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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다훈 "밉상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죠"

마흔두 살의 이 남자, 대책이 없다.

 

그 나이가 되도록 변변한 직업도 없이 팬션을 경영하는 큰형 집에 얹혀살면서 집안일을 돕고 있다. 감정표현에 이보다 솔직할 수 없으며,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산다.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어 유치원 다니는 조카 손녀와 잘도 놀고, 꼬부랑 노모에게는 여전히 가슴팍을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리는 막내아들이다.

 

그런 주제에 눈만 높아서 선을 보러 나가면 까다롭게 굴며 '깽판'치고 오기 일쑤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오래전 미국으로 시집가버린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사는 순정파이기도 하다.

 

SBS TV 주말극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매회 웃음을 선사하는 '루저' 병걸 이야기다. 병걸은 배우 윤다훈(46)을 만나 방금 잡아올린 활어처럼 펄떡펄떡 뛰어오른다.

 

"병걸이는 착하고 순수한 '아이'입니다.(웃음) 김수현 작가님이 '다훈아 이번에는 악역 한번 해보는 게 어떠니?'라고 하셨는데, 병걸이가 악역이라는 거죠. 남의 상처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어떤 순간에든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는 밉상이잖아요. 또 매사 반찬투정을 하는 등 투덜대고요. 하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죠. 왜냐? 순수하고 솔직하잖아요. 하하. 실제로는 다들 남의 눈치 보고 살기 바쁜데 병걸이 같은 사람 하나 있어도 재미있잖아요?"

 

지난 16일 경기 고양시 탄현 SBS 제작센터에서 만난 윤다훈은 이렇게 말하며 병걸처럼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그는 병걸에 대한 변명을 힘줘 늘어놓았다.

 

"병걸이는 절대 형님 집에 얹혀사는 게 아니에요. 형이 다른 일꾼을 쓰느니 동생인 날 쓰는 게 나아서 붙잡고 있는거죠. 그래서 당당한 겁니다. 자기 혼자 생각이긴 하지만 병걸은 형은 팬션의 회장, 자기는 사장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짠돌이'라 알고 보면 돈도 차곡차곡 모아뒀어요."

 

양식 있고 선량한 인물로 가득찬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병걸은 유일한 돌연변이다. 그래서 이 드라마의 웃음코드를 책임지던 그는 그러나 조카 태섭(송창의 분)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진짜 '밉상'의 면모를 드러내며 극에 긴장감도 동시에 불어넣고 있다.

 

커밍아웃한 태섭에게 '더러운 자식'이라고 막말을 퍼붓는가 하면, 지난 11일 방송에서는 태섭의 애인이 자신의 집을 드나들던 경수(이상우)라는 사실을 알고는 함께 냉면을 먹던 자리에서 '속이 미식거린다'며 토할 것 같은 흉내를 내기도 했다.

 

"저도 실제로는 20년 전에는 동성애자들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싫어했죠. 그런데 데뷔 후 여러 사람과 어울리면서 실제 게이인 분들과도 친구가 됐어요. 함께 술마시고 어울리면서 소외된 계층의 어려움을 알게 됐고, 어느새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게 됐습니다. 극 중 제가 구박하는 송창의 씨에게 실제로는 게이들의 몸짓, 손짓에 대한 조언을 많이 해줬습니다."

 

그러나 그는 동성애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혐오하는 병걸의 입장도 충분히 공감하며 연기한다.

 

"병걸이는 그냥 단순한 거예요. 조물주가 남자, 여자를 만들었던 의도대로, 순리대로 세상이 돌아가길 바라는데 하필 자신이 아끼던 조카가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하니 화가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인데 비난할 이유는 없죠. 또 만일 동성애자들의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이성애자인 우리가 이상한 거잖아요."

 

그는 동성애자 연기를 하는 송창의에 대해 "후배지만 너무 훌륭하다. 진짜 오해를 살 정도로 디테일을 잘 살려 연기를 잘해주고 있다"며 "내 동성애자 친구들이 실제로 문의를 해오기도 했다. 그런데 창의는 그쪽은 아니다"며 웃었다.

 

'히트 제조기' 김수현 작가의 작품이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는 시청률이 20%에 못 미치고 있다.

 

'목욕탕집 남자들' '사랑하니까' '내사랑 누굴까' 등에 출연하며 김수현 작가와 동고동락해온 윤다훈은 "사실 동성애 소재만 없었어도 시청률이 30%는 거뜬히 넘지 않았을까 싶다"며 "그러나 주말극에서 동성애를 다룬다는 것은 김수현 작가님 아니면 할 수 없고, 그러면서도 시청률을 이 정도 유지한다는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또 월드컵 때문에 5회나 결방되면서 손해본 것도 크다"고 말했다.

 

"동성애는 우리 드라마의 한 부분일 뿐인데 이로 인해 드라마 자체를 외면하면 어떡하나 고민했던 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작가님이 지저분하게 그리지 않고 이성간 사랑과 똑같이 아름답게 그리니 동성애에 대한 혐오와 편견이 많이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은 드라마를 통해 의미와 교훈을 추구하시는데, 덕분에 우리 연기자들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이 드라마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열린 시각 외에도 부모에 대한 효와 가족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잖아요."

 

1984년 MBC 특채 탤런트로 데뷔해 연기생활 26년째인 그는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는 언제나 어렵고 힘들지만 그만큼 연기적으로도 성장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용림, 김해숙, 김영철 선배님 모두 쟁쟁한 분들이지만 우리 드라마하면서는 늘 어렵다고 하세요. 그러니 저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만큼 연구와 공부를 많이 하니까 연기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대사를 하도 외우니 어떤 때는 딴생각을 하면서도 입에서도 저절로 그 긴 대사가 줄줄 나오기도 해요. 또 작가님은 오히려 대사에 엄격하지 않지만 배우들이 토씨 하나 안 틀리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만큼 단어 하나 틀리면 대사의 맛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김 작가님의 대사는 길지만 외우기 편하게, 머리에 잘 들어오게 구성돼 있어서 실타래처럼 하나가 풀리면 쫙 풀리는 게 있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매회 마지막에 누군가가 넘어지는 신으로 마무리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회에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병걸은 이후에도 수차례 넘어졌다.

 

"배우들 중 제가 제일 먼저 넘어지는 연기를 하는 것이어서 그땐 노하우가 없었어요. 그래서 손바닥과 무릎이 까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어요. 그후에는 이런저런 노하우와 안전장치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힘들긴 하죠. 하지만 그런 고생을 하면 엔딩신을 먹는거니까 배우들도 마다하지 않아요.(웃음) 지금껏 엔딩신 최다 출연자가 병걸이일겁니다. 워낙 어리숙하잖아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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