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글 안에 모든 것을 조용히 집어넣을 뿐이고, 만약 독자가 이를 읽으면서 분노한다면 고발이 이뤄지겠죠. 내 작품은 뭔가를 규명하려 쓴 것이 아니고 내 삶을 위해 나 자신과 대화한 것입니다."
지난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루마니아 태생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57)가 한국을 처음으로 찾았다. 제19차 국제비교문학회 세계대회 참석차 방한한 그는 16일 서울 중앙대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강연하고 국내 언론과 만났다.
'이발사, 머리카락, 그리고 왕'이라는 제목의 이날 강연에서 그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독재 권력의 공포와 그 처절한 상황 속의 삶을 이야기했다.
그는 "나는 공장에서 동료를 감시해야 했지만 이를 거부했다. 친구들에게서 알게 된 심문과 집안수색과 죽음의 위협 등 모든 것은 내게도 반복됐다"며 "다음번 심문은 어떨 것이고 다음번 일하는 날은 어떨 것이고 다음 거리 모퉁이에서 그들이 어떻게 함정을 놓을 것인지를 생각하는 데 적응이 됐다"고 했다.
또 "내가 오랜 기간을 두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상당한 사치에 속한다. 이 사치는 독재가 무너졌기 때문에 가능해진 것"이라며 "독재가 존재하는 동안 나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았고 이 시간에 나는 대체로 그때그때 즉석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한 나라에 자유가 없으면 없을수록, 감시를 당하면 당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사물과 더 불편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다"며 "위협을 받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 추적자를 눈으로 마주하고 자신과 그를 동시에 관찰하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뮐러는 나치의 몰락에 이은 루마니아 독재정권의 횡포에 의한 공포와 불안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강제 징집됐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 강제수용소에서 5년간 노역했다. 뮐러는 루마니아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박이 심해지자 1987년 독일로 망명했다.
강연 후 독재정권 아래에서의 글쓰기에 대한 질문에 그는 "지금은 독재정권하에서 살지 않지만 루마니아에서 (독재를) 겪었고, 독일에서 루마니아 독재정권이 무너지는 것도 봤다"며 "하지만 문학은 거대한 것을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고 굉장히 작은 것에 대해, 개인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것은 정치적인 글이고, 연설문이지 문학은 아닙니다. 가사 자체가 정치적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음악과 마찬가지죠."
1982년 '저지대'로 문단에 데뷔한 그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에 억압받는 루마니아 사람들의 암울한 삶을 그린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국내에는 '저지대'를 비롯해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마음짐승' '숨그네' 등 루마니아의 전체주의적 과거와 자전적 경험을 담은 다섯 편이 출간됐다.
첫 작품 발표 이후 30년 가까운 기간에 겪은 변화에 대해서는 "항상 쫓기고 불안하던 루마니아에서 쓴 작품은 짧은 글이 많고, 독일에서는 비교적 긴 글을 쓰게 된 것 같다"며 "노벨상을 받았다고 변한 것은 없고 변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다.
"물론 외적으로는 노벨상을 받음으로써 공식적인 행사 등 가야 할 자리가 너무 많아요. 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을 틈이 없죠. 노벨상을 받아서 가장 좋은 일은 독재가 없는 나라에서조차 사람들이 독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한국을 방문한 소감으로는 "호텔 창문을 통해 광복절 기념행사를 보면서 독재국가인 북한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 등이 떠올랐다"며 "북한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괴물 같은 나라로 역사에서도 미끄러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거리가 가까운데 바로 저쪽엔 괴물 같은 독재정권이 있고 이곳 남한에는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탄스러워요."
그는 18일 서울여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며 이날 개인적인 요청으로 임진각을 방문할 예정이다. 19일에는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 문학동네가 개최하는 '낭독공감' 행사로 국내 독자를 만난다.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