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스레 한땀한땀 '한국의 미' 뜨는 바느질의 미학
"어릴적 부터 바느질에 남 다른 소질이 있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디자인 공부를 해보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여자는 이런 일 하면 삶이 고달프다'고 반대해 꿈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어요."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자녀들을 모두 키우고 난 뒤 바느질에 대한 배움을 시작, 하루하루 바쁜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할머니가 있다. 올해 64세인 최순심씨. 뛰어난 바느질 솜씨를 인정 받아 전북노인복지관에서 '바느질반'선생님으로 활동하는 최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전주시 인후동의 집을 찾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최순심씨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최씨를 따라 들어간 아파트 거실에는 손수 한땀한땀 정성스레 바느질한 바늘방석·돈보자기·조각보자기 등 '규방공예'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거실 한켠에는 할머니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재봉틀이, 집안 곳곳 벽에는 할머니가 손수 바느질해 만든 소품들이 걸려 있다. 최씨의 안내를 받아 작은방에 들어가자 방안 곳곳에 바느질을 위한 재료들이 쌓여 있다. 또 아직 완성하지 못한 작품들이 각각의 상자에 담겨 있다.
30여평 아파트는 주거공간이라기 보다 최씨의 작품 활동을 위한 공방 같아 보였다. 느즈막한 나이에 바느질 공부를 시작, 작품활동과 노인들에게 바느질을 가르치는 선생님으로서 최씨가 인생 2막을 살게 된 것은 지난 1993년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최씨는 당시 교감이었던 남편이 평소 딸처럼 돌봐주던 한 젊은 여교사의 부모로 부터 감사의 뜻으로 '녹차'를 선물 받았다. "막상 녹차를 선물 받았는데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어떻게 우려먹어야 하는지 몰랐거든요.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들이 '엄마 다도 한번 배워 보세요'라고 말하더군요."
무심코 던진 아들의 말에 최씨는 '설예원'을 찾았고, 다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다도에 푹빠진 최씨. 같은해 11월 한국차생활교육원 기초반을 이수한 뒤 이듬해는 전문반을 이수했다. 또 1999년에는 다도사범 3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녹차를 먹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다도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것.
이때 최씨의 눈에 들어온 것이 '다기'를 올려놓기 위해 깔아놓은 알록달록한 '조각보자기'.
"가정을 꾸린 뒤 남편 내조하고 아이들을 키우느라 잊고 있었어요. 어릴적 그렇게 좋아했던 일이었는데요."
최씨는 그 길로 1주일에 한 번씩 '규방공예'을 배우기 위해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규방공예를 배우러 다니는 3년 동안의 행보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꼭 해내고 싶었다. 서울을 다녀온 날 최씨는 꼬박 밤을 지새웠다.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복습에 복습을 거듭했다.
틈틈히 시간을 내 서울의 인사동 거리와 규방공예품의 전시회가 열리는 곳을 찾아다녔다. 이렇게 발품을 팔면서 눈으로 익힌 작품들을 최씨는 반복해 연습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할 수 있었다. 한땀한땀 정성스레 바느질을 통해 조각보자기 하나를 만드는데 5일 정도 걸린다는 최씨.
매우 힘든 작업의 연속이지만 최씨가 이를 견디고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고생해서 작품 하나를 완성했을 때 오는 성취감과 우리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여기에 규방공예를 통해 세계 속의 한국의 이미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며느리가 호주로 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어요. 제가 만든 작품을 몇점 들려 보냈죠. 홈스테이하는 집 주인에게 선물하라고, 연수를 다녀온 며느리가 '어머니 선물을 받은 호주 할머니가 '미개한 나라인줄로만 알았는데 대단하다'고 극찬을 했다는 거에요. 자부심도 생기고 용기가 더 나더라고요."
바느질로 새로운 삶을 사는 최씨가 본격적으로 다른 노인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나누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5년. 당시 다도 사범으로 활동하는 최씨에게 다도를 배우기 위해 왔던 대한노인회 전북연합회 노인취업지원센터 정해금 부장(63)을 만나면서 부터.
사라져가는 우리 내 전통을 아쉬워하던 정 부장은 다도강사로 활동하면서 규방공예에 특별한 소질이 있는 최씨를 적극 설득해 강사로 활동하도록 권했다. 그때 맺은 인연으로 최씨는 노인복지관에서 '규방공예·다도·예절교육'선생님으로 노인 회원들에게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집으로 직접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규방공예를 전수하고 있다.
"요즘은 몸이 예전같지 않아 날을 지새우며 작업을 하지는 못한다"는 최씨는 "점점 전통문화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면서 "우리내 우수한 전통문화가 사라지지 않도록 작지만 큰 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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