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경안(화가)
얼마 전 개인전이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전시장을 찾은 노신사 한 분이 그림을 보다가 내게 작가선생이 맞냐고 물었다. 그는 나를 여태까지 남자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남자이름 같았고, 그림도 여자 그림 같지 않아서 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보니 여류 화가셨구먼"하고 덧붙였다. 여류 화가라는 말이 어쩐지 듣기 겸연쩍었다. 물론 그 점잖은 미술애호가는 남자가 아니고 여자였음을 강조하려고 '여류'라고 했을것이다. 하지만 여류라 하면 여성전문가를 뜻하기는 해도 그 수가 적어야 어울리는 말이다. 요즈음 여류 화가, 여류 작가가 좀 많은가! 몇십년 전쯤이라면 몰라도.
시집 와서 시어머니에게서 칭찬받은 기억이 별로 없다. 꼭 한 번 칭찬하신 적이 있었는데, 아들 둘을 낳아서 참 잘했다는 것이었다. 내 능력 밖 일이지 칭찬 받을 일을 한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딸만 낳은 동서를 못마땅해 하시는 걸 보면, 맏며느리인 내가 딸만 낳았다면 상당히 구박을 받았을 것 같다.
가까운 예로 친정 엄마가 그런 케이스였다. 외아들에게 시집 온 친정 엄마는 연달아 딸 둘을 낳았다. 셋째는 아들이어야 한다는 시부모의 은근한 압력에 엄마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친척 어른들도 걱정하며 둘째 딸인 내게 남동생 보라고 남자같은 이름을 지어 불렀다. 남동생이 태어나자, 친척 아주머니들은 나를 토닥이며 '복덩이'라고 칭찬했다. 2년 차이로 또 남동생을 보자 이번에도 어른들은 "남동생 둘을 봤으니 참 기특하다"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린 마음에도 내가 칭찬받을 일을 한 적이 없는데, 칭찬하시는 어른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아들 낳을 때까지 7∼8명의 딸을 두는 집도 있었다. 남아 선호 사상 때문에 출산율이 높아져서 문제가 되는 건 남녀 성비가 아니라, 인구과잉 문제가 아닌가 싶다.
불과 얼마 전까지 정부는 가족계획 표어를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낳아 잘기르자'를 외쳤다. 그리하여 한 세대가 바뀌는 짧은 기간에 평균 자녀 수는 6~7명에서 두 세 명으로 줄어 들었다.
내가 둘째를 낳을 때는 '둘만 낳자'의 표어가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또는 '잘키운 딸하나 열아들 안부럽다'로 변하여 외동이를 권장했다. 셋째 자녀는 의료보험 혜택도 못 받았다.
그러한 인구억제정책이 또 불과 몇 년 사이 셋째를 낳으면 이러저러한 혜택을 주는 등 출산장려정책으로 바뀌어 버렸다. 저출산이 사회문제가 되었던 것.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한 반에 남학생 4명 정도는 여학생 짝이 없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이제 혼기에 달해 혼수비용도 신랑이 신부보다 2∼3 배 더 든다.
아들만 둔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자취하는 아들한테 사골국 끓여 한 봉지씩 넣어 주기 귀찮아. 그냥 빨리 장가보내야지. 결혼하면 안해도 될테니까."
그 말에 딸만 둔 후배가 말했다. "며느리 것까지 두 봉지 넣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직장 초년생인 아들도 서울에서 자취를 하는데, 퇴근해서 저녁밥을 한다는 말을 들은 남편은 말했다. "빨리 결혼시켜야겠어, 밥 안하게."
그 말에 나는 남편에게 이 말을 넌지시 했다.
"결혼하면 아들이 2인분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 우리가 서두르지는 맙시다."
/오경안(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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