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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파면, 이제 국민통합‧상생의 길로

민주주의의 승리, 국민의 승리다. 모두가 가슴을 졸였지만, 따지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4일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했다. 국회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상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현직 대통령이 파면당한 두 번째 사례다. 헌재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살리는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대한민국 현대사와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 △ 혼란·대립의 탄핵정국 종지부 ‘12·3 비상계엄’ 이후 넉달여간 지속된 어수선한 탄핵정국이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내수부진 장기화 속에 미국발 관세전쟁 등 대내외 경제위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했던 정치적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걷어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국민들은 이번 헌재 결정이 분열된 국론통합과 경제회복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헌재가 재판관 8인 전원일치 의견을 냈다는 점도 다행이다. 탄핵심판 과정에서 양측이 절차적 적법성과 실체적 쟁점을 놓고 치열하게 다퉈온 만큼 헌재에서 소수라도 기각 또는 각하 의견이 나왔을 경우 윤 전 대통령 지지층의 격렬한 반발이 나오면서 사회적 혼란이 계속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승복을 약속했던 국민의힘 지도부가 선고 직후 ‘헌재의 결정을 겸허히 수용한다’며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고, 우려했던 대규모 폭력·소요 사태도 없었다. 도심 탄핵 찬반 집회도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극심한 분열과 대립은 있었지만, 우리 국민이 민주시민답게 지켜야 할 선은 지켜줬다. △ 사회통합·민생회복 매진해야 온 국민의 관심이 쏠렸던 헌재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이 마침내 나왔다. 끝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이제부터가 더 중요하다. 우선 탄핵정국에서 더 확실하게 드러난 우리 사회 극심한 분열과 갈등, 대립과 반목을 봉합하고 사회 통합과 안정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계엄과 탄핵 과정에서 극단적으로 갈라진 국론을 통합하고 민주정치를 회복하는 동시에 경제회복과 민생안정에 주력해 대한민국을 조속히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것이 정치권의 최우선 책무다.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탄핵정국은 조기 대선 정국으로 빠르게 재편될 것이다. 그리고 대선은 불가피하게 다시 국민 갈등을 증폭시킬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의 시대, 더 이상의 분열과 갈등은 절대 안 된다. 국정을 정상화하고, 사회 갈등을 줄이려는 정치권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선 주자들도 과거가 아닌 국가 현안과 미래 비전을 놓고 정책 대결에 치중하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아울러 대내외적 경제위기 속에 정치적 불확실성까지 겹쳐 벼랑 끝에 몰려있는 민생경제도 살려내야 한다. 새해 대내외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대한민국 경제가 끝 모를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전북 경제도 전 산업 분야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지역경제의 모세혈관인 골목상권이 붕괴되고 있다. 정부는 물론 지자체에서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민생경제 특별대책을 수립하고, 이를 신속하게 집행해 민생경제 회복 시기를 최대한 앞당겨야 할 것이다. △ ‘분권형 개헌’ 시대적 과제다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막을 올린 조기 대선은 과거 어느 때보다 헌법 개정 요구가 높아진 가운데 치러지게 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촉발된 탄핵정국에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한층 높아졌다. 느닷없는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에서 비롯됐다는 문제의식에서다. 여야 정치원로와 시민사회단체에서도 ‘분권형 권력구조’ 개헌을 강력하게 주장하며서 정치권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 등 지방 4대협의체가 중심이 된 ‘지방분권형 개헌’ 주장도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사실 개헌은 우리 사회가 그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오랫동안 미뤄둔 일이다. 그간 국민적 공감대 속에 수차례 추진됐지만 정치권에서 동력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제 헌법에 따라 탄핵 결정일인 4일을 기준으로 60일 이내에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한다. 조기 대선의 막이 오르면서 대권 주자들의 개헌 공약이 어떻게 나올지도 관심이다. 시대적 요구를 애써 외면한 채 미뤄뒀던 개헌 논의에 이제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시간이다.

  • 오피니언
  • 전북일보
  • 2025.04.06 10:42

펜 한자루에 청춘을 담고-4

전주한옥마을을 찾은 관광객들은 해가 지면 남부시장 야시장으로 몰려왔다. 합리적인 가격에 다양한 소품과 먹거리를 구입하고 즐길 수 있는 곳. 남부시장 야시장은 새로운 문화가 피어나는 공간이었다. 나는 운 좋게도 활기 넘치는 시장의 한편에서 그림엽서와 작은 그림 액자를 펼쳐보일 수 있었다. 사람들은 관광 기념으로 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물한다며 그림엽서를 골랐다. 내 작품을 사랑해준 사람들 중에는 외국인 친구들을 빼놓을 수 없다. 내 그림들을 흥미롭게 살펴보고는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는 요청도 이어졌다. 어느 날은 지역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촬영까지 진행했다. 꽃이 피는 봄과 함께, 내 주말도 활짝 피어났다. 이 시기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SNS를 시작했다. 꾸준히 그림을 게시하면서 그리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루틴도 만들어졌다. 야시장을 오가는 나의 상황은 장밋빛이었다고 추억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안정적인 공간에 대한 꾸준한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계절을 넘나들면서 나의 그림에 대한 가능성이 뚜렷해질 때 즈음, 그 욕구는 더욱 확실해져갔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스한 공간이 절실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새로운 입주자 모집 공고가 떴다. 나는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야시장에서 내 작품을 눈여겨본 담당자는 ‘작은 공간밖에 없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그렇게 나는 4평 남짓한,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작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충분한 공간을 얻었다. 새해가 밝고, 동장군이 매섭게 기승을 부릴 때, 나는 작업실 공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그림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일까? 어떤 그림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구매로 이어지는 것일까? 나의 그림과 공간은 이곳을 찾은 모두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면 좋을까? 수많은 고민과 즐거운 상상속에서 작은 공간이지만 내 첫 작업실이자 가게는 천천히 모습을 갖춰갔다. 벽과 천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전기와 바닥 공사까지 직접 했다. 설렘으로 가득 찬 마음 덕분에 추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작업실 오픈과 함께 맞이한 설 연휴 동안 찾은 사람들로 가게는 붐볐고, 나의 공간과 그림들은 드디어 빛을 보았다. 내 그림엽서가 그렇게나 불티나게 팔린 적이 있었을까? 봄방학이 되자 대학생 여행객들이 찾아왔고, 봄꽃이 필때부터는 가족과 연인들이 몰려들었다. 여름이 가까워질 즈음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졌고, 단풍으로 풍성한 가을에는 우정을 기념하는 친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반가웠고, 외주작업도 꾸준히 들어왔다. 큰돈을 번 것은 아니었지만, 내 그림이 사랑받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말로 다 할 수 없이 기뻤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공기업에서 일러스트 시리즈 제작을 의뢰해왔다. 몇 개월 동안 정성을 다해 작업했고, 그 결과 목돈도 손에 쥘 수 있었다. 남부시장 청년몰의 작은 공간에서 나는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고, 기회를 잡아 나갔다. 하지만 행복한 비명은 오래가지 않았다. 점차 청년몰의 방문객은 줄어가기 시작했다. 서울의 경리단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유행한 ‘리단길’ 트렌드가 청년몰에도 영향을 미쳤다. 관광객과 젊은이들로 가득했던 공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점 끊겨갔고, 전주 객사 인근의 깨끗하고 고급진 음식점과 샵들이 조성되기 시작하는 객리단길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지면서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박성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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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3 18:17

