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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사랑의 상처에 대한 위로

"K는 내게 X-연인이 덜 상처받는 이별법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이별을 결심했다면 톱질하지 말고 단칼에 베어버려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덜렁거리지 않게, 너덜거리지 않게, 그것이 목을 베는 망나니가 베풀어야 하는 자비다."(42쪽)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김규나 작가가 첫 번째 소설집 '칼'(문학에디션 뿔)을 펴냈다.

 

등단작 '칼'을 비롯한 단편 11편을 묶은 것으로, 모두 삶과 사랑에 다친 날카로운 상처를 드러내고 또 따뜻하게 어루만진다.

 

사랑, 섹스, 불륜, 배신 등 그 위태로운 사랑 이야기의 외형은 지극히 통속적이다. 그러나 작가의 마지막 시선은 치유와 위로에 가닿는다. 깨지고 부서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뒤에 오는 결말은 묘한 여운을 남기며 상처를 덮는다.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칼'은 하룻밤 사랑을 나눈 며칠 후 시체와 부검의로 만나는 남녀를 독특한 문장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아내에게 상상하지 못한 배신을 당한 오케스트라 수석 바이올리니스트 남자인 '당신', 강간당한 채 강물에 버려진 소녀의 사체를 한나절 주무르던 여자 부검의 '그녀'. 클럽에서 술과 담배로 마음을 달래다 만난 두 사람은 하룻밤을 보내고 며칠 뒤 부검실에서 다시 만난다.

 

"가만히 누워만 있었는데도 이렇게 고단한데 그녀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당신은 부검실에 남겨 두고 온 그녀를 잠시 생각했다. 당신을 보낸 그녀는 손끝으로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31쪽)

 

그 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애인에게 아기를 빼앗긴 여자와 한 사진작가의 만남을 그린 '달, 컴포지션', 섹스 상대로만 여겼던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신에게 온 남자를 놓아주는 '내 남자의 꿈' 등 유리처럼 날카롭고 부서지기 쉬운 이 시대의 사랑을 그린 단편들이 실렸다.

 

작가는 "살아내는 건 투쟁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유전자를 진화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느라 오늘도 힘겹게 뛰고 있는 당신은 나의 위대한 동지"라며 "그 분주하고 촘촘한 시간 속에서 잠깐만이라도, 내가 쓴 글 한 줄이 당신의 심장을 따사롭게 어루만져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284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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