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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권하고 싶은 책] ⑮소설가 정희경

책을 향한 사랑의 찬가

지독히도 추운 겨울이었다. 수도 계량기, 세탁기, 보일러가 얼어 터졌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었다. 영하 17도가 되던 날 출근길에는 콧김이 얼어 콧구멍이 달라붙는 것만 같았다. 몸이 추운데 마음은 더 추웠다. 구제역으로 삼백만마리가 넘는 가축들이 땅에 묻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무기력과 공포가 온 몸을 아프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위로가 필요했다. 녹인 초콜릿이랑 치즈에 바게트나 아이스크림 따위를 듬뿍 찍어 먹고 싶었다. 열량이 높으면 높을수록 몸에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마음에 위로는 역부족이었다.

 

그 때 나를 찾아온 책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다. 혹자는 현실을 외면한 위로에 대해 비아냥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이 온통 아비규환인데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있는 작은 섬 건지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위로가 되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위로가 되는 책이다. 마음을 위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것은 바로 사랑.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책과 사람에 대한 사랑.

 

이 책의 저자 메리 앤 새퍼는 도서관과 서점에서 일했고 지역신문의 편집을 맡아보기도 했다. 아마도 그녀의 삶에 대부분은 책으로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종착지는 책을 쓰는 것이다. 메리도 누군가 출판하고 싶은 마음이드는 책을 쓰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다. (여기서 나는 그녀에게 강력한 동지애를 느낀다.) 결국 생의 끝자락에 자신의 바람을 이루어낸 것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책들과 그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누가 뭐래도 메리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이야기였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은 줄리엣이 채널 제도 건지 섬의 도시 애덤스라는 남자에게서 편지를 받으며 시작된다. 줄리엣이 소유하고 있던 찰스 램의 「엘리아 수필 선집」을 구입한 도시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 찰스 램의 다른 책을 구입할 경로를 묻는다. 전·후 영국은 전쟁의 상처와 빈곤에 시달렸다. 더군다나 독일에게 점령당했던 건지 섬의 상황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을 책을 통해 이겨나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줄리엣의 편지를 통해 경쾌하게 펼쳐진다. 북클럽 이름이 왜 하필이면 건지 감자껍질파이인지, 또 독일군 몰래 열었던 돼지구이 파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이 자리에서 절대 말할 수 없다. 또 하이틴 로맨스에서 막 튀어 나온 멋진 남자 마컴 레이놀즈와 (이름도 레이놀즈라니, 로맨스 스러워라!) 과묵하고 진지한 도시 애덤스 중 누가 줄리엣의 사랑을 얻게 되는지 절대 알려줄 수 없다. 궁금하다면 읽어 보시라. 틀림없이 지긋지긋한 추위와 험한 세상사에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은 무엇보다도 균형이 중요하다. 정의를 생각하고 자본주의를 비난하는 와중에도 예술과 사랑에 대한 마음은 잃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이런 책만 읽는다면 그것도 아쉬운 일이지만, 이런 책을 읽지 않고 사는 것도 아쉬운 일이다.

 

▲ 소설가 정희경씨는 충북 청주 출생으로 지난해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충북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전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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