봄볕처럼 따뜻한 사랑, 서서평(徐舒平)

늦은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개나리와 목련은 한껏 꽃을 피웠고 옷이 조금씩 무겁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이제는 완연한 봄이다. 그러나 최악의 피해가 예상되는 영남의 산불, 정치적 불안감, 얼어붙은 취업시장, 물가 상승과 경제적 침체,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자국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미, 중, 러 리더들의 행보 등으로 마음은 겨울보다 더 무겁다. 이런 상황에 영향을 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우울해지고 현실에 비관적으로 되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잠시 멈춰 서서 깊이 숨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보면 좋겠다. 난관을 이겨내고 멋진 삶의 궤적을 이룬 사람의 봄볕 같은 희망이 우리에게 서서히 스며들기를 바라며 독일 출신 미국 간호사 서서평(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을 소개한다.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고 ‘이타적인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1880년 독일에서 태어난 그녀는 3살에 자신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난 어머니 대신 할머니 품에서 자랐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기대를 품고 방문한 생모에게 다시 거부당하는 삶을 살았다. 그러나 불행함에 함몰되기보다는 오히려 도약대로 삼아 단단함과 아량을 갖춘 사람이 되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동료에게 조선에서 환자가 치료받지 못하고 길에 버려진다는 말을 듣고 1912년 운명처럼 조선으로 와서 선교사의 삶을 시작한다. 광주에서 가난하고 위기에 빠진 사람들을 도왔는데 주로 버려진 과부와 고아들에게 남다른 사랑을 실천했다. 특히, 사회에서 외면당한 윤락여성들의 아픔을 공감했으며 과부들을 보살피고 14명의 고아를 수양딸로 삼아 죽을 때까지 함께 생활하면서 고국에서 지원받은 얼마 안 되는 생활비와 후원금까지 함께 나누어 썼다. 키가 매우 컸던 서서평이 5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난 원인이 영양실조였다는 사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길거리에서 추위에 시달리는 거지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담요의 절반을 나누어 준 일화는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그녀의 성정을 보여준다. 봄볕이 만물을 따뜻하게 품듯 어려운 모든 이를, 어떤 상황에서도 기댈 수 있는 어머니 리더십으로 많은 이들에게, 특히 조선의 여성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혈혈단신으로 조선에 와서 여성들에게 자립의 삶, 간호사로 일하며 나와 남을 도울 수 있는 삶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35살이 되던 해에는 병원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는데 화염 속으로 뛰어 들어가 앉은뱅이 환자를 업어서 구출했던 일도 있었다. 광주에서 미국에 기금을 요청해 양잠업을 지도하고 제주에서는 고사리 채취를 도우며 여성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자 애썼다. 여성들이 스스로의 힘을 믿고 자립하고 또 그 힘을 주변에 나눌 수 있는 역량을 키우도록 힘썼다. 32세인 1912년부터 1934년 5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22년 동안 일제강점기에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광주 궁핍한 지역, 제주, 추자도 등지에서 미혼모, 고아, 한센인, 노숙인들을 돌봤다. 그녀의 장례식은 광주 최초 시민사회장으로 치러졌는데 그녀의 운구 뒤로 소복을 입은 수백 명의 여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처롭게 ‘어머니, 어머니’라고 부르던 모습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서서평은 검소했지만, 먼 이국 조선의 어려운 이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내어준 ‘이타적인 낭비’를 하며 살았다. 자신의 시신은 의학용으로 기증할 정도로 삶은 물론 육체까지 조선에 모든것을 주고 떠났다. 어머니에게 거부당하고 기댈 곳 없이 외로웠던 그녀는 바람, 햇살, 숲과 함께 자랐다고 고백했다. 그것으로부터 받은 에너지를 물설고 낯선 이국의 사람들에게 온통 베풀고 떠났으며 그녀를 아는 사람들에게 지극히 아름다울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절이 수상해서…, 경제가 불안정해서…, 희망이 없는 시대야….’라는 불평은 서서평의 삶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가진 것 없어 보였던 그녀가 희망이 없어 보였던 조선 땅에서 펼친 것은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수많은 사람에게 기적이 되었다. 어려운 시절이다. 올봄에는 그녀가 남긴 봄볕 같은 따뜻한 사랑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져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오덕성 우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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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3 18:17

[병무상담] 20세 병역판정검사 후 입영 신청에 대해 궁금합니다

병무청에서는 2025년도 병역판정검사 대상자인 2006년생을 위해 「20세 검사 후 입영」제도를 새롭게 시행하고 있으며 신청 기간은 2024년 12월 27일부터 2025년 9월 30일까지입니다. 이 제도는 20세에 본인의 병역판정검사 시기와 입영 시기를 직접 선택하여 병역을 보다 계획적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새로운 방식입니다. 기존에는 19세에 병역판정검사를 받은 후, 이후 별도로 입영 신청을 해야 하는 절차를 거쳤으나 이번 제도를 통해 20세에 병역판정검사를 받고, 동시에 입영 시기도 미리 신청할 수 있어 추가적인 입영 신청 절차가 필요 없습니다. 특히 병역판정검사 후 입영까지 3개월 간격(예: 병역판정검사 2026년 1월–입영 2026년 4월)으로 희망하는 시기를 직접 선택할 수 있어, 개인의 일정에 맞춘 입영이 가능하다는 점이 큰 장점입니다. 신청은 병무청 누리집(민원신청 → 병역판정검사 →「20세 검사 후 입영 」신청)과 모바일 앱을 통해 가능하며, 신청자는 병역판정검사 희망 월과 입영 희망 월을 선택하여 신청하면 됩니다. 단, 신청 인원이 1만명으로 제한되어 있으며, 지역별·월별 정원이 있어 조기에 마감될 수 있으므로 빠른 신청이 필요합니다. 만약 19세 병역판정검사 일자 및 장소 본인선택을 한 상태라면 먼저 19세 병역판정검사 일자 및 장소 본인선택을 취소한 후 「20세 병역판정검사 후 입영」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다만, 본인선택한 병역판정검사일 35일 전부터 1일 전까지 취소하고자 하는 경우 온라인 취소가 곤란하므로 지방청에 전화로 문의하여 취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2026년 병역판정검사에 따른 신체등급 결정은 2026년도의 판정기준을 적용하며 병역판정검사 결과 4급 보충역인 경우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으로 기존 입영 희망월에 사회복무가 소집되는 것은 아니며 소집 순서에 따라 소집일자가 결정됨을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전북지방병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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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3 18:17

