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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유머에세이집 '산민객담' 펴낸 한승헌 변호사

 

"그냥 우스개지요. 비결은 무슨 비결이 있겠습니까. 아직은 유머가 면세니까 마음놓고 합니다. 앞으로 혹시 유머에 '희희낙락세'라도 붙는 날이면 그만두어야지요.”

 

해학적인 표현은 타고난 여유와 언어구사의 순발력이 있어야겠지만, 품격있는 유머는 따로 있다. 산민(山民) 한승헌 변호사(70)가 객담(客談)을 묶어 세상에 냈다. 잡지 '다리'와 '책과 인생'에 연재됐거나 일간지와 잡지에 실었던 1백3편의 글을 모은 유머 에세이집 '산민객담'(범우사). 그의 일상에서 '우연히 순간적으로 떠오르고, 기억해낸 해학'의 파편들이다.

 

험난한 시대, 독재권력에 의해 핍박받았던 양심수와 정치범들의 변호를 도맡으며 녹록치 않은 삶을 꾸려온 한변호사의 일상은 그 자체로 한국사의 한 단면이 된다. 그래서 그의 '객담'은 특별하다.

 

"즐거움과 통쾌함을 동반하는 해학이 때론 정직하고 진실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정론에 얽매이는 경직과 피곤에서 해방될 수 있으니까요.”

 

객담은 말 그대로 군소리지만 한변호사의 객담은 결코 가볍거나 경박하지 않다. 사람의 가슴을 더불어 열어주는 푸근한 해학과 촌철살인의 멋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그와의 만남을 즐거워한다.

 

한변호사와 이른바 내란음모사건으로 알려진 군법회의 군사재판 피고석에서 인연을 맺은 고은 시인은 "그저 웃음부터 베풀고 보는 것이 그의 천성”이라며 "감옥 안에서도, 법정에서도, 수사본부의 지하 2층 조사실에서도 그의 천부적인 웃음은 중단될 줄 몰랐다”고 소개한다. '오적'필화사건으로 만난 김지하 시인과의 일화도 그렇다.

 

변호사의 반대 신문. 한변호사는 사건의 실체를 한 두 마디 물음으로 요약해 간단히 밝혔다. "피고인은 공산주의 잡니까?” "아닙니다.” "그럼 왜 이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까?” "나도 모르겠습니다.” 김지하는 이 순간을 '군더더기 하나 없는 유명한 꼭지 따기'라고 표현했다. 시인이 말하고 싶었던 항변의 꼭지를 약속이나 한 듯 똑똑 따내주었기 때문이다.

 

60년대의 풍경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책의 끝에는 중앙대 임헌영 교수가 '폐쇄사회의 캐리커처'란 제목으로 작품해설을 곁들였다. '쉽게 읽히고 알아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책에 굳이 무슨 해설'이란 생각도 들지만, '판소리나 육자배기에 스며들었던 정한의 정서를 이룬 골계와 해학'이나 '1960년대 이후 독재체제의 권위주의에 대한 경쾌하고 통쾌한 반란의 소산'을 거론하는 임교수의 글을 접하면 책장을 처음부터 다시 넘기게 된다.

 

한변호사는 유머를 "비정한 현실과 화해·공존할 수 있는 '햇볕정책'”이라고 소개했다. 답답한 세상에서 삶을 관조하고 여유를 갖기 위해 유머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유머나 해학도 익숙해야 합니다. 그래야 금방 함께 웃지요. 그러지 못한 건 내 표현능력이 모자라거나 상대의 유머 감각이 개발 안 된 경우이겠지요.”

 

'산민객담'(범우사)과 같은 책이 나오게 된 한국사회의 현실, 그 자체도 아이러니한 해학의 단편이라고 말하는 한변호사는 "책을 엮으며 보존이 안 돼 찾지 못했거나, 책의 분량을 고려해 넣지 못한 글이 적지 않다”고 들려줬다. 싣지 못한 글들이 궁금해지는 것은, 이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그만큼 그의 해학은 특별한 재미이고, 특별한 감동이다. 우연히 알게 된 일 하나. 꽤 인상적인 이 책의 표지그림은 저자의 손자인 초등학생 승진이가 여섯살때 그린 것이다.

 

최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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