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가가 꿈이던 고등학생은 오수장터에서 들려오는 날라리 소리와 허공에서 하늘대던 분바른 상쇠의 하얀 부포에 끌려, 홍정택 명창에게 무용과 풍물을 배웠다. '키 크고 파마머리를 한 웬 구성머리없는 총각'은 군을 제대하고 소리길을 쫓아 '양어머니'인 이일주 명창(도무형문화재 2호)의 곁에서 21년째 소리공부를 하고 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소리꾼이었지만, 그는 대기만성형. 지난해 전주대사습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고서야 명창 반열에 올랐다. 10일 소리전당 명인홀에서 오후 2시부터 4시간 30분 동안 '동초제 심청가'로 첫 번째 완창발표회를 여는 송재영이 그다.
#2. 가수가 꿈이던 한 여고생은 우연히 듣게 된 판소리에 매료돼 최승희 명창을 찾았다. 원광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도립국악원에 입단했다. 이런저런 판소리 대회에서 상도 탔지만, 소리에 대한 허기를 쉬 채울 수 없었다. 6년 전 국악원을 떠나 은희진 명창과의 인연으로 익힌 '강산제'를 더 배우기 위해 성우향 명창을 쫓아 상경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15년간 그를 지켜봐 준 '양아버지' 이성근 명인(판소리 고법 무형문화재 9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3일 소리전당 명인홀에서 오후 1시 30분부터 4시간 30분 동안 '강산제 심청가'로 첫 번째 완창발표회를 여는 정소영이 그다.
"완창은 나를 이기기 위한 시험이지요. 불안하고 부담도 크지만, 나름대로 노력한 부분을 과시도 하고, 냉철하게 평가받겠습니다.”(송재영)
"완숙의 경지에 다다랐을 때 서는 것이 완창인데, 너무 조심스럽습니다.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한 발돋움이라고 생각합니다.”(정소영)
일주일 터울로 각기 다른 유파의 심청가 완창발표회를 여는 송재영 명창(45·도립국악원 창극단 부단장)과 정소영씨(35·전 도립국악원 창극단원). 정씨는 송 명창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할 만큼 소리 내력과 연배의 차이가 크지만 두 사람은 닮은 점이 많다. 고교시절 판소리를 시작했고, 도립국악원과 인연을 맺었다. 꽤 오랜 세월 한 스승을 섬겼고, 지금껏 친부모처럼 모시며 살고 있다.
송 명창은 "도망갈 생각도 몇 차례 들었지만, 인연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며 "옳은 스승을 어찌 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스승인 이일주 명창은 "거목이 될 싹수가 있어 다행이고,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어 다행이고, 내 앞에서 더 열심히 하겠노라고 맹세를 해 다행”이라며 든든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씨도, 정씨의 스승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선후배의 닮은 점은 또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목이 쉬지 않는 철성을 지닌 송씨나 갈고 닦아서 '소리해도 되겠다'는 말을 듣는 정씨 모두 주변 사람들로부터 '노력파'로 꼽힌다. 이성근 명인은 "대개 소리가 맑으면 목구성이 안 좋은데 소영이는 상청이 좋고 뒤따르는 소리도 좋아 '소리가 목에 앵긴다'”며 "지금처럼 2∼3년 바짝 노력하면 큰 소리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는 차이도 있다. 판소리해설가 최동현씨가 "송 명창의 심봉사 연기는 심봉사가 환생한 듯 했다”고 칭찬하는 송씨는 비가비 명창 권삼득을 비롯해 여러 창극에서 줄곧 주역을 놓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정씨의 무대경험은 짧다. 그런
정씨에게는 특별한 꿈이 있다. 명창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 "학생들이 돈이 없어도 전문적으로 판소리를 배울 수 있는 열린 소리청을 만들기 위해서”다.
이번 무대는 고수도 묘한 관계로 놓였다. 정씨의 무대는 이성근 명인과 신호수씨(전주시립국악단 수석)가 북을 잡고, 송씨의 무대는 이성근 명인의 아들인 이상호씨(도립국악원 창극단원)와 권혁대씨(도립국악원 교수)가 장단을 맞춘다.
"소리는 기교보다 푸져야 한다. 흥겹지만 처절한 것이 소리다”는 두 소리꾼의 내년 계획은 '춘향가 완창 발표회'. 후배는 함께 하는 선배가 있어 고맙고, 선배는 후배의 시선이 따갑지만 기특하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