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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운보와 구암장 - 이규일

이규일(미술평론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는 이탈리아의 메디치(Medici)집안이 아니었던들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 같은 불후의 명작에는 반드시 그 작품을 낳게 한 배경과 후원자가 있게 마련이다. 운보 김기창(1913~2001)화백의 세계적 명작 <예수의 일생> 도 한국전쟁 중에 군산에 피난, 구암장(龜岩莊)에서 그린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전북도립미술관이 ‘전북미술의 맥전’을 열면서 도록에 넣을 원고를 청탁해와 자료를 찾다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발굴했다.

 

필자는 1977년에 운보의 자서전격인 ‘나의 사랑과 예술’을 《주간 중앙》에 연재하고, 1981년에 그와 함께 세계 18개국을 돌면서 <화필기행(畵筆紀行)을 한터여서 운보에 관한한 모르는 게 없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여태껏 필자는 운보의 그림에 씌어진 ‘구암장’을 그의 처가가 군산시 구암동 이어서 피난시절 군산에서 그린 낙관서명을 하면서 제작 장소로 쓴 걸로 알고 그런데 지난해 ‘전북미술의 맥전’ 원고를 작성할 때 비로소 새로운 사실을 알아냈다. 운보는 1951년에 있는 군산으로 부인겲틉?딸과 함께 피난, 어렵게 살았다. 만삭이었던 부인이 처가에서 둘째딸까지 출산해 군산 비행장에 근무하는 미군들을 상대로 초상화를 그려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이때 구세주가 나타난 것이다. 백화양조 강정준사장이 운보가 그림을 그릴 수 집을 구암동에 사서 화실로 꾸며 준 피난 중 화실이 바로 ‘구암장’이었다.< p>

 

필자가 ‘전북미술맥전’원고를 쓸 무렵 군산 구암장에서 그린 성춘향 연작 병풍(12폭)이 발견되어 운보의 군산생활을 알게 해 주었다.

 

이 병풍은 운보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구암장’이란 화실을 마련해 준 강사장에게 답례로 그려 준 것이었다. 비단에 채색으로 그린 성춘향 연작 병풍은 이몽룡이 광한루에서 멀리 그네 뛰는 춘향의 모습을 바라보는 장면부터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춘향과 재회하는 완판(전주판) 춘향전의 주요 장면을 12개 폭(각 폭 58.5x38.5cm)으로 나누어 제작했다.

 

‘신묘중추(辛卯仲秋) 어구암장(於龜岩莊)’이라고 쓴 관지가 있어 1951년 추석에 구암장에서 그렸다는 걸 알 수 있다. 운보는 1952년부터 53년까지 구암장에서 미술사에 남을 또 하나의 역사적인 작업을 완수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일생> 시리즈다. 어려서부터 예배당에 다닌 운보는 예수를 한국인 얼굴로 한국복식으로 성경 내용에 따라 29점을 그렸는데, 이 그림을 본 독일인 신부가 예수의 부활이 빠졌다면서 한점을 더 그리라고 해 <예수의 일생> 은 30점 시리즈가 되었다.

 

운보는 서울에 올라와 1954년4월22일부터 5월1일까지 임시로 꾸민 화신백화점 5층 화랑에서 <성화전> 을 열었다. 이 성화전에는 <예수의 일생> 외에도 운보와 부인 우향 박래현(1920~1976)이 그린 입체 작품을 내놓고 부부 전으로 꾸며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때 전시 평을 쓴 소설가 박계주(朴啓周)는 “김기창?박래현 부부 전의 30점 성화와 20여점의 입체 작품이 피난 생활 중에 제작되었다는 것은 이들 부부가 가진 불굴의 예술정신을 웅변하는 것이다”고 칭찬하고, “지금까지 고정적인 동양화의 새경지를 개척하기 위해 입체 작을 많이 가미, 우리에게 새로운 아취(雅趣)를 안겨준다”라고 평했다. 올봄에 열릴 남원 춘향제에는 운보가 패트런이었던 강정준 사장에게 그려준 성춘향 연작 병풍을 식장에 둘러치고 아름답고 정숙한 현대적 미인‘성춘향’을 뽑으면 뜻 깊은 행사가 될 것 같다.

 

/이규일(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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