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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방] ⑭가야금 산조·병창 예능보유자 강정열 교수

"죽을때까지 해도 다 못하는 게 예술"

10일 도립국악원에서 만난 강정열 교수가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다. (desk@jjan.kr)

지문이 다 닳아없어진 단단한 손가락은 열두줄 명주실을 타고 놀았다. 오른손 두번째 손가락은 가야금을 뜯기 알맞게 굽어져 있었다. 처음부터 가야금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는 손가락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악기의 일부가 돼버렸다.

 

"사람들은 가야금을 오래 타서 굽어진 줄 아는데, 쉽게 말하면 손가락이 '병신'이 된 거예요."

 

스물여섯. 부산에서 생활할 때 집에 불이 났다. 불 붙은 전기선이 떨어지면서 오른쪽 손을 감아버렸다. 살과 힘줄이 붙어서 오그라든 손을 펴기 위해 세 번의 수술을 했고, 힘이 빠진 손가락을 바위 덩어리에 대고 연튕김하듯 단련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강정열씨(58·전북도립국악원 교수)는 그 때가 진짜 고비였다고 말했다.

 

대금 명인 강백천이 백부, 동편제 판소리 명창 강도근이 당숙, 신관용류 가야금 산조의 계승자 강순영이 고모, 안숙선 명창이 한살 위 친척누나인 그에게 가야금과 소리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일곱살에 강순영 명인에게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해 열세살에 고 진만국 선생에게 가야금 산조와 병창을 배웠다.

 

 

가난한 살림에 소리와 가야금을 익히며 고생도 많았다. 변성기 때는 남들 100일 공부를 1년씩 걸려 하며 소리를 되찾았다. 반년은 남원 육모정 폭포수에서 소리를, 나머지 반년은 청왕봉 용정암 아래 움막에서 가야금만 탔다. 손에 눈이 달려야 한다며 불을 끄고 새벽 공부를 하던 시절, 그는 "내가 이걸로 꼭 성공한다는 욕망 밖에 없었다"고 했다.

 

"이게 무속에서 나와 창으로, 창에서 현악기로 옮겨온 것입니다. 평생 이것만 하고 살다보니 어느 것 하나 싫고 좋고가 없습니다. 소리에 힘이 들어갈 때는 가야금을 죽이고 소리의 빈 공간은 또 가야금이 살려주니, 오묘한 멋이 있지요. 가야금 병창은 솔직히 내가 하면서도 마음이 끌려요."

 

판소리 목으로는 수리성을 가졌다. 곱기만 한 소리와 달리 강하고 힘찬 맛이 있다. 장단의 박을 짚어주거나 소리가 없는 공간을 메꾸어 주는 소극적 역할에만 머물기에는 가야금 연주 실력도 뛰어났다. 그는 "원래는 판소리를 전공하려고 했지만, 가야금 또한 놓을 수가 없었다"며 "이왕이면 1인 2역이 낫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공부할 때 버릇이 몸에 익어 아직도 새벽 4시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는 강씨.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전북도립국악원 가야금병창반을, 밤 9시까지는 전주시 금암동에 있는 개인 전수관에서 제자들을 가르친다. 흐트러짐 없는 삶을 위해 다른 약속도 잡지 않는다.

 

"자부심이나 자만 같은 건 없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잘했다고 하면 잘했는갑다 생각하면 그만이지요. 죽을 때까지 해도 다 못하고 죽는 게 예술입니다. 또 지금 잘하네 못하네 해도 죽고나야 제대로 평가받는 게 예술가의 삶이죠."

 

내년은 그의 예술을 완성시킨 고 정달영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10주기가 되는 해. 추모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서공철, 정달영으로 이어지는 고제(古制)의 맥을 잇고 있는 그는 때묻지 않은 옛날 그대로의 소리를 지켜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남자에 의해 불려지는 가야금병창을 듣기 힘든 시대. "내 모든 혼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는 그는 그 존재만으로도 귀하다.

 

도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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