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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복희 "무대 나이 환갑…안방보다 편해"

"60년간 선 무대는 제 안방보다 편합니다. 노래하는 맛을 좀 아는 지금이 전성기가 아닐까요?"

 

뮤지컬 배우 겸 가수 윤복희(65)가 21일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전국투어 '60주년 기념 스페셜 콘서트-60년 만의 첫 나들이'와 관련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60주년을 맞은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1946년 태어난 윤복희는 1951년 5살의 나이에 코미디언인 아버지 윤부길 씨의 손에 이끌려 서울 중앙극장 악극단 무대에서 데뷔, 반세기가 넘는 동안 가수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대중문화계의 대모로 성장했다.

 

이날 "내 무대 나이가 환갑을 맞았다"고 인사한 그는 "뮤지컬만 했지 그간 단독 콘서트를 안 했다"라며 "리사이틀을 할 정도로 가창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학교도 안 가면서 서야하는 무대가 싫었기에 이번 공연은 노래 맛을 알고 난 뒤 첫 나들이인 셈이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30일 대전 충남대학교 정심화홀, 5월 14일 청주 충북학생교육문화원, 5월 28일 부산 KBS홀, 6월 4일 대구 수성아트피아 용지홀 등지에서 공연한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 공연은 11월께다.

 

다음은 윤복희와의 일문일답.

 

 

 

--60주년 공연을 열게 된 계기는.

 

▲그간 개인 콘서트를 안하고 뮤지컬만 했다. 리사이틀을 할 정도로 가창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난 매니저도, 연줄도, '백'도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뮤지컬, 연극, 영화, TV, 라디오 등을 쉬지 않고 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며 '우리는 피곤한 삶을 살더라도 당신은 우리를 위로해달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분들에게 감사하는 무대다.

 

--그럼 공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남다를텐데.

 

▲60년간 한 작품은 모두 나에겐 특수하고 애착이 간다. 그런데 많은 가수 분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어떻게 계속 같은 노래를 부르나. 난 그걸 못해서 가수가 못 된다. 하지만 뮤지컬은 관객에 따라 배우의 노래와 대사 표현이 달라진다. 지난해와 올해 무대가 또 다르다. 아마 대중이 생각하는 '여러분' 노래의 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짓궂어서 가수도, 듣는 사람도 재미있도록 '뒤집어보자'고 했다. 무대에서 음악을 접할 때 하면 할수록 새로운 걸 발견한다. 성숙돼 간다는 것이다.

 

--공연은 어떤 형식으로 꾸미나.

 

▲노래를 줄줄이 하는 스타일의 공연이 아니라 난 여러 장르를 접했기에 음악적인 부분을 강조한 공연이 될 것이다. 재즈뮤지션 이정식 씨에게 부탁해 같이 해보자고 했다. 또 지난 35년간 전세계를 다니며 뮤지컬, 가스펠 공연을 함께한 음악 감독 겸 기타리스트 김영배 씨가 함께 한다.

 

--오빠 윤항기 목사도 같이 서나.

 

▲우리가 같은 출구에서 나왔지만 가깝다고는 할 수 없다. 하하. 이정식, 김영배 씨가 가까운 분들이다.

 

--뮤지컬적인 연출도 가미되나.

 

▲지금껏 뮤지컬 출연작이 80여 편이다. 1976년 출연한 '빠담빠담빠담'을 비롯해 '피터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레미제라블' '캣츠' 등을 압축해 보여줄 생각이다. 안 그래도 남경주, 최정원 등 뮤지컬계 후배들이 뭔가를 하게 해달라고 항의가 빗발치더라. 하하.

 

--루이 암스트롱에게 '픽 업' 돼 미국으로 간 배경은.

 

▲미8군에서 암스트롱 모창을 했는데 미군들에 의해 입소문이 나며 암스트롱에게 전해졌나보다. 1963년 17세 때 워커힐 극장 개관 무대에 선 루이 암스트롱 앞에서 그의 모창을 했는데 수양딸로 삼겠다며 미국에 오라고 권했다. 그해 미국으로 떠나 암스트롱 공연의 엔딩 무대에 서며 미국과 영국에서 음악 생활을 했다.

 

--미국에서 어떤 활동을 주로 했나.

 

▲라스베이거스에서 재즈 뮤지션들과 공연했다. 라스베이거스 무대는 인종과 국적 상관없이 전세계 음악인들이 와서 경쟁하는 곳이기 때문에 얼마만큼 잘하느냐가 관건이다. 그 무대에 뽑혀 공연한 건 축복이었다.

 

--1967년 잠시 귀국해 발매한 첫 음반 재킷 속 미니스커트 사진은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는데.

 

▲내가 미국으로 떠났을 때가 10대였다. 내가 잠깐 귀국했을 때가 20대 초반이었는데 그 의상이 당시 사회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인식이 없었다. 한창 재미있게 옷 입고 싶을 나이 아닌가.

 

--윤복희에게 무대란 어떤 곳인가.

 

▲무대는 잠자는 안방보다 더 편하다. 세계 어느 곳에 가든, 어떤 빌딩이든 내가 공연하는 곳은 모두 잠자는 방보다 편하다.

 

--언제부터 무대를 운명이라고 느꼈나.

 

▲5살 때부터 무대에서 공연했다. 어린 시절부터 학교를 안 다니고 호텔, 여관을 전전했고 어른들과 섞여 자랐다. 취미로 무대에 올랐던 것이어서 학교에 가고 싶었고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었다.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무대를 받아들인 건 30살이 넘어 크리스천이 된 이후다. 성령을 받은 후 '위에서 크신 분이 나를 택했고 달란트를 줬구나'란 생각에 이때 국내에서 처음으로 어린이 뮤지컬 '피터팬'을 만들었다. 관객이 3-7세였다. 1979년부터 1997-98년까지 '피터팬'을 하며 어린이들을 만났다. 이들을 통해 내가 자랑하지 못했던 어린 성장기를 거꾸로 나이 들며 경험했다. 어린 시절 못한 생활을 나이 들어 하며 굉장히 행복했다. 이제 30-40대가 된 '피터팬' 출연 어린이들은 내 페이스북 친구들인데 이들도 이번 공연에 관객으로 올 것 같다.

 

--전성기는 언제였다고 생각하나.

 

▲내 전성기는 지금이다. '여러분'을 30여년 불렀다. 내가 작사, 작곡하고 노래했지만 한 10년쯤 불렀을 때 '내가 맛을 내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최근 다시 부르니 다른 게 나오더라. 아직 표현력은 부족하지만 '이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는 걸 아는 지금이 전성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

 

▲난 굉장히 게으르고 관리도 못한다. 밤에 잠이 안 오면 라면 하나 끓여먹고 배를 불린 뒤 식곤증으로 자고 아침에 일어나 냉수를 마신다. 먹고 자는 것 외에 없다. 단지 김치에도 넣어 먹을 정도로 청양 고추를 달고 산다. 음식을 맵게 먹는 편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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