도는 1.5도씩 상승하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이 반복되면 기후위기는 기후재난으로 다시 기후재앙으로 악화하는 일밖에 남지 않는다. 실제 기후위기 임계점이 가까워졌다는 경고음은 세계 곳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지난해 추석까지 이어진 무더위, 벚꽃 시즌을 앞두고 폭설과 우박이 쏟아진 일본, 스페인에 하루 동안 쏟아진 엄청난 양의 비까지 기상이변 현상이 이를 증명한다. 2022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에너지전환을 목표로 문을 연 전주시에너지센터는 통유리창과 태양광 패널로 구성된 에너지 자립 건물이다. 태양광 발전을 통해 에너지의 30~40%를 충당하고 있어, 에너지 절약과 효율개선을 몸소 실천하는 에너지 분야 중간지원조직이다. 건물 에너지의 효율화와 그린 리모델링을 통한 탄소중립 실현에 주력하고 있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위해 센터에서는 시민의식 개선과 정보전달 교육, 홍보활동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건물의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해 사업과 정책 등을 수립해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발 빠르게 주도해 나갈 방침이다. 실제 건물에너지의 효율성 등을 진단하고 분석하는 사업을 발전시켜 탄소배출 저감에 실질적인 효과를 이끌어내겠다는 구상도 세운 상태다. 이 팀장은 “전주시에서 에너지 자립률을 높이기 위해 여러 형태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에너지센터에서는 지역에서 에너지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나씩 실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건강한 재생에너지 생태계 구축…전주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에너지 자립 도시를 꿈꾸는 전주에는 미래 세대에게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물려주기 위해 햇빛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주시민햇빛협동조합이다. 2017년 창립한 시민햇빛협동조합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시민은 직접 생산시설을 갖추고, 그럴 수 없는 가구는 에너지협동조합에 투자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안으로 에너지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전주시 유휴부지였던 효자 배수지에 건립된 시민햇빛발전소 1호기는 발전 용량 100㎾ 규모의 태양광발전소로 연간 12만 4100㎾의 전력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34가구(4인 가족 기준)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양이며, 약 500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처리할 수 있는 양의 이산화탄소가 줄어드는 셈이다. 출자한 금액에 따른 배당도 받을 수 있어 가정경제에 소소한 뿌듯함까지 덤으로 따라온다. 현재 시민햇빛발전소는 7호기까지 전주시 유휴부지에 건립된 상태이며 8호기는 오는 4월 완성된다. 지난달 30일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사무실에서 만난 박은재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경우 2020년 기준으로 80% 이상이 에너지를 생산하고 이용하는 데서 발생한다”며 “에너지 전환이 되지 않고서는 탄소중립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에너지원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전환하는 ‘에너지전환’이 시급하다고 했다. 개개인의 생활 습관 변화만으로는 1.5도 지구 온도 상승을 막아내기에 충분하지 않기에 태양광 등의 재생에너지 확대가 구조적‧제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의 목적은 온실가스 감축만은 아니다. 습관과 인식을 바꾸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재생 할 수 있는 에너지 전환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협동조합 창립의 핵심일지 모른다. 박 사무국장은 “조합에서는 햇빛발전소도 짓지만 에너지전환박람회 포럼과 같은 각종 행사와 조합원 교육 등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며 “탄소중립의 필요성과 에너지전환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를 키워야 재생에너지 확대에 가속도가 붙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식이 바뀌면 결국 사회 전반에 탄소중립이라는 가치가 녹아들 것이라는 의미이다. 효과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전주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 창립됐던 2018년 조합원수는 113명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374명으로 늘어난 상태다. 그는 “지금까지는 에너지산업을 정부와 공기업, 대기업에서 독점했다”며 “이제는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를 우리가 만들어서 가까운 곳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탄소중립 문화를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조합에서도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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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은
  • 2025.04.0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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