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보다 신부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디자인 철학"…디자인에서 제작까지 전 과정 섭렵
2001년'대한민국 웨딩드레스 콘테스트'엔 54 조각 천을 덧댄 웨딩드레스가 모두의 주목을 모았다.
기존 웨딩드레스가 원피스에 스팽글과 구슬로 장식하는 일에 머물렀다면, 조각난 웨딩드레스 변신은 파격 그 자체였다.
"좀 색다른 걸 해보고 싶었어요. 당시 웨딩드레스는 목선이나 소매까지도 정해져 있는 원피스에 불과했거든요. 노력이 가상해서인지 작은 상도 받았어요.”
웨딩드레스 디자이너 박희영씨(34·디아망 웨딩드레스 대표). 의상 디자이너는 많지만, 웨딩드레스 디자이너는 다소 생소하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의상 디자이너가 꿈이었다는 그의 첫 직장은 서울의 'J 웨딩'. 모든 사람들로부터 가장 축복받는 날, 가장 아름다운 신부를 위한 웨딩드레스는 세상의 단 하나뿐인 선물이다. 그 매력에 이끌려 그의 직업은 그렇게 결정됐다.
"90년대 전국을 통 털어서 'J 웨딩'이 가장 컸어요. 그런데 2000년에 접어들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어요. 웨딩산업 하기만 하면 돈을 번다는 인식이 그때 생겼났죠. 서울 청담동 무슨 무슨 웨딩샵이 유명하더라 하는 개념도 만들어졌구요.”
하지만 디자인 만으로는 늘 2%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디자인을 아무리 멋지게 해도, 정작 그가 원하던 웨딩드레스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 웨딩드레스 제작 자체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규모는 작지만 세분화된 공정 전반에 참여할 수 있는 'L 웨딩샵'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쪽에선 저를 반기지 않았어요. '4년제 대학 나와봤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을 정도니까요. 사무실 청소부터 시작해서 밤샘 작업은 끝도 없었죠. 우아한 드레스 한 벌 뽑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완전 '노가다'해요. '노가다'.(웃음)”
좀더 공부를 하고 싶은 욕심에 내려온 고향길. 고급스러우면서도 '제2의 피부'처럼 몸에 잘 맞는 웨딩드레스 제작에 중심을 뒀다. 그 사람을 지배하는 것 보다 돋보이게 하는 웨딩드레스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 목이 짧다거나, 가슴이 작다거나 하는 컴플렉스를 보완하기 위해 그는 늘 디테일에 신경쓴다. 신부의 체형과 분위기에 맞는 세심한 신경이 그날의 신부를 완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신부가 드레스 입고 나오면서 "저 너무 예쁘지 않아요?” 라고 스스로 감탄할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요. 그 표정을 확인하는 순간 고단함도 다 잊게 돼요.”
그는 드레스를 공짜로 빌려달라는 고객을 만날 때면 고집스럽게 말하는 것이 있다. 정말 자부심을 갖고 하는 일은 절대 공짜로 해서는 안된다는 것. "일부만이라도 내 옷을 이해해주면 된다”는 철학은 고집스럽기까지 하다.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막상 자신의 결혼식엔 지인의 손을 거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웨딩드레스 맡아주세요.”라는 말이 제일 듣기 좋다는 그는 오늘도 휴일 없는 '노가다'를 계속하고 있다.
/박영숙 여성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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