산책길에서 기운을 받는다

유명한 황톳길을 걷기 위해 일찍 나서 오전 10시 30분쯤 강천산에 도착했다. 순창 '강천산 맨발 산책로'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곳으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요즈음 맨발 걷기가 화두다. 초저녁쯤 인근 산책로나 학교 운동장에서는 맨발 걷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강천산 정취가 눈 부셨다. 나도 여러 사람 틈에 끼어 걸었다. 맨발로 황톳길을 처음 걸으니 발바닥이 깔깔했지만 접지 관절부분은 나름 시원했다. 계곡 옆으로 쭈욱 이어지는 길 주변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늘어서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숲에서는 은은한 향이 풍겨서 걷기는 아주 좋았다. 시원한 산들바람에 몸을 내맡기다 보니 어느덧 종점에 다다랐다. 구장군 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 내고 있었다. 보기 드물게 웅장한 풍경이라 사진으로 남겼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돌렸다. 맨발 걷기를 마친 후 세족장에서 발을 씻었다. 맨발 걷기 효능을 알리는 게시판이 눈에 띄었다. 제2의 심장이라 불리는 발이 신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반드시 '매일 맨발 걷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동안 지척에 있으며 경사가 아주 완만한 건지산을 자주 올랐다. 나뭇잎 사이로 멀리 보이는 유난히 푸른 하늘을 보며 걸었다. 산길을 걷다 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트로트'를 듣는 사람, 둘이 또는 끼리끼리 도란도란거리며 걷는 사람들 모두가 의욕이 넘쳐 보인다. 한참을 걷다 맨발로 걷는 부부와 마주했다. "안녕하세요, 맨발로 걸으면 불편하지 않아요?" 나는 인사를 건네며 궁금해서 물었다. "아니요. 너무 좋아요. 한번 걸어 보세요". "어떤 점이 좋은데요?" 하고 재차 물었다. "잠이 잘와요. 혈액 순환도 잘되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한 부부는 살포시 웃었다. 송천동에 산다는 그 부부가 맨발 걷기를 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요즘 나이가 들어서인지 주변 사람들과 건강에 대한 얘기가 다반사였다. 아내는 허리를 위해 구기 운동은 그만하고 걷기만 하라고 신신당부다. 언젠가 KBS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맨발 걷기의 장점을 소개했는데, 이후 많은 사람이 맨발 걷기를 하고 있다. 건강은 다리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맨발 걷기 대중화의 중심에는 '맨발 걷기 전도사'로 알려진 '맨발 걷기 국민운동본부'가 있다. 박동창 회장은 불면증으로 몇 달간 잠을 설치다가 맨발 걷기 첫날에 꿀잠을 잤단다. 2시간 정도 맨발 걷기를 했을 뿐인데 놀라운 결과라고 했다. 이후 5년 동안 맨발로 걸으면서 건강이 좋아진 것을 직접 체험하고 '맨발 걷기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는 걸 실감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감기도 걸리지 않게 되었고, 불면증과 어지럼증도 없어졌으며, 콜레스테롤 수치도 정상으로 회복됐다고 했다. 그는 맨발 걷기가 자기를 살렸다며 '맨발로 걷는 즐거움'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말초신경이 모인 발, 매일 걸으면 몸 곳곳이 좋아진다며 처음부터 무리하면 안 된다고 당부까지 했다. 시간도 처음에는 10분, 20분 정도에서 하다 30분, 40분, 50분 차차 늘려 가야 좋다고 했다. 걷는 자세도 바르게 유지하며, 접지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고도 했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가만가만 걸었다. 발바닥이 가시에 찔릴까 노심초사하며 길바닥을 주시했다. 때로는 작은 배낭에다 물, 우의, 간단히 먹을 것을 가지고 다녔다. 학교 운동장도 걷기 장소로는 아주 좋다. 함께 걷는 친구는 계절과 관계없이 맨발 걷기 후에 반드시 찬물로 발을 씻었는데, 이는 겨울 동상을 방지하는 수단도 된다고 했다. 바른 자세로 산책길 맨발 걷기를 하며 자연의 기운을 받는다. 새소리 풀벌레 소리 들으며, 계절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맨발 걷기는 나의 정신과 육체 건강에 특효약이다. △하광호 작가는 '한국신문'으로 등단한 수필작가이다. 현재 전북문인협회 사무국장이다. 수필집 <그리움은 놓지 않는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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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3 18:16

대광법 개정, 지역 역량 결집 촉매제 되길

정부의 대도시권 광역교통 기본계획 및 시행계획에 전주를 포함하도록 규정한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대광법) 개정안이 우여곡절 끝에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기존 대광법에서는 대도시권을 ‘특별시·광역시 및 그 도시와 같은 교통생활권에 있는 지역’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광역시가 없는 전북권역은 정부의 광역도로망과 국가철도망 계획에서 번번이 누락돼 지원을 받지 못했다. 철저한 지역 차별이었고, 전북이 교통오지로 전락한 원인이기도 했다. 명백한 차별에 지역사회가 함께 분노했고, 법률 개정을 위해 지역정치권이 하나로 뭉쳤다.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도 명분과 필요성은 뚜렷했다. 하지만 순탄치 않았다. 국회 국토위와 법사위 심의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반대로 숱한 난관을 겪어야 했다. 여기에 탄핵정국 속에 여야 대치가 격화하면서 법안 처리가 또다시 뒷전으로 밀리기도 했다. 전북 의원들은 이같은 우여곡절 속에 거듭 해를 넘기면서도 결국 법안 통과를 이끌어냈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김윤덕 의원이 법률 개정을 추진한 지 5년 만이다. 이는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해 역량을 한데 모은 지역 정치권의 강한 추진력과 지속적인 노력의 성과다. 법안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지만 아직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남발하고 있는 거부권 때문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국회의 입법 취지와 차별 해소‧균형발전을 요구하는 전북도민의 목소리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어디서나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지금껏 외쳐온 국가균형발전 기조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 대광법 개정안 국회 통과는 지역 현안 해결을 위한 지역사회와 지역정치권의 역량 결집 필요성을 그 성과로 보여준 사례다. 대광법 개정은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오랜 세월 이어진 전북 소외를 떨쳐내는 첫걸음, ‘전북 대전환’의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시급하게 풀어내야 할 지역 현안이 수두룩하다. 대광법의 경우에도 법률 개정만으로 ‘교통오지 탈출’이라는 숙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교통인프라 확충을 위한 대규모 후속사업 유치와 국가예산 확보 과제가 남아있다. 이번 성과를 발판으로 지자체와 지역정치권은 강력한 원팀 역량 결집의 성과를 도민들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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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04.03 14:04

