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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58주년] 낯설고 물선 여성들, 한국서 뿌리내리기

'희망페달' 전주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간사 투엔씨

베트남에 가면 그들의 전통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여성들이 많다. (desk@jjan.kr)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생소한 문화와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결혼으로 맺어진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아온 이주여성들.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주변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정착해서 사는 결혼이주 여성들도 차츰 눈에 띈다. 이들 중에는 솔선수범하는 생활로 이웃의 모범이 되는 여성들도 있다.

 

전주시결혼이민자가족지원센터 간사 베트남 태생의 레 티 투엔씨(한국명 이가연, 39·전주시 덕진구 팔복동)도 그중 한 사람.

 

올해로 한국생활 13년째. 투엔씨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엄마로서, 직장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다.

 

상담·통역 관련 각종 교육을 받고 가정폭력상담원 교육을 수료한 그는, 전북지역 베트남 여성들의 든든한 '맏언니'이다. 사무실에서 상담과 통역을 맡을 뿐 아니라 베트남 아내와 한국인 남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풀어주는 해결사로서 도내 시군 어느 곳이든지, 언제든지 달려간다.

 

투엔씨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때는 95년 4월. 한국문화를 알고 싶은, 호기심 많은, 쾌활한 성격의 27세의 산업연수생인 그가 한국에서 다닌 첫 직장은 전주시 팔복동의 전주섬유. 속옷을 일본에 수출하는 이 회사에서 베트남 여성 8명과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던 그는, 외국인이 귀했던 그시절 애교 많고, 상냥하고, 성실한 성격 덕분에 한국아줌마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공장에 처음 갔던 날 아줌마들이 다 구경 나왔어요. '아! 베트남사람이 이렇게 생겼구나'라고 했던 말을 지금도 기억해요. 부끄러웠어요."

 

그해 8월 '잠시' 회장 운전기사로 일하기 위해 회사에 들어온 총각의 끊임없는 구애공세를 받았다.

 

"맛있는 것 사주고 작업장에 놀러오고... 사랑에 빠지니까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

 

양쪽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98년 혼인하기에 이른다. 양가 부모가 참석하지 않은채 결혼식을 치렀던 것. 회사원인 투엔씨 아버지와 소매점을 하는 어머니는 아홉자녀중 여덟째가 자신들보다 '못사는 한국가정'에 딸을 맡기고 싶지 않았고, 시댁에서도 외국인 여성을 며느리로 들이는 것을 내키지 않아 하셨던 것이다.

 

투엔씨는 당초 직업군인이나 경찰을 꿈꿨다. 직업군인인 큰언니의 추천으로 고등학교 3학년 때 군에 자원했고 3년간 군대에 있다가 89년 러시아 외국인근로자 모집에 자원, 4년간 보로그라에 있는 바퀴제조 공장에서 일했다.

 

"베트남 근로자가 500명 정도 될 정도로 규모가 큰 공장이었습니다. 90∼91년 IMF로 인해서 빵도 못먹을 정도로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친구들과 재미있게 지낸 기억이 더 남습니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 북쪽에 위치한 고향 랑손시를 찾은 그는 버스로 채 20분도 걸리지 않는 중국을 오가며 중국인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 번번이 돈을 떼이고 밤늦게 집에 들어와야 했다. 군에서도 잘 견딘 딸에 대한 믿음이 컸던 아버지는 '적극적인' 딸이 기회의 땅 한국에서 일할 것을 권했다.

 

이토록 '희망'을 안고 밟은 한국땅이었지만 '사랑'해서 결혼한 남편은 안정된 직장을 갖지 못하면서 아들 하나 키우는 것조차 경제적으로 어려워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생활형편이 어렵긴 하지만 그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남편과 착한 아들이 옆에 있기 때문. 형편이 안돼서 6년 전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베트남을 가지 못했던 그. 섬유회사에 재취업도 했었지만 자신의 고된 삶을 행여 옆에서 알까봐 티도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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