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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운보와 구암장 - 이규일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이탈리아의 메디치(Medici)집안이 아니었던들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같은 불후의 명작에는 반드시 그 작품을 낳게 한 배경과 후원자가 있게 마련이다. 운보 김기창(1913~2001)화백의 세계적 명작 <예수의 일생>도 한국전쟁 중에 군산에 피난, 구암장(龜岩莊)에서 그린 것이다.필자는 지난해 전북도립미술관이 전북미술의 맥전을 열면서 도록에 넣을 원고를 청탁해와 자료를 찾다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굴했다. 필자는 1977년에 운보의 자서전격인 나의 사랑과 예술을 《주간 중앙》에 연재하고, 1981년에 그와 함께 세계 18개국을 돌면서 <화필기행(畵筆紀行)을 한터여서 운보에 관한한 모르는 게 없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여태껏 필자는 운보의 그림에 씌어진 구암장을 그의 처가가 군산시 구암동 이어서 피난시절 군산에서 그린 그림에 낙관서명을 하면서 제작 장소로 쓴 걸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전북미술의 맥전 원고를 작성할 때 비로소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운보는 1951년에 처가가 있는 군산으로 부인틉?딸과 함께 피난, 어렵게 살았다. 만삭이었던 부인이 처가에서 둘째딸까지 출산해 군산 비행장에 근무하는 미군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때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백화양조 강정준사장이 운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집을 구암동에 사서 화실로 꾸며 준 것이다. 피난 중 운보의 화실이 바로 구암장이었다.필자가 전북미술맥전원고를 쓸 무렵 군산 구암장에서 그린 성춘향 연작 병풍(12폭)이 발견되어 운보의 군산생활을 알게 해 주었다. 이 병풍은 운보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구암장이란 화실을 마련해 준 강사장에게 답례로 그려 준 것이었다. 비단에 채색으로 그린 성춘향 연작 병풍은 이몽룡이 광한루에서 멀리 그네 뛰는 춘향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부터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춘향과 재회하는 완판(전주판) 춘향전의 주요 장면을 12개 폭(각 폭 58.5x38.5cm)으로 나누어 제작했다. 신묘중추(辛卯仲秋) 어구암장(於龜岩莊)이라고 쓴 관지가 있어 1951년 추석에 구암장에서 그렸다는 걸 알 수 있다. 운보는 1952년부터 53년까지 구암장에서 미술사에 남을 또 하나의 역사적인 작업을 완수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일생> 시리즈다. 어려서부터 예배당에 다닌 운보는 예수를 한국인 얼굴로 한국복식으로 성경 내용에 따라 29점을 그렸는데, 이 그림을 본 독일인 신부가 예수의 부활이 빠졌다면서 한점을 더 그리라고 해 <예수의 일생>은 30점 시리즈가 되었다. 운보는 서울에 올라와 1954년4월22일부터 5월1일까지 임시로 꾸민 화신백화점 5층 화랑에서 <성화전>을 열었다. 이 성화전에는 <예수의 일생>외에도 운보와 부인 우향 박래현(1920~1976)이 그린 입체 작품을 내놓고 부부 전으로 꾸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때 전시 평을 쓴 소설가 박계주(朴啓周)는 김기창?박래현 부부 전의 30점 성화와 20여점의 입체 작품이 피난 생활 중에 제작되었다는 것은 이들 부부가 가진 불굴의 예술정신을 웅변하는 것이다고 칭찬하고, 지금까지 고정적인 동양화의 새경지를 개척하기 위해 입체 작을 많이 가미, 우리에게 새로운 아취(雅趣)를 안겨준다라고 평했다. 올봄에 열릴 남원 춘향제에는 운보가 패트런이었던 강정준 사장에게 그려준 성춘향 연작 병풍을 식장에 둘러치고 아름답고 정숙한 현대적 미인성춘향을 뽑으면 뜻 깊은 행사가 될 것 같다./이규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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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3.03 23:02

[타향에서] 은퇴노인들을 위한 건강회랑 조성 - 박헌주

보스턴대학의 로렌스 코들리코프(L.J. Kotlikoff)교수는 「다가올 세대의 거대한 폭풍」이라는 책에서 초고령화 사회의 파장을 천재지변으로 표현하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앞으로 15년 이내에 65세 이상의 노인인구가 15세 미만의 어린이보다 많아진다. 그리고 2026년이면 인구의 20% 이상이 노인인 초고령 사회가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를 2050년에 세계에서 노인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로 전망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지난 반세기동안 역사적으로 유례가 없으리만치 급속히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인적자본(human capital)을 축적하였다. 관료, 교수, 연구원, 기술자, 기업경영인, 예술인, 변호사와 같은 전문지식인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의 지식과 경험은 사회적 힘이다. 은퇴한 노인들은 대부분 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더 일할 능력이 있다.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라면 보수에 상관없이 기꺼이 일할 의사도 많다. 그런데 은퇴하면서 내팽개쳐지고 있다. 은퇴노인의 활동은 사회의 통합 발전뿐 아니라 세수입도 늘릴 수 있다. 사회적 시혜 또는 부조 개념의 노인대책을 투자의 개념으로 전환해야 할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일할 장소와 적절한 일거리 또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건강을 관리하면서 경험과 전문지식을 활용하여 여생을 즐기는 복합적 기능 공간인 건강회랑(eco-health corridor)이 필요하다. 기존의 공원이나 도시 주변의 산, 호수, 해안 등에 주거, 취미?교육프로그램 운영시설, 회의 또는 담론장, 교육 및 학습장, 공동작업장, 복합운동시설, 생태공원, 노인전용병원 등을 집중 배치한다. 개인의 주거는 은퇴노인의 개인자산을 끌어들인다. 일본의 경우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전체 개인금융자산의 60%, 55세 이상은 85%를 갖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우리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자연환경이 좋은 도시주변의 저렴한 땅을 공급하고, 필요한 복지시설과 기반시설을 지원하여 건강회랑을 만들면 은퇴자들에게는 좋은 귀향장소가 될 것이다. 이곳은 은퇴 전문가들이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저술하고 토론할 수 있는 각종 행사를 유치할 수 있다. 전문인들을 중심으로 지역혁신 클러스트를 운영하여 지역활성화도 견인할 수 있다. 은퇴노인들의 가족과 함께 여가활동과 꽃 축제 등 계절별 축제, 시민축제 등도 개최할 수 있다. 그리고 건강회랑에는 관리원, 생활도우미, 복지사, 취미 및 교육 전문강사 등 고용창출에도 큰 보탬이 될 수 있다. /박헌주(주택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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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2.24 23:02

[타향에서] 농도전북에 종자회사 하나 없다 - 서기호

종자는 농작물 재배의 기본 요소이며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과거의 역사를 간직하고 현재의 상황을 유지하며 미래의 희망을 나타내주는 신비의 생명체라고 일컬어진다.우리 조상들은 굶어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고 할 정도로 종자를 중요하게 여겨왔다.최근의 종자는 생명공학과 첨단기술의 응용으로 고도의 기술 집약적이며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한알의 종자가 세계를 바꾼다고 할 정도로 종자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국제 밀?옥수수 종자 개량 연구소에서 밀 종자 책임자로 있었던 노먼 볼로구 박사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에 키가 작고 병에 강하며 수량이 많이 나는 밀 종자를 노린 10(농림 10호)로부터 만들어내어 멕시코, 인도, 파키스탄, 북부 아프리카 등지의 국가에 널리 보급함으로서 세계 식량의 녹색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룩할 수 있었고 이렇게 이룩한 녹색혁명의 공로를 크게 인정받아 1970년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었다. 밀종자로 이룬 세계 녹색혁명의 본산지인 멕시코의 국제 밀, 옥수수 종자 개량 연구소의 벽엔 지금까지도 하나의 유전자가 1억의 생명을 살린다라는 표어가 걸려 있다.우리나라에서도 쌀 생산량의 절대 부족으로 기아 선상에 헤메일 때 식량 증산을 국정의 제일 목표로 삼고 많은 노력을 쏟고 있었는데 1970년대 초에 서울대학교 농학과 허문회 교수를 중심으로 벼 육종학자들이 만들어낸 기적의 볍씨 통일벼를 성공적으로 재배함으로서 1970년대에 쌀 자급을 이룩할 수 있음으로서 한국의 녹색혁명을 가져올 수 있었다. 백생혁명이란 우수한 채소종자의 개발 덕택으로 사시사철 먹고 싶은 잎채소, 과일채소를 우리 식탁에 올려놓게 할 수 있었던 풍성한 먹거리를 우리에게 가져다 준 채소혁명에서 유래된 말이며 1980~199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에서 백색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겨울철, 이른 봄철에는 날씨가 추워서 노지에서는 채소를 재배할 수 없으나 비닐하우스나 유리온실 내에서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 하였으며 하우스가 들판을 흰색으로 덮었으므로 이를 백색혁명이라 불리어진 것이었다최근에는 유전공학의 발달로 새로운 품종의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고 선진국은 이미 종자 산업이 미래의 고부가가치 분야임을 인식하여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다. 생명공학 산업의 핵이 되고 있는 종자 산업은 미래의 국가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채소종자 육종실력은 세계 종자 시장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특히 고추, 무, 배추, 수박 종자는 상당히 우수한 품목으로 인기가 있는 것도 사실 이다.그러나 우리나라 채소 종자 시장은 국내 시장 규모만으로는 영세하므로 외국 수출 산업으로 키워가지 않으면 미래의 전망이 밝다고 볼 수 없다. 다행히 중국을 비롯한 인도, 인도네시아 등 거대한 농업국가에서 우리나라 채소종자를 많이 수입하고 있으며 일본,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우리 채소종자를 상당히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제 단일 농산물 품목 수출 규모로도 연간 수출액이 1,700~1,800만불에 달하고 있으며 앞으로 좋은 품종이 더 많이 나오면 수출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분야에 종사하는 한국종자협회에 등록된 전국 채소종자 업체수가 모두 57개사인데 품종 육성과 판매, 수출을 하고 있는 업체가 전북 지역에는 전무한 상태이다.전라북도는 경지면적으로 보나 종사업종으로 보나 타 시도에 비해 농업 비중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이처럼 농업의 비중이 높은 전라북도 지역에 종자 전문 업체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종자업체 뿐만 아니라 타 분야 농업자재 업체도 거의 없는 상태다. 농약 제조업체, 비료 제조업체도 전무한 상태이며 최근에 농기계 전문업체가 한개사 정도 들어서고 있는 정도이다. 바야흐로 이제는 모든 분야가 글로벌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농업도 안일한 태도와 근시안적인 발상으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 튼튼한 경쟁력을 갖추어야만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것이다.전라북도는 전북대학교와 원광대학교에 종자를 전공하는 우수한 학과가 있으며 호남농업연구소를 비롯한 우수한 농업 연구기관도 있기 때문에 종자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적 자원도 풍부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와 채소 식생활 습관이 유사한 중국이라는 광활한 종자 수출 시장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채소 수출시장이 이웃에 있고, 더욱이 우리나라 육종가들의 자질이 높이 평가되고 있으므로 종자 산업의 전망은 상당히 밝다고 볼 수 있으니 이 분야 업체가 전북지역에 빨리 들어설 수 있는 여건 조성이 아쉽다. 지속적으로 투자하면서 발전해 갈 수 있는 우수한 종자업체가 전북지역 내에 하루 빨리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제반 여건 조성이 시급한 실정이다./서기호(한국종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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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2.17 23:02

