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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책읽기]오월 광주, 죽어서도 영원한 우리 고향

 

'피의 학살과 무기의 저항 그 사이에는/ 서정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자격도 없다/ 적어도 적어도 광주 1980년 오월의 거리에는!'(김남주의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 중에서)

 

해마다 5월이면 '광주'는 시인들의 가슴에 '죽어서도 영원히 우리의 고향'(문병란의 '망령의 노래'중에서)으로 다시 살아난다. 5월의 참상에 뒤척이던 시인들은 망자의 혼을 달래려 진혼의 넋에 숱하게 말을 건다. 시에 생경했던 언어들도 희망과 좌절과 분노의 농축된 감정을 타고 쏟아져 나온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씨(고려대 교수)는 '시인은 시간에 의해 가장 희미해진 기억에도 전율하는 자'라고 칭했다. 시는 결코 시대를 잊어버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 오월을 노래했던 시인

 

18일의 절규. 광주는 서정적이지 않았다. 시로 만나는 광주는 처절하다.

 

'놈들이 온다/ 저 미친 회오리바람과 얼어붙는 숨결로부터/ 어린 자식들을 먼저 숨겨라/ (중략)/ 더 이상 빼앗길 수 없는 때다'(송기원의 '한파'중에서)라고 외치는 시민들로부터 역사는 시작됐다. 따뜻한 봄날 오후, 금남로에 불어닥친 회오리바람은 숱한 비극을 낳았다. 박선숙의 '광주4', 김남주의 '학살1·2·3', 김정환의 '편지' 등은 처절한 광주를 묘사하고, 고규태의 '나는 첫아이였어요', 박정열의 '피의 초파일', 김창규의 '구두 닦아요', 김해화의 '누이의 헌혈' 등도 계엄군의 잔학상을 고발하며 시민들의 용기를 증언하고 있다.

 

박몽구의 '금남로 탈환의 대낮'. 시민들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는 바다'가 돼 빼앗긴 땅을 되찾았다. 이 무렵 김준태의 '여자의 사랑은 총알보다도 더 멀리 날아간다', 김재진의 '빈 상여 나가며', 강태형의 '오월 넋', 이승철의 '용봉동의 삶', 김형수의 '배고픈 다리' 등은 꽃잎처럼 사라져 간 넋들을 보듬고 꺼이꺼이 울어대고 있었다.

 

시인의 눈과 귀는 망월동으로 이어졌다. 황지우의 '호명'은 '묘지번호 115 이름없는 그대'를 끝없이 불렀고, 김용택은 '망월동'에서 '살아생전 한번도 본적 없는 얼굴/ 그래서 더욱 그리운 형제들의 죽음'에 차마 일어나지를 못한다. 김정환의 '이제 그리운 사람들은 가고/ 아직도 살아있는 사람들만 남아/ 그리운 것들을 아파해야 할 때'('몸통에서 분리된 모가지의 노래'중에서) 그리운 이름들을 비통함으로 소리소리 외쳐 부르고 있다. 할말은 여전히 남아있고 못다한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오월을 노래했던 시인 김남주를 다시 만난다

 

김남주 시인 10주기 추모 시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 발간

 

시인이기보다 혁명가로 살고 불리기 원했던 고(故) 김남주 시인(1946~1994). 그의 시선집 '꽃 속에 피가 흐른다'(창비 펴냄)가 출간됐다. 1974년 시인이 계간 '창작과비평'에 등단작을 투고했을 때 편집자로 인연을 맺었던 영남대 염무웅 교수가 시 1백20편을 가려 시인의 삶과 문학의 흐름에 따라 엮은 시집이다.

 

고인이 쓴 4백70여편의 시 중에서 3백여편이 9년 3개월의 수감생활 중에 씌어진 것. 이 시선집에는 유고시집에 수록된 초기작 몇 편의 발굴경위 등 흥미로운 사실도 '발문'을 통해 밝혀진다. 이 책이 가장 완벽한 판본이라 말할 수는 없어도 "실증적 차원에서 더 검토되어야 할 여지가 많은 김남주 문학을 충실히 결산”해 그의 삶과 시세계의 전모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기에는 충분하다.

 

올해는 시인의 추모 10주기. 그가 살았던 때는 '꽃 속에 피가 흐른다'고 읊어야 할 만큼 가혹했다. 자신이 몸으로 겪은 그 시대를 꾸미지 않은 목소리로 외친 김남주의 삶이 곧 시이자 투쟁. 그래서 초기작, 옥중시편, 출감 후 작품활동, 유고시집으로 나뉜 시들은 모두 날이 선 작품이다. 염씨의 말처럼 "세월을 뛰어넘어 여전히 굳어진 감성과 메마른 육신을 쑤시고 들끓게” 하는 것이 바로 그런 시들이다. 그의 시는 문학이 '지금, 여기'를 말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당신은 묻습니다/ 언제부터 시를 쓰게 되었느냐고/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투쟁과 그날그날이 내 시의 요람이라고'('시의 요람 시의 무덤' 중에서)

 

최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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