산불…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역대 최악의 산불이 한반도 동남부를 휩쓸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도깨비불 같은 불덩어리가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다녔다. 마을이고 산이고 바닷가 어선까지 화마가 집어삼킨 것이다. 지난달 21일 시작된 산불은 울산, 경북, 경남, 충북, 전북 등 11개 지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중 경북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과 경남 산청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피해 면적이 서울의 약 80%에 해당하는 4만8000ha에 달하고 인명 피해도 사망 30명, 부상 45명에 이르는 사상 최악의 기록을 남겼다. 집 3800여 채가 잿더미가 됐고, 대피소로 옮긴 이재민이 4700여 명이다. 간접피해 인원까지 합하면 4만명에 육박한다. 경제적 손실만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천년고찰인 경북 의성의 고운사, 운람사 등도 전소됐다. 이같이 엄청난 재난은 기후위기와 인간의 부주의가 빚어낸 결과였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빠르게 뜨거워지면서 산불과 폭염, 홍수 등이 잦아졌다. 이번 산불은 성묘객이 라이터로 봉분에 있는 나무를 태우려다 바람에 불씨가 날려 초대형 산불로 번졌다. 쓰레기 소각과 제초작업 중 발생하기도 했다. 산불이 덮친 곳에 숲이 다시 돌아 오는데 30년, 땅까지 완전 복원되는데 100년의 세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번 산불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일까. 사망자 30명 중 26명이 노인이었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76세였다. 영덕읍에 살던 89세와 83세 노부부는 대피 도중 참변을 당했다. 잿더미가 된 대문 앞에서 꼭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으로 발견돼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대피 중 할머니가 넘어지자 할아버지가 일으켜 세우다 연기에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 71세 여성은 소아마비 환자로 고립돼 질식해 숨졌고 88세와 86세 남성과 86세 여성은 실버타운 외상환자들로 차량으로 대피하던 중 산불이 확산되면서 차량이 폭발해 숨졌다. 또 대피소에 임시거처하는 주민도 대부분 노인들이다. 이번 산불 피해지역은 전국적으로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첫 발화지역인 의성군은 고령화율이 47.9%로 전국 226개 시·군·구 중 1위다. 청송군은 7위, 100세 노인이 매몰돼 숨진 영덕군은 9위, 영양군은 11위, 경남 산청군은 고령화율 43%로 전국 12위이다. 또 이들 지역은 1인 가구나 노부부 가구가 많다. 거동이 불편해 제때 대피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은 일상생활수행능력(ADL)이 낮은데다 고혈압, 당뇨, 골다공증 등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고령사회와 인구소멸이 빚은 비극인 셈이다. 현행 화재예방법(제23조)과 재난안전법(제31조의2)은 노인을 화재안전취약자로 분류한다. 하지만 임의규정으로 형식적이다. 미국은 대형산불이 발생하면 강제 대피명령을 내린다. 지난 1월 로스앤젤레스(LA)에서 대형산불이 났을 때 경찰이 집집마다 방문해 주민들을 대피시켰다. 공무원들이 직접 도로를 폐쇄하고 긴급대피소로 주민들을 안내했다. 우리는 재난약자가 가장 먼저 희생당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었다. (조상진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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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진
  • 2025.04.03 11:56

탄핵심판 결과 겸허한 수용이 최선이다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여와 야, 진보와 보수, 호남과 영남, 청년과 중장년들로 양분화 된 대한민국의 미래가 4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크게 좌우될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헌재가 어떤 결론을 내더라고 이를 깨끗히 수용하고 혼란을 최소화하는게 그나마 최선이다. 만일 어느 한쪽에서 헌재 판결에 불복하고 사회 혼란이 가속화한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않는 최악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극단적으로 내전상황에 준하는 최악의 결과가 빚어진다면 그것은 곧 대한민국의 암울한 미래를 예고하는 전주곡일 수밖에 없다. 시민 개개인의 삶의 질이 어디까지 추락할지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고비마다 용케도 살아남았다. 생존 여부가 불투명한 악조건을 뚫고 이젠 세계 최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그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민초들의 끈질긴 도전과 응전, 그리고 집단지성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하루 앞둔 3일 당력을 총집결하면서 민심얻기에 나섰다. 그런데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섬뜩하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31일부터 2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천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탄핵을 인용해 파면할 것이다'라는 응답이 55%, '탄핵을 기각해 직무에 복귀시킬 것이다'라는 응답은 34%로 조사됐다. 그런데 응답자 50%는 '내 생각과 달라도 수용하겠다'는 의견을, 44%는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수용하겠다는 의견도 절반쯤 되기는 하지만 무려 44%의 응답자가 승복불가 입장을 밝힌 것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여론조사 결과다. 실제로 정치권에선 벌써부터 탄핵심판 결과에 대해 불복할 것으로 해석되는 징후가 도처에서 감지된다. 우려스런 일이다. 정파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수많은 국민들이 제대로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판결이 나와야만 추후 갈등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래서 헌재에 대한 마지막 기대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4월 4일 헌재의 탄핵심판이 과거를 정리하는 사법심사가 돼야지, 또다른 분열과 갈등을 부르는 판결이 돼서는 안된다. 헌재는 말할 것도 없고 국민 모두가 사려깊이 고민해야 할 절대절명의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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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04.03 11:34

십승지(十勝地) 운봉고을

역사적으로 전쟁,재해,질병이 없고 거주환경이 좋은 조선 정감록에 기록되어 있는 십승지가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해발450-550m)이다. 필자가 태어나고 자란곳은 가장리(법정리명은 덕산리)다. 마을뒤엔 큰 저수지가 있다. 용왕님이 있다는 검푸른 저수지는 두려움이 있던 곳으로 나에게는 신성한 경외심으로 다가와 용왕님께 두손모아 간절히 소망을 빌었던 기억들이 생각난다. 봄이 오면 수리조합 직원들이 와서 거대한 수문을 열었다. 한번은 친구와 나는 저수지 아래 작은 방죽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데 엄청난 굉음에 놀라 소리난 곳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폭포수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용수철 튀어 오르듯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은 주변을 삼켜버릴 듯한 포악스러운 모습이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친구와 나는 두려움이 엄습해 낚시를 포기하고, 먼 발치에서 수로를 따라 넘실대며 도도하게 흐르는 물살의 위용에 넔을 잃고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리조합 직원들의 안내를 미리받은 아버지와 동네 어른들께서는 큰 축복을 받으신 듯 물길을 내느라 분주히 다들 소란스러웠다. 논에 물이 잠기자 이곳저곳에서 누렁소를 이끌고 논갈이가 시작되었다. 한해의 농사가 물의 공급으로 시작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수지 물은 벼농사를 위해 겨우내 움크리고 추위를 견디며 봄날을 그리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시절 둑방은 아득한 높이여서 친구들과 자주 선착순 경쟁을 했다. 도착하면 가슴은 터질 듯이 숨이 차오르고 수평선을 바라보면 물결은 우리들을 포근히 품어주던 엄마같은 존재였으며 용왕님이 깊은 곳에 있다는 신비를 동경헀었다. 부드러운 물결은 투박한 우리들 마음을 어루만저 주고 푸른 꿈을 심어 주었다. 둑 정상에서 바라본 운봉은 넓은 들녘을 철갑산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전란에서도 우리를 보호하는 요새였고, 평야는 오곡백과로 풍성해 살기좋은 낙원이었다. 성심으로 땀흘리시며 사셨던 선조님과 부모님 세대의 지혜와 삶이 있었기에 미래를 향한 우리들은 도전할 수 있었고 나래를 펼수 있었다. 좋은 환경의 양분은 오늘날 곳곳에서 소금되고 빛이되는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라 말할 수 있다. 여름이면 맑은 개울에서 친구들과 물장구치며 여울목 막아 가물치,쏘가리,피라미,메기,붕어,미꾸라지,모래무지,가재등을 잡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해지는 무렵에야 각자 집을 향해 달음박질 하며 짧은 하루를 보내며 지냈다. 가을날엔 오고가며 길목에서 단감,오이,토마토,자두,복숭아,무우,당근등을 살며시 취해 인적드문 곳에서 깔깔대며 철없는 만찬을 즐기기도 했었다. 지금은 어림없는 얘기다. 당시엔 너그러이 용서해 주고 눈감아 주셨다. 때론 무서운 주인을 만나면 크게 혼이 나고 부모님까지 난처하게 한 상황도 있었다. 겨울이면 무릎까지 차오르는 눈길을 형들이 발자국 내어 주면 그곳을 밟으며 등교를 하였다. 운봉고원은 고지가 높아 추위가 매섭고, 눈보라 치는 날이면 온몸이 꽁꽁얼어 교실 공탄 난로의 따뜻함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지금은 두려움의 저수지도 작은 호수에 불과하고 마을, 저수지둑방,학교길,개천,정자나무,뒷동산등은 오랜 세월의 풍파에 낡고 왜소해진 모습으로 변해있다. 1년에 한두번 방문하면 필자를 알아보시는 고령의 어르신 몇분이 계신다. 힌머리에 굵은 주름과 구부정한 세월의 낙관(落款)을 볼 때마다 많은 세월이 흘렀음을 알고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낀다. 오동근 재경남원문인협회 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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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2 18:05

