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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머리가 아니라 본능으로 만들었다"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8년 전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던 디지털 단편 영화 '다찌마와 리'(2000)가 극장판 장편영화 '다찌마와 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로 돌아왔다.

 

거리의 깡패들을 물리치던 의리의 사나이 다찌마와 리는 만주에서 스위스, 미국까지 누비는 첩보요원이 됐다. 상영시간이 길어지고 규모도 커졌으나 촌티 날리는 유머감각과 '생날 액션'은 여전하다.

 

2대 8 가르마 머리를 하고 중저음 목소리로 "조국과의 사랑을 배신한 넌 간통죄야"라는 대사를 던지는 다찌마와 리를 향해 추종자들은 "아, 잘 생겼다!"라는 감탄사를 내뱉는다.

 

아무리 봐도 용평 스키장 같지만 알프스의 눈 덮인 산자락으로 설정된 곳에서 장황한 슬라이드 총격신이 펼쳐지고, 한강 임에 분명한 압록강 로케이션에서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쓴 '김 선생'은 몇 가닥 안 되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라와 부하들의 운명을 걱정한다.

 

20대 때 만든 단편영화를 8년 만에 장편영화로 찍으면서 예전 정서와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쉬웠을까. 6일 오후 삼성동 제작사 외유내강 사무실에서 만난 류승완(35) 감독은 "본능으로 만든 영화"라고 설명했다.

 

"뭔가 근사한 기획의도를 갖고 한 게 아니에요. 같은 사람이 만드는 거니까 정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감도 없었고요. 다만 예전에 단편에 열광했던 관객을 배신하지 않는 범위에서 하려 했죠. 머리로 만든 게 아니라 몸이 본능에 반응하듯이 진행됐어요. 그래서 영화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설명하기가 힘들어요. 내면의 감성에 거창한 수식어를 달 수 없잖아요."

 

'다찌마와 리'의 유머는 한참 폭소를 터뜨린 뒤 극장문을 나서면 까맣게 잊어버리는 블록버스터급 코미디는 아니다. 사무실이나 지하철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문득 영화 속 장면이 떠올라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리게 되는 코미디다.

 

'요즘 유머'에 대한 감이 떨어지는 관객까지 알아들을 만한 유머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관객 반응이 자칫 썰렁해질 수도 있다는 위험이 따른다. 농담과 진담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액션도 마찬가지. 고의로 어설프게 만든 액션 장면과 정통 액션 장면이 계속 교차한다.

 

"수치화해서 예상할 수 없는 게 대중의 반응이에요. 만드는 이의 취향에 솔직해지자고 생각했죠. '모든 국민이 봐야 한다'는 생각보다 자기 식대로 지르는 게 결국 낫더라고요. 중요한 건 독특한 맛, 개성이죠. 어정쩡하게 대중의 취향과 타협하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예요."

 

영화 속 유머는 자잘한 디테일에 무게중심을 뒀다. 주인공의 여정은 차량 네비게이션 화면으로 표현되고 가짜 외국어를 구사하는 배우들 밑에는 인터넷 다운로드 미드(미국드라마)에 흔히 쓰이는 "말이 빨라서 안 들려요" 같은 자막이 흐른다. '오타쿠적'인 유머가 십분 묻어나는 장면들이다.

 

"1970년대 풍만 갖고 하려면 역부족이죠. 현대적으로 복원을 해야 하니까요. 자막이나 네비게이션 장면을 넣은 것도 그렇고. 그게 제 취향인 것 같아요. 만화 같다고요? '톰과 제리', '딱따구리', '루니툰'의 벅스 바니 같은 옛날 만화영화를 좋아해요. 영화 속 추격전도 그 영향을 받았죠. "

 

'다찌마와 리'는 1960-1970년대 한국 첩보영화를 토대로 한 영화다. 당시 한국 첩보물이 '007'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것이므로 '다찌마와 리'는 자연스레 '007'에서 많은 설정을 빌려오게 된 셈이다.

 

실제로 할리우드 오프닝 장면부터 '007'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류 감독은 '다찌마와 리'를 찍기 전에 '007' 1편부터 21편까지 다시 한 번 쭉 봤다고 설명했다.

 

"한국 옛날 액션영화, 서부극, 스파게티 웨스턴도 섞여 있고… 잡탕이죠. 기조를 이루는 건 1960-1970년대 한국 첩보영화인데 대사, 상황, 진행방식도 그대로 따왔어요. 그런데 가장 많이 참고한 영화는 결국 숀 코너리 시대의 '007'이에요. 미녀들이 등장한다는 점, 다찌마와 리가 끊임없이 이동하는 점도 그렇죠."

 

'시네 키드' 출신인 류 감독의 아이디어와 연출력의 원천은 정식 영화학이나 유럽 예술영화가 아니라 성장기 섭렵했던 각종 할리우드와 홍콩 장르영화의 감성이다. 류 감독은 1960~1970년대 한국 첩보물에 대해서는 "애증을 함께 느낀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 한국 첩보영화들에 대해 애정만 있는 게 아니라 증오도 있어요. 조롱하다가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기도 하고. '왜 저러지' 싶게 속 썩이는 집안의 손윗사람 같은 느낌이에요. 창피하기도 하고 밉기도 한데 어쨌거나 끊을 수도 없는 거고."

 

류 감독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피도 눈물도 없이', '주먹이 운다', '아라한 장풍 대작전', '짝패' 등 정통이든 변형이든 오로지 액션의 길을 걸어왔다. 그 이유에 대해 류 감독은 "액션영화에 가장 흥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왜 액션영화를 계속 하나… 예전에는 어떻게든 말로 설명해 보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거더군요. 좋아서 하죠. 엄청난 부와 명예를 주는 일도 아닌데 좋지도 않은데 계속 했겠어요? 세월이 가도 여전히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게 액션이에요."

 

류 감독은 자신의 액션영화들이 어떻게 변해온 것 같느냐는 질문에는 일단 "예전보다 영화가 요구하는 것을 더 따라가게 됐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결국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으로 만들게 된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조금 더 이야기에 맞는 액션, 인물에 맞는 액션을 고민하게 게 된 것 같아요. 영화가 요구하는 것들에 따라가게 되는 거죠. 그런데 영화라는 게 '이런 거다'라고 풀어놓기에는 어려운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쓸 때나, 찍을 때나 계획은 하지만 감에 의지해서 하는 부분이 많죠. 말로 설명하는 건 기록하는 분들의 일이고 감독으로서는 뭔가 설명하려 하기보다 그냥 만드는 일에 충실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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