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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권하고 싶은 책] ⑨이현수 시인-월간 '좋은생각'

연필로 또박또박 써내려간 '36.5℃의 사람 사는 이야기'

어린 시절, 어머니는 도루코 칼로 연필 깎아주곤 하셨다. 자동연필깎이는 연필심을 빨리 닳게 한다고 나중에는 직접 손으로 깎게 하셨다. 물론 어릴 때에는 친구집에 들러 필통 속의 연필을 죄다 자동연필깎이로 깎아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필자는 아직도 연필을 쓴다. 어디 번듯하게 내놓을 필체는 아니지만, 무엇이든 우선은 연필로 쓰는 것이 참 좋다. 그래서 책상에는 잘 깎인 뾰족한 연필들이 늘 가지런하게 놓여 있다.

 

사실, 게으른 필자가 뭔가를 끼적거리는 이유에는 '연필의 힘'이 크다. 무엇이든 쓰게 하는 것도, 간혹 읽을 만한 졸작을 만들어내는 것도 모두다 연필 덕분이기 때문이다. 연필 덕을 보고 사는 필자로서는 연필이 지닌 위대한 힘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연필을 닮은 책들이 참 좋다. 인쇄술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몽글몽글하고 뭉글뭉글한 사람 사는 이야기가 좋다는 것이다. 책을 펼치면 그 단단하고 날렵한 활자에도 연필의 기억이 살아 있다. 누군가가 또박또박 사각사각 써내려갔을 두근거리는 이야기들이 있고, 잘 부러져도 침 묻혀가며 꼭 꼭 눌러쓴 연필심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도 하다.

 

1992년 8월에 창간하여 지난 20년 가까이 한결같이 밝고 긍정적인 사람들의 따뜻한 삶을 담아온 월간 「좋은생각」.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잡지에는 우리 가족이, 친구가, 이웃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책이 아니라 편지다. 누군가가 그대들에게 보내는 편지다. 그대에게 닿기까지 얼마나 많은 수고로움이 깃들어 있는지 받아들자마자 읽고 싶지만 그렇다고 성급하게 뜯어버릴 수 없는 편지다. 이윽고 조심스레 가장자리를 잘라내고 종이를 펼치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그래서 더욱 소중한 손 글씨가 보인다. 쓰여 있는 이야기는 눈으로 읽고, 쓰여 있지 않은 이야기는 마음으로 읽는다.

 

악필이든 아니든, 손 글씨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을 보여준다. 성격, 기분, 상황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눈매와 입매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여 편지를 읽다보면 그 사람이 봄을 닮았는지, 여름을 닮았는지, 가을 혹은 겨울을 닮았는지 알게 된다. 고백할까 말까 주저하는 사람의 손 글씨와 한달음에 써 내려간 사람의 손 글씨도 꽤나 다르다. 손 글씨의 매력은 이런 데 있다. 행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거리를 더욱 가깝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진정,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가족, 친구, 이웃들이 그들이 사는 이야기를 편지에 담아 일궈낸 것이다. 따라서 옆집 아주머니, 뒷집 총각 같은 평범한 이웃의 기쁨과 아픔과 웃음, 추억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평범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러니 정갈한 활자가 심장을 꿰뚫을 때가 있다. 책 한 권이 마음을 후려칠 때가 있다. 지우고 쓰고, 지우고 썼을 손 글씨가 느껴지는 '참'다운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그래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는 「좋은 생각」. 세상을 따뜻하게 데우는, 36.5℃의 사람 사는 이야기.

 

오늘 밤, 그대에게 길고 긴 편지를 쓰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연필을 깎아야겠다.

 

▲ 이현수 시인은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2007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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