정부와 여당의 새빨간 거짓말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엔 말이 없었다. 잿더미가 된 집터를 멍하니 바라보던 이재민의 눈빛, 다 타버린 트럭 옆에 하염없이 서 있는 허리 굽은 농부, 그들이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건 삶의 터전이었고 우리의 민생이었다. 이번 산불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대한민국 재난대응시스템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경남과 경북을 중심으로 10일 넘게 이어진 초대형 산불은 30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갔고, 4만 8000헥타르의 산림을 집어삼켰다. 주택 3000여 건 이 전소, 국가유산 피해 30건, 농업시설 2000여 건 등 시설 피해도 막심했다. 이는 지난번 동해안 대형 산불의 두 배가 넘는 피해 규모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눈물위에서 또다시 정쟁의 깃발을 세우려 한다. 재난을 컨트롤하지 못함에 대해 반성과 책임 통감은커녕 민주당의 ‘예비비 삭감’을 탓하는 가짜프레임 만들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지금 누구를 탓하며 정치적 유불리를 따질 때인가? 피해 복구에 집중해야 할 때 정치 공세로 책임을 모면하려는 뻔한 수법이다.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까지 정쟁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무책임함에 깊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똑바로 말하자. 예비비는‘예상치 못한 긴급 상황에 대비해 편성하는 비상 예산’이다. 원칙적으로 기존 예산을 최대한 활용한 뒤, 부족하면 예비비를 쓰고, 그것도 부족하면 추경을 편성하는 게 순서다. 2024년에도 산림청은 1000억 원, 행정안전부는 3600억 원의 재난 대응 예산을 이미 확보해두고 있다. 부처별로 책정된 9720억 원의 재해대책비와 별도로, 정부는 국고채무부담행위로 1조5000억 원의 자금도 운용 가능하다. 그럼에도 국민의힘은 예비비 감액으로 재난대응력의 저하되었다며 민주당을 몰아붙이고 있다. 예비비 삭감은 방만하고 과다한 정부안에 대한 합리적 조정이었다. 당시 윤석열 정부가 제출한 올해 예비비 규모는 4조8천억 원으로, 세계적 위기 상황이었던 팬데믹 시기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 실제로 2023년 예비비 집행률은 고작 29%, 2024년 10월 말 기준으로도 14.3%에 불과했다. 이조차도 용산 대통령실 이전에 650억, 해외 순방에 532억 등 오롯이 ‘윤석열을 위해’사용됐다. 일부 언론과 국민의힘 의원은 “예비비 삭감 때문에 산불 헬기·진화대 인력 증원이 무산됐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예산증액은 정부의 동의 없이는 국회가 할 수 없다. 2023년 예산심사 당시 예결위 소위가 증액을 시도했지만, 재정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단 한 차례도 긍정적 피드백을 내지 않았다. 그토록 중요했다면 정부가 처음부터 예산안에 반영했어야 한다. 제때 편성하지 않고, 필요해지니 남 탓을 하는 모습은 책임 있는 정부의 태도가 아니다. 목적예비비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다. 국가재정법 제22조에 따라 세입세출예산에 계상해 사용 가능하며, 예산총칙으로 용도를 지정하더라도 최종 집행 여부는 정부의 재량에 달려 있다. 실제로 고교무상교육과 5세 무상보육에 할당된 목적예비비 중 상당 부분은 아직도 집행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거부권을 사용해서다. 집행도 하지 않으면서 “이 예비비는 묶여 있어 쓸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궤변일 뿐이다. 산불 진압 실패의 원인은 다양하다. 노후화된 장비, 부족한 특수 헬기, 열악한 임도 인프라, 60대 이상 민간 진화대원의 희생까지, 모두가 “예고된 재난”이었다. 하지만 그 책임은 기후변화 만큼이나, 산림청과 중앙정부의 부족한 대응, 예산 편성 실패에 있다. 윤석열 정부가 자화자찬하던 예산 집행 효율성? 존재하지 않았다. 불타버린 산과 삶터 앞에 선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가짜 프레임이 아니라 진짜 대책이다. 2월에 이미 민주당은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9000억 원 규모의 자체 추경안을 제안한 바 있다. 정부와 여당이 지금 정말 해야 할 일은 재정 탓을 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 복구를 위한 예산을 신속하게 집행하고 재난 대응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불은 꺼졌지만, 국민의 삶은 여전히 불탄 자리 위에 있기 때문이다. 김윤덕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전주시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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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2 18:05