[타향에서] 보름달이 주는 교훈 - 신홍수

이제 며칠 있으면 대보름날이다. 항시 그렇지만 정월 대보름하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불이다. 캄캄한 밤의 어둠을 물리치고 환하고, 무섭게 타오르던 대보름의 불잔치. 대보름의 불은 겨우내 얼어 있던 손발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마을 사람들의 볼을 붉게 달아오르게 하였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마을의 남자 어른들은 빈 묵정밭에 짚단을 높이 쌓아올리고 짚단에 불을 질렀다. 불은 짚단보다도 더 높이 밤하늘로 타올랐다. 불이 높이 타오를수록 지난 해 일어난 슬프고 힘들었던 일들이 태워져버리고, 다가올 앞날의 힘겨움도 미리 불살라진다. 불이 사위어지면 고구마를 구워먹었다. 또 아이들은 깡통 속에 불을 넣고 논두렁을 신나게 달려 다녔다. 작은 깡통 속의 불꽃은 활활 타오르면서도, 빠르게 돌리는 아이들의 손동작에 보름달처럼 둥근 원을 그려 보여 주었다. 아이들도 대보름날만은 두려움 없이 신나게 불을 가지고 노는 것이 허용되었다. 여자들은 불놀이에 쓰였던 작은 불 토막들을 모아, 정월 초하루에 새로 달았던 동정을 불태웠다. 묵은해의 고통은 물론, 새해에도 액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리 액막이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대보름의 불놀이는, 모두가 해를 무사히 보내고자 하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이제 그와 같은 불놀이는 법으로 금지되었기에 보름날의 불놀이는 추억으로 존재한다. 그래도 대보름 먹걸이 풍습만은 여전히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나물에 오곡밥을 먹으며,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도 빌고, 호두며 땅콩, 잣 등을 소리 내어 쪼개 먹었다. 특히, 부럼 할 때의 딱 소리는 액을 쫓는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달이란 본시 사라지고 다시 돋아나는, 생멸의 생명 원리를 그대로 간직한 상징물이기도 하다. 우리는 허공에 뜬 달이, 한 달을 단위로 차오르고 다시 푹 꺼지는 동안, 차오름의 만족과 비움의 겸허를 동시에 알게 된다. 대보름날의 놀이는 이러한 달의 의미를 알고 다가올 미지의 슬픔까지도 이기고자 하였던 것이 아니겠는가. 모든 생명 있는 것이 언젠가 차오른 후에는 텅 비어갈 것이라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달을 바라보며 액을 견디고 희망을 품어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대보름 같은 마음이란 차오르면서 동시에 사라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마음에서 비롯할 것이다. 소유의 마음이 아니라, 버림의 마음 말이다. 이제 다시금 그 때의 달놀이, 불놀이가 그립다. 많은 정치인들이 권력욕에 물들어 정치를 하지 않고, 많은 경제인들이 사리사욕을 탈피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신의 욕망만을 성취하고자 할 뿐이다. 우리들은 가진 것이 없어 가지고 싶어 하고, 가진 후에는 그것이 사라질까봐 전전긍긍해 한다. 가지기 위해,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달의 한 면만을 보고, 다른 면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보름달만 보고 달의 삭망을 보지 못함. 보름달이 온 우주에 자신을 덜어줌으로써 다시 보름달이 되듯이, 우리 또한 덜어내고 또 그것을 나눔으로써 주변을 환하게 비출 수 있다. 나눌 줄 아는 사람이, 가난하지만 행복하다. 만일 보름달 같은 그 마음이 없다면, 보름달에 담아보는 기원들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지루하고 각박할 것인가. /신홍수(재경 남원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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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2.10 23:02

[타향에서] 세한도정신 - 이규일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호남지방은 50년만에 기록적인 폭설로 달갑지 않은 겨울을 보내고 있다.게다가 예년에 비해 날씨까지 몹시 추워서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겨울이다. 고통받는 이웃이 많지만 그래도 눈은 겨울의 꽃이 아닐 수 없다.내일이 입춘이다. 봄을 부르는 눈밭에서 추위를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소나무 ? 대나무 ? 매화나무를 우리는 예부터 세한삼우(歲寒三友)라 일컬었다.늘푸른 소나무는 불변을, 곧고 꼿꼿한 대나무는 절조를, 혹한을 이겨낸 매화는 청향(淸香)을 자랑한다.이 세한삼우는 동양화에서 그림소재로도 각광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1974년에 국보 180호로 지정된 추사(秋史)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세한도>(종이에 먹, 23.8x70.5cm)는 우리에게 몇가지 교훈을 전하고 있다.<세한도>는 겨울 추위속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의젓하게 서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황한(荒寒)과 적막가운데 고고한 풍모를 살린 <세한도>는 그림이기 이전에 추사의 심경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귀양지 풍경이기도 하다. 갈필을 사용한 간결한 필의와 전예(篆隸)의 필법이 가해져 자연미의 고담한 맛과 화면을 추상화한 구성이 돋보인다. <세한도>를 그린 취지는 발문으로 쓴 글에 잘 나타나 있다. 추사의 제자인 우선(藕船)이상적(李尙迪)이 중국에서『대운산방문고통례(大雲山房文稿通例)』,『황조경세문편(凰朝經世文編)』(120권)등 많은 책을 사보낸 것을 받아보고 그두터운 정에 감복하여 1844년, 귀양지 제주도에서 그린 것이다. 추사가 쓴 자제(自題)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세상 사람들은 권력이 있을 때는 가까이 하다가 권세의 자리에서 물러나면 모른 척 하는 것이 보통인데 내가 지금 절해고도(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는 처량한 신세 인데도 우선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다름없이 생각하여 이런 귀중한 책을 만리 타국에서 부치는 그 마음을 무어라고 표현해야할 것인가. 공자는 추운 철이 된 뒤라야 송백(松柏)이 푸르게 남아있는 것을 볼수 있다하였으니 잘 살때에나 궁할 때에나 변함없는 그대의 정이야 말로 바로 세한송백의 절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자신의 처절한 심정과 우선에 대한 고마음을 적고있다. 이는 오늘날 이해에따라 조석으로 변하는 우리사회의 얄팍한 인심을 경계하는 금과옥조(金科玉條)가 아닐까. 이<세한도>는 일제 강점기에 경성제대 사학과 교수였으며 추사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지즈까(藤塚?)의 손에 들어 갔다가 2차대전 말기에 서예가 소전(素?)손재형(孫在馨)의 정성으로 조국의 품에 돌아온 것이다. 1944년, 종전을 한해 앞둔 토쿄는 연일 공습으로 아수라장 이었다. 소전은 폭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후지즈까 교수집 근처에 여관을 얻어 진을 첬다. 그때 후지즈까는 노령으로 병석에 누워있었다. 소전은 매일 아침 찾아가 문안 인사를 올리고 되돌아 왔다. 이렇게 하기 90일째 되던 날에야 후지즈까는 소전의 속셈을 헤아리고 큰아들을 불러 그앞에서 내가 죽거든 조선의 손재형에게 아무 대가도 받지말고 <세한도>를 돌려보내라고 했다. 유언이나 다름없는 이말을 듣고도 소전은 서울로 돌아오지 않고 열흘동안 문안을 더드렸다. 일백일째 되는 날 비로소 후지즈까는 전화(戰禍)속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여기까지 찾아온 성심을 저버릴 수 없어 선비체면으로 그냥 주는 것이니 부디 잘 모셔가라면서 <세한도>를 내놓았다. 소전은 귀국 즉시, 33인의 한분인 위창(葦滄)오세창(吳世昌) 어른께 달려가 <세한도>를 찾아왔다고 보고했다. 위창은 이자리에서 전화를 무릅쓰고 사지에 들어가서 우리의 국보를 찾아왔노라는 내용의 제발(題跋)을 <세한도>에 써 넣었다. <세한도>에는 추사가 작의(作意)로 밝힌 변함없는 사제의 정과 공자가 말한 송백의 절조, 그리고 소전이 그토록 우리 문화재를 찾고자 노력했던 애국심이 담겨 있는 것이다./이규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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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2.03 23:02

