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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체육 비사] ⑤안병만 근영여고 교감

"야구에서 전직…국가대표 배구가족 일궈"

배구 선수와 지도자로서 화려한 시절을 보낸 전주근영여고 안병만 교감이 9일 학교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강민(lgm19740@jjan.kr)

체육교사겸 감독을 하다 교감으로 부임한지 벌써 4년이 다돼가지만 그에겐 항상 따라붙는 두개의 수식어가 있다.

 

'안 감독'또는 '배구가족'이라는 닉네임이 바로 그것이다.

 

국가대표를 거쳐 수십년간 배구를 지도해 감독이라는 칭호가 익숙하고, 부인과 두 아들이 모두 국가대표급 선수 출신이라는 점에서 가히 전국 최고의 배구가족이라 할만하다.

 

국내 배구인들 사이에 안병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그가 선수로서, 또 지도자로서 남긴 족적이 뚜렷하다.

 

군산이 고향인 안 교감은 군산남중, 남성고, 명지대, 육군보안사(현재의 상무), 금성사에서 선수로 맹활약했다.

 

강만수·김호철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선수들과 국가대표 시절 같이 뛰었던 그다.

 

79년 멕시코 유니버시아드대회때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따내는 등 세터로서 그는 멋진 실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그는 선수보다 지도자로서 더 유명하다.

 

한일합섬 코치를 시작으로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에서 10년 남짓 감독생활을 했다.

 

남성고와 서울 서문여고 감독을 거쳐 근영여고에서 14년째 재임하고 있다.

 

대한배구협회 기술위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군산남중에서 막 야구를 시작했을때 그는 도루왕으로 유명한 김일권과 야구선수 동기였다.

 

얼마안돼 그는 배구의 매력에 푹빠져 야구선수에서 배구선수로 진로를 바꾼다.

 

동료들보다 키도 훨씬 작았지만 나름대로 배구에 재능이 있다는 판단을 한 때문이다.

 

선수때는 물론, 지도자가 돼서도 그는 게으름과 오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선수시절, 큰 경기를 앞두고 워낙 상대팀에 대한 생각에 빠져 팬티도 입지 않고 겉옷만 챙겨입고 시합을 뛴 에피소드도 있다.

 

"스스로 생활이 흐트러지면 하늘도 그 사람을 버린다"는 믿음 때문에 그는 절도있는 생활을 한다.

 

정확하게 매사에 임하는 그를 보고 일부 체육인들은"무섭다"고 말한다.

 

지도자 시절 그는 항상 선수들과 같이 호흡하려고 애썼다.

 

지금도 아랍에미리트 배구인들이 그를 감독으로 초빙하기 위해 국제전화를 걸어올 정도다.

 

동양에서온 이방인이지만 함께 호흡하는 정신을 높이 산 때문이다.

 

끼니 걱정을 하던 제자가 기라성 같은 배구선수가 돼 생활이 윤택해져 떵떵거리고 사는 것을 볼때면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곤 한다.

 

"어려운 선수일수록 반드시 성공시켜야 겠다는 오기가 있었기에 더 호된 질책을 했다"는 그는 때로는 남 모르게 제자의 집에 쌀포대를 놓고오는 따뜻함도 잊지 않았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그였기에 일부 주위 사람들은 그를 시샘하거나 질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떳떳한 지도자가 되고싶다"며 게으름을 멀리했고 적당한 타협을 하지 않았다.

 

그는 "누구나 주전 선수만을 주목하지만, 지도자는 벤치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선수의 말을 귀담아 듣는 아량과 배려가 있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국가대표 시절 인생의 반려자인 권인숙(54) 선수를 만나 결혼하게 됐고 아내는 코치로서 수십년간 선수 지도에 힘을 보탰다.

 

권씨는 지금도 근영여고 코치로 배구선수를 지도하고 있다.

 

큰 아들인 안재웅(27)은 현대캐피탈 선수를 하다 지금은 선수 통역을 맡고있고, 둘째인 안요한(20)은 한양대 재학중인데 동아시아 대표로 뽑혔다.

 

자식은 원래 배구를 시킬 생각이 없었으나, 부모님이 일하는 배구장을 오가면서 결국 선수의 길을 걷게됐다.

 

둘째 요한은 전주화산초 5학년때 185cm의 키에 몸무게가 90kg이나 나가서 살을 빼려고 농구를 시작했는데 벌써 국가대표가 됐다.

 

"안병만의 아들로 인식되지 않고, 안요한의 아버지로 불리고 싶다"는게 그의 솔직한 생각이다.

 

자식이 아버지보다 더 유명한 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다.

 

은퇴하면 관중석에서 자식의 경기를 보면서 맘껏 응원하고 필요한 조언도 하고 싶단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향인 전북에서 '어린이 배구교실'을 지도하고 싶은 소박한 꿈이있다.

 

전북 배구가 제2의 부활을 맞이하는데 작은 주춧돌이 되고 싶다는 것이다.

 

 

위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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