공정한 공론 없이 통합도 없다

완주와 전주의 통합 논의가 점차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그 논의가 나아가는 방향은 안타깝게도 '설득'보다는 '강요'에 더 가깝다. 대의명분으로 포장된 주장들이 언론과 단체의 입을 통해 일방적으로 울려 퍼지고 있지만, 시민들의 목소리는 회답 없이 되돌아오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통합이라는 정해진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공정한 공론장'이다. 최근 완주군의원 전원의 일괄 사퇴 선언은 군민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결과라기보다는, 오히려 내부 숙의조차 부족한 일방적 정치적 행동에 가깝다. 군민들의 삶을 결정지을 중대한 사안을 단 몇 사람의 판단만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은 과연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까. 더욱이 전주시 역시 이 논의에서 시민들의 참여를 촉진하려는 노력이나, 의견 수렴의 노력이 부족하다. 통합의 당사자는 완주군민만이 아닌 전주시민이기도 하다. 행정구역의 통합은 곧 주민의 삶과 정체성, 행정 서비스에 직결되는 문제이며, 이로 인해 양 지역 시민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발언할 자격을 갖는다. 정보 접근의 불균형은 더욱 심각하다. 완주군민협의회의 12개 분야 107개 제안과 전북도의 조례 등 핵심 자료들은 대부분의 완주군민 대다수에게 공유되지 않았다. 통합이 무엇을 바꾸고,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찬반 입장을 요구하는 것은 지도자의 설득이 아닌 사실상 관제적 결정이다. 더욱이 일부 공식 발표는 특정 사실만을 부각하고 불리한 내용은 배제하는 등 정보가 왜곡되는 사례도 보인다. 이는 주민의 정확한 판단을 가로막고 진실을 흐리게 만든다. 통합의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선 관련 정보가 온전히 공개되고 다양한 시각이 균형 있게 전달되어야 한다. 정치적 유불리를 따진 선별적 정보 제공이 아니라, 주민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전면적이고 객관적인 정보 제공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행정 절차의 문제가 아닌 지역 사회 내 불신을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일부 리더들이 갈등을 우려해 논의를 유보하려는 것도 이해되지만, 불신을 잠재우는 방법은 침묵이 아닌 대화다. 전주시장, 완주군수, 국회의원 등 책임 있는 인사들이 직접 공론회에 참여하고, 찬반 단체 및 시민들과 정기적으로 소통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공론은 회의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의견을 가진 시민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지고, 그 목소리는 공식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형식적 설명회로 공론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불신을 키운다. 실질적 참여가 보장되고, 이를 위한 구조와 절차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통합의 찬반보다 그 과정을 결정짓는 ‘정당성’이다. 과정 없는 결정은 늘 후회를 남긴다. 모든 주민에게 동등한 말할 권리를 보장하는 공정한 장은 정치 지도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진실은 침묵 속에서 자라지 않는다. 서로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할 때 비로소 실체가 드러난다. 완주와 전주는 지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 길이 갈등의 골짜기로 향할지, 협력의 언덕을 넘을지는 투명하고 정직한 소통의 자세에 달려 있다. 메아리는 벽이 있어야 돌아온다. 지금 이 지역에 필요한 것은 서로를 향해 열린 길, 그 위에서 마주 앉는 공정한 공론회다. 진실은 바로 그곳에서 드러난다. 성도경 완주전주상생발전 완주군민협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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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2 18:05

열등감 없어야 가능한 일

지난달 31일 제299회 진안군의회 본회의 군정질문에서 K의원이 L의원의 시간초과 발언을 저지하려 한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날 본회의에서 L의원은 전춘성 군수를 상대로 20분 주어진 군정질문을 이어갔다. L의원은 최근 지역의 핫이슈로 부상한 목조전망대 추진의 문제점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밝히고 있었다. 준비한 원고 없이 메모만 보면서 발언하다 시간이 초과됐다. 그때였다. “저기, 시간 좀 지켜주세요.” K의원이었다. 굳은 얼굴에는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난데없는 제지 시도에도 L의원은 흔들림 없이 발언을 이어갔다. 발언의 요지는 주민설명회와 공청회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목조전망대 추진에 대한 절차적 문제점은 물론 설치 후 관리상 부작용이 예상되니 재검토하라는 것이었다. L의원의 발언에는 군정발전의 충심이 담겨 있다고 느껴졌다. 시간 초과라는 이유로 제지당한다면 군민의 알권리가 문제 될 듯했다. 발언제지 시도를 한 K의원의 행위에 대해 “동료의원을 돕지는 못할망정 방해한 것”이라거나 “의장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거나 “집행부를 사실상 대변한 것” 등 뒷말이 나온다. K의원은 구두요청 전, 의장석을 향해 손짓과 몸짓으로 제지요청 신호를 두세 차례 보냈다. 그것이 불발되자 자신의 목소리로 의장 역할을 대신하려 했다. 발언시간 제지 권한은 엄연히 사회권과 질서유지권을 가진 의장에게 있는 데도……. 제지시도 이유에 대해 K의원은 “시간준수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하지만 생중계를 시청하는 공직자 수백 명 앞에서 동료의원을 곤란하게 하면서 사이 멀어질 만한 행위를 자처하는 것은 "K의원이 집행부와 절친하다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묻고 싶다. 설사 제한시간이 초과됐다 하더라도 “발언시간을 충분히 보장해 주세요”라는 내용의 지원사격을 하는 건 의정활동 선택지가 아닌지 말이다. 그런 마음은 열등감이나 적대감이 없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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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승호
  • 2025.04.02 16:24

임진왜란 의병장 이보의 충절을 기리자

임진왜란에 참전해 순국한 충신 이보(李寶) 의병장과 그를 따르던 400여 의병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는 ‘은천사 춘계대제’가 4월 1일 봉행되었다. 익산지역의 의병장인 이보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향인 소행진과 함께 의병 400여 명을 모집하고 군량과 병기를 마련해 일본군과 싸웠다. 당시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장악하여 군량미를 조달하려고 금산을 거쳐 이치(배티재)를 넘어 전주를 함락하려 하였다. 즉 왜군 1만 6000여 명이 이치를 넘으려 할 때, 이에 맞서 광주목사 권율이 이끄는 1,500여 명의 전라도 군사들과 이보, 소행진의 부대를 비롯한 농민 의병군이 전투에 참여하였다. 이때 이보는 40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온종일 수적으로 우세한 왜병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보를 비롯한 의병과 관군의 죽기를 각오한 전투로 결국 왜군은 전주성 진입과 호남 곡창지대 점령을 포기해야 했다. 간악한 일본군은 그 분풀이로 전사한 농민 의병들의 시신을 가족들이 찾지 못하도록 훼손해 산야에 흩뿌린 것으로 기록이 전하고 있다. 한편, 이 같은 충절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는 영조 30년(1754)에 정려(충신에게 내린 붉은 문과 현판)을 하사하였고 헌종 9년(1843)에는 현 익산시 은기동에 있는 은천사(隱泉祠)를 세워 의병장으로 전사한 이보를 비롯해 이보와 함께 창의한 소행진,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때 활약한 동생 이귀, 병자호란 때 활약한 이시백 등을 기리며 매년 음력 2월 정(丁)일에 이곳에서 제사가 거행하고 있다. 전라도는 예로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특징으로 의향(의병의 고장), 예향(예술의 교장), 미향(맛의 고장)으로 지칭되었다. 그런데 그중 첫 번째가 역사적으로 의병이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이어서 ‘의향’으로 불리었는데 특히, 전북지역이 의병 역사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보와 같은 대를 이은 의병집안의 역사야 말로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자랑이자 교훈으로 칭송될 일이다. 이제 혼란스러운 우리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세대를 이끌 청소년들의 귀감이 되는 역사를 부각하기 위해 지역역사교육의 대표 사례로서 지자체와 교육청의 관심과 지원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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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04.02 14:08