[타향에서] 새만금사업에 거는 국민의 기대 - 박헌주

우리는 지금 경제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다음의 인류역사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 즉 미학 또는 환경의 시대로 보고 있다. 철학자 오길비(Jay Ogilvy)의 이야기다. 환경가치는 이미 개발이나 산업생산과 같은 경제적 활동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고 있다. 사람의 머리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흥미와 재미, 세련된 디자인도 유행하고 있다. 마음을 끌어내는 감성 마케팅이 생활에 들어온 것이다. 국토관리도 마찬가지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국토환경과 지역문화가 지역경제를 살찌우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자산가치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는 효율성과 기업논리로 압축성장을 이루면서 물질적으로 풍요한 경제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삶을 담는 그릇인 국토와 도시는 경제성장의 도구가 되었다. 그 결과 감성을 키우는 심미성과 쾌적성, 인간성은 사라지고, 오직 도시적 기능만 존재하는 메마른 공간으로 변했다. 새로 개발한 곳은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아파트 숲이다. 오래된 도시는 고층 고밀도의 아파트가 저층 건물의 기성시가지를 둘러싼 도너츠 형이 되었다. 아파트 공급이 건설자본의 축적이라는 상업주의에 묻혀 도시개발의 주인이 된 것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산천이 탁하고 나쁘면 뛰어난 인물이 적고, 심지도 깨끗해지지 못 한다고 했다. 시대를 뛰어넘어 국토환경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잘 나타낸 말이다. 경제적 이익만을 좇아서 경쟁적으로 개발한 국토와 도시를 사람의 감성에 맞게 뜯어고쳐야 한다. 인간의 물질적 욕구와 함께 정신적 욕구도 만족시켜야 풍요로운 곳, 살고 싶은 곳이다. 경제적 합리성은 그 다음이다. 늦기는 했지만 정부도 건축의 예술성과 품격을 높이기 위한 건설기술 및 건축문화 선진화에 나섰다. 살고 싶은 도시와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가시화되고 있다.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은 모두 건축물이다. 이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건축물을 짓는 것이 경쟁력이 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가 대표적이다. 중동의 두바이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건축물을 지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스페인 빌바오는 소규모의 쇠락한 공업도시를 세계적인 문화관광도시로 탈바꿈시켰다. 유럽의 많은 도시들은 도심의 자동차 통행을 줄이고, 보행자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주차장을 폐쇄하고 있다. 미국의 포틀랜드 시는 고속화도로와 주차장을 없애고, 이를 시민이 쉴 수 있는 공원과 광장으로 만들었다. 외국의 이러한 예가 단순히 부자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넘겨 버릴 수는 없다. 모두 다 경제적 논리에서 벗어나 사람 위주의 공간 환경을 만들기 위한 감성적 논리에 기초한 것이다. 이제는 경제적 효율성보다는 사람 위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사람이 사람답게 대접 받으며 살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건축물을 짓도록 생각과 행동의 변화가 필요하다. △박원장은 스웨덴 스톡홀름대에서 인문지리학박사학위를 받고 국토연구원 기획조정실장과 한국주택학회 회장, 재경부 국유재산관리위원회 자문위원등을 거쳐 아주대 공공정책대학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박헌주(주택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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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1.27 23:02

[타향에서] 새만금사업에 거는 국민의 기대 - 서기호

새만금사업은 사업비 2조 1600억원을 들여 부안과 군산을 연결하는 방조제 33Km를 축조하는 대단위 간척사업이다. 이 방조제를 막음으로써 여의도 면적의 140배가 되는 40,100정보가 조성되며 농경지 28,300정보가 생기고, 연간 10억톤 가량을 담을 수 있는 담수호 11,800정보를 조성하여 배후에 있는 농경지홍수피해를 막을 수 있고, 새로 조성된 농경지에 농용수를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더욱 기대되는 효과는 방조제 도로를 개설함으로써, 서해안지역 교통 환경이 크게 개선되고 부안 군산지역의 관광사업이 크게 달라지는 복합적인 기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간척지 방조제 길이는 네덜란드 쥬다찌의 방조제가 32Km로서 가장 길었는데 새만금 방조제의 길이가 33Km이니 세계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네덜란드 쥬다찌 방조제를 찾는 관광객의 관광수입이 연간 1조 2천억원 정도라고 하는데 우리는 그 곳에 비해 관광조건이 뒤떨어진다고 할 수 없으므로 상당액의 관광 수입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새만금사업은 60년대의 극심한 한발과 80년도 냉해로 쌀 절대생산량이 아주 부족할 때 착안된 사업으로 1986년도부터 약 5개년 간 경제적 타당성 분석, 환경영향평가 등을 거친 다음 주민 동의를 받아 1991년 11월에 공사를 착수하였다.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되다가 환경단체가 수질오염 문제와 갯벌살리기 등을 제기하면서 약 2년 간에 걸쳐 해외갯벌보전, 간척현장조사, 공개토론회, 정부 관계기관 수질오염방지와 친환경적 간척공사방법 보완 등을 해결한 후 2001년 5월에서야 공사를 재개하게 됐었다.그 후 다시 환경운동연합회가 새만금 사업의 무효 및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여 2003년 7월 15일 서울행정법원으로부터 집행정지 결정 판결을 받아 공사가 다시 중단되는 사태를 맞게 된다.이 결정에 대해 농림부가 즉시 항고하여 지난해 12월 21일 서울고등법원으로부터 승소판결을 받아 다시 공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이러한 법적 소송 문제없이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새만금 방조제공사는 이미 끝나 지금은 농지조성공사와 부대공사를 하고 있을 때이다. 이러한 공사지연으로 수천억원의 정부 재정이 손실을 보았으며 공사완공으로 얻을 수 있는 수백억 원의 간접소득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만일 남은 2.7㎞구간을 조기에 막지 못한다면 사업시행전보다 5배 유속이 증가한 초당 5m 정도의 빠른 바닷물이 하루 4회 정도 이 구간을 통과함으로써 이미 막은 방조제의 유실이 불가피하여 안전관리에도 어려움이 있고, 해일이나 태풍시에 방조제 피해가 가속화됨으로써 막대한 재난이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끝막이 공사는 바닷물의 흐름과 조위차가 적은 3월이 적기이며 태풍에 대비하여 보강공사의 조기시행이 필요하다. 만일 끝막이 공사마저 실패한다면 사회적 문제로 파급될 뿐만 아니라 재시공 성공여부도 불투명하므로 3월까지는 반드시 끝막이 공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토지이용계획은 국토연구원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구체화해야 할 것이며 공론화 과정에서 환경단체가 제기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여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수년전까지 부안 개화도 간척지 쌀은 미량요소가 많은 알카리성 토양에서 생산되어 전국적으로 그 미질을 인정받아 인기가 높았는데, 새만금 간척지에도 농촌진흥청이 시험적으로 재배하여 성공하고 있는 탑라이스 재배방식을 도입하여 대규모 간척지 쌀을 생산하여 소비시장에 내놓는다면 큰 각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해안 풍속이 아주 세고 주변여건이 풍력발전소 설치에 적합하므로 풍력발전에 의한 전력공급도 검토할만하다. 뿐만 아니라, 새만금 신항이 건설되면 그 입지조건으로 보아 인근 중국은 물론 세계의 막대한 물류가 이곳으로 모아질 수 있기 때문에 신항건설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 또한 클 수밖에 없다.국가개발전략의 세계적 권위자인 데이비드 스미스 마카오대학 총장(전 하버드법대 학장)은 새만금 개발 지구를 둘러보고, 새만금 지구는 한국을 넘어 동북아 경제중심이 될 훌륭한 여건을 갖춘 곳이라고 평가하면서, 첨단농업, 세계적 관광지 건설 이외에도 IT 같은 첨단 기업과 교육, 문화, 예술 분야를 종합적으로 수용한다면 한국이 세계 일류 선진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은 앞으로 새만금 지구를 어떻게 개발해 나가야하는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서회장은 전주고,서울대를 졸업하고 FAO농업전문가,농림부 종자관리소장,식물검역소장과 식품연구원 감사,농기계조합 전무를 역임했다/서기호(한국종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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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1.20 23:02

