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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현의 명창이야기] (22)근대 문물이 만든 명창 임방울(5)―제자들

"많이 해라. 많이 하면 되느니라"…'기둥'만 알려 주고 나머지는 독공 방식 요구…능력 탁월·너무 바빠 재목감 발견 하지 못해

임방울의 소리를 잘 전승했던 사람으로는 평가받는 전북 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였던 고 임준옥 명창. (desk@jjan.kr)

임방울이 근세 최고의 명창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누이 지적한 바와 같이 임방울은 근대가 만들어낸 명창, 최초의 수퍼 스타라고 할 만한 사람이었다. 소리꾼으로서의 임방울의 인기는 어떤 명창도 누려보지 못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임방울의 소리는 제대로 전승되지 못하였다. 왜 그랬을까?

 

사실 임방울의 소리가 전승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가령 <쑥대머리> 같은 소리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부르고 있다. 생전에 가장 큰 라이벌이었던 김연수의 <춘향가> 에도 이 <쑥대머리> 가 들어 있으며, 김소희나 성우향 같은 명창의 <춘향가> 에도 이 <쑥대머리> 가 들어 있다. 그냥 단가처럼 이 한 대목을 부를 수 있는 소리꾼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임방울의 소리 한 바탕을 온전하게 다 전승해서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궁가> 를 부르는 박화선, <적벽가> 를 부르는 정철호 정도가 있을 뿐이다. 생전에는 인기 면에서 임방울을 능가하지 못했던 김연수의 경우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이 없다. 그렇기는 하지만 임방울의 소리가 전승이 끊어진 것도 아닌데 왜 끊어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임방울의 소리를 이어서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임방울을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임방울의 소리를 전승한 사람들이 임방울의 기량을 따라가지 못하니, 임방울의 소리를 전승했다고 내세울 수 없고, 또 공연도 활발하게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임방울의 소리가 전승이 끊어진 것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임방울의 소리를 잘 전승했던 사람으로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였던 임준옥(1928~1987)을 들 수 있다. 임준옥은 광주 출신이었는데, 6.25 무렵에 임방울로부터 <수궁가> 와 <적벽가> 를 전승하였다. 임준옥은 1980년 정읍으로 이사하여 정읍국악원에서 창악강사로 활동하였다. 임준옥은 임방울로부터 소리를 배우기가 무척 어려웠다고 하였다. 우선 공연이 많아 만나기도 힘들었는데, 오랜만에 만나면 그냥 한 대목 쓱 불러주고는, "많이 해라. 많이 하면 되느니라."라고만 말했다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친절한 지도를 기대할 텐데, 스승으로서의 임방울은 전혀 친절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스승의 소리를 그대로 따라서 불러가지고는 명창이 될 수 없다. 스승을 능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소리꾼들은 스승으로부터 '기둥'만 배우고, 나머지는 독공으로 갈고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임방울은 바로 그런 방식을 요구했던 모양이다.

 

역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인 홍정택(1921~ )도 젊어서 임방울의 협률사를 따라다니면서 임방울의 소리를 배웠다. 젊어서는 임방울의 흉내를 어찌 잘 내는지 '홍방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방울의 소리를 오롯이 전승하지는 못햇다.

 

명고수인 정철호(1927~ )는 전남 해남 사람으로 15세 때부터 임방울을 수종하면서 <적벽가> 와 <수궁가> 를 배웠다. 정철호는 임방울로부터 배운 <적벽가> 를 음반으로 내는 등 임방울의 소리 전승에 애를 쓰고 있다.

 

명고수 주봉신(1934~ )은 23세 때부터 임방울을 수종하여, 임방울의 말년을 지킨 사람이다.

 

박화선(1930~ )은 송정리 출생으로 임방울 누님의 딸이다. 17세부터 임방울로부터 <수궁가> <적벽가> 를 배웠다.

 

임방울의 소리를 전승한 사람은 이 정도에 불과하다. 이렇듯 임방울은 제자를 많이 두지 못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임방울의 능력이 너무 탁월해서 제자로 삼을 만한 재목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임방울의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소리하러 다니느라 한가히 제자들을 가르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제자 잘 두어 갈수록 그 가치를 더해 가는 김연수의 판소리에 비하면, 임방울의 제자복 없음이 더욱 두드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임방울에게 배우지는 않았어도, 임방울을 모범으로 삼고 따르고자 하던 사람들이 얼마인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대 판소리꾼 모두가 임방울의 계승자인 셈이다.

 

/최동현(군산대 국어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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