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전주성 서벽 철거시기 '어떤 자료가 맞나'

장명수 전 총장, "'전주부사' 근거로 1907년 헐려"…'완산지'엔 1909년 성벽 훼철 기록…논란일 듯

「전주부사」냐, 「완산지」냐.

 

최근 전주성 철거 시기가 기록돼 있는 옛 문헌들이 다양한 경로로 주목받으면서 전주성 서벽 철거 시기가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전주성 철거 시기가 남아있는 문헌들이 모두 근거로서 충분한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데다 유독 서벽 철거 시기만 다르게 적고 있어 이에 대한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

 

전주성 철거시기가 기록돼 있는 문헌은 1943년 일본에 의해 일본어로 쓰여진 「전주부사」와 1911년 전주향노재에서 중간한 「완산지」. 「전주부사」에는 1907년, 「완산지」에는 1909년 전주성 서벽이 헐린 것으로 나와있다.

 

1994년 발간된 「성곽발달과 도시계획 연구-전주부성을 중심으로」에 전주성 서벽 철거시기가 1907년이라고 기술한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은 "당시 「전주부사」와 '조선총독부시정연보'를 근거로 전주성이 1907년에 철거됐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두 자료 모두 전주성을 철거한 일본인들에 의해 쓰여진 기록물인 만큼 정확하다고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전주부사」 92쪽, 103쪽, 666쪽 등을 보면, '1906년 통감부 시대에 들어가서 다음해인 1907년 부터 여러차례에 걸쳐 전주성벽을 점진적으로 파괴해 오늘날 시가지에 이르렀다'는 내용과 '1907년 군전도로의 개수공사에 뒤이어 남문에서 북문에 이르는 서쪽의 성벽을 헐고 평탄한 대도를 만들어 반원형을 그리며 시가지의 서쪽을 감쌌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한편, 「완산지」에는 1909년 전주성 성벽이 훼철됐고 1911년 동문·서문·북문 3문이 철거된 것으로 적혀있다. 「완산지」는 성벽 철거 당시의 자료로, 전주성 서벽과 동·서·북문 3문은 철거되고 동벽과 풍남문만이 남아있는 지도도 첨부돼 있어 철거 시기를 따져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대해 학계 연구자들은 "전주성은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성으로, 전라감영이 있던 곳으로서 그 중요성이 크다"며 "좀더 본격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도휘정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군산새만금 글로벌 K-씨푸드, 전북 수산업 다시 살린다

스포츠일반테니스 ‘샛별’ 전일중 김서현, 2025 ITF 월드주니어테니스대회 4강 진출

오피니언[사설] 진안고원산림치유원, 콘텐츠 차별화 전략을

오피니언[사설] 자치단체 장애인 의무고용 시범 보여라

오피니언활동적 노년(액티브 시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