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호성동 신중마을에 가면 팔작지붕 겹처마에 현판 2개가 위 아래로 걸려있는 정려각이 있다. 조선 순조 29년 효자로 통훈대부 사헌부감찰로 증직된 송상복과 그의 아들 도녕부도정 송득환의 효심을 기리는 효자 정려각이다. 송상복은 병에 걸린 아버지를 위해 잉어를 구하려고 했지만, 한겨울이라 구할 수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강에 나가 간절하게 소원을 빌며 강의 얼음을 깨자 갑자기 잉어가 뛰쳐나왔고 이를 달여먹은 아버지는 완쾌돼 천수를 누리게 됐다.
1890년 태어나 남원 금지면 귀석리 윤씨 집안으로 출가한 진주 강씨는 남편이 병에 걸리자 백방으로 약을 구하러 다녔다. 그러나 결국 남편이 세상을 뜨자 3년상을 치르고 뒤따라 자결했고, 1935년 열부비가 세워졌다.
충신, 효자, 열녀 등의 언행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세웠던 비를 가리키는 정려비(旌閭碑).
한국문화원연합회 전북도지회(회장 이복웅)가 역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참고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정려비들을 모아 「전북의 정려비각(충·효·열) 자료집」을 펴냈다.
이복웅 전북문화원연합회장은 "조선 후기로 내려올수록 정려를 내려달라는 추천장이 많아지면서 그 절차가 복잡해 졌고, 일반 서민들은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라도 장려를 받기가 쉽지 않았다"며 "조선 후기에는 부정한 거래가 성행해 정려의 존귀함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정려비각 정리는 선조들의 윤리의식과 효의식을 시대의 교훈으로 남기기 위한 것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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