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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은 반인도적 범죄"

동북아역사재단 '한일 병합' 100주년 국제학술회의

일본 학자가 "한일 병합은 평화와 인도에 어긋나는 범죄 행위"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했다.

 

무사코지 긴히데 일본 오사카경법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은 22일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학술회의 기조강연을 통해 "한일 병합은 국제법상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고 군사적 압력 아래에 이뤄졌으므로 무효"라고 강조했다.

 

무사코지 소장은 이어 "한일병합에서 나타난 식민주의는 두 나라간 전쟁의 결과가 아니었고 일본의 군사적 압력이나 암살과 같은 공공연한 군사력 사용이 '외교적' 협상의 일부였다는 점에서 반평화적 범죄"라면서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은 고문과 사형을 당하고 삶의 스타일의 변화가 강제됐으며 반인류적인 많은 범죄가 행해졌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한국병합 효력에 대한 국제법적 재조명'을 주제로 마련된 이번 학술회의에서 한국을 비롯해 일본, 미국, 프랑스의 전문가들이 1910년 강제병합조약의 불법성과 역사적 교훈, 동아시아 근대사에서 한일병합의 의미, 미국의 하와이 병합 사례 등을 살폈다.

 

이날 국제법 연구자인 박배근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시제법적 관점에서 본 조약체결의 형식과 절차-한일병합 관련 조약 유무효론 평가를 위한 일고(一考)'를 발표하고 한일합병 관련 조약이 무효라고 주장해 큰 관심을 끌었다.

 

박 교수는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운노 후쿠쥬(海野福壽) 일본 메이지(明治)대 명예교수가 1999-2000년 '세카이(世界)'지에서 한일병합관련 조약의 체결 형식과 절차상 하자를 둘러싸고 벌인 공방을 당시의 국제법에 비춰 검토하고 평가하면서 "전권을 위임받지 않은 사람이 체결해 국가원수의 비준을 받지 않은 한일합병 관련 조약은 무효"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병합관련 조약이 체결되던 당시의 국제법에 관한 영국과 일본 등지의 저작을 분석했다.

 

영국 법학자 오펜하임은 저서 '국제법'(1905)에서 "조약은 정당하게 권리를 부여받은 대표의 행위에 의해 상호합의가 명백해지는 순간에 체결되지만 그 구속력은 비준이 될 때까지 규칙상 연기된다. 그러므로 비준의 기능은 조약을 구속적으로 만드는 것이며 비준이 거부되면 조약은 붕괴되고 만다"고 썼다.

 

박 교수는 이같이 당시의 국제법 개설서를 분석한 결과 조약 체결 대표가 직책상의 권한을 넘어서는 조약을 체결해서는 안 되고, 외무장관이나 외교사절이 아닌 사람에게는 전권위임장이 반드시 요구되며, 조약은 비준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박 교수는 합병 관련 조약의 효력 문제는 일본의 한국 지배의 국제법적 합법성 문제와 결부돼 있으며 조약이 무효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국 통치의 불법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00년대 초 한일간 조약들의 효력 문제를 파헤치는 것은 역사 청산을 위해 필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1910년 조약의 효력에 관한 대립은 아직 해소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대립의 출발점은 '법'이며 역사청산 과제의 해결이 '법'논리에 의해 방해받고 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갈등의 뿌리에도 '법'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제국주의 국제법의 틀 대신 식민지지배 일반을 불법으로 선언하는 새로운 법의 틀을 구축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이태진 서울대 국사학과 명예교수는 1905년 보호조약의 불법성을 부각시키면서 조약을 강제한 일본 정치지도자들이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이태진 교수는 "고종 황제는 여러 차례 보호조약의 불법성을 지적했지만 일본은 국제법 학자들의 어용적 활동의 뒷밤침을 받아 한국의 국권을 탈취하려는 목적을 달성했다"며 "보호조약의 강제를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의 보고서는 상당 부분이 조작돼 진실을 은폐했다"고 말했다.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는 고종이 한국의 중립화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했지만 일본군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와다 교수는 "러일전쟁은 전시 중립을 선언한 대한제국에 일본국이 침입해 진해만을 시작으로 마산의 전신국을 점령하고 인천에 상륙해 서울을 점령하면서 시작됐다"면서 "대한제국 황제인 고종은 1900년부터 1904년의 러일전쟁 개전 시까지 한국의 중립화에 희망을 걸고 노력을 했지만 일본의 위력 앞에 결국 굴복했다"고 말했다.

 

이근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의 한국병합에 대한 국제법적 재검토-병합의 불법성 여부와 '청구권협정'을 중심으로'를 통해 1965년 한일 기본관계조약에 따라 한국 국민이 보유하고 있던 개인청구권은 소멸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1965년 체결된 이른바 '청구권협정'은 원칙적으로 개인청구권도 그 규율대상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1969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상의 조약 해석 원칙에 비춰보더라도 1965년 협정에 개인청구권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 의한 한국병합이 국제법상 무효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식민지배 배상책임을 재론하는 것과 바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1965년 체결된 청구권 협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에드워드 슐츠 미국 하와이대 교수는 미국이 1893년 하와이 왕정을 무너뜨리고 1898년 하와이를 병합한 것은 불법이었으며 하와이 주민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난폭한 공격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도 아라이 신이치 일본 이바라키대 명예교수, 그럿트 파스칼 이화여대 교수, 사사가와 노리가츠 일본 메이지대 교수가 발표했고 김기정 연세대 교수, 서중석 성균관대 교수, 이상찬 서울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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