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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광장]미당 서정주

 

미당 서정주 시인이 태어난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에 미당시 문학관이 있다. 고대 이후 한국 문학사에 가장 뛰어난 시를 남겨놓고 한국 민족의 혼을 세계속에 떨친 그분의 시와 유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미당시문학관이다.

 

한국 시문학의 거목 미당 서정주 시인은'언어의 연금술사''신라향가 이래 최고의 시인'등 탁월한 언어 감각으로 한국 시문학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일제말 암흑기때 친일 행적(시 6편, 수필3편, 소설 2편)으로 친일 문학인이란 꼬리표도 떼어 낼 수 없다.

 

서정주의 친일시는 지난 1985년'실천문학'(여름호)에 소개된 이광수, 최남선, 김동인, 주요한, 박종화,이효석, 모윤숙, 노천명 등의 작품과 함께 두권짜리'친일문학 작품선집'으로 출간되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 당시 한국을 대표한 쟁쟁한 시인, 문학인들은 자신을 방어하고 일제치하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부득이 글을 쓴 것은 민족정기를 저버린 씻을 수 없는 일이요 이유가 어떠하든 우리 민족 앞에 고개 숙여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당 서정주 선생은 학생시절 민족정신이 매우 강한 분이었다.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중 광주학생 운동 주모자 4명중의 하나로 지목 받아 구속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돼 1931년 고창 고등 보통학교에 편입학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계속된 감시로 고창고보를 졸업하지 못한 일은 미당의 사상을 잘 반증해준다.

 

1935년 지금의 동국대학 전신인 중앙 불교 전문학교에 입학하면서 시문학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1936년 동아 일보 신춘 문예에 시, '벽'(壁)으로 당선 그해 11월부터'시인부락'편집인 겸 발행인으로 활약한다. 동인으로는 김동리, 이용희, 오장환 등이 있다. 이후 첫 시집'화사집'(花蛇集) 제2시집'귀촉도'(歸蜀道)에 이어 많은 시집을 발간하면서 고향산천을 소재로 한 주옥같은 많은 시를 써 왔고'질마재 신화'등 소요산. 멀리 바라보이는 서해 바다 등 장수강 거슬러 올라가면 그 곳의 명물인 풍천장어와 복분자술이미각을 자극하는 가운데 선운사 입구를 향해 걸어 들어가면

 

먼저 서정주 시인의 시비 선운사 동구(禪雲寺洞口)가 나타나며 선운사를 찾는 이들에게 소박한 시적 감동을 느끼게하는 시'선운사 골짜기로/ 선운사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집 육자베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라는 등 질마재에 피어 있는 꽃과새소리와 하늘의 구름을 벗하여 살아온 선운리 서정주 시인 생가에 도착 했을 때는 해님이 중천에 박히어각시처럼 조을고 고요한 적막만이감돌뿐이었다.

 

초창기의 작품에서는 상징성을 띤 서러움을 읊다가 중기에는 생의 외경(畏敬)을 씨로, 언어의 무르익은맛을 날로 하여 깊이를 더해 주다가 근년에는 한국 역사와 세계기행시와 자서전적인 내용을 담담한 터치로 파헤치다 영영 저 나라로 가신 분이다. 그리하여 학이 되어 질마재 언덕에 훨훨 날아오시어 고향 산천을 바라보며 영혼이 잠들고 있다. 우리들은 오직 그분이 남기신 시적인 소양과 문학 사상을 통하여 한국 시의 깊이와 폭을 대변하는 우리시대의 가장 훌륭한 시인 중의 하나임을 알고 있을 뿐이다.

 

/박우영(미당시문학관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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