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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만에 全州전시회 갖는 서양화가 문인표씨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병마와 싸우면서도 지난해 5월 서울 전시회를 연데 이어 1년만에 다시 전주에서 전시회를 여는 문인표 화백. (desk@jjan.kr)

 

잔뜩 흐린 날씨에 마침 불까지 나간 거실은 노화가의 마음처럼 쓸쓸하다. 제자가 일본에 다녀오며 사온 이젤은 침침한 거실에서 몸집이 더 커보였다.

 

벌써 재작년 여름 일이다. 앞에 나서기 보다 "게을러서”라며 조용히 제 자리를 지키곤 했던 서양화가 문인표씨(77)가 뇌경색으로 쓰러졌었다. 갑자기 찾아온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이젤에는 이미 액자 속에 들어가있는 작품이 놓여져 있고 텅 빈 의자는 과거형이다.

 

지난해 5월 외아들 지웅씨가 서둘러 마련한 서울 전시에 이어 그의 전시회가 저주에서 열린다.(19일부터 25일까지 전북예술회관) 1년만의 자리가, 게다가 신작도 없이 작품전을 열려니 화가는 부끄럽다고 말했다.

 

펜화와 초가로 떠올려지는 서양화가 문인표씨는 한국화를 닮았다. 화려함이나 강렬함과는 거리가 먼 조용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화가의 세월이 담겨진 그의 화폭은 저절로 겸손하고 정직하다.

 

"우선 준비가 간편해서 좋아요. 그린 후에는 제법 맛도 있어요. 하얀 종이에 세필로 그린 수묵화 비슷하게 단박하고 단아해요.”

 

유화를 위한 밑바탕 작업으로 시작한 펜화는 그 자체로도 곱씹을만한 맛을 가지고 있다. 똑같은 볼펜을 스무자루씩 샀던 화가가 끄적끄적 그린 것 부터 마음 먹고 그린 것까지 펜화는 대략 4∼5백여점에 이른다. 그 중 까다로운 화가가 유화로 옮긴 작품은 1백여점.

 

정년퇴직 후 뒤늦게 딴 운전면허증으로 전주 외곽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펜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작업 여정에 동행했었던 아내 조금현씨(67)는 펜화를 유화로 다 옮겨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한 30년만 더 살면….” 화가의 아내는 말끝을 흐렸다.

 

"시골 온돌방에 배를 깔고 줄이 안쳐진 수학 노트에 끙끙대며 그림을 그렸어요. 학창시절 나의 모든 노트가 그림 투성이였어요.”

 

어린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싶다는 그의 그림은 어린 시절 기억들과 맞닿아있다. 화가의 아버지는 그를 무릎에 앉혀놓고 방안에 붙여놓은 그림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곤 했다. 학창 시절을 보낸 만주에서 만난 일본인 미술 선생님 우메다 신지로는 그에게 미술의 길을 열어준 고마운 스승이다.

 

그의 그림 속에는 화가가 살았던 어린시절의 초가집이 많이 등장한다. "이제는 다 사라졌지만 어딜가다 우연히 초가를 만나면 눈물이 난다”는 화가는 두툼하고 모나지 않은 초가야말로 한국 사람 그 자체라고 했다.

 

"누구나 자기 인생은 중요하죠. 사는 게 행복해야는데 나는 그림처럼 재밌는 게 없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보면 성취감을 느껴요.”

 

좋은 작품은 그 자체의 생명력으로 사람들의 가슴 속에 파고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한 평생을 그림에 지탱해온 화가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림 그릴 것을 권한다. 젊은 후배들에게는 "소묘로 기초를 잘 닦지 않으면 작가로서 수명이 짧다”는 말도 해주고 싶다.

 

화가의 아내는 건강이 회복되면 그가 펜화를 유화로 옮기는 작업을 마칠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계획을 세우는 것은 거기에 얽매이게 돼 불편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림을 못 그린지 벌써 20개월째. 그는 아프고 나니 눈도 잘 안보이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이제는 못 한다고 말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맑고 힘이 있다.

 

"굉장히 그리고 싶죠. 견디기가 힘들어요. 속상해서 이젤 앞에 잘 앉지도 않지만, 그래도 '내가 나으면 해야지'하고 삽니다.”

 

연습장에는 힘없는 손으로 그린 사람의 옆모습이 있다. 그 옆에는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늙어버린 옛 동무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다시 이젤 앞에 앉고싶은 생각 뿐이지만 아직은 용기가 부족하다.

 

의사의 만류로 그는 지난 서울 전시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나 전주 전시회 만큼은 꼭 지키고 싶단다.

 

"내 손님인데 내가 맞아야지” 60년 세월을 담은 작품으로 동효 후배들과 제자들을 만나는 자리, 화가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 있다.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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