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온 길 "우리는 살가운 경쟁자"
이재승(58·예원예술대 교수) 유봉희(55) 부부는 같은 소재의 한지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난 9일까지 전주 교동아트센터(관장 김완순)에서 열었던 이재승 유봉희 한지 부부전 '화이부동(和而不同)'. 서로 화합하되 각자 지닌 개성과 독창성을 잃지 않는 '화이부동'을 잘 드러냈다.
"결혼한 지 20여 년이 됐어요. 같은 한지를 하더라도 하고자 하는 분야가 다르고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이야기하지 않았죠. 전시 한 번 같이 해보자 막연히 생각하다가 저질렀는데, 예상보다 너무 커져 버렸어요."
같은 소재를 해왔지만, 출발점은 다소 달랐다. 이씨는 심상(心象)의 연작으로 마음을 관념화하면서도 단순화시켜 표현해왔다. 한지의 물성에 맡겨 먹의 번짐으로 순백의 세계를 만들기도 하고, 짙은 암흑의 세계를 연출하기도 했던 것.
"먹 안의 오방색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태고의 우주는 먹색(玄)에 있다고 봤어요. 삼원색을 합해도 검은색이 되잖아요. 먹은 우주의 모든 생명을 다 포함하는 색으로 봤습니다."
이씨의 답변에 유씨는 "정서는 한국적이지만, 표현양식은 현대적인 것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아침마다 밥상을 차려놓고 30분씩 전쟁한다"며 "창밖을 보면서 30분씩 명상하기 때문에 아내는 시간에 쫓긴다"고 했다. '나, 너 그리고 우리' 연작을 내놓은 유씨는 화려한 색감의 한지로 다양한 인간의 희노애락을 표현했다.
"'나, 너, 우리' 연작은 작품의 소재와 주제를 함축시켜 놓은 것이에요. 우선 저는 줌치 기법을 사용해 한지를 여러 장 겹쳐 씁니다. 한지 한 장이 '나'라고 하면, 또 다른 한장은 '너'고, 3장 이상이 되면 '우리'가 됩니다. 한지꽃도 사람을 형상화시킨 것이에요. 그 안에서도 '나, 너, 우리'가 담겨 있습니다."
유씨는 이어 "잘나고 똑똑한 사람들을 표현한 게 아니라, 못나고 소외된 이들의 진솔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한 방향으로 긁은 금속판에 한지 작품을 덧댄 시도도 반응이 좋아 기쁘다고 했다. 칼로 무 썰듯 정확하고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이씨와 유연하면서 두루 잘 어울리는 유씨는 극과 극을 달리는 성격.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미학적인 기준에 관해서는 합의점을 쉽게 찾는다. 다름'이 '같음'으로, '같음'이 '다름'으로 조화를 이루면서 더 큰 '우리'로 거듭나는 것. 둘 다 학생 지도 경험이 있는 이들은 학생들을 위해서도 새로운 한지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생들이 한지로 미래를 개척해야 한다는 데 대한 불안감이 많습니다. 한지 작가도 다양하게 전시를 해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부부전을 언제 또 하게 될 지 모르겠지만, 기념비적인 걸 해보려 합니다. 그게 칠순 때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요.(웃음)"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