[타향에서] 농부의 마음, 생명의 마음 - 신홍수

지난 해는 우리 농민의 삶이 얼마나 극단적으로 내몰렸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쌀수입 개방과 농민 집회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 및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의 사망, 호남 지역의 3000억 이상의 손실을 가져온 폭설 등 그야말로 농민의 삶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기상 관측 이래 100년만의 폭설량으로 기록된 지난 폭설은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경제를 더 어렵게 했다. 정부의 뒤늦은 특별재난지역 선포로 농민의 시름은 그 골이 더 깊어졌으며, 아직도 그 피해 복구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하지만 이러한 현상에 가려져 본질적인 문제가 퇴색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농촌 삶에 대한 정부와 국민 그리고 농민의 다각적인 협력과 대책 마련이 더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 모든 문제의 중심에는 피폐해진 농촌 경제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농촌 경제는 급변하는 세계 시장경제 속에서 부수적인 부분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또 십여 년 전 쌀 수입 개방이 시작된 이후, 현재 우리 농업은 그 어려움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WTO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 협상과 같이 외국 농산물에 대한 낮은 관세를 부과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현재의 농업통상정책은 종전의 UR 협상보다도 훨씬 더 개혁적인 쌀시장개방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감안할 때 폭설과 같은 자연 재해는 그야말로 농촌민에게는 재앙에 가깝다. 농촌 경제를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정책들이 정말로 튼튼했다면 이러한 상황이 재앙으로까지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농촌민의 삶의 질을 보장하고 개선할 수 있는 농촌복지 정책의 보다 현실적인 수립이 요구된다. 농업분야의 성장과는 달리 소득은 그 전보다 더 낮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농촌 경제의 회생은 농민 스스로의 자생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나라 농업의 특성상 몇몇 기업농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농민들이, 대량 생산 형태가 아닌 영세농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에서, 농촌경제를 살리겠다는 확고한 정부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예를 들어 미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 국가에서 이미 1980년대부터 도입하여 실행해온 농업직접지불제와 같은 정책을 살펴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 역시 2001년부터 논농업직불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현재 이 사업을 보다 장기적이고 현실적인 농업직불제로 확대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특히 친환경 영농 실천을 위해 마련한 친환경농업직불제의 경우 그 규모가 농업민 수에 비하여 턱없이 작고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정작 보조를 받을 수 있는 농가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정책의 실효성과 더불어 더욱 중요한 것은 농업에 대한 인식의 변화일 것이다. 농업을 생명공학과 같은 첨단 사업과 분리되거나 낙후된 것으로 보는 인식 태도가 문제이다. 오히려 농업이야말로 이러한 첨단 과학기술과 결부될 때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을 수 있으며, 앞으로 세계의 환경문제를 고려할 때 더욱 중요한 의미를 띨 수 있다. 농업이 시장경제에서 높은 이윤을 내는 산업은 아닐지 몰라도,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농촌은 보다 다양한 생명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제 3의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이 있다. 필자 역시 농민의 자식이며,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이 농민이다. 농업이라고 하는 생명의 경작이 무너진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신홍수(재경 남원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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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1.13 23:02

[타향에서] 자연재해와 호남 푸대접 - 이규일

지난 12월 중순, 꾀벽쟁이 친구의 고명딸 결혼식이 있어 참으로 오랜만에 고향엘 다녀왔다.일가 친척들을 만나 인사도 드릴겸 결혼식 하루전에 갔다가 친구집에 들렀다. 하도 오랜 만에 온 고향 이어서 인지 어려서 늘상 다니던 길이 었지만 새집이 들어서고 큰길이 나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사람에게 내일 혼사를 치르는 아무개 댁이 어디냐고 물었다. 젊은이는 아저씨 어디서 오셨어요하고 집앞까지 안내했다. 친구집에 들어서니 반갑게 맞아 주었다. 술상을 마주하고 앉아 옛이야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몇잔술에 취기가 돌았다. 친구가 뜬금없이 고향에 온 소감을 물었다. 나는 옛 사람의 <향음(鄕音)>이란 시를 빌어 내 생각을 말했다. 어려서 집을 떠나 늙어 돌아와 보니(少小離家 老大廻)고향은 변함이 없는데 귀밑머리만 희였구나(鄕音無改 ?毛衰)어린이들은 나를 보고 알아보지 못하는데(兒童相見 不相識)졸졸따라다니며 아저씨 어디서 오셨오하고 묻네(笑問客從 何處來)솔직히 말하면 현대인은 고향을 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촌놈 서울에 와서 출세했다는 추임새에 취해서 말이다. 하지만 뉘라서 어머니 품처럼 따뜻한 고향의 정을 쉽게 잊겠는가.해마다 설날추석 명절에 이어지는 귀향 행렬이 우리들의 고향유정을 대변하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튿날은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새삼 고향의 정을 듬뿍 느꼈다. 창밖에는 흰눈이 내리고 있었다. 겨울 경치에 박차를 가하고 있구나!쾌재를 부르면서 집에 왔다. TV를 켰더니 폭설로 호남 고속도로가 봉쇄되었다는 뉴스가 불과 몇시간전 상쾌한 기분을 잡치게 만들었다. 광주정읍고창부안등지의 폭설 피해가 집중 보도 되었다. 왜또 호남 지방만 나도 모르게 원사(怨辭)가 터져 나왔다.1976년에는 7월 한달내내 가믐이 계속되다가 8월1일 전국에 단비가 내렸다.그런데 호남지역에만 비한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이지역 농민들의 애타는 심정을 중앙일보 <역광선(逆光線)>은 8월2일자 신문에 중부영남영동은 해갈, 호남은 빼고, 천심의 푸대접을 어찌할꼬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평소 정부의 푸대접에 불만이 높았던 주민들은 호남을 하늘 조차 푸대접하는 버림받은 땅이라고 했다며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청년회의소등이 주동, 지역 시민 단체들까지 합세해 해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내고"중앙일보 안보기와 삼성제품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이 사건 때문에 호남출신 중앙일보기자들이 총동원, 전북도민 민심 잡기에 나선일이 있다.필자도 후에 전북도지사를 지낸 조남조(趙南照)등과 함께 전주에 내려와 <역광선>의 본뜻은 하늘도 야속하다는걸 강조한 것이라고 관계요로에 해명하느라 진땀을 뺀일이 있다. 당시 중앙일보는 주필이 목포분이었고, 편집국장이 전주고 출신이었으며, 사회부장이 남원 사람이어서 호남푸대접을 부추길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와 어는 다른법. 천심(天心)의 푸대접이 문제였다. 언론의 표현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미 이때부터 알고 있었던 터지만 호남폭설과 역광선사건이 오버랩되어 왠지 뒷맛이 씁슬했다. 그렇다고 정말 하늘탓만 할 수는 없는 일. 지금부터라도 정확하게 피해현황을 파악하고 원인을 규명,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비닐 하우스가 부실하게 지어졌다면 튼튼하게 짓고, 무거운 눈 무게도 넉근히 견딜수 있도록 버팀목을 받치고, 둥그스름한 지붕이 문제였다면 가파른 세모지붕도 설계할 수 있는 일이다. 자연 재해라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서는 안된다. 똑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만이 호남 푸대접을 물리치는 길이다. 쉘리는 <서풍부(西風賦)>에서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면 산너머 남쪽에서 불어오는 훈풍이 폭설피해를 녹여줄 것이다. /이규일(미술평론가)◇이규일씨는 군산 임피출신으로 중앙일보 주간부문화부차장, 『월간미술』부장주간등을 역임하고 현재 서울 시립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전북도립미술관 운영자문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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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01.06 23:02

[타향에서] 지방행정의 '경영마인드'

농업개방 자유경쟁시대를 맞아 농촌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다. 정부에서 지난 10여 년 동안 농업발전을 위해 42조 원을 투입했다는데도 농촌의 현실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앞으로도 무려 119조 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을 투자하겠다고 한다.투자만 많이 하면 농업이 정말 회생할 수 있단 말인가.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효율적인 투자와 관리를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 재원을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에 따라 적재적소에 적정규모로 투자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 예산을 눈먼 돈이라고 생각하고 표의 논리에 의한 선심성 배분이나 전시성 투자가 되면 안 된다. 전국 어느 농촌을 가나 농공단지라는 게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가동되고 있는 공장이 평균 40% 미만이라고 한다. 90년대 초 문민정부 정책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서 너도나도 앞 다퉈 농공단지를 무리하게 조성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농공단지의 적정규모, 사업성 및 시장전망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 실행했고 사후관리도 허술했기 때문이다. 실로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것이다.지난여름 어느 농촌체험마을이라는 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휴가를 보낸 적이 있다. 숙박시설은 지자체에서 4억여 원을 지원하여 만들었고 별관 농촌체험관은 2억여 원을 들여 지었다는 현대식 시설이다. 그런데 농번기로 바빠서인지 모르지만 잠자고 먹는 것 이외 농촌을 체험할 수 있는 마땅한 프로그램도 안내자도 없었다. 하드웨어는 갖추어져 있는데 소프트웨어는 없는 격이다.하기야 도회지 사람들이 농촌 풍경을 보고 밤하늘 초롱초롱 빛나는 별을 보는 것만으로도 농촌체험이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뭔가 색다른 체험거리가 없이 외지인들이 또 다시 찾아오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인 듯싶다. 그렇게 되면 그 시설은 농촌 소득증대에는 별 기여함이 없이 재원낭비에 그치기 십상이다. 관할 행정기관에서는 체험마을 시설을 만들어 준 것만으로 만족하고 그 이후는마을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 것이 바로 우리 행정의 맹점인 것 같다. 행정기관은 농촌이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운용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잘 관리해야 할 것이다. 일반 기업의 경우를 보자. 한 사업을 실현키 위해 치밀한 사업성 조사를 하고 시설투자 재원을 마련키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좋은 제품이 나오게 하고 판촉홍보는 물론 사후 A/S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제품이 잘 안 팔리고 회사는 결국 망하고 만다. 효율적 투자를 하고 반드시 이익을 창출해 내려는 노력과 의지 그것이 바로 경영마인드이다.공공행정을 하는 사람들은 정책의 타당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정책을 수립하고 재원을 투입하는 데 까지는 잘 한다. 그러나 그 이후 정책을 효율적으로 실현하여 소기의 투자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소홀한 것 같다. 이는 아마도 투자 효과를 거두지 못할 때 그 기업은 결국 망한다라는 투철한 기업적 경영마인드가 부족한 탓 아닌가 싶다.농촌이 농사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다. 특화산업을 육성하고 문화자산이든 자연자산이든 지역특성에 맞는 관광 상품을 개발하여 외지인들이 많이 다녀가게 해야 한다. 이에 따라 지자체간에 경쟁적으로 각 종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부디 혈세의 낭비 없이 농촌경제에 큰 보탬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그러려면 먼저 구태의연한 행정의식에서 벗어나 기업적 경영마인드를 갖춰야만 한다. 그 것은 먼저 국가 예산을 내 돈같이 아깝게 생각하면 된다. /박상모(재경임실군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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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23 23:02

