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헐크… 초능력을 지닌 슈퍼영웅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단골메뉴이자 서구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다.
스티븐 에번스 베일러대 교수와 C. 스티븐 레이맨 시애틀퍼스픽대 교수 등 구미 철학자와 전문 작가들은 '슈퍼 히어로 미국을 말하다'(도서출판잠 펴냄)에서 슈퍼영웅의 삶과 사회 정의를 진지하게 논의한다.
저자들은 슈퍼영웅이 쌓은 대중적 이미지를 파헤치기도 하고, 도덕성이나 정체성, 유대관계 등 그들의 '실존세계'를 탐구하기도 한다.
저자들의 현미경 안에서 엑스맨, 배트맨 같은 허구적 인물들은 현실적인 존재로 바뀐다.
가령, 케빈 킹혼 영국 옥스퍼드대 강사는 "브루스 배너가 헐크로 변할 때 저지른 불법행위로 샌프란시스코 법정에 선다면 유죄인가, 무죄인가?"라는 흥미로운 물음을 던지며 슈퍼영웅의 정체성 문제를 탐구한다.
"사람이란 자신을 자신이라고 여기는, 즉 시간과 장소가 달라져도 여전히 동일한 생각하는 존재라고 여기는 존재"라는 존 로크의 정의를 바탕으로 보면, 브루스 배너와 헐크 사이에는 기억과 자기인식, 사고의 연속성이 없으므로 동일 인물이라 보기 어렵다.
그러나 킹혼은 주위 인물들과 지속적이고 동일한 관계가 이어지는지에 따른 '상관적 정체성'을 적용한다. 연인 베티 로스, 데이비드 배너 박사 등 중요한 주위 인물들이 헐크와 브루스 배너에게 같은 감정을 갖고 동일 인물로 대하므로, 이 둘은 동일 인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슈퍼영웅들의 실존 문제에서 더 나아가 이야기를 떠받치는 미국적 또는 서구적 세계관의 실상을 파악해 보기도 한다.
영화제작자 출신 작가 매트 모리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가지 우정론'을 통해 배트맨의 인간관계를 분석하면서 영웅의 관계 맺기를 풀이한다.
배트맨은 중요한 '단짝'인 로빈, 친구에서 적수로 바뀌는 '투페이스' 하비 덴트, 늘 곁에서 자신을 보좌하는 집사 알프레드 등과 우정을 나누지만, 이는 필요에 의해 유지되는 '유용성의 우정'이나 함께 기쁨을 나누는 '쾌락의 우정'에 머물 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완전한 '미덕의 우정'에는 이르지 못한다.
두 사람의 관계가 완전한 우정에 도달하려면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상대를 위해 헌신할 수 있어야 하나, 슈퍼영웅이 존재하면 그 외의 친구들은 조역에 머무르기 때문에 관계의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 패권국가 미국이 세계에서 차지한 위치의 한계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Superheroes and Philosophy : Truth, Justice and the Socratic Way. 하윤숙 옮김. 408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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