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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사 금제 소형판은 백제 금화…화폐 구실"

손환일 박사 신라사학회 학술대회서 주장

미륵사 석탑 삼초석 사리공에서 발견된 금제소형판. (desk@jjan.kr)

미륵사 서탑 심초석 사리공(舍利孔)에서 사리봉안기와 함께 발견된 작은 판 모양 금제품은 백제인들이 화폐처럼 사용한 금화(金貨)의 일종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서예사 전공인 손환일 박사는 21일 신라사학회(회장 김창겸)가 국민대 경상관 B동 학술회의장에서 '익산 미륵사지 출토 유물에 대한 종합적 검토'를 주제로 개최하는 춘계학술대회를 통해 이런 파격적인 견해를 담은 연구성과를 발표한다.

 

한국 고대사회에서 금화가 통용되었다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주최측이 미리 배포한 '익산 미륵사지 서원석탑(西院石塔) 금제 사리봉안기와 금정명문(金丁銘文)의 서체(書體)'라는 논문에서 손 박사는 금을 두드려 펴서 만든 '금제소형판(金製小形板) 18점'으로 발표된 금 덩어리 유물들은 "크기와 형식이 일정하게 분류되므로 백제시대 금화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같은 학술대회 발표자인 대전대 이한상 교수도 "금제소형판은 아무래도 그 기능을 화폐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면서 "그 기원을 한반도에서 추적하면 기원 전후 무렵 신라와 가야가 태동한 진한과 변한 문화권의 목관묘에서 자주 출토되는 판상철부(板狀鐵斧)라는 철 덩어리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륵사지 출토 금제 소형판 중 3점에서는 시주자가 누구인지를 적은 명문(銘文)이 발견됐다.

 

이 중 한 점에는 "중부(中部)의 덕솔(德率ㆍ백제 16관등 중 제4품) 사람인 지율(支栗)이 금 1량을 보시한다(中部德率支栗施金壹兩)"는 내용이 적혀 있고, 또 다른 한 점에는 앞ㆍ뒷면에다가 각각 "하부의 비치부와 그의 부모 처자(下部非致夫及父母妻子)" "함께 보시한다(同布施)"라는 구절을 적었다.

 

나머지 한 점에서는 정확한 판독이 어렵지만 사람 이름으로 생각되는 "恒"(항)과 같은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고 손 박사는 말했다.

 

손 박사는 "이들 금 덩어리 시주품 중 하나에 그 단위를 '금 1량'(金壹兩)으로 표시한 자체가 이것이 금화임을 명백히 밝혀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이 금제품들에 적힌 글씨는 "사리를 봉안할 때 이 금 덩어리들을 시주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급하게 쓴 즉각(卽刻)에 해당한다"고 덧붙였다.

 

손 박사는 이번 미륵사지 석탑에서 수습한 금 덩어리와 같은 금화, 혹은 은화(銀貨)나 철화(鐵貨) 등이 "조선시대에도 금정(金丁)이나 은정(銀丁), 혹은 철정(鐵丁)이라는 이름으로 화폐로 사용된 흔적이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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