[타향에서] 전북발전을 위한 SWOT분석

기업 내부의 역량이라는 측면에서 강점과 약점을 찾아내고, 외부 환경의 변화 속에서 그 기회와 위기을 찾아 조합하여 전략적 대안을 세우는 방법으로 SWOT 분석이 있다. 여기서 SWOT 은 Strength(강점), Weakness(약점), Opportunity(기회), Threat(위기)를 뜻한다.지역 발전전략을 세울 때도 그 지역이 처한 강점, 약점, 기회, 위기를 분석하여 반영할 수 있다. 전북발전을 위한 전략을 SWOT분석을 적용해 세워본다. 먼저 전북의 강점(Strength)은 과거 식량 절대 부족시대에는 넓은 농지였을 것이나 지금은 무엇보다 관광자원과 덜 오염된 환경, 넓은 지리적 공간일 것이다. 남원의 국악과 춘향, 고창의 국악과 선운사, 임실의 오수 의견과 성수면 청계동 이성계 기도처, 정읍의 내장산 국립공원, 진안의 마이산과 인삼, 부안의 변산반도국립공원과 젓갈 등은 전북이 가지고 있는 유리한 관광자원들이다. 이러한 관광 자원은 현재대로는 한계가 있으며 시대적 요구에 맞게 개선 시켜야 한다.약점(Weakness)은 인구의 고령화, 생활환경의 취약, 지역 성장 동력 확보 미흡, 쌀 중심 농업 위주의 산업구조 등이다. 이러한 상황은 지역 생산성 저조의 원인이 되고, 첨단 산업 유치에 장애 요소가 된다. 그리고 젊은 인력의 부족은 산업 유치에 걸림돌이 되고 산업 취약에 따른 일자리 부족은 인구 유출 심화와 인구 유입 장애라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된다. 특히 농업은 식량 공급 산업 이라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소득 증대 잠재력이 낮아 지역 발전에 대한 기여율이 낮은 편이다.기회(Opportunity)는 중국의 발전, 혁신도시 건설, 고속철 건설, 새만금 건설 등을 들 수 있다. 중국과 인접하고 있는 전북은 중국 현지에 직접 진출하기 보다는 중국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편이 낫다. 그리고 전북은 인력, 기술, 제도 등에서 중국보다 사업 성격상 유리한 한국을 선호하는 유럽계 기업을 유치하는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앞으로 추진될 혁신도시가 정주생활 여건에서 볼 때 선진국 수준에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이며 이로 인해 인력 유입이 가능해 질 것이다. 위기(Threat)는 행정복합도시 건설, 무역 개방화이다. 행정복합도시 건설로 사업 수요와 일자리가 늘어남에 따라 행정복합도시에서 사업과 취업을 위해 지역 인구가 대량 유출 될 수 있다. 행정 복합도시는 전북에 발전의 기회라기 보다는 오히려 대전시, 오송지역을 중심으로 충남북 주변 권역만 발전시킬 가능성이 높다. 또한 무역 개방화 확대는 저렴한 외국 농산물의 대량 수입으로 전북지역의 농산물 판매 입지를 크게 위축시켜 농업의 황폐화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전북이 지역 발전을 위해 풀어야 할 당면 과제는 고속철과 새만금 조기 완공,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체류형 관광 인프라 개선, 최고 환경을 지향하는 그린(green) 전북 구축, 지식산업 유치, 지역 주민의 적극적인 사고 함양, 긍정적 위기 의식을 통한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강수기(한국식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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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16 23:02

[타향에서] 인연(因緣)

수년전 부친의 49제를 지내던 도중, 제(祭)를 주관하는 분으로부터 이제 아버지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니 108배로써 마지막 배웅을 해드리는 것이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떨결(?)에 108배를 하였다. 그런 연(緣)으로 아침마다 절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를 불문하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새벽 5시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있다. 한여름이면 부였게 먼동이 트기 시작한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한겨울에는 캄캄한 어두움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동쪽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하면서 맨손체조를 마치고 108배를 하고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을 느낀다. 살아가면서 적선(積善)은 고사하고 오히려 업보(業報)만 더 짓고 살아가는 어리석은 중생이지만, 이것저것 고민이 많았던 청소년기를 별 탈 없이 공부에 매진하도록 보살펴주신 것에 대하여, 당시의 가정형편으로는 대학 진학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음에도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신 것에 대하여, 그리고 대학졸업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하여주신 것에 대하여, 또 어렵게 검사장으로 승진한 뒤 정겨운 고향 땅에서, 그리운 고향사람들과 함께 지내게 하여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를 드리면서 108배를 시작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님을 비롯한 조상님과 고향에 홀로 계시는 어머님을 위하고, 남편의 화급한 성격을 무난히 받아넘겨주는 집사람과 결혼 후 수년 만에 어렵게 얻은 아이들의 건강과 학업을 위하여도 기도를 드리고, 또 몸담고 있는 검찰과 더불어 살고 있는 주위사람을 위하고, 한편으로는 고향발전을 위하여 한배, 한배 절을 하다 보면 어느새 108배가 끝난다. 그런 뒤 두 손 모아 기도드리는 것이 하나 더 있다.오늘 하루를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하다가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말 한마디 나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200명? 아니 - 너무 많나? 그러면 100명? 아니! 필자의 경우는 특별한 모임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20명이 넘지 않는다. 독자들도 한번 헤아려 보시기 바란다. 아무리 마당발(?)이라 할지라도 정치인이나 영업직에 있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50명이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느껴지는 모든 희로애락(喜怒愛樂)과 길흉화복(吉凶禍福)은 하루에 만나는 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되어 진다는 것이다.그렇다면 오늘 하루에 만나는 사람들은 얼마나 나에게 귀하고 귀한 존재인가?! 옷자락 한번만 스쳐도 전생에 수만겁의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는 말이 있듯이, 오늘 하루 중에 만나서 말 한마디 나누는 사람은 그야말로 나와 아주 귀중한 인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만난 사람이 혹여 나를 슬프게 하거나 노여워하게 할지라도 전생(前生)에 얼마나 귀중한 인연이었기에 오늘 그 사람을 만났겠는가!를 먼저 생각하고, 오늘의 인연이 전생에 지었던 나의 업보를 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오히려 그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짐은 어떨지?! 물론 육신(肉身)을 가진 인간으로서 해탈(解脫)의 경지에 이르거나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르지 아니하고서도 매사에 그렇게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기가 어렵다 할지라도 그와같은 생각을 하루에 단 한번이라고 해본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지난 7월부터 시작된 독자와의 인연도 이번 달 칼럼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게 된다. 그러나 지면(紙面)으로 연결되는 인연만 끝나는 것이지, 마음과 마음으로 연결되는 인연은 영원하리라 생각된다. 그동안 바쁘신 시간을 할애하여 졸고(拙稿)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귀하게 맺어진 독자와의 인연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할 것을 약속드리며, 독자님과 독자님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한다. /이동기(대검찰청 형사부장, 전 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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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9 23:02

[타향에서] 머리에 단풍들었네!

