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산청소년문화의집서 5년째 소리배움…주부우울증 날리고 전통문화 사랑도
"어디가 중요하냐믄 '부∼귀 공∼명∼이 붙∼은∼돈!' 이런 저음이 더 어려워. 높인 것은 악만 쓰믄 되는디, 이런 것이 어려워."
2일 오전 11시 완산청소년문화의집(관장 이인숙) 강의실에선 흥부가 '돈타령'이 흘러나왔다. 북 장단을 맞추던 소리꾼 허향덕씨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니까" 라고 하더니 한 소절씩 또박 또박 설명했다.
"긍게, 하나쓱 해봐."
김순복씨의 대꾸에 돌연 웃음바다. 송운섭씨가 한 번 해보겠다고 나섰다.
"그려, 저 언니 한 번 시켜봐, 자신 있는갑네."
박수가 나왔다. 한 소절 해보더니 "다시 해도 잘 안되네."를 되뇌이는 송씨. 이번엔 전남열씨가 나서 걸쭉한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지. 그거여." 허씨는 "만세!"를 외쳤다.
"'얼씨구 절씨구'는 입안에서 소리를 씹어주면서 하는 거여. 뭔가 '짝짝' 씹듯이."
허씨는 한마디 더 거들었다. 흐릿한 날씨였지만, 분위기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전주시 중화산동 완산청소년문화의집의 아마추어 명창 모임인 '소리 사랑'이다. 전주시평생학습센터(센터장 김수현)가 추진하는 '전주시민 한소리 하기'의 일환으로 이곳에서는 1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날은 9명만 참석한 상태. 최고참 김현순씨를 비롯해 김길은 김순복 김춘례 박윤정 박정숙 복정남 송운섭 심인순 심휴자 오순안 왕순덕 전남열 조인덕 조재순씨로 이어지는 판소리 애정이 벌써 5년 째다. 불볕 더위에도 열심히 연습하는 것은 20일 '전주시민 한소리 하기 대회' 를 앞두고 있어서다. 무대는 여러 번 서봤지만, 매번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우리 언니들은 실전 가서 더 잘 한다." 며 허씨는 추임새를 넣는다.
이들은 '춘향가'의 한 대목인 '쑥대머리', '호남가', 단가 '사철가' 등을 비롯해 남도민요인 '진도 아리랑', '성주풀이' 등도 두루 익힌 실력파. 뿐만 아니다. '전주시민 한소리 하기 대회(2007)'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데 이어 '전국평생학습한마당(2007)'에서 우수상을 탄 화려한 경력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실력이 하루 아침에 '확' 늘진 안혀." 5년 전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는 김현순씨가 이렇게 이야기하자 오순안씨는 "그냥 소리를 마음껏 지를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고 대꾸한다.
"원불교 화산교당을 갔는데, 거기 예술단이 판소리를 하더란 말이에요. 그 소리가 귀에 많이 익어가지고, 부러워하던 중에 여기로 엎어진(?) 거지요." (김숙복씨)
대중가요만 듣던 이도 어느덧 우리 음악에 빠져들었다. 박정숙씨는 "가사가, 가락이 울고 웃으며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했다. 전남열씨도 "나이가 들수록 우리 가락이 좋은 것 같다"며 "하면 할수록 가요는 귀에 안들어오고 우리 소리가 귀에 들어오고 정말 좋다"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 많은 가사를 다들 어떻게 외울까. 김현순씨는 "어디 가서 불러보면 우리가 수재인 줄 안다"며 "길다고 해서 걱정할 것은 없고 하다 보면 저절로 외워진다"고 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까마귀 기억력을 탓할 법도 하건만, 귀로 듣고 입으로 익힌 소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처음부터 '무대 체질'은 없었다. 처음엔 소리만 '꽥꽥' 내질렀다. 상청은 잘 나와도 하청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꺾는 음이 자연스럽지 않아 고생도 많았다. 하지만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 덕분에 '주부 우울증'은 올 틈이 없다.
이들은 수업시간 내내 온몸으로 호응한다. 손발로 박자를 맞추고, 머리를 끄덕이며 '얼씨구! 좋다','아먼','음','그렇지!','아이구, 잘한다' 등 다양한 추임새도 곁들인다. 허씨는 슬플 때는 낮은 소리로 길게 빼듯이, 기쁠 때는 높은 소리로 짧게 넣어줘야 한다며 포인트를 짚어줬다. 좋은 소리를 들으려면 소리꾼이 잘 못할 때도 열심히 추임새를 해줘야 한다는 것. 회원들은 "마음으로 같이 따라 하다보면 소리꾼이 내려는 소리를 듣게 된다"고 말했다.
귀명창이 명창을 낳는다고 했다. 즐기는 사람이 없으면 문화는 사라진다. 시작은 각기 달랐지만, 우리 소리라는 종착역은 같은 이들. '소리 사랑'은 전통을 이어지게 하는 또 다른 진정한 '지음(知音·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들이었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