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용기가 아닌 태도의 문제
"돈, 징그럽죠. 제가 돈이란 걸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습니다. 지금도 월세가 세 달 밀려 있어요. 그렇다고 뭐 떼돈을 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2009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숏!숏!숏! 2009'. 현재 한국 영화 안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젊은 감독 10명이 참여하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이송희일 감독(38)은 유일한 전북 출신이다.
익산 출생으로 전북대 사회학과를 졸업했지만, 그를 '유일한 전북 출신'으로 한정시키기에는 그가 만들어온 필모그라피가 그 누구보다도 사회적이며 비판적이다. 또한 거침이 없다.
그는 "고향에 자주 내려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머니께는 매일 전화를 드린다"며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내가 촌놈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이송 감독은 "촌놈의 감수성이 좋다"고도 덧붙였다.
'숏! 숏! 숏! 2009'의 주제는 '돈'. 그는 '주식으로 1억을 날린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담는다. 개인적으로 주식 때문에 빚어지는 온갖 비극들은 금융 자본이 서민들에게 강제한 희생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송 감독은 "전주영화제 측에서 제시한 주제지만,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상당히 유효한 질문"이라며 흥미로워 했다.
"열 편 모두 감독들이 직접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전체 주제가 '돈'이다 보니 그 주제에 걸맞는 소재를 찾기 위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돈이라는 키워드와 '주식'이 꽤 궁합이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주식 때문에 온통 난리잖아요."
그는 "이미 옴니버스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10편을 한 데 묶어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처음"이라며 "낯설고 유익한 경험"이라고 했다. 하지만 준비 시간이 충분치 않아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보다는 주제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에 더 신경썼다.
"전 우리 사회가 참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도발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제가 지금껏 보고 듣고 자란 가운데 '저건 분명히 큰 문제야'라고 생각되는 지점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것 뿐입니다. 이슈가 되는 건 외려 그 문제들에 관해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불편해 한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죠. 전 '불화'가 좋습니다. 질서가 아니라 불화가 우리의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들죠."
대학 졸업 후 문화 운동에 관심을 갖다가 얼떨결에 카메를 잡게 됐다는 이송 감독. 동성애를 다룬 <후회하지 않아> , 탈영을 다룬 <탈주> 등 파격적인 소재를 택하는 탓에 고등학교 때부터 만들고 싶었던 영화를 통해 그는 늘 이슈가 돼왔다. 탈주> 후회하지>
그는 "우리 사회에서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주제들을 다룬다는 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회피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거나 하는 태도와 달리 '저거 문제 있는 거 아냐?' '저것도 잘 살펴보면 나름의 가치가 있는 거 아냐?'라는 태도의 문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영화를 많이 만든 건 아니지만, 영화는 천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어떠어떠해야 된다는 주장은 웬만하면 피해야 된다고 봅니다. 특히나 영화를 곧 '돈'이라는 생각으로 제작에 임하는 건 다소 문제가 있죠."
그는 "자신이 마음에 가지고 있는 '가치'를 영화라는 텍스트에 구현하고 그것을 통해 온전히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전주영화제 1회 때 영화제 측이 주최한 시민 대상 워크샵의 강사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십년의 역사를 가까이에서 바라봤다고 할 수 있겠죠. 영화제 정체성이 몇 해 동안 여러가지로 변하게 되는 걸 볼 수 있는데, 이제 열살이 되는 만큼 뚜렷한 정체감을 가질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게 전주영화제가 더 견실해지고 영화제의 '역할'에 충실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송 감독은 "전주영화제만의 색깔이 이제 농밀해질 때가 됐다"며 "앞으로 더욱 맛있는 영화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전주영화제를 응원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