단풍이 참 곱게 들었다. 노랑과 빨강으로 현란하게 치장한 가을 산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머리에 염색을 하던 아내가 금년에는 바쁘다는 핑계로 염색을 그만두었다. 아마 게으른 탓에 염색시기를 맞추지 못하다 보니 희끗희끗 보이는 모습이 지저분하여 아예 염색을 포기한 것이라 생각된다. 나는 아예 처음부터 염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염색을 도중에 그만 둔 아내는 머리 한 켠이 허옇게 드러나는 게 별로 유쾌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친구로부터 단풍이 곱게 들었다는 말을 들었단다. 가을 산 이야기로 알고 맞장구를 치다 보니, 어느 잡지에 나온 아내의 사진을 본 친구가 흰머리가 드러난 모습을 보고 그렇게 표현을 하더라고 한다. 그런데, 그 말을 들으면서 흰 머리가 마치 때맞추어 핀 꽃이나 열매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무척 편안하더란다.듣고 보니 그 표현이 참 곱고, 부드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같은 말이라도 표현에 따라서 듣는 사람에게 큰 차이를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 싶었다. 너 흰머리 많이 늘었다.고 하면 마치 힘겨운 인생살이에 지쳐버린 사람처럼 느껴져서 어깨에서 힘이 쭉 빠지겠지만, 단풍이 곱게 들었네!하면 때맞추어 열심히 할 일을 한 상징을 드러낸 것처럼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하고, 스스로 대견스러워 가슴이 활짝 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천명의 나이에 들어선 사람도 이럴진대, 아직 어린 아이들이야 오죽 더 하겠는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자녀들의 사춘기는 자기자신보다 훨씬 유난스러워 보일 것이다. 그럴 때 너는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렇게 유난스럽게 구느냐?고 하는 것과 너는 아빠, 엄마보다 훨씬 에너지가 많은 것 같다.고 하는 경우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정서에는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예민한 사춘기의 아이들은 누굴 닮았느냐?는 말에 그럼 내가 부모님의 아이가 아니란 말인가?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에너지가 많다.고 하면 스스로에게 잠재된 힘과 능력을 암시받아 큰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가질 것이다. 옛날 어린 시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덕담을 해 주시곤 했다. 아직 장난꾸러기 어린 아이들에게 대통령감이라거나 장군감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흔하게 듣는 말들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사이, 그러한 말들이 너무 권력지향적이라거나 허무맹랑하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러한 어른들의 말씀은 권력을 잡으라거나 허풍을 떨라는 말씀이 아니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왕자병, 공주병이 있다고 하는데, 그들의 이러한 취향에 대하여서도 비아냥거릴 것이 아니라, 정말 왕자처럼, 공주처럼 살라고 덕담으로 돌려주었으면 좋겠다.사람의 뇌세포는 어렸을 때 기억된 내용은 더 오래가고, 나이가 들어서 겪은 일은 일찍 잊어버리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어 기억력이 쇠퇴해지고 치매가 걸려도 어렸을 때의 기억은 남아서 아이처럼 된다고 한다. 그러니, 아이들일수록, 젊은이들일수록 더욱 오래 기억될만한 일들을 만들어주고, 오래 기억되어도 유쾌한 말들을 자주 들려주어야겠다. 그래야 그들이 나이가 들어 머리에 단풍이 곱게 드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도 좋았던 기억들 속에서 따뜻한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오대규(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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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2.02 23:02

[타향에서] CEO형 자치단체장의 리더십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10년이 지났다. 그 공과(功過)와 명암은 지역에 따라 다르다.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적지 않은 지자체 수장(首長)들이 각종 비리로 중도 하차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비중이 전국적으로 무려 27%에 달하며 우리 전북만 해도 10여 명이 낙마하였단다. 우리 전북뿐만 아니라 타 지역도 마찬가지라고 자위하기엔 너무도 기가 막힐 노릇이다. 농촌이 지금 얼마나 어려운가. 농업개방시대를 맞아 더 이상 정부의 보호막에만 의존할 수도 없다. 이제 고품질 고부가가치 영농과 판로개척 그리고 지역 특화사업 등 혁신적인 자생노력이 더욱 절실한 때다. 그런 노력을 선도하는 책임자가 바로 지자체 수장이다. 그는 시대에 맞는 지역발전 비전을 제시하고 주민의 호응과 일체감을 조성하여 실천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먼저 휘하 공무원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공정한 인사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만사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때 비로소 가능하며 그 신뢰가 바로 리더쉽의 핵심이다. 그런데 수장이라는 자가 염불보다는 잿밥에 눈이 멀어 매관매직이나 이권개입을 일삼는다면 과연 리더쉽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까. 인사권을 쥐고 있는 상사(上司)로서 공무원들에 대한 영(令)은 어느 정도 유지되겠지만 능동적이고 열렬한 호응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부쩍 CEO라는 단어가 유행이다. 지난 대선 때 후보들마다 "CEO 마인드를 가진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였다. 지자체 수장들도 CEO형 단체장이 되겠다고 곧잘 말한다. CEO(Chief Executive Officer)란 최고경영자라는 뜻이며 그의 역량에 따라 조직의 생사와 성패가 좌우된다. 그 만큼 매우 중요한 자리이며 사회 모든 부문에 기업 경영학적인 원리가 보편화 되었다. 대통령, 도지사, 시장, 군수 등은 조직의 대소(大小) 차이일 뿐 모두가 CEO이다. 우리는 동창회장 하나를 뽑을 때도 신중히 한다. 덕망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고르기 위해서고 그런 사람만이 동창회를 잘 이끌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수많은 주민을 이끌어가는 지자체 수장은 과연 어떤 사람이어야 하겠는가. CEO의 덕목(德目)에 대해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비젼이 있어야 한다", "위기관리 능력과 구성원 간의 이해를 조절하고 통합할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전문성과 도덕성이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덕목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은 '리더쉽'이다. 리더쉽이란 사람들을 목표를 향해 능동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전쟁터에서 부하들로 하여금 사지(死地)를 마다 않고 돌진케 하는 지휘관! 그러나 상사의 직권적 명령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부하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내는 힘! 그것이 바로 진정한 리더쉽이다. 그런 리더쉽을 위해 CEO는 어떤 기본 덕목을 갖추어야 될까. 그 진리는 너무도가까이에 있는 것 같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간미,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소신, 불의에 절대 타협하지 않는 의연함, 매사에 솔선수범하며 근검절약하는 생활태도, 헛소리 안하는 언행일치, 화목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 사회 구성원으로서 투철한 공동체 의식 등 매우 기본적인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덕목은 다름 아닌 높은 도덕성과 풍부한 감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내년이면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우리 고향이 그런 기본 덕목에 역동성까지 겸비한 CEO형 지도자를 선택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박상모(재경임실군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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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25 23:02

[타향에서] 항공 인프라와 지역발전

나는 업무와 관련하여 지방 출장을 자주 간다. 가까운 거리는 승용차를 이용하고 먼 거리는 비행기를 이용한다. 그런데 출장가게 되는 지방 대도시 중 대전과 전주가 가장 불편하다. 부산, 포항, 광주, 여수는 공항 가는 시간을 감안하더라도 시간은 비슷하게 걸리고 편안하다. 안전 운전을 하게 되면 대전까지는 약 2시간, 전주까지는 보통 3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거의 일상적이 되어버린 고속도로 정체를 고려한다면 전주-서울은 4시간 이상 걸리는 경우도 흔하다. 몇 시간 동안을 좁은 공간에 가쳐 있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더구나 단일 출장을 하게 되면 왕복 7-8시간을 차 안에서 지내야 한다. 어쩌다 시간 넉넉하게 다니는 경우이면 상관없다. 그러나 현대인들, 특히 기업인들의 경제 활동 에서는 시간이 돈이며 이동으로 발생하는 피로를 최소화 하고자 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도로, 철도, 항만, 공항 등과 같은 사회 간접자본은 인적, 물적 접근성을 높여 주어 기업 활동과 사람의 왕래를 활발하게 해줌으로서 경제발전을 촉진한다. 이러한 시설은 양적으로 충분해야 하지만 질적으로도 우수해야 되며 다양해야 된다. 보다 빠르고 편안하고 다양한 것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특히 그렇다. 지금 전북에서는 김제공항 필요성 여부를 놓고 아직도 일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반대 하는 모양이다. 내세우는 주된 이유는 고속도로와 철도 등 대체교통 수단이 충분하고 항공 여행 수요도 부족하다는 이유 이다. 인구도 적고 대체교통 수단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 일리가 있는 말이다. 전북에는 철도로 호남선 복선 전철이 지나가고 전라선 단선 비전철이 있다. 왕복 4차선 호남고속도로와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군산에는 과거 민간이 일부 시설을 사용하던 공군 비행장이 있다. 양적으로 이만하면 현재의 전북 인구에 비하면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타 지역에 비하여 외국인, 기업인, 관광객들의 접근성 면에서 비교 열위에 있다. 특히 철도가 그렇다. 앞으로 호남선 고속 전철이나 전라선 복선 전철이 건설된다고 하나 10년이나 지난 후 이야기이다. 그나마 수요부족과 경제성 논란이 있다.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는 고속전철이나 새만금 공항 타령하는 동안 전북인구는 더욱 줄어들고 경제는 더욱 낙후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고속철도도 필요 없을 것이다. 아마 일반 저속 철도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북은 서울과의 교류 뿐 아니라 영남, 강원, 제주, 북한 등과의 교류에도 항공편이 중요하다. 나가서는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지역과의 교류확대도 고려해야 한다. 혁신도시도 5-6년이면 완성된다. 서울에서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청주는 공항이 있어서 행정복합도시 입지 결정에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되었고 거기에다 KTX 정거장 까지 들어서 다양한 교통수단이 집중되어 기업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이 되어 가고 있다. 다양하고 효율적이며 안락한 교통의 요지가 되어야 기업과 사람이 모여들어 지역경제가 발전하지 않을까? 인프라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 김제공항은 지금 건설되어야 한다./강수기(한국식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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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18 23:02

[타향에서] 등산 유감(有感)