지자체 재난 관리‧대응체계 강화 급하다

역대 최악의 산불로 국가 재난상황을 겪으면서 국가의 산불 대응체계와 함께 지방자치단체의 재난 관리‧대응체계에 관심이 쏠린다. 기후위기 시대, 자연재해 및 사회적 재난의 발생 빈도와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중요한 책무다. 그리고 그 일선에 지방자치단체가 있다. 중앙정부와 함께 각 지자체에서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라 ‘재난안전상황실’을 설치‧운영하고 있다. 재난 정보 수집‧전파, 상황관리, 재난 발생시 초동조치 및 지휘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상시기구다. 그런데 재난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담당해야 할 지자체의 재난안전상황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 전북지역을 비롯한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전담인력을 배치하지 않아 전문성이 떨어지고, 인력도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별도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교대로 근무하는 ‘준전담’ 형태로 운영하다 정부 합동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곳도 적지 않다. 이렇게 지자체의 재난안전상황실이 기피 부서, 재난정보 수집부서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 개정으로 지자체의 재난관리 권한과 역할이 한층 확대됐다. 당연히 지자체의 책무도 커졌다. 지금의 허술한 재난 관리‧대응체계를 강화해 재난 상황에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각 지자체에서는 우선 재난안전상황실의 기능을 강화해 24시간 재난 대응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 신속한 초동대처를 위해 소방서‧경찰서 등 유관기관과의 협력체계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해수면 상승과 집중호우, 폭염 등 기후변화로 인한 새로운 유형의 재난에도 적극 대비해야 할 것이다. 기존 시스템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재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AI(인공지능), IoT(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보다 효율적인 재난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와 함께 중앙정부에서도 지자체의 재난관리 역량 강화를 위해 재정 및 인력 지원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국민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다. 각 지자체에서는 재난 관리‧대응체계를 수시로 점검하고 자체 역량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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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5.04.02 12:56

이창호와 조훈현

전주시 중앙동 웨딩거리에 가면 전주시 미래문화유산 12호인 ‘이시계점’이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곳은 바로 바둑천재 이창호(50)가 태어난 곳이다. 이창호는 4살때 할아버지(이화춘)에게서 바둑을 어깨너머로 처음 배웠는데 바둑으로 키워보려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이재룡)의 기대는 적중했다. 이창호는 9살때 조훈현 국수 집에서 기거하면서 제자로서 본격적인 수업을 받는다. 10대 중반부터 정상권에 진입한 이창호가 걷는 길은 말 그대로 역사였다. 1991년 국내 14개 프로 타이틀 가운데 7개를 석권, 스승 조훈현을 앞섰고 마침내 1995년에는 15개중 14개를 석권하면서 프로 바둑 세계 최다관왕에 등극했다. 이후 이창호는 세계 최다연승(41연승)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 두터운 기풍의 이창호는 조남철, 김인, 조훈현으로 이어지는 국내 1인자의 영역을 뛰어넘어 세계무대를 석권했다. 한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진듯했던 이창호가 요즘 각광받고 있다. 박스 오피스 1위 '승부'에서 그가 등장했다.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제자 이창호(유아인)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영화다. 이 작품은 조훈현 9단과 이창호 9단의 전설적인 ‘사제 대결’을 담아냈는데 이병헌과 유아인은 인간의 내면적 감정을 너무나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이병헌은 얼핏보면 조훈현 그 자체라고 할만큼 놀라운 싱크로율을 보였는데 "바둑돌만은 제대로 잡아달라"는 조훈현 국수의 부탁에 이병헌은 프로 바둑기사에게 1대 1 교습을 받으며 손가락 관절까지 세밀하게 표현했다고 한다. 언필칭 전북을 일컬어 바둑의 메카라고 한다. 이창호를 배출한 곳이 전주이고, 조남철 초대 국수의 고향이 부안 줄포임을 감안하면 틀린말도 아니다. 특히 이창호를 중심으로 짜여진 ‘수소도시 완주’ 바둑팀이 최근 파란을 일으키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수년전 전북바둑연맹 회장을 지낸 유희태 완주군수와 이창호 국수와의 인연으로 지난해 9월 창단한 ‘수도도시 완주’는 정수현 9단이 감독을 맡았으며, 이창호 9단 등 선수 4명으로 구성됐다. 그런데 전북뿐 아니라 타 시도에서도 바둑의 메카를 표방하는 곳이 많다. 전남 영암군은 한국 바둑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무대를 제패한 조훈현 국수의 고향이다. 영암군에는 조훈현 바둑기념관이 있고 해마다 굵직한 바둑대회를 열고 있고 특히 국립바둑연수원 유치에도 나섰다. 그런가하면 국내 최초 바둑전용경기장인 ‘의정부시 바둑전용경기장’이 착공됐다. 바둑전용경기장은 2026년 8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수의 프로기사를 배출한 전북은 바둑의 메카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뭔가 좀 부족해 보인다. 차제에 전주와 부안 등에서도 전세계적인 바둑의 메카에 걸맞는 선 굵은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위병기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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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병기
  • 2025.04.02 11:57

문학인 '한 줄 성명'과 탄핵 선고

1974년 11월 18일,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문학인들이 섰다. 백낙청 염무웅 고은 신경림 조태일 이문구 박태순 황석영 등이 참여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 101인 선언>. 유신정권의 독재와 탄압을 비판하며 문학인들의 현실 참여를 주장하고 나선 이날 시국선언은 문학인들의 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민주화 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포고(?)이기도 했다. 실제 이날 시국선언을 계기로 결성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1980년대 가장 치열했던 민주화 운동을 중심에서 이끌었다. 돌아보면 사회가 민주주의의 위기에 처할 때마다 사회 각계각층의 시국선언은 이어졌다. 퇴행하는 현실을 직시하며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수단, 시국선언의 힘은 곧 사그라지기도 했으나 때로는 공동체의 힘을 불러오는 막강한 힘이 됐다. 특히 시대를 직시했던 문학인들의 시국선언은 곧 시대의 기록이 됐다. 지난 3월 25일 한국작가회의가 전국의 문학인 2,487명 이름으로 긴급 시국선언을 하며 ‘윤석열 즉각 파면’을 촉구했다. 이들 중 414명 작가의 ‘한 줄 성명’이 있었다. 탄핵 선고가 늦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진 한국 사회를 직면해야 하는 절절한 심정을 담은 글. 이 암울한 시절을 인내심으로 버티고 있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문장들이다.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는다’는 한강은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내란을 공부하는 고통, 헌법을 공부하는 비참, 극우의 배후와 분열의 배후를 공부하는 통증, 공부하는 분노가 반드시 이길 거라는 믿음’(김소연 시인)이나 ‘나는 보았고, 너는 들었고 우리는 알았다. 진실의 뿔을 갈아 너희의 어둠을 찢으리’(김현 시인)같이 저절로 고개 끄덕여지게 하는 글도 있다. 모두가 이심전심, 수많은 사람이 안았을 분노와 다르지 않다. 헌법재판소가 미뤄오던 탄핵 선고기일을 알렸다. 4월 4일 오전 11시 헌재 대심판정이다. 지난해 12월 4일 윤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지 111일, 변론이 종결된 2월 25일로부터 38일 만에 탄핵 여부가 결정되는 셈이다. 방송 생중계와 일반인들의 방청도 허용됐다. 지난 한 달여 간의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비상계엄의 위헌과 위법성은 변론 과정에서 더 분명해졌지만, 헌재의 결정은 예상 밖으로 길어졌다. 불안과 혼란 속에 무너진 일상은 회복될 수 있을까. ‘앞발에 채찍을 들고 있었다(문지혁 소설가)’ 는 ‘그’를 제대로 심판하는 날. 그 날, 금요일이 '정의와 평화로 충만한 날’(김연수 소설가)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인가. 더 선명해지는 소설가 맹문재의 한 줄 성명이 있다. ‘불법 계엄자 파면은 역사의 명령이다.’ / 김은정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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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정
  • 2025.04.01 16:25

