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가는 소리꾼"…대원군, 그의 소리에 감동
박유전은 서편제 판소리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순창 출신이라고 하지만, 막상 순창 사람들 중에 박유전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박유전은 전라남도 보성에 가면 유명하다. 보성읍에는 박유전을 기념하여 무덤을 형상화한 기념비가 서 있다. 보성에 박유전의 비가 서 있는 것은 박유전이 말년을 거기서 보냈고, 또 그의 소리를 이어 발전시킨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박유전은 순창 사람이라고만 할 뿐, 어디서 났으며 누구에게 소리를 배웠는지 전혀 전하는 바가 없다. 그러니까 그저 전통 속에서 자연스럽게 소리꾼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으면서도 가수가 된 사람에 비할 수 있을 듯하다. 박유전은 <적벽가> 를 잘 했는데, 특히 대원군이 박유전의 소리를 좋아하여 대원군의 사랑에 머물며 오래 동안 소리를 했었다고 한다. 대원군이 실각을 하자 박유전은 낙향을 한다. 그런데 고향인 순창으로 내려간 것이 아니라, 나주 근방으로 내려간 모양이다. 왜 그랬는지는 알 도리가 없으나, 나주는 호남에서 전주 다음으로 큰 고을이었으므로 그곳에서 소리를 하면서 살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적벽가>
박유전은 나주 부근에서 정재근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난다. 정재근은 상당한 재산이 있는 소리꾼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정재근은 박유전을 모시고 전남 보성으로 이사를 했다. 박유전은 보성읍 강산리라고 하는 곳에서 살고, 정재근은 보성군 회천면 도강재라고 하는 마을에 살면서 소리를 배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박유전은 어느 눈 오는 날 귀가하다가 얼어죽어서 마을 산발치에 묻히고, 정재근은 박유전에게 배운 소리를 후손에게 전하여 보성 지방에 전하게 된다. 이 소리가 이른바 '보성소리'를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
박유전은 호를 강산(江山)이라고 했다고 한다. 박유전이 호를 강산이라고 한 것은, 박유전의 소리를 들은 대원군이 그를 가리켜, "네가 제일강산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제일강산'이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이 말을 한 전후 문맥으로 보아, '제일 가는 소리꾼'이라는 의미로 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박유전의 호가 강산이었기 때문에, 박유전으로부터 이어받아 보성 지방에 전승된 소리를 특별히 '강산제(江山制)'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유전의 제자로 알려진 소리꾼은 이날치, 정창업, 정재근이다. 그런데 이날치와 정창업에게 이어진 소리는 강산제라고 하지 않고, 오직 정재근에게로 이어진 소리만을 강산제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명칭을 달리 한다는 것은, 그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똑같다면 굳이 달리 불러야만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연구에서도 정재근에게 이어진 소리와 이날치에게 이어진 소리는 매우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박유전은 <새타령> (민요)을 잘 불렀다고 한다. 민요 <새타령> 은 <적벽가> 새타령과는 다르다. 민요 <새타령> 은 이날치를 거쳐, 일제강점기에 이동백에게까지 이어졌다. 이동백의 <새타령> 은 이날치 이후 최고라는 찬사를 들었다. 장기라서 그랬는지 이동백은 판소래를 하다가도 흥이 나면 적당한 곳에서 <새타령> 을 불렀다고 한다. 실제로 이동백이 중심이 되어 부른 일축조선소리판 <춘향가전집> 에서는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 남원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노래한 부분에서 갑자기 <새타령> 을 부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동백은 <새타령> 을 여러 차례 유성기판에 녹음하였다. 그래서 지금도 그 소리를 통해서 박유전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다. 물론 그 소리가 박유전이 불렀다던 <새타령> 과 얼마나 다른지, 같은지는 알 수 없다. 새타령> 새타령> 새타령> 춘향가전집> 새타령> 새타령> 새타령> 적벽가> 새타령> 새타령>
지금도 보성 강산리에 가면 박유전이 묻힌 것으로 추측되는 벼슬무덤이 마을 한 쪽 산발치에 있다. 번듯한 무덤이 아니라, 그저 무덤이 있던 자리라고 하면 그럴 것도 같은 정도의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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