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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의 거리에서] 슬픈 골목길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옆 동네는 오래 된 단층 기와집들이 많다. 차가 들어 갈 수 없는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좁은 골목 담벼락이나 전봇대에는 이사 집 센터 전화번호가 가장 많이 붙어 있다. 이사가 잦다는 표시 같다. 골목길은 늘 적막하고 고요하다. 지붕이 뻥 뚫린 빈 집도 있고, 서까래가 부러진 빈 집도 있고, 비닐로 지붕을 덮어 놓은 집도 있다. 골목을 다니는 사람들도 대게 나이가 드신 어른들이다. 오래 전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분들이다. 담장 위로 감나무며 대추나무며 라일락, 장미꽃들이 피었다가 진다. 대문 위 좁은 공간에는 가지, 오이, 상추, 고추, 배추 등 온갖 채소들이 좁은 공간에서 자란다. 오늘 아침에는 2층 집 베란다에서 어떤 할머니가 바늘 종지를 뽑고 있었다. 이런 저런 채소들을 가꿀 좁은 베란다라도 없는 집은 화분이나 함박이나 다라이에 흙을 담아 마당 구석에다가 채소들을 키운다. 아침이면 나는 이 좁은 골목들을 돌아다닌다.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대문이 열린 집이 있으면 대문 틈으로 마당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조금 넓은 골목엔 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오래 된 슈퍼나 목욕탕이나 곧 문 닫을 것 같은 이발소, 미장원들이 있다. 한 때는 깃발을 날렸을 이 가게들이 이제는 그 시대적인 사명을 다했다는 듯 희미하고 너덜거리는 간판 글씨를 달고 있다. 좁은 골목길에는 서너 평 쯤 되는 좁은 빈터들이 있는데, 하나 같이 완강하게 울타리가 처져 있다. 헌 판자때기나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그 좁은 빈터에도 하나 같이 고추나 상추나 열무김치나 파 같은 채소들이 자라고 있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자주 가 보는 공터가 하나 있다. 그 빈터 바로 옆에는 간이 국수집이 있다. 그 빈터도 다른 빈타와 마찬가지로 넓은 베니아 판과 헌 판자때기로 완강하게 울타리가 쳐놓았다. 울타리의 완강함이 어찌나 철저하든지 거부감이 느껴 질 때도 있다. 작년 봄에 그 밭에 감나무가 여덟 그루 매화나무가 한 그루 심어졌다. 올해 그 나무에 새잎들이 피어났다. 감나무와 매화나무 아래에는 상추와 열무김치와 상추가 자라고 있고, 사이사이에는 고추를 심어 놓고 지주를 세워두었다. 열무김치도 상추도 고추도 싱싱하게 잘 자리고 있다. 좁은 땅에서 채소들을 돌보고 있는 나이든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의 곡식을 다루는 익숙한 손짓과 몸짓을 나는 오래오래 바라보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하나 같이 표정이 없다. 그 좁은 골목 좁은 공터의 농사는 우리 농촌의 한 방울 눈물이다.

 

/ 김용택 본보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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