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중동 역사학자 앨버트 후라니(1915∼1993)가 쓴 이슬람 역사 개론서 '아랍인의 역사'(심산 펴냄)는 중동과 이집트, 북아프리카, 스페인 안달루시아에 이르는 아랍 지역의 7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넓은 범위의 지역을 다루는 만큼 책에 그려지는 상황들은 복잡다단하다.
예언자 무하마드가 메카에서 알라(신)의 뜻에 따르도록 사람들을 이끌면서 이슬람 세계가 형성되고 그 후계자인 칼리파가 이슬람 제국을 세우는 과정, 여러 지역에서 칼리파들이 우후죽순 등장하며 이슬람 제국이 분열되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어 이슬람 세계는 이라크, 이집트, 마그립 등 세 영역으로 분할돼 정치적 격변을 겪다가 다시 오스만 제국, 사파비 제국, 무갈 제국의 3개 대제국으로 나뉜다. 유럽이 세계를 제패한 19세기에는 서구 열강에 휩쓸리다가 2차대전 이후 아랍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국민 국가들이 세워진다.
저자는 이런 방대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침착하게 잡아내는데, 그 핵심에는 아랍 역사철학자 압둘 라흐만 이븐 칼툰(1332∼1406)이 '역사서설'에서 제시한 개념인 '아싸비야(asabiyya)'가 있다.
아싸비야란 간단히 풀이하면 '집단 연대 의식'이다. 강한 결속력을 지닌 추종자들을 거느린 통치자가 쉽게 국가를 세울 수 있고, 통치자의 안정된 지배를 바탕으로 도시가 성장하고 문화가 꽃피운다.
이슬람 세계는 코란과 아랍어를 바탕으로 견고한 아싸비야를 쌓았다. 그 덕에 아라비아 반도를 넘어 아프리카, 이베리아로까지 뻗어나갔으며 그리스 문명과 페르시아 문명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었다.
레바논 출신 영국인이며 기독교인인 저자가 이슬람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신중하고 객관적이다.
많은 서구인이 이슬람 문화에 접근할 때 급진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들의 과격한 활동에 대한 선입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슬람 세계가 과도한 신앙심과 조건 없는 충성으로 점철된 것이 아니라, 다른 문화권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역사'를 이루며 현재에 이르렀음을 일깨운다.
그는 이슬람 세계에서도 여러 왕조가 외부 세력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흥망을 거듭했고 새로운 권력자들의 등장으로 도시와 백성의 삶이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또, 기독교와 유대교 등 외부 문화가 이슬람 사상과 경제, 문화에 영향을 줬으며, 오스만 제국을 비롯한 아랍 국가들이 외부 언어 및 문화와의 접목과 혼합을 거듭하며 보편성을 지켜왔다는 점도 짚어낸다.
물론, 책의 중심에는 격변의 역사 속에서도 같은 신앙과 언어를 통해 아랍인으로서 정체성을 지켜온 이슬람 민족들의 모습이 있다.
역자인 김정명ㆍ홍미정 씨는 "후라니는 이슬람의 모습을 기형적으로 과장된 예외적 현상 속에서가 아니라 최고 경지에 달한 울라마나 수피 수도승의 가르침 속에서 찾고자 했다"고 소개한다.
896쪽. 3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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