지난달 설악(雪嶽)으로부터 시작된 단풍능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와 이제는 한반도의 남쪽지방에 머무르고 있다. 울긋불긋 곱게 차려입은 산아가씨가 어서 놀러오세요.라고 손짓하며 부른다. 그리하여 주말이면 이산저산에 올라가 일주일의 피로도 풀고, 새로운 원기를 얻어가지고 내려오는 선남선녀들로 산행길이 막힐 정도이다. 특히 주5일 근무를 하다보니 주말의 여가활용으로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더욱 많아진 것 같다.필자는 원래 약간의 평발끼(?)가 있어 걷는 것을 무척 싫어하다보니 등산은 감히 생각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1993. 3경 우연한 기회에 전주지검 군산지청 직원들과 함께 구례 화엄사에 출발하여 코재를 거쳐 노고단까지 올라가는 등산다운 등산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그 때 평소의 운동부족 탓인지 남들은 쉽게 올라가는 길도 필자는 너무나 힘들게 올라갔고, 코피를 흘리지 않고는 올라가지 못 한다 하여 ?코재?라고 이름이 붙여진 언덕길을 오를 때는 그야말로 입에서는 단내가 나고 코에서는 코피가 날 정도로 힘들게 올라갔다. 그랬더니 이까짓 산하나 제대로 오르지 못하면서 무슨 자격으로 인생의 험한 산을 오르내릴 수 있겠는가 하는 오기(?)가 발동하여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산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어느 것에 한번 몰두하면 끝을 보고 싶어 하는 성격 탓에 주말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산에 가는 산사람이 되었다.그리하여 어느 해 여름에는 휴가가 시작되자 자동차 트렁크에 텐트와 큰 배낭, 작은 배낭에 쌀과 된장, 고추장 등 부식류, 그리고 라면과 소주 몇병을 싣고 조계산(전남 승주), 가야산(경남 합천), 팔공산(대구), 지리산(피아골, 뱀사골) 등을 돌아다니다가 1주일 만에 집에 돌아온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전국의 산을 다니다보니 어느새 지리산(천왕봉) 11회, 설악산(대청봉) 7회, 한라산(백록담) 5회 등정에 태백산, 치악산(각 강원), 소백산, 월악산, 계룡산, 속리산(각 충청), 청량산, 주왕산, 비슬산(각 영남), 무등산, 월출산, 두륜산(각 전남)에 울릉도 성인봉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의 유명한 산 중에서 안가본 산이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렇게 많이 산을 가보아도 우리 전북에 있는 산만한 산은 없는 것 같다. 특히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가슴속 깊이 느껴지는 포근함에 있어서는 전국의 어느 산도 우리 고향의 산을 따라오지 못한다. 우리 도내에는 산세가 수려한 곳이 많은데, 각 지역별로 보면 전주와 완주, 김제에는 모악산, 정읍에는 내장산(신선봉), 남원에는 지리산(천왕봉, 반야봉), 순창에는 강천산, 임실에는 성수산, 고창에는 선운산(국사봉), 진안에는 마이산과 운장산, 장수에는 장안산과 팔공산, 완주에는 대둔산, 부안에는 내변산(쌍선봉), 무주에는 덕유산과 적상산 등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산이 있고, 또 그 산들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무릇 산악인들 중에는 전국의 3대 계곡(한라산 탐라계곡, 지리산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 계곡)을 다녀오지 아니하면 등산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디 그곳만이 산이고, 꼭 그곳을 다녀와야만 산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우리 고장에 있는 산도 모두 아름다운 산이다. 또한 금년에는 적당한 수량과 적당한 일교차로 근래에 보기 드물게 단풍이 절경이라고 한다.고향사랑이 뭐 별것이겠습니까? 내 고장 산에 있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고향사랑이 아니겠는가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친구와 함께, 가족과 함께, 때로는 연인과 함께 우리 고장, 우리 주위에 있는 산에 올라 고향사랑 마음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함께 길러보심이 어떨지?! /이동기(대검찰청 형사부장, 전 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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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11 23:02

[타향에서] 추위를 녹여주는 것들

이른 아침 들녘에 하얗게 서리가 내린 날, 달력을 쳐다보니 바로 상강이었다. 그리고, 이내 기온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김장용 배추를 볏짚으로 묶어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아, 이제 겨울이 다가오는구나!어린시절, 추위가 다가오면 월동준비를 하던 생각이 났다. 제일 중요한 것이 땔감이었다. 연탄을 사서 광에 쌓아두어 적당히 습기가 건조되어야 아궁이에서 가스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겨울이면 연탄가스 중독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났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다음이 방문에 창호지를 갈아붙이는 일이었다. 방문을 떼어내 문살에 엷은 풀을 칠한 다음 창호지에 물을 뿜어가면서 팽팽하게 붙이고, 그 한 귀퉁이에 봄, 여름에 말려놓은 예쁜 꽃잎들을 붙인 다음 창호지 한 겹을 더 붙여 한 겨울에도 꽃잎을 바라볼 수 있게 한 후 문 가장자리에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문풍지를 붙였다.그리고, 먹거리 준비가 되면 월동준비가 끝이었다. 추수한 벼를 사두기도 하고, 고구마 가마니를 창고에 사들이기도 하였다. 가장 클라이맥스가 김장이었을 것이다. 한 쪽에서는 큰 솥을 걸어놓고 불을 떼면서 언 손을 녹여가며배추를 절이고, 씻고, 양념을 버무려 집안 여자 어른들이 모여 앉아 백포기가 넘는 김치를 담그고, 남자 어른들은 땅을 파 겨우내 김치를 보관하여 둘 독을 묻던 일이 어린 시절 기억에는 그야말로 잔칫날 풍경으로 남아있다.이제는 난방이야 아파트 관리비를 조금 더 내면 되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방문이 닫혀 있기는 마찬가지이니 계절이 바뀐다고 따로 창호지를 갈아붙이는 일이 있을 턱이 없다. 김장이라고 해 봤자 따뜻한 아파트에서 김치냉장고에 십여 포기의 김치를 담는 일이 고작이다. 그나마 상당수는 입맛에 맞는 김치를 주문하기도 하였는데, 금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김장을 직접 하겠다는 집이 많은 모양이다. 굳이 다로 월동준비를 하지 않아도 겨울을 지내기에 큰 불편이 없건만, 어쩐지 겨울은 더 길고, 더 추운 듯 하다.창호지를 바르고 김장을 하면서 이웃과 친척들이 모여서 나누던 담소, 그 사이를 뛰어다니며 야단을 맞기도 하고, 사고를 저지르기도 하였지만, 맛있게 양념한 김칫속을 한 입 받아먹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사이에서 흐르던 하얀 입김들이 추위를 녹였던 기억이 어슴프레 남아 있다.아마 추위를 녹이는 것은 난방기구나 철저히 바람을 차단하는 육중한 문들만은 아닌 모양이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서로 부딪히면서 나누는 정감들이 긴 겨울을 더욱 짧게 하고, 매서운 추위에도 웃음으로 맞서게 하는 온기를 발생하였던 것이 아니었던가 싶다.겨울의 입구에서 추위를 녹이고, 겨울을 빨리 보내버릴 우리 이웃과의 따뜻한 만남을 생각해 본다. 머지않아 길에는 구세군 자선냄비가 등장할 것이고, 산타를 맞이할 준비를 시작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라도 이웃들이 겨우살이 준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성가신 간섭을 한 번쯤 시도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연히 여유 있게 준비된 월동용품을 미리미리 나눌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 같다./오대규(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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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1.04 23:02

[타향에서] 농촌, 향우회를 자산화 하라

지난 여름 고향에 60년만의 폭우로 큰 수해가 발생하여 수재의연금을 모금할 때의 일이다. 내가 맨주먹만 쥐고 고향을 떠날 때 누가 쌀 한 톨 도와줬느냐며 모금에 냉정한 향우가 소수 있는가 하면 좋은 일에는 못가도 불행한 일에는 참여 해야지요하며 선뜻 응해 주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중에 모금 통장을 찍어보니 그 냉정했던 향우 중 한 분은 의외로 상당한 금액을 보내온 것이다. 고향이란 그런가 보다. 청소년 시절의 추억으로 고향이 그립다가도 가난했던 고달픔이 떠오르면 잠시 가슴이 메어지며 애증(愛憎)의 마음이 교차되는 곳! 그것이 바로 고향인 듯싶다. 그러나 결국은 고향 산천의 아름답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르고 마음은 온통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 상당한 금액을 보내준 의외의 향우도 그런 마음이 교차되었을 것이다.그렇게 좋은 우리들의 고향이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농업개방화 시대를 맞이하여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만 간다.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 또한 심각한 문제다. 재외 향우들이 고향을 좀 더 사랑하고 실제 도울 수 있는 길은 없을까?흔히 말하는 애향론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고향의 얼을 계승하며 굳세게 사는 것, 고향의 인재 양성을 돕는 것, 좋은 고향 지도자를 뽑는 데 기여하는 것, 그리고 고향 농산물을 애용하는 것 등이다. 그중에 고향 농산물 애용은 농촌이 직면한 어려움을 볼 때 먼저 특별한 관심을 가져할 일이다. 바야흐로 외국산 농산물이 밀려오고 정부의 쌀 수매제도는 폐지되는 등 우리 농촌은 이제 스스로 판로 개척에 나서야 한다. 향우들이 고향 농산물을 적극 애용하고 홍보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재 우리 임실군 주민 수는 3만여 명인데 재외 향우들의 수는 1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서울에만 우리 군 출신 향우들이 수만 명은 될 것이다. 수만 명이 하루에 만 원 어치의 고향 농산물을 먹는다면 하루 수억 원이 고향에 내려가고 한 달이면 수십억 원이 내려갈 수 있다. 실로 막대한 금액이다. 고향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 절대 어렵지 않다. 고향에 전화나 인터넷 주문 한 번이면 택배로 집까지 배달된다. 기왕에 돈 주고 사먹는 것 고향 농산물을 사용하면 쉽게 고향 사랑 할 수 있다.도회지에 살고 있는 출향인들을 고향에 내려가 정착케 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해 볼 가치가 있다. IMF 시대 이후 도시의 기업체에서는 치열한 경쟁체제에 돌입하여 40대 중반부터 이미 명퇴가 시작되고 잘해야 50대 중반이면 은퇴하게 된다. 50대 안팎이면 농촌에서는 아직도 한창 일할 수 있는 청년이다.그들 중 상당수는 고향을 그리워하며 귀향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선뜻 결행치 못하는 이유는 새로운 삶의 전환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어떻게 소일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그들에게 빈집을 알선해 주고 휴경지라도 빌려 주어 적절한 농촌 적응훈련을 병행한다면 실효가 있을 것이다. 지자체에 보면 여러 가지 위원회가 많은데 정작 위원들의 성향을 보면 비전문가들이 많다. 재외 향우들 중에는 각 분야에서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그런 위원회에 자문으로 참여시켜 그들의 전문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지자체 행정에 접목시켜 보는 것도 매우 바람직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성공 여부는 결국 지자체가 향우인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달려있다. 향우들의 애향심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안 된다. 향우들을 하나의 시장 내지는 자산으로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필요하면 지자체 조례를 만들어 재외 향우회를 관내 시민단체 대우하듯 지원도 해주며 유기적으로 참여케 하면 효과적일 것이다. 그것이 곧 열린행정의 시작이기도 하다./박상모(재경임실군향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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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28 23:02