초등학생에게 디지털교과서를 안길까 문해력교육을 챙길까

최근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대하여 찬반이 극명함은 물론 그 우려도 깊다. 어느 쪽의 의견이든 틀린 견해는 없어 보인다. 채택을 하자니 적지 않은 우려를 안고가야 하고, 보류를 하자니 첨단의 학습 도구적 효과가 아쉽다. 무엇보다도 디지털교과서의 논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맞물려 있다. 앞으로의 인류는 AI와 공존해야 하고 이 상황을 삶에 잘 녹여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디지털교과서의 도입 기반의 전제와 그것의 교육적 효과를 총체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디지털교과서의 도입 기반은 일정 수준의 문해력 도달이 전제되었을 것이다. 그래야 디지털교과서의 유용성이 설득되면서 학생들의 학습 능력 배가도 효과로 증명될 수 있다. 아직 기본적인 문해력에 도달되지 못한 학생에게까지 디지털교과서를 바로 쥐어 주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이 기본 전제를 팽개치고 미래 시대의 도래에만 경도된 채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정책으로 밀어붙인다면 이는 아이들의 교육에 엄청난 실수가 아닐 수 없다. 이어령 교수는 이미 20년 전에 디지털 시대의 도래에 대한 논리로 <디지로그(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선언한바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균형으로 조화를 이루어 한국인의 디지로그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이 논리가 급기야 지금의 화두를 예언한 듯도 하다. 균형과 조화는 쌍방이 동일한 무게감을 갖고 장단점을 보완함은 물론 서로에게 상생의 역할을 해야 함을 말한다. 이 화두로 보면 디지털교과서는 기초 수준을 넘어선 문해력 수준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상생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학교교육은 모든 단계에 새로운 교육모델을 바로 적용해야 하지만, 단계별로 노력중점과 교육목표를 다르게 갖는다. 그리고 단계별 실행목표가 상급학교에 연계하여 총체적 성장 교육을 완성해 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초등교육에서 가장 중점이 되고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하는 것은 바로 문해력 교육이다. 모든 학습의 도구이고 생활의 바탕인 문해력이 미진한 단계에서 교과서가 디지털로 대체되어 버리면 오히려 디지털 학습의 효용마저 얻을 수 없다. 문해력 교육의 기회가 상실되면서, 스토리와 공감과 정서를 갖지 못하는 기계 장치 속에서 인간의 관계 언어 수준은 그나마도 보전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문해력 교육은 많은 어휘와 함께 문맥적 유추, 유사어의 쓰임, 확산과 관용의 의미 등을 터득함으로써 인간 삶을 이해하도록 한다. 이러한 학습 흡수력 가장 좋은 때는 초등교육의 기간이다. 문해력 교육의 기초가 완성된 후에 디지털교과서가 병행되면 이들이 서로 대등하게 조화를 이룰 여지가 많다. 이어령 교수의 화두처럼, 디지털교과서의 도입은 균형과 조화, 보완과 상생의 효용을 지향하므로 대체보다는 병행과 도구적 효용이면 될 것 같다. 따라서, 디지털교과서의 전면 도입은 보류, 유예, 선도, 권장 등으로 묶어둘 것이 아니다. 학령별 시기 조정이 먼저 되어야 하고, 방법도 상생의 효용으로 재논의 되어야 한다. 최소한 초등학교에서는 디지털교과서 사용보다는 문해력 교육에 더 큰 힘을 주어야 한다. 수년 간 교육을 실행하고 있는 현장의 교사들이 디지털교과서 도입에 문제점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음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입장과 정책적 지향으로 갖가지 회유책을 내놓으면서 디지털교과서의 선택을 적극 유도하는 행정은 진정 깊은 교육적 맥락은 아닌 것이다. 송영주 전 군산동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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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1 16:25

전북형 ABCDEF 정책, 지속가능한 미래를 열다

전북특별자치도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균형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전북형 ABCDEF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수도권 중심 경제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특성을 활용한 신산업 육성과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 구축이 필요하다. A(AI &Bio), B(Battery &Mobility), C(Culture &Carbon Neutrality), D(Digital Transformation), E(Energy Innovation), F(Future Growth) 등 6대 분야에서의 혁신이 필수적이다. 전북은 농·생명 산업의 중심지로서 AI 기반 스마트 농업과 바이오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AI 기술을 활용한 데이터 기반 농업과 정밀 의료 연구를 확대하면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스마트팜 도입과 바이오 연구단지 조성은 필수 과제다. 자동차 산업 전환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전북은 전기차·수소차 부품 산업과 배터리 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 기존 내연기관 중심에서 벗어나 전북형 배터리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전기차·수소차 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 또한, 자율주행 테스트베드를 활용한 기술 개발과 친환경 대중교통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전통문화와 관광산업이 강점인 전북은 디지털 기술과 탄소중립을 결합한 지속가능한 관광 모델을 마련해야 한다. 전북형 한류문화특구 조성과 AR·VR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관광 플랫폼 구축을 통해 전북의 관광 브랜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탄소중립형 관광 인프라 조성도 필수적이다. 산업과 경제의 디지털 전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전북은 스마트 공장과 스마트팜 확대, AI 및 빅데이터 기반 행정 혁신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제조업과 관광산업에도 디지털 기술을 적극 도입해 생산성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전북이 대한민국의 신재생에너지 중심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린수소 및 신재생에너지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에너지 연구개발(R&D)을 강화해야 한다. 태양광·풍력 발전을 기반으로 그린수소 생산과 저장 기술을 개발하고 신재생에너지를 연계한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전북은 대한민국의 대표 신재생에너지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전북이 수도권과 경쟁하며 경제적 자립을 이루려면 첨단산업 육성과 기업 유치를 위한 산업 클러스터 조성이 필수적이다. AI·반도체·방위산업 중심의 전북형 미래 산업 클러스터 구축과 혁신도시 연계 스타트업 허브 조성이 필요하다. 전북과학기술원 설립과 미래형 교육 시스템 도입도 지역 인재 육성을 위해 추진해야 한다. 전북형 ABCDEF 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전북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 거점이자 신산업과 전통산업이 융합된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구축할 수 있다. AI·바이오 기술을 활용한 농업 혁신, 전기차·수소차 중심 배터리 및 모빌리티 산업 육성, 전통문화와 탄소중립을 결합한 관광산업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전북은 차별화된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할 것이다. 결국, 전북이 ABCDEF 정책을 기반으로 미래 산업과 전통 산업을 균형 있게 발전시킨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 균형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수도권 중심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전북이 지속가능한 미래 성장의 중심이 되도록 지역과 정부의 협력, 산업계의 투자, 정책적 지원이 긴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전북형 ABCDEF 정책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성공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 지용승 우석대 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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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4.0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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