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전시] 차가운 재료, 따뜻한 소재…'헨젤과 그레텔'의 사람 향기

조각가 엄혁용씨 개인전 '물성과 부정으로의 환원'

골목길을 가다가 매부리코 할머니 모습에 "마녀다!"라고 소리치며 도망가던 시절이 있었다.

 

그 할머니가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마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빵 부스러기를 일부러 땅에 흘리면서 놀러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이젠 행복했던 시절의 그 귀퉁이에 아이들이 들어와 앉았다.

 

조각가 엄혁용씨(48) 개인전 '물성(物性)과 부정(父情)으로의 환원'展은 또다른 시도다.

 

동화 '헨젤과 그레텔'을 차용했고, 초기 작품의 주재료가 됐던 알류미늄과 스테인레스를 다시 등장시켰다.

 

소재는 따뜻한데, 재료는 차가운 느낌. 이 부조화를 그는 남다르게 들여다본다.

 

"자기 전 아이들에게 '헨젤과 그레텔'을 많이 읽어줬어요. 제가 그때 느꼈던 감정을 아이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더라구요. 그런데 이젠 전 그 빵이 식량, 돈, 생계수단으로 보여요. 그래서 빵으로 집을 만들어 보면, 일종의 자기 기록이 될 수 있겠다 싶었지요."

 

작품명에 들어가 있는 이름 모를 숫자는 두 아들 태신과 태민이의 주민번호.

 

"나중에라도 '얘들한테 아빠가 너희들을 위한 작품을 남겼다.' 고 하려고 증거로 남겼죠.(웃음)"

 

'헨젤과 그레텔 - 빵 610601'은 '빵'을 위해 한 가정을 책임져야만 하는 작가 자신의 고민이 담겼다. 뒷번호 역시 그의 주민번호다.

 

외형적으로 커다란 중량감을 갖는 스테인레스 내부는 텅 비어있다. 내재적 공간에 작가가 불어넣고 싶은 것은 누군가의 시간과 시간이 만나 삶을 꽃 피우는 이야기. 따뜻한 사람 향기다.

 

이번 전시는 2년 만에 갖는 개인전. '다이어리 심리 설치 작품','인체 작업', '방석 시리즈' 등 매번 새롭고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왔기에 그의 개인전은 매번 주목의 대상이 됐다.

 

대학 졸업하면서 "2년에 꼭 한 번은 개인전을 하겠다."고 뇌리에 남겼던 것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것. 푹푹 찌는 더위에도 긴소매 옷에 장갑까지 끼고 불꽃과 싸워야 하는 숙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자세다.

 

"앞으로도 아마 이솝 우화를 풀어내는 전시를 계속 할 것 같습니다. 아주 흥미로워요."

 

전북도의 '수도권 전시지원사업' 일환인 이번 전시는 서울 덕원갤러리에서 26일부터 9월8일까지 열린 뒤 전주 우진문화공간으로 자리를 옮겨 9월10일부터 9월23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이화정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자치·의회인공태양 연구시설 유치 경쟁…전북 '불리론' 확산

국회·정당국힘 전북도당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후보 모시기’ 총력전

경제일반[현장] “직접 보고 사니 좋아요”··전북농특산물 대잔치 가보니

경제일반“맛에 감탄·모양에 매료” 국산 밀 빵·과자에 반하다

산업·기업전북 산업 경기 반등세···대형 소매점 판매는 감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