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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의 명창이야기] ⑭떡목으로 명창이 된 정정렬(1)

서민적 감성에 밀착…오명창중 전주서 큰 인기

전라도, 특히 전주 부근의 나이 든 판소리 청중들은 오명창 중에서도 정정렬의 소리를 가장 좋아한다. 정정렬은 목이 나빠 고음이 나지 않는다. 고음을 낼 때면 소리가 갈라지고 찢어져서 처참한 형상이다. 그런데도 정정렬의 소리를 좋아한다. 송만갑의 소리는 남도 출신의 명고수들이 좋아하고 높이 평가하는 데 반해서, 정정렬의 소리는 전주 부근의 일반 청중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그만큼 정정렬의 소리는 서민적 감성에 밀착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정정렬은 익산군 망성면 내촌리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전남 순천 사람 벽소 이영민은 정정렬을 김제 사람이라고 쓰고 있다. 벽소 이영민이라는 사람은 본래 사회주의자로서 순천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한 사람인데, 1934년 좌익운동이 어렵게 된 이후 판소리 명창들을 초청해서 소리를 듣고, 그 감상을 한시로 써서 곁에 붙여 놓고 명창들의 사진을 찍어둔 사람이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명창들의 사진 중에서 가장 상태가 좋은 전신 사진들이 모두 이 사람이 찍어둔 것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정정렬을 김제군 흥복리 사람이라고 했다. 흥복리는 지금 흥복사가 있는 백구면 흥복리를 말한다. 실제 그곳 사람들도 정정렬을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익산군 망성면 내촌리 사람들도 정정렬이 그 동네에서 살았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정정렬은 어디 출신인가?

 

명창들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소리도 하고, 또 소리 공부도 했다. 일정한 거처가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출신지와 거주지의 구별이 없던 시절에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을 출신지라고 썼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출신지가 여러 개 나타날 수도 있다. 정정렬도 김제와 익산 두 곳에서 살았을 듯하다. 그러기에 그 두 곳에 정정렬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영민은 또 정정렬이 김희중에게서 배웠다고 하였다. 김희중은 알려진 사람이 아니다. 보통 정정렬은 정창업과 이날치에게 배웠다고 알려져 있다. 정창업은 나주 사람이고, 이날치는 담양 사람이다. 모두 서편제 판소리의 시조라고 하는 박유전의 제자라고 하는데, 최근 들어 정창업은 박유전의 제자가 아니라 자기 나름의 소리를 했던 사람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정정렬은 일곱 살부터 일족으로 같은 마을에 사는 정창업에게 소리를 배웠는데, 스승이 일찍 돌아가시자 다음에는 이날치에게 배웠다고 하였다. 이날치마저 별세하자 정정렬은 스승 복이 없음을 한탄하고 스스로 공부를 해서 대성했다고 한다. 정창업과 같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면 정정렬은 또 나주 출신이라는 말이 된다. 뿐만 아니라 정창업과 일족이라고 했으니, 대단한 판소리 명문가의 후예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김희중은 누구인가? 지방의 이름 없는 소리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영민이 정정렬의 스승을 김희중이라고 써 둔 것은 정정렬로부터 그렇게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정정렬이 특별히 자기 스승이라고 지목한 것을 보면, 아마도 실질적으로 소리를 가장 많이 가르쳐 준 사람이 그인지도 모를 일이다. 공식적으로는 유명한 명창의 제자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정렬은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긴 수련 기간을 보냈다. 목이 약해서 소리를 하면 목이 금세 쉬어 버리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하여간에 정정렬은 40세 무렵까지 익산, 충남 홍산, 공주 갑사 등에서 소리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마산에 가서 후배들을 가르쳤는데, 그때부터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여 50이 되어서 서울로 올라왔다고 했다. 정정렬이 1876년 생이므로, 서울에는 1925년 경에 올라온 것이다. 오명창들 중에서는 가장 늦게 서울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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