[타향에서] 명실상부한 맛의 고장 만들기

전북을 맛의 고장이라고 한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다른 지역과 달리 전북은 우리나라 곡창답게 넓은 들에서 나는 비교적 풍부한 곡식과 채소 등을 이용해서 다양한 음식이 풍부하게 제조되고 조리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따라서 음식 인심이 넉넉하고 후했다. 60년대나 70년대에 음식점에서 한식을 시킬 경우 서울지역에서는 반찬 가지 수가 많지 않고 맛도 별로였지만 북에서는 맛있고 다양한 반찬이 식탁위에 가득했다. 전북은 안주 값이 싸서 서울에서 전주에 내려와 술을 먹고 가면 차비를 포함하더라도 술값이 싸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도 그런가?전북이 맛의 고장으로서 인정을 받으려면 전북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이 맛있어야 하고 식당음식이 맛있어야 하고 전북에서 제조되는 가공식품이 맛있어야 한다. 이름 있는 조리사가 많아야 하고 식품제조 명인이 많아야 하고 이름 있는 한식 조리학교가 하나쯤 있어야 한다.먼저 농산물의 경우를 보자. 고창 대산 수박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곡창이라고 하지만 우수 쌀 반열에 드는 브랜드가 거의 없고 과일이나 채소, 축산물도 마찬가지다. 전주 배나 전주 복숭아, 장수 사과나 장수 한우 등을 말할 수 있겠으나 실제 전국적인 인지도는 낮다.다음으로 식당음식을 생각해 보자. 전북에서 내세울 수 있는 한식 메뉴를 물어보면 우선 백반, 비빔밥, 콩나물국밥을 말할 것이다. 이들 음식을 내세워서 맛의 고장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 음식 맛은 전국이 평준화 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서울을 비롯한 여타 대도시 지역에 더 맛있는 음식점이 많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반찬 가지 수는 어디에서나 넘쳐흐른다. 더욱이 세련된 실내 공간 디자인, 식기, 조명, 식탁배치, 서빙 등 세세한 부분에서는 다른 대도시지역이 보다 나은 즐거움과 안락함까지 제공하고 있다.가공식품을 살펴보자. 순창고추장, 선운산 복분자주 말고 어떤 것을 손꼽을 수 있을까? 이강주, 임실 치즈, 곰소 젓갈 등을 말할 수 있겠으나 전국적인 인지도는 매우 미약하다. 이름난 음식 명인이나 음식 조리학교도 없다. 그러면 전북이 진정 맛의 고장으로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앞으로 혁신도시에 이전하게 되는 농촌진흥청 산하 연구소들의 도움을 받아서 맛있는 농산물이 생산될 수 있도록 종자개량과 생산 및 수확 후 관리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 음식점은 재래의 토속성 유지 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맞게 맛을 조정하고 식당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가공식품에서는 대기업 역할도 중요하지만 한국식품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소량 다품목 중심의 중소형 홈 메이드 식품산업 육성을 병행해야 한다. 음식 명인이나 장인을 발굴 육성하고 불란서의 르꽁 드블루와 같은 세계적 명성을 갖는 조리학교를 육성해야 한다. 그래야 명실상부한 맛의 고장이 되지 않을까?/강수기(한국식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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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21 23:02

[타향에서] '부동산투기사범' 단속 유감

어느 때부터인지, 어느 연유에서인지는 몰라도 재산증식 수단으로 부동산만한 것이 없다는 소문이 퍼지고 또 그 소문을 믿는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부동산 투기에 열을 올려왔다. 특히나 금년 들어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해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이 투기무대가 되었고, 아파트는 물론 대지나 임야 심지어는 공장부지까지 투기대상이 되는 등 전국에 투기 열풍이 아닌 투기 광풍이 불어 닥쳤다. 주지하시다시피 부동산 투기는 부가가치(附加價値) 없이 부동산의 가격만 치솟기에 국가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서민들의 근로의욕을 감퇴시키고 빈부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등 그 경제적?사회적 부작용이 너무 많아 국가발전이나 사회통합의 커다란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그리하여 대검찰청에서는 지난 7월 7일에 경찰청, 국세청, 건설교통부 등 관계기관과 대책회의를 갖고 모든 수사력과 행정력을 투입하여 부동산투기사범을 발본색원하기로 하였다. 그 즉시 대검찰청에 ?부동산투기사범 합동수사본부?를, 일선 지방검찰청(지청)에 ?합동수사부(반)?를 각 설치하여 부동산투기사범에 대한 일제단속에 나섰다. 대검찰청에 이와 같은 수사본부가 설치된 것은 지난 1990년 수도권일대에 신도시를 건설 할 때 부동산 투기열풍이 불어 중앙수사부를 중심으로 한 합수본부가 설치된 이래 실로 15년만의 일이다. 사실 일선 청 형사부 검사들은 사법경찰관서에 송치한 사건과 검찰청에 직접 제출된 고소사건 등을 처리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럼에도 이번 단속의 주무부서가 대검찰청의 중앙수사부가 아닌 형사부로, 일선 청의 담당부서도 형사부 검사들이 단속주체가 된 것은 부동산투기사범 단속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매일 매일 사건처리를 하면서 시민들과 부대끼는(?) 형사부가 주무부서가 되어 그 사명을 다하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형사부를 중심으로 한 합수부(반)가 과연 얼마나 단속실적을 거둘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걱정을 하였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그러한 생각은 기우(杞憂)이었다. 금년도 7.7.부터 9.30.까지 검찰과 경찰은 총 5,027명의 부동산투기 사범을 단속하여 그 중 195명을 구속하였다. 또한 국세청은 투기 의혹이 있는 1,700여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하여(아직도 실시 중) 15개 회사를 검찰에 수사의뢰하였고, 불법 중개업자 9명은 해당 지자체에 통보하였다. 건교부도 법규위반자 66명을 검찰에 고발하는 등 과히 전(全)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투기사범과 전쟁을 치르고 있을 정도이다. 이번 단속 결과 나타난 현상을 보면 속칭 큰손이 조종하는 기획부동산 업체에 의하여 전 국토가 투기장화 되었고, 또 그들은 지가(地價)를 높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분묘(墳墓)까지 멋대로 이장(移葬)하는 등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도덕불감증이 만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투기에 나선 사람들도 부동산업체는 물론 변호사, 의사, 세무사 등 전문직업인 뿐만 아니라 자영업자, 농민, 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업군을 보여주고 있다. 실로 대다수 국민들이 부동산투기라는 중병에 걸려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더욱 가관인 것은 이제 갓 서른 살이 지난 자매(姉妹)가 친인척명의를 빌려 주택조합 아파트 11채를 불법 분양받아 언니는 9억 4천만원, 동생은 8억 3천만의 전매차익을 얻었다니 그 재주는 신출귀몰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 언니는 이미 아파트 10채, 상가 32개, 오피스텔 24개나 갖고 있다고 하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그런데 우리 고향 전북은 과연 부동산 투기에서 자유로운지 모르겠다. 공공기관 지방이전이라든지, 일부지역에 대한 기업도시 지정 등 투기의 유혹요소가 적지 아니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위장전입 수법으로 전주 시내 유명 아파트를 불법 분양받아 수천만원의 전매차익을 올린 투기꾼 수십명이 전주지검 부동산투기사범 합동수사부에 적발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양반과 애향의 도시인 전북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이동기(대검찰청 형사부장 겸 부동산투기사범 정부합동수사본부장, 전 전주지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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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10.1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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