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저운(소설가)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알폰시나 스토르니(Alfonsina Storni·1892~1938)라는 여성의 삶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휴양지 마르 델 플라타에는 그녀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고, 그녀의 삶을 노래한 '알폰시나와 바다'는 메르세데스 소사 등 여러 가수들에 의해 불려지고 있다.
알폰시나는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대중적 인기가 아주 높은 시인이었다. 인권과 여성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에로티시즘을 직설적으로 시에 담기도 했다. 그러나 작가들로부터는 '속물 시인'이라며 정작 외면을 받았다. 국제적인 문학조류에서 낙후된 시 경향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녀의 신분과 삶에 대한 경멸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는 시골 출신에 학력도 집안도 변변치 못했다. 게다가 유부남과의 사랑에 빠져 홀로 사생아를 낳아 키웠다. 그러니 당대 엘리트 문인들에게 그녀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비난과 소외는 그녀를 갉아먹었다. 가장으로서 생계와의 싸움에도 지쳤다. 병마까지 찾아왔다. 그녀는 바다에 몸을 던졌다.
조선 명종 때 이옥봉(李玉奉)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서녀였던 옥봉은 번듯한 가문의 정실부인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서울로 떠났다. 시재가 뛰어나 장안의 내로라하는 명사들과 어울렸다. 그러다 조원이란 선비를 사랑하여 첩이 되었다. 대신 남 앞에서 함부로 시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야 했다. 당시 남들과 시로 어울리는 행위는 기녀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통념이 지배적이었다.
어느 날, 이웃집 아낙이 남편의 송사 문제로 억울함을 호소해왔다. 옥봉은 진실을 전하는 내용의 시 한 수를 지어 보냈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조원은 옥봉을 내치고 만다. 아녀자가 나섰다는, 함부로 글을 지었다는 이유였다. 옥봉이 그의 곁을 떠나고 싶지 않아 용서를 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중국의 황해 바닷가에 한 여자의 시체가 떠올랐다. 건져놓고 보니 온몸을 종이로 수백 번 감아 노끈으로 묶고 있었다. 거기에 이옥봉의 시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중국의 한 원로대신은 그 글들이 빼어남을 알고 책으로 엮었다.
알폰시나 스토로니와 이옥봉. 이들은 서로 다른 시대에 다른 땅에서 살았지만 삶의 궤적엔 공통점이 많다. 인습과 제도에 반항하면서 나름대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살고자 발버둥 쳤지만, 윤리적 편견, 남녀 차별, 소외감 같은 높은 벽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했다. 실력과 능력으로 사회와 가정을 이끌어가는 여성들도 많다. 아예 홀로서기를 하는 여성들도 있다. 팝 여왕 마돈나, 예일대 출신에 지성파 여배우인 조디 포스터 등은 '싱글 맘'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다 그럴까? 아니다. 지금도 어느 구석에선 가부장적인 인습과 폭력으로 여성을 짓밟는 이들이 많다. 탁월한 능력이 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정과 일을 병행해야 한다는 부담으로 밀려나는 이들이 많다. 능력 있는 여성들도 그러한데, 약하고 초라한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압력은 또 얼마나 많을까? 상처 받고 좌절하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얼마나 허다할까?
오늘 다시 아르헨티나 문인들의 편견과 오만을 속죄하는 진혼곡 같은 노래 '알폰시나와 바다'를 듣는다. 처연한 그리움으로 서성이는 이옥봉의 시 '몽혼(夢魂)'을 떠올린다.
/김저운(소설가)
▲ 소설가 김저운씨는
현재 전주영상미디어고교 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산문집 「그대에게 가는 길엔 언제나 바람이 불고」를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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