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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드라마 만든다는 게 창피합니다"

장수봉ㆍ정세호ㆍ전기상 PD '프로덕션 위' 차려 "드라마는 사명감 갖고 만들어야"

"드라마는 사명감을 갖고 만들어야합니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를 보면 만드는 이의 자존심을 찾아볼 수도 없고 그냥 아무 생각없이 만드는 것 같아요. 정말 창피합니다."

 

크게 보면 모두 자기 얼굴에 침 뱉기지만 1시간 동안의 인터뷰에서 쓴소리는 거침없이 터져나왔다. 통렬한 자기반성과 함께 위기를 기회삼겠다는 희망도 제시했다.

 

평균 연령 53.6세. 국내 드라마 외주제작사 중 연출자의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프로덕션 위'가 지난달 23일 오픈했다. 정세호(53) PD가 대표를 맡고, 장수봉(59) PD와 전기상(49) PD가 가세했다. 지긋한 나이만큼 각기 유명작품들을 줄줄이 만들어낸 베테랑들이다.

 

이들 세 PD는 기존 외주제작 시스템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거품이 잔뜩 낀 제작 환경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더불어 '땅에 떨어진' 드라마의 질적 회복도 외친다.

 

"다른 제작사들 가보면 으리으리한 사무실에 직원 수도 엄청납니다. 드라마 만드는 데 그런 게 왜 필요한가요. 한동안 투자금이 밀려드니까 잘못된 사행심으로 돈을 펑펑 써댔죠. 그래서 지금 다 망한거구요. 나도 한 때 거기에 동참했기에 광화문 네거리에 나가 무릎 꿇고 사과해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에요. 투자자들도 정신 차려야하고 우리도 반성하면서 만들어야 합니다."(정세호)

 

드라마 연출 경력 20~30년의 이들 베테랑 연출자들이 둥지를 튼 합정동의 사무실에서 '욕쟁이 PD'라는 별명을 나란히 얻은 정세호 PD와 장수봉 PD를 만났다.

 

'청춘의 덫', '경찰특공대', '사랑공감' 등을 만든 정세호 PD는 이달 말 방송되는 MBC TV 주말드라마 '내 인생의 황금기' 연출을 맡았다. '아들과 딸' ,'마당 깊은 집', '춤추는 가얏고', '까레이스키' 등의 장수봉 PD와 '마이걸', '쾌걸춘향', '보디가드' 등의 전기상 PD는 내년 봄 예정으로 '프로덕션 위' 제작 1호 작품을 준비 중이다.

 

"외주제작사들이 그동안 방만한 경영을 했어요. 동시에 방송사 편성을 따내기 위해 무리수도 썼고. 그러니 한 작품 하고 야반도주 해버리지."(장수봉)

 

"요즘 젊은 PD들은 다 영화 감독 지망생들이라 '예술'을 하는데 드라마는 드라마답게 만들어야죠. 드라마는 모르고 예술만 하겠다고 하니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죠."(정세호)

 

거품을 뺀다고 해도 방송사가 책정하는 제작비와 실제 제작비 사이의 괴리는 크다. 이들은 과연 어떤 비전을 갖고 있을까.

 

"물론 쉽지는 않아요. 우리도 손해만 보지 말자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모든 작품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공동제작을 할겁니다. 그만큼 수익은 줄어들겠지만 반대로 손해도 줄어드니까요. 위기가 곧 찬스라고 하는데 이 위기를 극복할 PD 몇 명 안됩니다. 방법은 딱 하나에요. 드라마다운 드라마로 승부하면 된다는 겁니다. 자신 있습니다. 드라마 제작을 무슨 로또라고 생각하고 덤벼들면 망해요. 순수성이 결여되면 오래 못가죠. 지금 그 결과를 보고 있잖아요?"(정세호)

 

"상업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드라마가 영화처럼 상업주의에 휘둘리면 안되요. 지상파 TV 드라마를 영화와 같은 논리로 가면 안되죠. 도대체 요즘 유행처럼 하는 드라마 제작발표회는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잘 만들어 보여 주면 되지."(장수봉)

 

그렇다면 요즘 드라마의 어떤 점이 이들 선배 PD들을 창피하게 만드는 것일까.

 

장수봉 PD는 "나이 많은 사람이 잔소리한다고 (남들이) 뭐라 할 것"이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드라마는 결국 인생 이야기다. 요즘 젊은 감독들은 '뽀뽀뽀'(그는 멜로 드라마를 이렇게 비유했다)에 치중하고 있는데, 드라마에는 연륜이 들어가야한다. 인생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살아온 연륜으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연애도 필요한데 요즘 보면 만날 연애질만 하더라.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너무 패션 위주다. 그런데 정작 패션도 아니면서 패션이라고 흉내내는 식"이라며 한탄했다.

 

정세호 PD는 "드라마는 가슴으로 만들어야한다. 지식이 10%면 가슴이 90%여야 하는데 요즘은 그게 바뀌었다. 그래서 이상한 드라마들이 나오는 것"이라며 "나이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요즘 연출 못하는 선배들이 많은데 그 선배들의 장점이 계승되지 못해서 지금의 위기가 온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브레이크가 없어 보이는 출연료, 작가료, 스태프료 등의 고공 행진에 대한 타개책은 무엇일까.

 

"관행이라는 이유로 잘못된 질서에 편입할 수는 없어요. 누군가는 그것을 극복해야지 안 그러면 모두가 블랙홀에 들어가게 됩니다. 좋은 드라마, 실력으로 승부하면 돼요. 지금 우리 연출자, 제작사가 부족하니까 매니저나 기획사에 끌려다니는 거예요. 우리가 잘하면 그들이 알아서 오게돼 있습니다. 배우들도 돈 이전에 좋은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지 않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부지런해야해요. 나태하니까, 뭔가 허술한 게 있으니까 외부 세력이 빈틈을 뚫고 들어오는 겁니다."(정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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