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9.11-8.15 일본심중'에 김지하 등장
지난 20일부터 내달 2일까지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열리는 '일본 다큐멘터리 특별전'에서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몇몇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오우라 노부유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9.11-8.15 일본심중'(2005)은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작품이다. 여러 세대의 주인공 3명이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답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이 영화의 배경에는 한국 전통음악이 깔렸으며 탈춤 장면도 꽤 오랜 시간 등장한다.
또 일본의 과거와 미래를 찾아 떠나는 주인공들이 헤매는 길목에 김지하 시인이 등장해 긴 대화를 통해 방향을 제시한다.
오우라 감독은 최근 연합뉴스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김지하 시인의 생명운동과 신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일본 군국주의와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주인공들의 여정과 통했다"고 설명했다.
"김지하 시인은 생명운동의 뿌리로 신화의 새로운 해석을 지지하고 있죠. 국가주의적 관점이 아닌 민중과 세계를 위한 신화의 재해석이 오늘날 세계가 요구하는 가치라는 겁니다. 인류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그 창조적인 지혜에 대한 모색을 통해 세계는 바로 세워집니다. 그것이 8.15 패전과 미국 9.11 테러 사이의 제국주의 역사와 세계의 모순을 다시 살펴보려는 이 영화의 주제와 겹쳐집니다."
일본 사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한국 전통음악을 깔고 탈춤 장면을 길게 집어넣은 배경에 대해 그는 2000년 촬영차 광주를 방문했을 때 산속에 있는 한국의 전형적인 봉분을 보고 놀랐기 때문이라는 의외의 답변을 내놨다.
"봉분을 보고 '풍부한 표정을 가진 묘'라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이 생겼고 한국의 민중이 만들어온 탈춤과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됐죠. 무명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안고 있는 자연과의 교감으로 축제의 터가 형성됐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영화에는 3명 주인공이 나온다. 1925년생인 일본 문화평론가 하리우 이치로, 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 투사 아버지와 일본 적군 지도자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20대의 시게노부 메이, 전쟁기록화를 그리는 장년의 남자다. 영화는 이들의 여정을 교차하면서 전개된다.
"하리우 씨는 전후 일본의 문화와 정치를 날카롭게 비판한 사람이고 시게노부 씨는 28년 동안 국적 없이 떠돌다가 일본과 한국에서 정체성을 거듭 확인했죠. 또 천황제에 의지한 일본 침략전쟁 아래에서 그려진 전쟁기록화에는 일본 근대화의 자화상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여정은 근원적인 영혼의 여행이자 '신화적 로드무비'입니다."
영화에는 코스모폴리탄적인 시각이 돋보인다. 최근 수년간 동아시아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킨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감독의 의견을 묻자 그는 "야스쿠니 참배, 헌법개정 운동, 자위대 승격 등 확실히 일본은 매년 우익화하고 있다"면서도 "우익화 자체보다 젊은 층의 '일상의 전쟁'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젊은 층의 우익화는 신자유주의 시장 원리 아래에서 태어나는 젊은이를 중심으로 또 다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증가, 빈익빈 부익부 등 사회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일상에서 전쟁이 시작됐다고 믿는다는 거죠. 이렇게 사회의 질서가 바뀌면 사회는 점점 우익화하게 됩니다."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 특별전을 통해 한국 관객과 만나는 소감에 대해 묻자 그는 "더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이 영화에는 동아시아의 사람들이 연대해 새로운 문화의 지평을 열어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각국의 사람들이 민족 고유성과 근원적인 영혼을 찾고 이것이 모이면 새로운 가능성이 나타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걸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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