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동백아가씨 "겁나고 행복해요"
50년간 한국인의 사랑을 받아 온 이미자(68)에게 어떤 수식어가 더 필요할까. 장식과 기교가 배제된 정갈한 음색으로 1960~1970년대 시대상을 담아낸 그의 노래는 많은 이들의 눈물을 닦아줬다.
음악 전문가들은 반세기 동안 500장의 음반에 2천100여 곡을 발표한 그를 가리키며 "'20세기 최고의 여가수'인 이미자의 고군분투가 있었기에 트로트가 장수할 수있었다"고 말한다.
9일 오후 조선호텔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한 이미자는 여전히 곱고 단아했다.
KBS 예능국장 출신인 남편이 인터뷰실에 들르자 "우리 집주인이에요. 멋있죠"라고 소개했다.
그는 50주년을 기념해 10일 히트곡 70곡, 전통가요 30곡, 음악인생 50주년을 반영한 신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은' 등 101곡을 담은 기념음반 '이미자 50년, 세상과 함께 부른 나의 노래 101곡'을 발표한다. 또 4월2~4일 세종문화회관을 시작으로 50주년 순회 공연을 마련한다.
'이미자'로 반세기를 보낸 소회를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감회가 새롭고, 겁도 나고, 감격스럽고, 부담스럽고, 행복해요." 1958년 HLKZ라는 TV의 콩쿠르 프로그램 '예능 로터리'에서 가요부문 1등을 하며작곡가 나화랑 씨의 눈에 띄어 1959년 19세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했는데 어느덧일흔살을 바라본다.
"그때는 간단한 시대였으니까 노래 잘하고 실력만 있으면 쉽게 데뷔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아무리 실력있어도 옆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안되죠. 나화랑 선생의 부름을 받아 대구로 가서 테스트를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다섯곡을 주셨어요. 나 선생이 KBS 라디오 음악 부장이셨는데 음반 취입보다 방송을 먼저 해 제 목소리를 알렸죠."이후 1964년 '동백 아가씨'를 시작으로 '기러기 아빠', '섬마을 선생님' 등 금지곡이 됐던 히트곡과 '엘리지의 여왕', '아네모네', '낭주골 처녀' 등 민초의 아픈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곡을 발표했다. 이중 애착이 가는 곳은 단연 금지곡이 된 세곡이라고.
"제 이름을 낳게 해 준 노래인데도 20년 이상 부르지 못했죠. '동백 아가씨'는 왜색이 짙다고, '섬마을 선생님'은 몇소절이 다른 노래와 같다고 표절, '기러기 아빠'는 내가 노래를 너무 처량하게 불러 비탄조라고 금지당했어요. 이해 못하시겠죠.
젊은 분들과 인터뷰를 하다보면 격세지감을 느껴요."그는 가수가 되기 전 어린 시절 얘기부터 들려줬다.
"우리 집에 아버지 친구들이 놀러오셔서 막걸리 한 잔을 하시면 젓가락을 두들기면서 당시 유행가를 부르셨죠. 다음날이면 4~5살 된 제가 그 유행가 가사를 하나도 안 틀리고 불렀어요. 아버지는 천연덕스럽게 노래하는 딸에게서 소질을 발견하신거죠."9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가 2학년 때 한국전쟁이 일어나 피난을 가야했다.
아버지는 지금의 서울 을지로 한 시장 상점에서 일했다고 한다. 1.4후퇴 때 피난가지 않으면 죽는다고 해 간 곳이 충남 예산. 이후 노상에서 좌판을 하는 아버지를 따라 부산, 대구로 옮겨다녔다. 이후 서울로 와 나이 때문에 월반을 하면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여러 지역을 다니며 구구단도 제대로 배우기 전에 초등학교 상급 학년에 올라가는 등 고생을 좀 했죠. 그런데 제가 곡마단을 따라다니며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은왜 났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가수가 돼 돈을 벌어 집안을 일으키지도 않았고요."그는 1960년대 한형모 감독이 그의 얘기를 담은 영화 '엘리지의 여왕'을 만든 얘기도 털어놓았다.
"'동백아가씨'가 나오자마자 바쁠 때 제 일상을 영화화한다는 제의가 왔죠. 너무나 모르는 과정에서 순진했기에 허락한거죠. 20대 때 제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는게 얼마나 우스워요. 제가 살아오면서 영화를 찍도록 허락한 건 경솔했어요. 그때는모든 영화가 처절하게 보이도록 하잖아요."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대통령이 내 음악을 사랑해줬고 김종필씨는 아코디언으로 '섬마을 선생님'을 연주하기도 했다"는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월남전에 위문 공연을 갔을 때의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박 대통령은 연회 때마다 저를 불렀어요. 그때 월남에 파견된 한국군 비둘기 부대에 위문 공연에 참석할 가수를 박 대통령이 지정해주셨어요. 저도 포함됐는데 가수들은 모두 죽을 지도 모르는 전선이니 회피하고 싶어했던 기억이 나네요. 박근혜 의원도 청와대를 오가며 그때 만났죠."짧은 시간 많은 얘기를 한꺼번에 털어놓은 그에게 '여자, 가수로 산 이미자의 인생'은 어땠는지 물어봤다.
그는 "여자 이미자는 초창기에 가정적인 면에서 굉장히 안 좋았다"며 "1970년서부터 제대로 된 가정을 만나 지금껏 잘 이뤄가고 있다. 그때 이후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신념으로 삼고 오면서 여자, 가수 양쪽의 어려움을 잘 딛고 살아온 것 같다. 내 인생을 담은 신곡 '내 삶의 이유있음은'은 시인 김소엽 씨가 특별히 가사를 붙여줬는데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지금의 가요계에 대한 쓴 한마디도 던졌다.
"트로트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부르는 노래는 전통 가요죠. 과거 가요들은 정을 느낄 수 있었고 가슴에 와 닿도록 아픔과 슬픔을 표현해주고 위로해줬죠. 그런데 지금 우리 가요는 흥을 위주로 해요. 희로애락이 담겨있지 않아 안타깝죠. 요즘 인터넷에 막말에 빠진 방송이라고 하잖아요. 가요야 말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 아닌가 책임감을 느껴요."50주년 음반에 전통 가요 30곡을 수록한 것도 남다른 이유가 있다.
그는 "내 히트곡 외에 선배들이 부른 전통 가요 30곡을 넣은 건 우리 대중음악 역사를 보존하는 차원"이라며 "오리지널에서 벗어나지 않고 원음을 살리도록 편곡도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의 아픔, 슬픔을 달래준 노래들이 스쳐지나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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